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 칼날의 파도
오른쪽 어깻죽지가 찢겨져 뜨거운 피를 쏟는다. 부러진 갈비뼈가 내장 어딘가를 찌르는지 복부가 쑤신다. 짠맛이 나는 핏물이 역류하여 입속을 가득 메운다.
모용훈은 애써 비명을 참으며 생각했다.
‘좋지 않다.’
지형적 이점은 완전히 챙겼다.
그 덕에 모용훈과 무인들은 밀리는 전력으로도 대등한 싸움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
싸움이란 결국 강한 쪽이 승리하는 법이다. 지략이란 것은 그 차이를 메우거나 혹은 뒤집기 위한 것이지만, 당연하게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퉤엣.
피 섞인 가래침을 뱉은 구천궁마가 입을 열었다.
“대단하구나.”
비웃음이 일절 섞이지 않은 목소리였다. 구천궁마는 정말로 모용훈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훌륭히 싸웠고 훌륭히 버텼다. 그리고 이제는 훌륭히 패하겠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주변이라도 한번 돌아보는 게 좋겠군.”
모용훈은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굳이 돌아보지 않더라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제외한 무인들은 모두 쓰러졌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으나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궁기병대 쪽도 마찬가지.
백호문을 넘어온 궁기병대는 전멸했다. 바깥에 아직 남아 있을 공산이 크지만, 어쨌든 이쪽으로 넘어오는 이는 없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쇳소리로 보자면 아직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모양.
어찌 됐든 결론은 간단했다.
“네 쪽도 너 홀로 남았다, 구천궁마.”
“그렇지. 하지만 네가 남았다는 것과 이 몸이 남았다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싸움에는 언제나 변수가 있는 법이다.”
“그 변수마저 짓눌러 부수는 것이 이 몸이다.”
모용훈은 더 말하지 않았다. 폐를 찔린 듯 말을 할 때마다 힘이 들었다.
그것을 본 구천궁마가 피식 웃었다.
“하긴 지금은 말할 힘까지도 아껴야겠지. 이 몸과는 달리 말이야.”
“…….”
“어쨌든 서전을 실패로군. 이거, 운규백마가 가만히 있지 않겠는걸.”
모용훈은 잠시 고민했다. 무인으로서 당당히 죽을 것인가, 어떻게든 목숨을 도모할 것인가.
예전이었다면 주저 없이 전자를 택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약간이라도 더 시간을 끈다.’
생각을 마친 모용훈이 입을 떼었다.
“천마는 어디에 있지?”
“글쎄. 지금쯤 시체가 되어 어딘가를 뒹굴고 있겠지?”
“너희가 배신한 거냐?”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지 마라. 팔부혈선에 대해 알고 있다면 천마가 어찌 됐는지도 알 텐데?”
“그게 무슨 소리냐?”
구천궁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쓸데없이 설명하느라 힘을 빼지 않았다.
“약은 녀석이로군. 교묘하게 시간을 끌려고 하고 있어. 하지만 이 몸에겐 통하지 않는다.”
“…….”
모용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말 그대로 얕은수였고 간단히 간파당하고 말았다.
‘남은 것은 하나뿐이로구나.’
모용훈은 체념했다.
그러고 나니 새삼 마음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허? 네놈, 웃고 있는 거냐?”
구천궁마의 물음.
아마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나 보다.
모용훈은 그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어이가 없다는 듯 지켜보던 구천궁마도 결국 헛웃음을 뱉었다.
“대단하군. 젊은 놈이 목숨을 버릴 줄도 알고.”
“와라, 구천궁마.”
“아니.”
구두궁의 시위가 당겨졌다.
“가는 것은 이 몸의 화살이다.”
“…….”
모용훈은 이를 악물었다. 여태 싸우는 동안 구천궁마는 한 번도 저 활을 당기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상당히 많이 봐주고 있었다는 의미다.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 이 몸은 아무에게나 구두궁을 쓰지 않으니까.”
“고마운 일이군!”
모용훈은 득달같이 몸을 날렸다. 구천궁마가 시위를 당기는 틈을 노리려는 것이었다.
물론 칠절에겐 무의미한 짓.
이미 화살은 모용훈의 미간을 노리고 있었다.
‘끝이다!’
모용훈의 머릿속에 죽음이 스쳐 지나갔을 때.
콰앙!
백호문이 부서지며 인영 하나가 먼지를 헤치고 나타났다.
‘강하다!’
본능이 구천궁마를 자극했다. 자동적으로 그의 화살이 백호문 쪽으로 향했다.
그를 향해 쇄도해 오는 사람은 전 천무맹주 남궁운.
칠절에 필적하는 몇 안 되는 전력이었다.
“흠!”
군자검을 떨친 남궁운이 제왕검식을 펼쳤다. 순간적으로 무형의 검기 다발이 화살처럼 뿌려져 구천궁마를 노렸다.
“흥!”
코웃음을 친 구천궁마가 시위를 놓았다. 그의 별호를 연상케 하는 아홉 가닥의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각각의 기운들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콰과과광!
모용훈은 덤벼들던 것을 멈추고 몸을 웅크렸다. 그냥 서 있다가는 폭발의 진동만으로도 뱃속이 진탕될 것 같았다.
첫 일격은 호각.
남궁운은 이미 다음 검격에 들어간 뒤였다.
스륵!
강하게 전각을 밟고서 일직선으로 칼날을 찌른다. 조금 전과 반대로 일점에 강기를 집중시킨 필살의 초식이었다.
일섬류(一纖流).
언제고 검왕에게 재도전하기 위해 갈고닦은 절초였다.
파바바밧!
가늘고 날카로운 검강이 구천궁마에게 쏘아졌다. 구천궁마는 아홉 가닥의 강기 다발을 한데 모은 다음 쏘아 반격했다.
콰아앙!
조금 전과 비교도 안 될 폭발이 일어났다. 비교적 가까이 있었던 구천궁마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크으…….”
격통에 의한 신음.
구천궁마의 흉부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언제 수를 쓴 거지?”
“내가 아니다.”
남궁운이 옆을 가리켰다. 역시나 익숙한 얼굴이 백학선(白鶴煽)을 들고 서 있었다.
천무맹 군사 제갈현이었다.
“정파란 놈들이 얕은수를 쓰는군.”
“그걸 개의치 않는 것이 마교도 아닌가?”
구천궁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궤변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로구나. 그래서 두 놈이 합공하겠다는 것이냐?”
“그렇다. 지금은 정정당당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구천궁마는 백호문 쪽을 힐끔 보았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병장기 소리는 어느새 멎은 뒤였다.
“내 수하들은 모두 죽었나?”
“백호문 바깥에 있던 마인들 얘기라면, 그렇다.”
“크크, 그렇군.”
구천궁마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몸을 띄웠다. 그는 경공을 펼쳐 단번에 성벽 위로 올랐다.
남궁운은 그를 쫓지 않았다. 역습당할 가능성도 있었고, 지금은 천무맹을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구천궁마는 핏발 선 눈으로 남궁운을 내려다봤다.
“언제고 네 미간에 화살이 박힌다면 내 수하들의 몫이라고 생각해라.”
“그날을 기다리지.”
구천궁마는 돌아보지 않고 반대편으로 뛰어내렸다. 남궁운도 몸을 돌려 모용훈에게 다가갔다.
“괜찮나?”
“괜찮습니다. 그보다 제 여동생이 전해 달라고 한 얘기가 있습니다.”
“팔부혈선에 대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남궁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모두 나의 불찰이야. 오늘의 참사는 내가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맹주.”
“나는 더 이상 맹주가 아닐세, 군사.”
“검왕이 죽은 지금은 얘기가 다릅니다. 임시라고는 해도 맹주가 될 사람은 한 분뿐입니다.”
제갈현의 말에 모용훈이 깜짝 놀랐다.
“맹주, 아니 전 맹주께서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그렇다면 설마 천마가……?”
남궁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네. 어쨌든 지금은 일단 움직여야겠군. 자네 여동생은 어디에 있나?”
“북풍장에 남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본청 쪽은 당한 모양이군. 그렇다면 그쪽으로 가는 편이 낫겠어.”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세 사람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 제갈현은 쓰러진 시체들을 기이한 눈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이상하다.’
시체들에게서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처음엔 그게 무엇인지 잘 몰랐으나,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피!’
시체들은 꼭 피를 모두 빨린 것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바로 알아채지 못한 것은 옷에 묻어 있는 피 때문이었다.
그것을 제외한 피는 모두 빠져나간 모양.
‘도대체 어떻게?’
그것은 제갈현으로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혈선들의 음모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 * *
운규백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멀리서는 유일한 생존자인 구천궁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서전은 이쪽의 패배로군.”
보아하니 풍귀마는 죽은 모양. 구천궁마는 비교적 멀쩡한 편이지만 수하 전부를 잃었다.
천무맹 쪽도 피해가 상당할 터였지만 그리 큰 위안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압승을 생각했던 그였기에.
구천궁마가 가까워졌을 때 운규백마가 혀를 차며 말했다.
“칠절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부리나케 도망쳐 왔군.”
“비아냥대지 마시오. 놈들은 강했소.”
“패자들의 변명은 항상 그런 식이지. 구태여 상대방을 추켜세우려고 해. 그래야 패배한 자신이 우습지 않아 보일 테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백마?”
이글거리는 구천궁마의 눈에서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더 말을 잇다간 구두궁을 쏘아 갈길 기세.
운규백마는 차가운 눈으로 혀를 찼다.
“흥분이나 가라앉히게. 이제부터 마교군 전체가 움직일 테니.”
“마구잡이로 돌진만 해서는 곤란하오. 놈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소.”
“궁여지책이 운 좋게 먹힌 것뿐이지. 더 이상 놈들에겐 우리를 막아 낼 수단이 없다. 있다손 쳐도 우리의 압도적인 힘을 당해 낼 순 없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멀리서 지켜봤으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모두 지켜봤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네 수하들이 멍청하게 매복에 당하는 꼴을 봤기에.”
“백마!”
화악!
구천궁마에게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쏘아져 나왔다. 그러나 운규백마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만들 하시오. 벌써부터 내분이란 말이오?”
또 다른 칠절인 유령마객(幽靈魔客)의 말이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아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저 멍청한 늙은이가 입을 닥쳐야 말이지!”
구천궁마가 씹어뱉듯 말했다. 운규백마는 차가운 눈으로 냉소했다.
“그보다는 네놈이 예의를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
“하! 마인에게 예의를 따지는 건가? 늙으면 고리타분해진다더니 마치 정파 놈이 따로 없는 것 같군. 하긴 그랬으니 혈선 놈들에게 굴복한 거겠지.”
“누워서 침 뱉는군. 그들에게 굴복한 건 네놈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
구천궁마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오른손은 어느새 구두궁의 시위로 향하고 있었다.
“그만.”
유령마객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 순간 구천궁마도 운규백마도 흠칫하며 물러났다.
사람에게선 결코 흘러나올 수 없는 한기가 그에게서 느껴졌던 것이다.
두 사람의 흥분마저 단번에 가라앉힐 정도의 한기.
구천궁마와 운규백마의 등허리로 식은땀이 흘렀다.
‘유령마객이 이 정도의 놈이었던가?’
‘평소에 워낙 존재감이 없다 보니 미처 몰랐는데, 이놈은 상당히 위험하다.’
“천무맹과의 전투에 대해 생각합시다.”
두 사람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제를 돌리는 유령마객이었다.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게 있소, 구천궁마?”
“……놈들은 궁지에 몰려 있다. 그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에 그만큼 필사적이다. 그 힘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야.”
“흥. 시시한 정론이로군. 배수진을 친 놈들이 필사적인 거야 당연하지.”
운규백마의 이죽거림에도 구천궁마는 애써 참았다.
“그리고 돌아오기 전에 옛 천무맹주와 군사를 만났다.”
“남궁운과 제갈현이로군. 그리 대단한 놈들은 아니다.”
간단히 단정 짓는 운규백마와 달리 유령마객은 신중했다.
“쉽게 볼 수는 없을 거요. 비록 무위는 떨어진다 해도 나머지 부분에서 검왕을 능가하는 남궁운이니 말이오. 제갈현 역시 제갈세가의 인물답게 상당한 기재로 평가받고 있소.”
“마치 그들을 잘 아는 듯한 말투로군.”
“물론이오.”
유령마객은 간단히 인정했다.
“본인은 통천각(通天閣)의 각주니까.”
“……!”
“통천각!”
운규백마와 구천궁마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통천각은 철절삼마에게조차 비밀로 부쳐져 있는 마교 최고의 비밀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천마 본인뿐.
그 누구보다도 천마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무리였다.
“그, 그런데 어째서…….”
운규백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배신자인 그들의 입장에서 통천각은 그 무엇보다 큰 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놀랄 것 없소.”
유령마객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천마께선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셨지. 그리고 본인에게는 따로 임무를 남기셨소.”
“우, 우리의 배반을 예상했다고?”
“다른 임무를 남겼다고?”
동시에 흘러나온 서로 다른 질문.
유령마객의 얼굴을 가린 붕대가 희미하게 들썩였다. 미소를 지은 건지 얼굴을 일그러트린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물론이오. 임무에 대한 것은 얘기할 수 없소만.”
운규백마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천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노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우리의 속내를 알면서도 배반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려, 백마. 마인들이란 게 원체 이기적이고 패도적이란 것은 누구보다도 본인들이 잘 알고 있잖소?”
운규백마의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천마께선 그대들이 언제고 배신하리라 생각하셨소. 하지만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하긴 어렵지. 그분께선 그대들이 얼마든지 딴마음을 품더라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으니.”
“…….”
“불행히도 그 예상은 빗나간 모양이군. 어쨌든 그대들은 훌륭히 일을 해냈소. 외부의 힘을 빌린 것이 좀 우습긴 하지만.”
“으으음.”
운규백마가 침음을 흘렸다. 시뻘겋게 얼굴이 물든 것이, 숨을 구멍이라도 찾는 듯했다.
구천궁마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운규백마만큼 자괴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그래서, 너와 통천각 놈들은 이제부터 어쩔 셈이지?”
“간단하오. 언제나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마교. 일단은 모두가 귀암산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할 것이오.”
“그다음엔?”
“차후 선출되는 교주를 위해 충성해야겠지.”
구천궁마와 운규백마의 눈빛이 순간 빛났다.
앞서 유령마객은 자신이 통천각주임을 스스로 밝혔다. 그리고 통천각의 위에 서는 사람은 천마신교의 교주 한 명뿐.
유령마객은 이 두 사람을 천마 후보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불어 우리 두 사람에게 한꺼번에 정체를 밝힌 것은…….’
‘결국 우리가 서로를 죽이리란 것을 알고 있다는 소리로군.’
이미 서로를 적으로 규정짓고 있는 운규백마와 구천궁마였다.
지금이야 공통의 적이 있으니 협력하고 있는 것일 뿐, 귀암산에 돌아가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서로를 죽이기 위해 머리를 굴릴 것이다.
‘이놈을…….’
‘죽여야 한다!’
서로를 흘끔 보며 생각하는 두 사람이었다.
유령마객 역시 그들의 속셈을 대강은 짐작했다. 물론 그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마 후보가 자기들뿐만이 아니란 것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승리하는 것.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이 두 사람은 살아 있는 편이 좋았다.
당장은.
* * *
마교 본대의 후미.
그곳을 맡고 있던 칠절의 일인, 항추열마(恒追裂魔)는 피부를 찌르는 듯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그는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뒤편, 이상하게 고요한 숲을 향해.
새소리가 언젠가부터 끊겨 있었다. 항시 귀를 괴롭히던 풀벌레 소리도 더 이상은 없었다.
항추열마가 손을 들어 올렸다.
“모두들…….”
파바밧!
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숲의 어둠 속에서 수십 발의 독침 다발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크윽!”
깜짝 놀라 반탄공을 펼쳤다. 독침들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기운에 막혀 떨어졌다.
그 순간 수풀에서 다섯 개의 인영이 뛰쳐나왔다.
번쩍!
항추열마의 팔다리와 명치를 노리며 칼날들이 쇄도했다. 독침에서부터 물 흐르듯 이어지는 예술적인 협공이었다.
“건방진!”
항추열마는 내력을 잔뜩 끌어올렸다. 과격한 돌파력에 있어서만큼은 칠절 중 으뜸으로 평가받는 그였다.
카카카카캉!
다섯 개의 불꽃이 그의 몸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각각의 칼날들은 그의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타다닷.
달리던 기세 그대로 그들은 두 번째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항추열마가 아닌 마교도들이 그 목표였다.
파박! 서걱!
“크아아악!”
“아악!”
사방에서 피와 비명이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기습을 당한 마교도들은 반응조차 못하고 절명했다.
“이놈들!”
항추열마가 반격하려 할 때였다.
이제 그의 뒤에서는 서너 명 수준이 아닌 수십 명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나같이 칠절에 필적할 정도. 낯설지만 무섭도록 날카롭고 잔혹한 기운이었다.
“설마……!”
그쪽에서 올 무리라면 하나뿐이었다.
“마라혈천!”
파파파팟!
수풀을 헤치며 수십의 마라혈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성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온전하던 때보다도 훨씬 악귀 같은 모습이었다.
마라혈천들은 인간의 파도, 칼날의 파도가 되어 항추열마를 덮쳤다. 조금 전의 공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파바바밧!
처음엔 얼추 버틸 수 있었으나 반탕공에도 한계는 있었다. 항추열마의 몸 위로 하나둘 상처가 새겨졌다.
“크아아악!”
항추열마는 칼날의 파도에 휩쓸려 난자당했다.
마라혈천 모두가 스쳐 지나갔을 때, 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무인이 아니었다.
쿵!
시체가 되어 버린 거구가 힘없이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