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七章 혈귀왕, 패월군 (102/146)

第七章 혈귀왕, 패월군

유령마객은 졸지에 일마궁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사이 통천각의 무인들이나 여타 무인들을 만나긴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아무도 유령마객이 끌려가고 있다고 생각하질 못했다.

유령마객 역시 끌려가는 중이라고 소리치고는 싶었으나, 은밀히 등허리를 찌르는 단도의 감촉이 너무 생생했다.

찍소리라도 내려 했다면 단번에 척추를 꿰뚫렸으리라. 그 상태로 단검을 휘젓기만 해도 마의조차 손을 쓸 수 없게 됐을 터.

어쨌든 유령마객은 소리칠 생각도 없었다.

머릿속으로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생각하는 것만도 벅찼다.

‘고작 두 시진 조금 넘은 동안 벌어진 일이다. 대체 그 동안 관식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

추측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자존심 강하고 오만한 관식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름대로의 주관 역시 가지고 있었다. 힘에 대한 경의라는 주관을.

그리고 그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로 인해 마음이 바뀌었다는 정도는 얼마든지 예측 가능했다.

관식은 유령마객을 일마궁 내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곳엔 정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녀석인가?”

“그렇습니다.”

유령마객은 붕대 너머의 눈으로 정천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탄탄한 체형. 평균치를 조금 웃도는 정도의 체격. 시큰둥한 표정과 파악이 불가능한 내력.

마치 온통 검게 칠해진 도화지를 보는 듯했다.

마의가 천마 후보 영순위로 꼽는 게 이상하지 않을 고수다.

유령마객이 쭈뼛쭈뼛 말을 꺼냈다. 마교칠절의 일원인 그가 이렇게 위축되는 건 천마와 첫 대면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나를 불렀다고 들었소.”

“이곳 정세를 잘 아는 자가 누군가 했더니 너였군.”

마치 구면이라는 듯한 말투.

유령마객이 우물거리려니 정천이 피식 웃었다.

“저 자식이 박살날 때에도 구경하고 있었잖아.”

“……!”

유령마객은 내심 충격을 받았다.

그 정도 거리에선 지금껏 한 번도 은신을 간파당해 본 적 없는 그였다.

“대체 어떻게……?”

“감정이 동요하는 것만큼 기척을 들키기 쉬운 경우도 없지.”

관식이 패배하는 순간 유령마객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그로 인해 기척을 눈치채인 것이리라.

“어쨌든 잡담은 이쯤하지.”

정천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천마신교 내의 파벌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알고 싶다. 누가 어느 정도의 수하들을 두고 있으며, 누구누구가 적대 관계이거나 협력 관계인지.”

“……마교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려는 거요? 천무맹의 복수로서?”

“웃기는 놈이군. 저놈 말로는 네가 마교의 비영대주쯤 된다던데, 그렇다면 그때의 진상(眞相) 역시 알고 있을 텐데?”

유령마객은 잠시 침묵했다.

‘이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때의 일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아마도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진백란은 황룡성의 일에 대해 함구했다. 그것은 또 다른 관여자인 마의 역시 마찬가지.

우습게도 통천각주인 유령마객조차 많은 것을 알고 있진 못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나뉘어져 있던 조각들이 한데 맞춰질 것 같다고 느꼈다.

여전히 미궁인 부분도 많았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이 사내가 있다. 그렇다면!’

유령마객이 질문을 꺼냈다.

“당신은 새로운 천마가 되고 싶은 것이오?”

정천이 미간을 팍 구겼다.

“이것들이, 구관조도 아니고 왜 이리 같은 소리만 지껄여대는 거야? 내가 천마가 되고 싶다면 어쩔 거고 되기 싫다면 어쩔 건데?”

“그, 그야…….”

유령마객은 내심 당황했다.

“통천각주로서 본인은 천마 후보에게 최대한의 협력을 할 것이오.”

“그거 안 됐군. 난 천마가 될 생각이 없으니. 그래서, 말하기 싫다는 건가?”

“그건…….”

“싫다는 건가?”

“…….”

유령마객은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워졌다.

* * *

천마 휘하의 십마 중 제대로 된 세력을 거느린 것은 철절삼마뿐이었다.

그 외의 마교칠절은, 개개인의 무공은 독보적이지만 독자적인 세력을 지니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까닭이다.

때문에 마교 내 개인 세력은 두 개의 분파가 양분하고 있었다.

혈귀왕(血龜王) 유장천.

그리고 패월군(覇月君) 녹운담.

그들은 각기 혈사문과 패신림의 주인들이었다.

두 세력 모두 본디 독립적인 방파들이었으나, 천마의 세력 흡수 과정에서 마교에 편입되었다.

사실 이러한 식으로 흡수된 후 흐지부지 사라져 버린 문파는 부지기수였다. 마교의 특성상 내부 세력이란 것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의 정치적 수완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번 역시 그러했다.

철절삼마 중 두 사람, 운규백마와 괴룡염마는 귀암산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대신 배신자들이란 딱지가 붙어 말소되었다.

그 둘을 따르던 무리는 졸지에 눈엣가시가 되어 버린 상황.

유장천과 녹운담은 그들을 거두었다. 안 그래도 거대하던 그들의 세력이 더욱 확장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마교 전체를 저울질할 수 있는 상황까지 온 뒤.

천마제전 이상으로 두 사람의 움직임이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최후의 철절삼마인 멸살독마와 대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멸살독마의 얼굴은 그세 더욱 초췌해져 있었다. 부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지들의 배반으로 인한 충격이 주요 원인이었다.

“지금 이 늙은이를 협박하는 건가?”

“부디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외다.”

혈귀왕 유장천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패월군 녹운담이 교묘하게 말을 받았다.

“전대 천마 진검운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황룡성을 무너트리고 천무맹을 궤멸시키셨지요. 그분의 죽음은 마교는 물론이고 무림의 역사에 있어 정말 큰 손실입니다.”

“잘도 지껄이는구먼. 그분의 죽음에 누구보다 기뻐했을 것들이.”

날이 선 말에도 두 능구렁이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기쁘기는커녕 불안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분이 사라진 마교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말입니다.”

“그게 웃는 낯으로 할 소리인가?”

“그렇다고 항상 풀이 죽어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소이까? 독마 당신처럼 말이오.”

“흥.”

“어쨌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간단합니다, 독마.”

안 그래도 가느다란 녹운담의 눈매가 거의 일(一)자로 늘어졌다.

“마교의 공동 지배를 권하고 싶습니다.”

“공동…… 지배라고?”

“그렇소.”

투박한 얼굴의 유장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 진검운은 초인이었소. 기실 그의 혈통 자체가 그러했지. 서천진가는 마교의 역사상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천마의 직위를 내려놓지 않았지. 그럼에도 모두가 불만을 터트리지 않았던 건 진가에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었소.”

“그는, 그들은 최강의 무인들이었습니다. 최소한 진검운까지는 그러했지요.”

“하지만.”

유장천의 눈이 번뜩였다.

“진백란은 그렇지 않소. 아낙이기 때문이라고 하진 않겠소만, 그녀는 되먹지 않은 애송이에 불과하오.”

“아비를 잃은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을 보십시오. 정파의 얼치기들을 이천 명씩이나 끌고 와 먹여 주고 보살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유약한 수준을 넘어 멍청하다고밖엔 할 수 없습니다.”

“네놈들…….”

멸살독마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두 사람이 말하고픈 바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역겨웠다.

“이건 숫제 무인이 아니라 모사꾼이로군. 지금 그녀를 축출하자고 말하려는 건가?”

녹운담이 웃는 낯을 지우지 않고서 대답했다.

“엄밀히 말해 축출이라 할 것도 없지요. 사실 그녀의 존재는 그리 큰 문제도 아닙니다.”

“어차피 그 계집은 천마제전에 나온다 해도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하오.”

멸살독마는 침음을 흘렸다. 부정하기 어려운 말이었던 까닭이다.

이들은 교활하다.

그러나 그것이 약하다는 것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반대라면 모를까.

교활하면서도 강한 것이 이들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세력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천마가 이들보다 강하며 지혜로웠을 뿐.

“천마제전은 유명무실하오. 어차피 나나 패월군, 둘 중 한 명이 우승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그런 당연한 사실을 위해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싶지 않소.”

“그것이야말로 무의미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니 말입니다.”

“최후의 천마인 진검운은 죽었소. 그로 인해 천마의 핏줄 역시 종언을 고했소. 이제 마교는 바뀌어야 할 때요. 지금까지의 일군(一君) 체계를 벗어나, 다수에 의한 공동 조직체로 말이오.”

“…….”

“그것이야말로 천무맹이 사라진 새로운 중원에 대한 마교의 포효가 될 것입니다.”

멸살독마의 손등이 연신 꿈틀거렸다. 몸만 멀쩡했더라도 이 두 놈의 핏줄에 독을 풀었으리라.

“그래서, 이 늙은이에게 공동 통치를 제안하는 건가? 네놈들의 더러운 협잡에 협력하라고?”

“그렇소. 이것도 그나마 옛 선배니까 예우해 주는 것이오, 독마. 이미 그대의 세력은 우리와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니까.”

멸살독마의 입에 비웃음이 걸렸다.

“흥. 멍청이도 걸려들지 않을 헛소리를 하는군. 예우라고? 그게 아니라 반대 의견을 잠재우려는 얄팍한 수작이겠지. 네놈들만으로는 명분이 없으니 천마님의 수족이었던 나를 대리인으로 세우려는 게 아니냐?”

“흠흠.”

헛기침을 하는 유장천. 정곡을 찔린 것이다.

반면 녹운담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어떻게 보면 유장천 이상으로 무서운 인물이 그였다.

“잘 알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얘기도 빠르겠군요. 우리의 제안을 따르겠습니까, 아니면 죽음을 택하겠습니까?”

“흥. 이 늙은이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얄팍한 협박에 넘어갈 것 같으냐?”

“뭘 잘못 알고 있군요. 우리도 당신 같은 말라비틀어진 늙은이를 힘써 가며 죽일 생각은 없소. 어차피 내버려 두어도 곧 죽을 목숨인 것을.”

“네놈…….”

녹운담의 눈매가 구렁이의 그것처럼 빛났다.

“우리가 괜히 진백란의 이름을 꺼냈는 줄 아십니까?”

“……!”

멸살독마의 몸이 흠칫 떨렸다.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것을 안 유장천이 웃음을 터트렸다.

“핫핫핫! 천하의 멸살독마가 계집 하나의 목숨에 벌벌 떠는 꼴이라니.”

“이…… 쳐 죽일 놈들! 그분의 유일한 혈육을 죽이겠노라 협박하는 것이냐!”

“천마는 죽었어, 늙은이. 이젠 아무것도 아니지. 그리고 그자의 딸년은 칼 좀 쓸 줄 아는 계집에 불과해.”

“마교는 강자존. 그러나 강하다는 것이 꼭 힘 자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식으로 우리의 강함을 보여 주려는 것뿐입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을……!”

“그만! 댁의 말엔 흥미 없으니 대답이나 제대로 해. 계집의 시체를 볼 작정인가, 우리의 뜻에 따를 건가?”

“크윽…….”

멸살독마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분노가 활화산처럼 치밀긴 했지만 차마 터트릴 순 없었다.

그들의 세력은 강대하다. 그리고 진백란은 지지기반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다.

이천 명의 정파인들이 도움이 되진 않을 터였다. 이건 어디까지나 마교의 일인지라 그들이 나서면 마교 전체의 공분을 살 확률만 컸다.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놈들에게 있다.’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진백란의 목숨을 가지고 노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멸살독마는 그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차라리 자신이 죽으면 죽었지.

‘천마님, 이 늙은이를 용서하십시오.’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멸살독마가 물었다.

“내가 무엇을 해 주었으면 하나.”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유장천이 클클거리며 웃었다. 녹운담 역시 회심의 미소를 짓고서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것을 독마 당신의 생각인 양 공표해 주면 됩니다.”

“바람잡이 역할은 우리가 열심히 할 테니 걱정 마시구려.”

“네놈들…….”

멸살독마는 두 사람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 가능성이 높다고는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공동 통치란 게 허울뿐이라는 걸 모르는 것이냐? 자칫하면 그로 인해 마교가 두 쪽, 세 쪽으로 갈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왜 모르는 것이냐?”

“늙은이가 걱정할 일은 아니오. 당신들의 시간은 이미 끝났거든.”

소용없다. 유장천은 물론이고 녹운담도 그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하긴 애초에 말 몇 마디에 마음을 돌릴 거였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

“그럼 얘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녹운담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유장천도 따라 일어서며 짤막히 내뱉었다.

“허튼수작 부렸다간, 알 거라 보오.”

“…….”

두 사람이 방을 나갔다. 혼자 남게 된 멸살독마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을 움켜쥐고서 분노를 삭였다.

* * *

“그러니까…….”

정천이 결론을 내렸다.

“결국 그 두 놈이 가장 문제가 될 거란 소리로군.”

“아마도 그럴 거요. 아마 조만간 마교를 양분하기 위한 야욕을 드러내겠지.”

유령마객은 이미 유장천과 녹운담, 두 사람이 어찌 행동할 것인지 예측하고 있었다. 이미 움직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정천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그사이 관식은 이를 박박 갈아댔다.

“개자식들. 본인의 무공으로 결판을 내지는 못할망정 협잡꾼처럼 굴려 한단 말인가?”

“꽤 영리한 방식이지.”

“그렇습니다! 무척이나 영리한…… 예?”

정천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쁘지 않은 방식이란 거야. 최소한 천마제전보다는 효율적인 방식 같군.”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관식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천은 괘념치 않았다.

“만약 어떤 미치광이가 엄청난 무공을 소유했다면? 놈이 천마제전에서 우승할 경우 마교 전체가 놈의 수중으로 들어가겠지. 그 미치광이가 모두 자결하라고 말한다면 어쩔 테냐?”

“그, 그건…….”

“천마제전이란 체계는 비효율적이고 멍청한 방식이야. 그저 강한 놈이 대가리라니. 어린애들도 그런 식으로 머리를 뽑진 않을걸.”

“…….”

“너희가 운이 좋았던 건 그간 천마들이 영리한 작자들이었단 점이야. 가장 강한 놈이 현명한 편이었다는 행운 덕에 그나마 마교가 유지되어 온 거다.”

관식은 시무룩해졌다.

생각해 보면 그나 다른 마인들이나 그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천마는 구름 위의 존재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리고 그가 사라진 지금 자기에게도 기회가 왔다고만 생각했을 뿐.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신들은 그저 자그만 울타리 안에서 힘자랑하는 바보들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유장천과 녹운담을 용납할 수도 없었지만.

“그럼…… 놈들이 마교를 나눠 먹도록 잠자코 있어야 한단 겁니까?”

정천은 작게 혀를 찼다.

“누가 그러디? 그냥 놈들의 방식이 꽤 영리하다는 거지. 그리고 정말 놈들에게 찬동한다면 여기서 죽치고 있지도 않았을 거다.”

“여, 역시 그렇죠?”

“넌 생각보다 멍청한 놈 같군. 이제 보니 무정검이 아니라 무식검 같은데.”

정천의 핀잔의 관식은 머리를 긁적였다.

유령마객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기분이었다.

물론 관식이 무정검이란 별호답게 아예 정(情)이란 게 전무한 인물은 아니었다. 검격이 효율적이고 무정해 보일 만큼 매서웠기에 붙은 이름이었으니.

사람 자체는 자신감 강하고 저돌적이긴 해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마인의 기준에서.

어쨌든 그런 관식을 어린애 다루듯 하는 정천의 모습엔 얼이 빠졌다.

‘그릇 자체가 다르군.’

유령마객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사람의 그릇이란 것에 감탄해 본 적은 천마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이, 유령.”

“예, 예?”

“뭘 그렇게 놀라? 딴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나?”

“아니, 그게…… 예, 그렇습니다.”

정천은 그게 무슨 생각인지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만일 녀석들이 계획을 실현하려 한다면 어떤 방식을 택할까?”

“그건…….”

유령마객은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어느새 그는 정천을 자신이 따를 사람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이자는 천마다. 스스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자꾸만 잡념이 섞여 들어왔다.

그것을 떨쳐 낸 유령마객이 겨우 결론을 도출했다.

“그 두 사람의 계획은, 놀랍긴 하지만 반발도 불러일으키기 쉬울 겁니다. 상당히 많은 이들이 불만을 표할 테죠.”

“혁신적인 건 배척당하기 일쑤니까. 그래서?”

“아마 보다 권위 있는 자의 힘을 빌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교도 놈들이 권위 같은 것을 존중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유령마객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대협이 보았던 진마동의 마인들도 그러했습니까?”

“……그건 아니었지. 한 방 먹었군.”

정천은 피식 웃었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사과하지. 어쨌든 권위에 기댈 수만 있다면 상당수의 마교도들이 입을 다물 거라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현재로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은?”

“크게 둘입니다. 마교 최고령자인 구령마존(九靈魔尊) 임철형, 그리고 최후의 철절삼마인 멸살독마입니다.”

“멸살독마로군.”

단번에 답을 내리는 정천.

관식이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째서 그 노인네입니까?”

“천마의 최후를 보았으니까. 직접적으로 본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저 늙기만 한 노인보다는 쓸모가 있겠지.”

정천은 걸터앉아 있던 마루에서 일어났다.

“안내해.”

“예?”

“멸살독마, 그자에게 안내하라고.”

유령마객은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벌써 움직이려는 것인가?

“독마는 의심 많은 자입니다. 게다가 그를 따르는 세력도 작지는 않습니다. 환영을 받기는 힘들 거라 생각됩니다만.”

“어차피 지금껏 환영받아 본 기억은 별로 없어. 그 사실에 신경 쓰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인 유령마객이 경공을 펼쳤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정천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를 따라 정천과 관식이 허공을 갈랐다.

멸살독마가 기거하는 곳은 독마전이라 불리는 건물이었다.

철절삼마의 명성에 비해선 소박한 크기. 하지만 그 안에 서려 있는 고풍스러움은 상당했다.

정천에게 있어선 알 바가 아니었지만.

“여기인가?”

“그렇습니다. 독마는 아직 요양 중이니 밖에 나가진 않았을 겁니다.”

정천은 간단히 독마궁을 훑었다.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과 그 내부에 있는 세 자릿수의 무인들. 그리고 멸살독마 본인이 건물 곳곳에 펼쳐 놓은 함정들, 곳곳에 뿌려져 있는 독무(毒霧).

그때 유령마객이 먼저 나섰다.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제가 만나고자 한다면 독마도 거절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지.”

쓸데없는 살생은 좋을 게 없었다. 정천은 유령마객더러 나서게 했다.

유령마객은 문지기들에게 유유히 걸어갔다.

그가 누군지 알고 있는 문지기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독마를 만나 뵙고자 왔다. 유령마객이 왔노라고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문지기 하나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일각쯤 지나 곤혹스러운 얼굴로 되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독마께서는 지금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독마께서?”

유령마객은 난처해졌다. 설마 일언지하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내가 신분을 밝혔는데도……?’

이런 경우는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물론 천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이 클 수도 있었다. 동렬의 동료들의 배신으로 인한 충격이 클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상했다.

‘독마가 그렇게까지 감상적인 인간은 아닐 텐데.’

유령마객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그의 옆으로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정천이었다.

“정천이 왔노라고 독마에게 전해.”

“……?”

문지기는 의아한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녀석에 난생처음 듣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어서 전하라니까!”

유령마객이 재촉하니 그제야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번엔 다른 의미의 얼굴로 되돌아왔다.

“독마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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