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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章 천마재림 (90/146)

第七章 천마재림

“빌어먹을!”

“……칫.”

귀도신마와 백미련은 난감해하고 있었다.

앞서 나간 마라혈천들이 도발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속도를 일절 죽이지 않았다. 백미련과 귀도신마가 살초를 날리더라도 피하기만 할 뿐,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암만 정교한 공세를 펼쳐도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맞을지언정 일말의 반격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전혀 줄지 않는 속도를 보며 귀도신마가 이를 갈았다.

“마라혈천이란 놈들은 원래 이러나? 이거야 원 사람 새끼가 아니라 혈강시 같군!”

“이상해. 본디 충성심이 강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본디 혈천의 일원이었던 백미련조차 당황할 정도.

귀도신마는 이를 악물었다.

“그 전투가 놈들을 바꿔 놓은 모양이군.”

분명했다. 천마와의 전투가 무언가 영향을 주었으리라.

귀도신마의 예측은 정확했다. 이들 마라혈천은 무의식중에 자기 자신을 경멸하고 있었다.

천마에게 공포를 느꼈던 자신들을.

나아가 그에게 놀아나 흑천살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신들을.

정도야 조금씩은 다르지만 그들 모두는 흑천살을 우두머리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저 마라혈천의 명령을 전달할 뿐이라지만 말이다.

그런 대장을 자기들 손으로 죽음에 몰아넣었다.

그 충격으로 인해 겨우 깨어났던 인간성을 억지로 봉인해 버린 것이다.

이제 이들은 명령만을 따르는 기계나 다름없었다.

“젠장!”

귀도신마가 분통을 터트렸다. 이래서는 멈추기는커녕 자기들 쪽이 먼저 진이 빠질 것 같았다.

공격하는 쪽이 도리어 낭패에 빠지는 추격.

그것이 끝났을 때, 귀도신마는 더욱 큰 낭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 *

항추열마의 죽음.

그것이 신호가 되어 마라혈천의 파도는 마교 본대 전체로 이어졌다.

“크아아악!”

“으아악!”

사방에서 애처로운 비명이 울렸다. 누가 이들을 보고 사상 최강의 마교도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제기랄! 개자식들, 나와 붙자!”

귀도신마는 미친개처럼 마라혈천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백미련마저 질릴 정도의 기세였다.

그러나 그가 맡을 수 있는 혈천은 기껏해야 한둘뿐. 나머지는 여전히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

‘어떻게 한다지?’

백미련이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몇몇 마라혈천들이 그녀를 포위했다.

“배신자. 조금 전까지는 잘도 까불더군.”

“이제는 분을 풀 수 있겠어.”

인간성을 봉인했다지만 증오심만큼은 예외인 모양이었다. 백미련의 등허리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분들을 배신한 것을 죽을 때까지 후회해라.”

“바로 죽이진 않겠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만든 다음에 숨통을 끊어 주마.”

표독스러운 말들에도 백미련은 표정을 구기지 않았다.

그저 불쌍하다는 듯 옛 동료들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너희들, 대체 무엇을 위해 혈선에게 충성하는 거지?”

“허튼수작은 집어치워라. 네 세 치 혀에 휘둘릴 우리가 아니다.”

“그럴 테지.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군.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충성하는 거지?”

천연살 이상으로 앳되어 보이는 소년이 대답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들만이 우리의 주인이고 부모이시다.”

“아냐.”

백미련은 고개를 저었다. 이게 먹힐 거라고는 스스로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말하고 싶었다.

“너희의 주인은 너희 자신이야. 혈선 같은 이들이 아니라.”

“개소리!”

“놈들은 무인들을 몰살시켜 무언가를 하려고 해. 그렇다는 건 너희 역시 희생시킬 거란 소리야.”

백미련은 피를 흘리고 있는 마라혈천 한 명을 손으로 가리켰다.

“네 발아래를 봐. 네 피가 땅속에 스며드는 것을. 자연적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이상하지 않아?”

그녀의 지적은 정확했다. 상당량의 피가 거짓말인 것처럼 삽시간에 땅속으로 흡수되었다.

“놈들은 너희들의 피 역시 이용하고 있어. 다시 말해, 정파인들과 마인들이 모두 죽고도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너희 역시 죽일 거야.”

“그,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소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분들을 위해 죽는다면 차라리 영광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백미련은 친절하기까지 한 어조로 물었다. 그 물음에 대답하는 마랄혈천은 아무도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누구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심각하게 세뇌되어 있는 그들이었기에.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천마에 의해 인간성에 눈뜨고, 새삼 자신들의 목숨의 소중함을 안 직후였기에.

인간성을 다시 봉인했다지만, 이미 증오심을 발산하는 시점에서 그 봉인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을 속이고 있었을 뿐.

그들은 여전히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닥쳐라!”

소년은 더 참지 못하고 백미련에게 덤벼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다른 마라혈천들도 그녀를 공격해 들어갔다.

백미련도 할 수 없이 구절검을 펼쳐 그들에게 맞섰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본디 비슷비슷한 실력의 그들인데다, 정천에게 당한 이후로 그녀의 무위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파팟! 파팟!

백미련의 옷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어 갔다. 치명상은 없었지만 그녀의 체력은 착실하게 소모되어 갔다.

“윽…….”

상당량의 출혈로 인해 백미련이 비틀거렸다. 예의 소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팟!

구절검 하나가 강기를 잃고 소멸되었다. 평범한 상태가 되어 버린 그녀의 머리칼이 소년의 검에 잘려 허공에 흩날렸다.

아홉 자루의 검 모두가 소멸하는 데엔 반 다경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끝이다.”

소년의 검이 백미련의 목에 닿았다.

백미련은 살기 어린 소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듯.

소년이 이를 악물었다.

“배신자 주제에 그런 표정은 짓지 마라!”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너희는 배신이라 하지만 난 자유를 찾은 것뿐이야.”

“궤변이다! 넌 그분들을 저버린 배신자에 불과해!”

“네가 그분들이라 부르는 놈들은 언제든 너희를 내팽개칠 존재들이야. 그들의 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자기네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크으…….”

소년은 차마 검을 움직이지 못한 채 침음했다. 가볍게 옆으로 긋기만 해도 모든 것이 끝나련만, 그 간단한 동작이 차마 떨어지질 않았다.

핏!

바람을 가르는 소리. 이윽고 소년의 검이 튕겨지듯 치솟았다.

궁후 요태희의 천해랑사였다. 무령권마에게 당한 상처 때문에 평소 같은 위력은 아니었으나, 소년의 검을 쳐내는 데엔 충분했다.

“크윽!”

소년이 당황하는 사이, 반대편에서 시퍼런 뇌전이 번뜩였다.

“차앗!”

뇌혈도 장유추의 천뢰강림!

뇌전은 소년과 마라혈천의 정중앙으로 떨어져 사방으로 작렬했다.

“크아악!”

그 위력은 천하의 혈천마저도 격통의 비명을 토할 정도. 이미 파괴력만큼은 정천 외의 누구도 대적할 수 없게 된 장유추였다.

“빌어먹을 칼도둑놈! 이제야 오다니!”

피투성이가 된 귀도신마가 한쪽에서 소리쳤다. 장유추는 클클 웃으며 광천뇌도를 휘휘 저었다.

“아직도 살아 있었느냐? 정말 악운 하나는 더럽게 좋구나, 떠벌이 녀석.”

“흥.”

귀도신마가 코웃음을 치며 검강을 날렸다. 다가들던 혈천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그 역시 도리어 한 팔을 잃고서 더 강해진 듯싶었다. 잘려 나간 팔이 연신 욱신거렸으나, 초인적인 정신력은 이미 육체를 초월한 상태였다.

“크으으, 빌어먹을 늙은이!”

반쯤 몸이 타 버린 소년이 나찰 같은 얼굴로 달려들었다.

장유추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광천뇌도를 휘둘렀다. 평범한 도격이었으나 천뢰강림이 실린 이상은 어지간한 절초를 능가했다.

퍼억!

소년의 몸이 어깻죽지부터 반대편 허벅지까지 갈렸다. 그대로 쓰러진 소년의 눈에서 빠르게 생기가 빠져 나갔다.

“…….”

백미련은 착잡한 눈으로 소년을 내려다봤다. 장유추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서 말했다.

“감상에 젖을 것 없다. 천연살이란 놈도 그랬지만, 저 녀석도 겉은 어린애지만 그 알맹이는 한 사람의 무인이었다.”

“……그건 본후도 알고 있어.”

“그렇다면 노부가 굳이 사과하지 않아도 되겠군.”

“그래. 사과하지 마. 지금은 무엇보다 이 살육을 막는 게 우선이야.”

“동감이다.”

장유추는 나머지 혈천들에게로 짓쳐 들어갔다.

마교 본대의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든 시점. 그제야 전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 * *

“크으윽!”

파헤쳐져 뼈가 반쯤 드러난 어깨를 움켜쥔 채 운규백마가 신음했다.

그의 두 눈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그는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놈들이 우릴 배반했단 말인가? 팔부혈선, 그놈들이?’

의심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애써 그러지 않을 거라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무엇 때문에? 혈선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을까?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운규백마의 주름 가득한 볼 위로 눈물이 흘렀다. 잘못된 길에 빠져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한 뒤였다.

‘천마시여.’

파악!

기어코 그의 팔이 잘려 나갔다. 혈천 중 하나의 짓이었겠지만 눈물에 흐려진 눈으로는 확인조차 못했다.

“으아아아!”

운규백마는 고통조차 잊은 채 울부짖었다. 이제 와서야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깨달은 것은 자신이 모든 것을 망쳤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천마가 죽고 마교는 무너지게 되었다. 그가 이룩해 왔던 모든 것이…….

“빌어먹을 늙은이! 멍청히 서서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운규백마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이는 구천궁마였다. 그 역시 운규백마만큼이나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놓아라. 이 늙은이는 죽어서도 천마께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멍청한 소리! 그 작자를 배신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착한 졸병 같은 소리나 지껄이는 거냐!”

구천궁마의 목소리가 거세게 울렸다.

“우린 천마를 배신한 자들이다! 그게 뭐 어떻다고? 주인과 수하 사이에도 음모가 난무하고, 비열한 술수든 아니든 상관없이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이 천마신교 아니었나?”

“우리의 천마는 특별했다. 그런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우리야.”

“하!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천마는 최강이고 어떤 암수와 음모로도 해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진심으로 따를 수 있었던 거고!”

구천궁마의 눈엔 귀기가 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천마마저도 결국은 죽었다. 그럼 그걸로 끝인 거야. 결국은 그자도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다는 거지!”

“멍청한 소리…… 이젠 모든 게 끝났다.”

“제길! 그럼 멍청히 엎어져 있어라!”

운규백마를 내던진 구천궁마가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나는 구천궁마 백오경이다! 그 누구도 감히 이 몸을 죽이진 못한다!”

그 외침에 이끌렸는지 서너 명의 마라혈천이 구천궁마에게 달려들었다. 구천궁마는 사납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구두궁을 당겼다.

파바바밧!

어느 때보다도 시뻘건 핏빛을 머금은 강기 다발이 격발되었다.

그 위력은 구천궁마의 본 실력마저 넘어섰는지라, 마라혈천들조차도 주춤하며 물러날 정도였다.

그래도 그중 하나는 구천궁마의 바로 앞까지 돌진할 수 있었다.

“흥!”

구천궁마는 코웃음을 치며 각법을 펼쳤다. 어떻게든 활을 당길 두 팔만은 보호해야 했다.

파악!

그의 왼쪽 다리가 잘려 나갔다. 구천궁마는 그 와중에도 틈을 찾아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퍽!

기어코 마라혈천의 이마에 강기 다발이 꽂혔다. 마라혈천의 머리가 수박 깨지듯 터져 나갔다.

“난 죽지 않는다!”

그렇게 소리치는 구천궁마의 위로 다른 혈천들의 칼날이 내리꽂혔다.

“크으으으!”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구천궁마는 끝까지 싸웠다. 구두궁이 잘려 나간 다음엔 주먹질을, 두 팔마저 잘려 나간 다음엔 박치기를 시도했다.

혈천들조차 그 귀기에 질려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못한 채 물러났다.

“크으…… 쿨럭!”

두 팔과 다리를 잃은 채 구천궁마는 각혈했다. 눈앞이 차츰 희미해지는 것이 이제 끝이 왔다는 게 실감되었다.

“나, 나는 죽지 않는다.”

그야말로 공허한 외침이었다. 구천궁마의 입에서 어느 때보다 공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온 것인가.

무엇을 위해 그를 배신했던가.

‘어쩌면 나는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당신이 이번에도 역시 멀쩡히 돌아오리라고.’

그러나 천마는 죽었다. 구천궁마의 영혼도 그때 이미 절반은 죽은 셈이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구천궁마의 볼 위로 뚝뚝 떨어졌다. 핏방울은 결코 아니었다.

누군가의 눈물.

구천궁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재수 없게 울지 마라.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울지 않고 있다.”

익숙한 목소리다. 구천궁마는 눈에 힘을 주었으나 뿌옇게 된 시야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혈패검마냐?”

“그래.”

혈패검마이자 천마의 딸, 진백란이 그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크크크.”

구천궁마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 때보다도 힘이 없는 웃음소리였다.

“아비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인가. 내가 죽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겠군.”

“……그래. 정말 다행이야.”

“그렇다면 어서 죽여라. 쓸데없는 동정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당신 같은 인간은 동정하지 않아.”

진백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와중, 누군가가 자신에게 내력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도가의 비전술 중 하나인 회기영술. 이것이 가능한 이는 마교에서도 한 명뿐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마의.”

“아가씨께서 명령하셨으니까.”

마의의 목소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구천궁마는 일시적으로 시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뚜렷해진 시야에 들어온 것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진백란이었다.

“그런 모습이나 보여 주려고 날 회복시킨 건가?”

“그렇지 않아.”

“어찌 됐든 복수를 할 거라면 어서 해라. 회기영술로도 내 생명을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마의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단전까지 박살이 난 구천궁마였기에, 암만 회기영술을 펼친대도 생명을 잠시 연장하는 게 전부였다.

진백란의 옆엔 운규백마가 널브러져 오열하고 있었다. 그 역시 구천궁마와 마찬가지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구천궁마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마교를 재건할 거야. 반드시 이곳에서 살아남아 아버님의 뜻을 잇겠어.”

“…….”

“그 말을 당신들, 배신자들에게 해 주고 싶었어. 내 의지를 당신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마교는 반드시 되살아날 거야. 그러니까.”

진백란은 눈가를 훔치고서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라면 너희를 용서하셨겠지. 자신의 죽음은 자신이 그만큼 강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거라고 하실 테지. 그것이 바로 마인들의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니까. 천마니까.”

“…….”

“내가 천마가 되겠어. 아버님께 견주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천마가.”

구천궁마의 시야는 다시 흐릿해지고 있었다. 몸에서도 이미 급속도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최선을 다해 비웃음을 그렸다.

“네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콰과과광!

터져 나온 굉음이 진백란의 목소리를 뒤덮었다. 구천궁마와 운규백마의 시선이 자연히 그쪽으로 향했다.

마라혈천이 나타났던 숲. 그곳에서부터 흑색 강기로 온몸을 두른 사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희미하게만 보일 따름. 그러나 그가 흘려보내는 기운은 분명 익숙한 것이었다.

“천……마.”

구천궁마의 입이 자기도 모르게 열렸다. 운규백마 역시 놀란 눈을 가누지 못했다.

“어, 어떻게? 그분이 살아계셨단 말인가?”

구천궁마의 대답은 없었다. 이미 그의 고개를 땅을 향해 떨어진 뒤였다.

희미한 미소만을 입에 머금은 채.

* * *

정천은 전방을 응시했다. 딱딱하게 굳은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교도들도 마라혈천도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천마…… 님?”

어느 마교도의 목소리. 하긴 기운이 그토록 비슷하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정천은 마라혈천들을 돌아보았다.

“날뛰는 것도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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