소설리스트

第六章 마안 발현 (113/146)

第六章 마안 발현

정파연맹.

천무맹이 사라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회합의 이름이었다.

천무맹이 설립되기 전부터 정파의 뿌리 역할을 해 왔던 소림사가 그 중심이 되었다. 자연히 세력권 역시 하남성의 숭산을 심장부로 두었다.

본디 천무맹 휘하에 있던 문파와 가문들은 현재 정파연맹의 세력 아래 재편되어 있었다.

모두가 주지승인 철운의 빠른 판단 덕이었다.

그가 없었던들 상당수의 문파와 가문이 혼란 속에서 분열됐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

소림사는 사파동맹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중원 곳곳에서 올라온 무인들이 절 곳곳에 득실거렸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절을 넘어 숭산 전체가 숙소로 변해 버렸을 정도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중 대다수는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소모전만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사파동맹 측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만 추측할 뿐.

실제로 며칠 전부터는 심상찮은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었다.

분열의 조짐.

포로들의 증언 등을 보아선 사파동맹이 깨어질 수도 있는 듯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모용세가주인 모용중강의 목소리였다. 철운은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해야 할 게 너무나 많다 보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그려.”

“그렇습니까?”

모용중강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반백의 중년인이었던 그가 이리도 폭삭 늙어 버린 이유는 자식들 때문이었다.

황룡성이 붕괴하던 그날. 그의 직계인 세 남매 역시 그에 휘말려 행방불명되었다. 말이 좋아 행방불명이지, 죽었다고 봐야 옳았다.

그중 가문의 후계자로 점쳐지던 두 사람, 모용린과 모용훈의 죽음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모용중강은 그 이후로 눈에 띄게 노화해 버렸다. 마교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서.

그러나 현재로선 무기력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어쨌든 사파는 그의 복수의 대상이 아니었으니.

정작 마교는 준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으니 얄궂은 일이었다.

“대사, 언제까지고 이럴 수만은 없지 않겠소?”

또 다른 목소리가 철운의 귀를 흔들었다.

십여 장은 떨어져 있는 거리인데도 귓속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 숫제 음공을 펼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합장을 한 철운이 엷은 미소를 띠었다.

“기침하셨습니까?”

“음. 간만에 푹 잤소. 이러다 땡초들 잠자리에 익숙해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

목소리의 주인은 철혈권왕(鐵血拳王) 양무소.

검왕과 궁후 등이 모조리 사라진 지금은 정파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강자 중 하나였다.

“정말 큰일이오, 큰일. 사내대장부가 이름 한 번 떨치려고 집을 나섰는데, 막상 하는 일이라고는 산속에서 지루하게 기다리는 일뿐이라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사파동맹의 본거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흥. 거참 쥐새끼 같은 놈들이란 말이지.”

양무소의 목소리엔 살기가 배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현재 이곳에 모여 있는 무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대의를 위해 모인 이들도 많으나, 무인들 중 대다수는 명성을 떨치거나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다.

천무맹이 사라지면서 최고 수준의 무인들 중 상당수가 사라졌으니, 달리 보면 그 아래 배분의 무인들에게 기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소모전의 연속.

그들이 안달이 난 것도 당연했다.

“어쩌면 이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혈권왕.”

“음?”

세 사람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네 번째 목소리는 부드러운 가운데 작은 칼날을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소림 백팔 나한들 중 으뜸이라 불리는 염각이었다. 젊은 나이에 걸맞게 정중한 가운데 은은한 패기를 숨기고 있는 무승이었다.

그가 가져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이곳을 찾아온 젊은 무인이 있습니다. 자신을 흑천문 문주의 아들이라 주장하더군요.”

“흑천문의?”

흑천문이라 하면 그들에게서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문주인 흑류검 명규의 위명은 정파무림에도 자자한 편이었으니까.

철운이 물었다.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

“포박하여 나한들로 하여금 지키게 해 두었습니다.”

“이리로 데려오게.”

고개를 조아린 염각이 물러났다.

한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명신이 끌려왔다.

상당히 구타를 당한 듯 얼굴 곳곳에 멍든 모습. 그러나 그것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양무소가 대뜸 윽박질렀다.

“네놈! 흑천문 개자식의 아들이라 했더냐!”

피 섞인 침을 탁 뱉은 청년, 명신이 대꾸했다.

“흑천문주의 아들이긴 하나 개를 아비로 둔 기억은 없소. 그렇게 묻는 당신이야말로 혹시 개가 아니오?”

“허. 제법 배짱을 부리는구나.”

양무소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그의 신형이 재빠르게 움직여 명신의 복부를 한 대 후려쳤다.

“컥!”

뱃속이 진탕이 된 명신이 콜록거렸다.

“이건 선물이다. 마음에 드느냐?”

“크으…….”

“그만하시오, 권왕.”

“그러리다.”

철운의 말에 어깨를 으쓱인 양무소가 물러났다. 철운은 살의 없는, 그러나 친밀하진 않은 눈으로 명신을 보았다.

“그래, 직접 이곳을 찾아왔다고 들었다.”

“……그렇소.”

“아무 이유도 없이 오진 않았을 테지. 혼자서 정파무림과 결판을 내러 온 것 같지도 않고.”

“…….”

“어떤 이유로 이곳을 찾아왔는지 말해 보라.”

명신은 주저하는 눈치였다. 혀를 찬 양무소가 다시 윽박을 질렀다.

“어서 말하라니까!”

면박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더 주저하고 나서야 명신의 입이 열렸다.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소. 내가 당신들을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요.”

“허, 어이가 없군.”

양무소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다른 세 사람의 심정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뭔가 착각하고 있군, 애송이.”

내내 침묵하던 모용중강이 입을 열었다.

“신뢰하고 말고는 우리가 택할 일. 네놈에게는 아무런 선택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 이것만이 네게 주어진 길이다.”

“평소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나 역시 사파동맹에 복수하기로 마음먹은 몸이오.”

철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사파 세력에 반기를 들었다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초라하군. 기껏해야 혼자서 이곳을 찾아왔을 뿐이니.”

“다른 길이 없었소. 아버님과 문파 사람들 모두가 참살당했으니…….”

“흥.”

양무소가 코웃음을 쳤다.

“그게 네놈의 어설픈 거짓말인지 아닌지 어찌 안단 말이냐? 사실 우리가 알 바도 아니다.”

“정파무림은 의리와 정의로 검을 휘두른다더니 다 거짓말이었던 모양이군.”

“입만 살았구나. 정파의 정의를 거부했던 사파인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느니라.”

“…….”

잠깐 침묵하던 명신이 세 사람에게 물었다.

“한 가지 묻겠소. 당신들은 독왕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생각하오?”

철운과 모용중강, 염각의 눈빛이 바뀌었다. 양무소는 세 사람의 변화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들 그러시오?”

양무소의 물음에 철운이 입을 열었다.

“아직 대외적으로 발표한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끼리만 추측하고 있을 따름이나, 어쩌면 독왕 갈월이 이미 죽은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워 놓고 있었소.”

“독왕이?”

“생각해 보면 많은 점이 이상했습니다. 오랜 시간 웅비의 때를 기다려 온 독왕의 사파동맹이 이상하게 소모전만 펼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요.”

염각의 말을 철운이 받았다.

“우린 독왕 갈월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으리라 추측했소. 어떠한 이유로 거동하기 힘든 상태이거나,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갈월의 나이를 생각해 본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 말이죠.”

명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의 추측대로요. 독왕께서 동맹을 구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끝이었소. 그분에게 허락된 시간은 오직 그것뿐이었던 거요.”

“흠.”

양무소가 까칠까칠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뭐 제법 흥미 있는 이야기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 보긴 어려우니까.”

“고작 그 얘기나 하러 왔다고 말하진 않겠지?”

모용중강 역시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명신은 내심 심호흡을 뱉었다.

‘미끼를 드리우는 것은 지금부터다.’

과연 먹힐 것인가. 먹히지 않는다면 명신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과 다름없게 되리라.

“나는…….”

명신은 최대한 주저하는 척하며 말을 이었다.

“사파동맹의 본거지를 알고 있소.”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모용중강과 시선을 교환한 철운이 명신의 눈을 직시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지 않겠나?”

긴급회의가 열렸다. 십대문파와 갖가지 무림세가의 주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회의를 소집한 사람은 소림 방장 철운.

이번 일은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사파동맹의 본거지를 알아냈소.”

회의장에 모인 문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실 지난 몇 달 동안 알아내기 위해 전력을 쏟아 왔던 참 아니던가.

손을 들어 소란을 가라앉힌 철운이 말을 이었다.

“정보 제공자는 흑천문주 명규의 아들이오. 그의 말로는 호북성 동호 남부에 비밀 진지로 이어지는 동굴이 있다고 하더군.”

“거짓 정보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황보세가주인 황보진원의 말이었다. 그의 지적에 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소. 하여, 이미 사람을 보내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게 하였소.”

“사람이라면…….”

“염각을 보냈소.”

“음. 그랬구려.”

“염각 스님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요.”

문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팔나한의 필두가 그들에게 주는 신뢰감이란 그 정도였다.

“어쨌든!”

철운의 옆에 서 있던 양무소가 발을 굴렀다.

“이게 사실로 판명된다면 지루하게 끌어왔던 전쟁을 단번에 끝낼 수가 있을 거요.”

“음. 권왕의 말씀이 옳소. 하여, 미리 동호 쪽으로 연맹의 주 병력을 옮기고자 하오.”

총공격. 전력을 다해 적의 심장부를 분쇄해 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

“과연…….”

“끝장을 낸다면 확실히 내는 게 좋겠지요.”

“놈들에게 총공격을 감당할 역량이 있을 거라 생각되진 않소.”

문주들의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들로서는 손해였던 까닭이다.

하루 빨리 사파의 야욕을 끝장내고 새로운 정파무림 내에서 기반을 잡아야 했다.

앞으로의 정파무림은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철운도 문주들의 생각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전쟁이 빨리 끝난다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으니까.

물론 패배한 자에겐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다.

* * *

열흘 뒤. 동호 남부.

염각은 거미줄이 잔뜩 쳐진 동굴 앞에 서 있었다.

“이곳이……?”

얼핏 보기엔 사람의 흔적이 거의 닿지 않은 것만 같았다.

주변엔 야생견이나 늑대 등의 흔적이 즐비했고, 동굴 안은 거미줄이 빽빽하게 쳐져 한 걸음도 들어가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염각은 이곳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지나칠 정도로 많은 흔적들 때문에.

이거야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설치해 놓은 것만 같지 않은가 말이다.

‘그 청년의 말이 옳았군.’

염각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양기(陽氣)를 잔뜩 실은 주먹은 이내 열기로 화하였다.

“흠!”

일장을 내뻗었다. 강렬한 열기가 동굴 내로 휘몰아치며 거미줄을 죄다 녹여 버렸다.

염각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을 밝은 곳인 양 성큼성큼 걸어갔다. 시감(視感)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그였기에 어둠 속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빛이 나타났다.

“……!”

동굴 내부엔 거대한 공동이 있었다. 수많은 야명석이 빛을 밝히고 있었고, 그 아래로 분주한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했다. 이곳이야말로 사파의 본거지였다.

“생각보다 늦었군.”

“……!”

등허리로 소름이 쭈뼛 돋았다. 바로 뒤에서부터 들려온 목소리. 대체 어떻게 바로 뒤에까지 접근을 했단 말인가.

“큭!”

염각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이 분명한 만큼 몸을 회전시켜 곧장 반격을 가했다.

그의 주먹은 허공만 갈랐다. 적은 어느새 몇 걸음 물러나 있었다.

백팔나한의 필두인 염각이었다. 그런 그가 접근을 허용한 데다 헛손질마저 하게 만들었다.

‘이자, 엄청난 고수다.’

염각은 이를 악물었다.

이십대 후반, 많아야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아마도 겉모습은 무의미할 터. 벌써 몇 차례의 환골탈태를 경험했을 것으로 보였다.

사내는 미소 하나 띠지 않은 채 염각을 살피고 있었다.

“소림의 무승인 모양이군. 제법 실력 있는 놈을 보낸 것을 보니 놈들이 미끼를 제대로 물었군.”

“미끼라고?”

“그렇다. 본좌가 괜히 너희에게 이곳의 위치를 알려 주었으리라 생각하는가?”

‘함정!’

염각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그렇다면 흑류검 명규는 죽지 않은 거로군.”

“크게 도움이 되진 않으나 무능하지도 않으니 구태여 죽일 필요는 없지.”

“미쳤군. 아무리 함정이라 해도 이곳을 공습하게 될 것은 정파무림의 최정예 무인들이다. 너희가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우습군.”

화아악!

사내를 중심으로 살기가 퍼져 나왔다. 마치 대지를 휩쓰는 해일처럼 퍼져 나온 파도는, 바로 앞에 있던 염각의 감각을 완전히 마비시켜 놓았다.

“크…… 으윽!”

염각은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사내의 살기는 엄청났다.

괴물. 그것도 염각의 상상을 한참 벗어난 무지막지한 괴물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수준의 고수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염각이 버럭 소리쳤다. 대호를 앞에 둔 하룻강아지처럼, 공포를 애써 숨기기 위한 힘겨운 노력이었다.

사내가 비로소 차갑게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염각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과거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었으나, 너희에겐 이 이름이 가장 친숙할 테지.”

잠시 뜸을 들인 사내가 말했다.

“본좌는 진운룡이다.”

“진……운룡?”

낯익은 이름이다. 분명 그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초대 천무맹주? 천무맹주 진운룡이라고?”

“알고 있군. 하긴 당연하다고 해야겠지만.”

“그런 거짓말을……!”

“믿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기실 네가 믿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너의 믿음 따위는 본좌에게 있어 아무 의미도 없으니 말이다.”

진운룡이 한 걸음을 내딛었다. 고작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인데 염각은 벼랑 끝으로 몰리는 기분이었다.

“본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너라는 존재의 껍데기뿐. 그 외의 것은 필요치 않는다.”

“크으!”

기어코 염각이 전면으로 돌진했다. 심리적으로 극한까지 몰렸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타핫!”

앞서 펼쳤던 것과 같은 권격이 펼쳐졌다. 나한열풍권. 백팔나한의 무공 중에서도 가장 극강하다고 알려진 권법이었다.

열기에 휘감긴 주먹이 진운룡의 턱으로 쇄도했다. 바위마저 부수고 녹여 버릴 정도의 위력을 지닌 권격이었다.

진운룡은 피하지 않았다.

퍼억!

염각의 권이 진운룡의 턱에 내리꽂혔다. 그러나 그 순간, 산산이 박살나는 것은 염각의 오른팔이었다.

“크아악!”

손가락의 뼈마디가 모조리 으스러졌다. 강철을 주먹으로 내리친대도 이렇게 되진 않을 터였다.

“그, 금강불괴라니!”

염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나 진운룡이 일순간 펼친 수법은 분명 금강불괴공이었다.

“말하지 않았던가? 본좌야말로 최초의 천무맹주였노라고.”

“크으!”

염각이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뒤쪽엔 이미 다른 사파 무인들이 방벽을 쳐 놓고 있었다.

“큭!”

사파 무인들은 하나같이 얼이 나가 있었다. 염각으로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이 이미 죽은 존재라는 것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시체? 혈강시인가? 아니, 저들의 몸은 생생히 살아있다. 그렇다는 건 정신만을 죽였다는 소리인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러나 조금 전 목도한 진운룡의 무위를 생각해 본다면, 아주 허황된 얘기만은 아니리라 생각됐다.

‘저 괴물에게는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공황 상태인 염각의 귓가에 진운룡의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다시 말해, 본좌야말로 현세대 정파의 무공의 뿌리를 구축한 존재라는 의미다.”

“거짓말 마라!”

염각이 다시 몸을 돌려 진운룡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진운룡의 주먹이 좀 더 빨랐다.

염각의 복부에 꽂힌 주먹은 그의 정신을 산산이 조각내 버렸다.

“꺼으윽.”

체내가 박살난 염각이 걸쭉한 피를 쏟아내며 혼절했다. 진운룡으로선 상당히 힘 조절을 한 덕에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사파 무인들은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그들이 단순히 담대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물러나라.”

진운룡의 두 눈이 순간 기괴한 광채를 토했다. 그의 한마디에 무인들은 홀린 듯 돌아서서 멀어졌다.

마안.

과거 정천이 펼쳤던 것을 진운룡 역시 펼치고 있었다. 아니, 구태여 따진다면 진운룡의 것이야말로 원류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진운룡은 누군가의 충성심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의 마안만 있다면 어지간한 무인들 정도는 꼭두각시처럼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안이 무결점의 수법은 아니었기에 꼭 필요할 때에만 사용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그때였다.

파앗!

진운룡의 두 눈이 핏빛 광채를 쏟기 시작했다. 광채는 이내 염각의 두 눈으로 흘러들어 가 그의 눈동자가 물들이기 시작했다.

진운룡의 마안은 정천의 그것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또한 그 위력 역시.

물론 앞서는 쪽은 단연코 진운룡이었다. 상대를 제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잠재력까지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으니까.

내장 등이 완전히 박살났던 염각이 삽시간에 상처를 회복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강인해진 육체와 달리 붕괴된 정신은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이제 염각은 진운룡의 수족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마안을 유지한 채로 진운룡이 명령했다.

“바로 돌아가 소림사에 기별을 날려라. 이곳을 발견했으며 사파 무인들이 한데 모여 도주를 꾀하고 있노라고, 최대한 빨리 와서 섬멸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놈들이 도착한 후엔 이곳까지 안내하도록.”

“존명.”

진운룡이 물러가란 손짓을 했다. 염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돌려 물러났다.

이제 염각이란 인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정신이 파괴된 진운룡의 수하만이 존재할 뿐.

“준비가 모두 끝났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