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三章 배신 (86/146)

第三章 배신

마교 본진으로 향하는 정천 일행의 속도는 어느 때보다도 빨랐다. 그만큼 마라혈천의 무위는 강대했던 것이다.

“이 정도 속도라면 본진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정천의 물음에 멸살독마가 대답했다.

“한 시진 내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너무 늦어. 아무래도 몸이 성한 몇 명이 먼저 가서 본대를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천마께서 그때까지 버티실 수 없다는 말이냐?”

“그래.”

냉정한 정천의 말에 멸살독마가 이를 뿌드득 갈았으나 뭐라 하지는 못했다.

반박할 수 없다는 걸 그 역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정천이 일행을 돌아봤다.

“나와 천마의 딸은 일단 가는 편이 나을 겁니다. 내가 제일 빠르고, 그녀가 제일 설득력이 클 테니까요. 그 외에 내 경공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궁후 정도니, 이 노인네를 업고 따라와 줬으면 합니다.”

“노, 노인네라고?”

멸살독마가 몸을 부르르 떨었으나 정천은 무시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독마가 노인이긴 했다.

침묵하던 귀도신마가 물었다.

“자네 먼저 간다면 얼마나 걸리겠나?”

“내력을 죄다 소모할 각오로 달리면 한 다경 내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정천을 돌아봤다.

“……그 정도인가? 대단하군. 어쨌든 그렇다면 두 사람 먼저 가는 편이 낫겠어.”

“다만 문제는 여러분 쪽입니다. 만약 마라혈천들이 뒤쫓아 온다면…….”

“우리 몸은 스스로 건사할 수 있네.”

장유추가 가슴을 탕 치며 말했으나 정천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대화의 흐름이 끊겼다.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빠르게 교차했습니다.

“느꼈습니까?”

“음. 두 자릿수의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어.”

“마라혈천일까요?”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다만 의아한 점이라면 다가오는 방향인데…….”

마라혈천 쪽과는 완전히 반대. 굳이 따진다면 마교 본대가 위치한 방향이었다.

혈천들의 경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정천 일행을 아득히 추월했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하나뿐.

“동도들이야! 천마께서 괜찮으신지 걱정되어 유격대를 파견한 게 분명해!”

멸살독마가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정천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다.

‘이 정도 숫자로는 부족해. 게다가…….’

뭔가 찝찝했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마음에는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는 동안 수풀을 헤치며 일련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 선두에 있는 백발노인은 철절삼마의 또 다른 일인인 괴룡염마였다.

“염마! 마침 잘 왔네. 정말 잘 왔어!”

밝은 얼굴로 멸살독마가 나섰다.

괴룡염마는 지극히 사무적인 얼굴로 물었다.

“저들은?”

“천무맹의 무인들일세. 어쩌다 보니 동행하게 되었군.”

“그런가. 상황은 어떤가?”

“위기일세! 천마께서 우리의 퇴각을 돕기 위해 자진하여 남으셨네.”

괴룡염마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이상했기에 멸살독마는 의아함을 느꼈다.

아마도 정파인들과 동행하는 게 이상해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은 잘 아네. 다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두 개뿐이야. 어쩌면 정파인들과 손을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하나요, 무엇보다도 천마를 구원하는 게 우선이란 게 또 하나일세.”

괴룡염마의 눈빛이 멸살독마의 미간으로 향했다.

“팔부혈선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기에 말인가?”

“그렇네! 역시 자네도 잘 알고 있…….”

멸살독마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가장 가까웠던 동도에게로 향하는 불신의 시선.

“자네가 어떻게? 팔부혈선의 습격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그거야 간단하네.”

푸욱!

멸살독마의 몸이 휘청거렸다. 괴룡염마는 그의 몸을 꾹 붙들고서 복부를 꿰뚫은 오른손을 휙 비틀었다.

“끄으으으…….”

염룡조(炎龍爪).

괴룡염마가 자랑하는 절초 중 하나였다.

화르륵!

복부를 뚫은 손을 중심으로 멸살독마가 불에 휩싸였다. 독마는 그 와중에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괴룡염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괴룡염마는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이해하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네, 네가 어떻게…….”

멸살독마는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의 몸은 이내 백색 화염에 휩싸여 재가 되어 버렸다.

“염마! 마교를 배신한 것이냐!”

귀도신마의 외침에 괴룡염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가당찮은 누명을 씌우는군. 노부는 천마신교의 미래를 위해 행동했을 따름이다.”

“마교의 미래? 그래서 멸살독마를 죽였다고?”

“그렇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에게 저항하는 자들을 제거했다고 해야겠지.”

가만히 있던 정천이 끼어들었다.

“변명이 장황하군. 그냥 팔부혈선이 무섭다고 하면 될 것을.”

“흥.”

괴룡염마의 경멸 어린 시선이 정천에게 향했다.

“너희는 아무것도 모른다. 팔부혈선이란 존재가 얼마나 압도적이며 경이적인 이들인지. 그들에게 대항하는 게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결국은 무섭다는 소리잖아.”

“좋을 대로 지껄여라. 노부는 그저 자존심의 무게와 마교의 무게를 저울질했을 따름이다.”

귀도신마가 다시 소리쳤다.

“그 결과가 이거란 말이오? 동도를 배신하고, 나아가 천마를 배신하겠다고?”

“천마가 죽어도 마교는 유지된다! 머리를 잃더라도 몸뚱이만 남아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어!”

괴룡염마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너희는 모른다. 천마가 둘, 아니 셋이 있다고 해도 팔부혈선을 당해 낼 수는 없다.”

“…….”

“천마를 설득할까도 생각해 보았지.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남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것 자체를 생각할 인물이 아니니까. 천마는 무슨 말을 듣더라도 혈선에 맞섰을 것이다. 그 뒤를 따를 때의 미래란 말하지 않아도 뻔한 것이었다.”

괴룡염마의 시선이 정천 일행을 훑었다.

“노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천마를 죽이고 마교를 살릴 것인가, 천마와 함께 마교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인가. 답은 분명했다.”

“닥쳐라!”

귀도신마가 하나뿐인 팔로 귀령도를 뽑아 들었다. 어찌나 분노했는지 귀령도의 칼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존심이 없는 마교도가 마교도란 말이냐! 자긍심을 버린 마인이 마인이란 말이냐! 그건 마교도가 아니고 마인이 아니다!”

“멍청한! 자존심도 자긍심도 살아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거다!”

“입만 살았군. 차라리 팔부혈선이 무섭다고 해라!”

“그래! 노부는 그들이 무섭다!”

간단히 인정해 버리는 괴룡염마였다. 그렇다고 귀도신마의 분노를 삭일 수는 없었지만.

그때 정천이 귀도신마의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몇 명이나 네게 동조했지?”

“그걸 노부가 말할 것 같은가?”

“우습군. 팔부혈선처럼 나 역시 무섭다는 건가? 그런 것조차 얘기해 줄 수 없을 만큼?”

“건방진 놈.”

괴룡염마가 이를 갈았다.

“네놈 따위는 팔부혈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얘기 정도는 해 줄 수 있겠군. 안 그래?”

“……십존 중 넷이 노부에게 동조했다. 또 한 명의 철절삼마인 운규백마(雲叫白魔) 역시 그에 포함되어 있지.”

“삼마 중 둘이 배신을 했단 말인가! 가장 충성스럽다는 셋 중 두 명이!”

귀도신마는 울분을 터트리고 싶어 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철절삼마야말로 천마와 함께 마교의 큰 기둥이었던 것이다.

정천은 여전히 냉정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너희들의 반란은 성공했나?”

“흥. 노부가 여기에 와 있는 것을 보면 모르겠나? 이미 수뇌부는 완전히 장악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하필 십존 중 배신자들은 모두 본진에 남아 있었으니까.

머리가 없는 본대를 장악하는 건 쉬웠을 터. 물론 모두에게 혈선에 대해 말할 수는 없으니 얘기를 적당히 지어냈으리라.

결국 마교 본대의 도움을 바라긴 어렵다는 소리.

정천은 이를 악물었다.

“할 수 없이 황룡성으로 돌아가야겠군.”

“흥. 누가 네놈들을 성히 돌려보내겠다더냐?”

괴룡염마가 조법(爪法)의 자세를 취했다. 상대를 일차적으로 찢어발기고 이차로 불사른다는 염룡조의 기수식이었다.

그가 끌고 온 무리가 정천 일행을 포위했다.

일행은 각자 무기를 굳게 쥐었다. 그것을 본 괴룡염마가 냉소를 뱉었다.

“하나같이 몰골이 말이 아니로군. 하기야 딴에는 결판을 내겠답시고 열심히들 싸웠을 테지. 그러나 노부가 끌고 온 흑살십이령(黑殺十二靈)은 마교 최강의 암살단이다. 온전한 상태여도 버겁겠지만 지금의 네놈들에겐 전혀 승산이 없다.”

“닥쳐라!”

귀도신마가 가장 먼저 뛰쳐나갔다.

쉬이익!

한 팔을 잃은 직후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돌진력. 그러나 균형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흥.”

조소를 머금은 괴룡염마가 염룡조로 맞섰다. 게다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카앙!

귀령도의 귀곡성이 중도에 허무하게 막혀 버렸다.

어느새 끼어든 흑살십이령 중 하나가 검을 뻗었던 것이다.

“죽어라!”

괴룡염마는 그대로 귀도신마의 목덜미를 향해 손아귀를 뻗었다. 염룡조는 순식간의 그의 목을 뜯어 버려 불사를 터였다.

카앙!

“……!”

살을 찢는 소리가 아니다. 괴룡염마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승산이 없는 건 그쪽 같은데.”

장유추의 광천뇌도가 염룡조를 차단하고 있었다. 동시에 또 하나의 검신이 괴룡염마의 흉부를 노렸다.

“죽어!”

어느새 정신을 차린 진백란이었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 무서운 기세로 혈륜검을 떨치고 있었다.

파파팟!

괴룡염마의 얼굴이 삽시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평소보다 힘이 없어 상처가 깊진 않았으나, 염마의 화를 돋우기엔 충분했다.

“크으, 빌어먹을 계집!”

“닥쳐! 더러운 배신자!”

“배신자라고? 노부는 배신한 게 아니라 마교의 미래를 지키려 한 것이다!”

“비굴하게 얻어 낸 미래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훗날 그렇게 목숨을 구걸했다고 후손에게 말할 건가?”

“팔부혈선에게 대항하면 죽음뿐이다! 너희는 그들이 무얼 꾸미고 있는지조차 모르잖나!”

“놈들이 무얼 꾸미든 우리의 적인 이상 대적하여 쓰러트리면 그만이야!”

“멍청한 계집 같으니. 그게 안 되는 이 길을 택한 거란 말이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괴룡염마가 진백란에게 달려들었다.

진백란도 혈륜검을 들고 맞섰으나 몇 번 검을 섞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괴룡염마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흥. 이미 몸이 만신창이로군. 그 꼴로 감히 노부와 맞서겠다고?”

“몸은 이래도 당신처럼 비굴하게 무릎 꿇지는 않아.”

“……아무것도 모르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다.”

괴룡염마는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어쨌든 더 떠들고 있을 생각은 없다. 한시바삐 너희를 제거하고 돌아가 본대를 귀암산으로 물릴 것이다. 지금쯤 혈선들이 살진을 가동했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살진이란 게 정확히 무슨 말이지?”

정천의 목소리였다.

중도에 말을 끊긴 괴룡염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그는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했다.

“어, 어떻게……!”

그의 자랑이던 흑살십이령이 모조리 쓰러져 있었다. 그것도 눈 깜빡할 사이에.

‘낭패다!’

괴룡염마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진백란 때문에 흥분한 까닭에 미처 상황을 파악하질 못했다. 그저 그녀를 몰아붙이느라 십이령이 죽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노, 노부가 이런 실수를!’

상황이 더러워졌다. 괴룡염마는 곧바로 퇴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뒤엔 장유추와 귀도신마가 버티고 있었다.

양옆으로는 요태희와 백미련이, 바로 앞엔 정천과 진백란이 가로막고 있는 실정.

도망칠 곳은 없었다. 허공으로 치솟는대도 이내 격추당하고 말 것이다.

“비, 빌어먹을!”

도망치기를 포기한 괴룡염마가 즉각 진백란에게로 쇄도했다. 그녀를 인질로만 잡을 수 있다면 회생의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정천이 그보다도 빨리 앞을 막아섰다.

“큭!”

괴룡염마는 할 수 없이 정천에게 염룡조를 날렸다. 정천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정권을 떨쳤다.

순간 정천의 주먹 위로 덧씌워지는 흑색 기운.

강룡검이 삽시간에 구현되어 괴룡염마에게로 쇄도했다.

제이검, 나선수라!

파바밧!

염룡조와 충돌한 강룡검의 기운은 괴룡염마의 손아귀부터 어깨까지를 완전히 비틀어 버렸다.

그 결과 괴룡염마의 양팔은 문자 그대로 살갗과 뼈가 한데 박살이 나 버렸다.

“크아아악!”

양팔을 잃은 괴룡염마가 땅을 뒹굴었다.

그런 염마에게 진백란이 혈륜검을 내리꽂으려 했다.

“멈춰!”

정천의 말에 그녀가 흠칫했다. 정천은 그녀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캐낼 게 있어. 복수는 그다음에 해.”

“……빨리해.”

진백란은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염마를 제압한 사람은 어디까지나 정천이었기 때문이다.

정천은 괴룡염마의 흉부를 지그시 밟았다.

“끄으으으.”

괴룡염마는 눈을 반쯤 까뒤집은 채였다.

하긴 두 팔이 작살이 나 버렸으니 그 고통이란 어마어마할 터였다.

정천은 차가운 눈으로 염마를 내려다봤다.

“말해. 팔부혈선의 목적이란 게 뭐지? 그들이 가동한 살진이란 건 또 뭐고?”

“끄, 끄으으…….”

“말하지 않으면 네 두 다리도 같은 꼴로 만들어 주지. 물론 그건 시작일 뿐이겠지만.”

괴룡염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놈이라면 정말 그러고도 남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차라리 혀를 깨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걸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정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 깨물고 죽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내 속도라면 네 이빨이 혀에 닿기도 전에 주먹을 날릴 수 있다. 이빨이 뭉텅이로 뽑혀 나가고 싶다면 한번 시도해 봐도 좋아.”

“끄으으…….”

“얘기해. 혈선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괴룡염마는 그 순간 모두 포기했다. 틈을 노려 도망치는 것도, 죽음으로써 회피하는 것도.

“노, 노부가 아는 것은 다음과 같다.”

괴룡염마가 더듬거리며 말을 토해 냈다.

* * *

뚝. 뚝.

천장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바닥에 피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정확히는 천장에 틀어박힌 시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정적. 그리고 완벽한 죽음.

잔인하게 오체분시당한 시체들 사이에서 여덟 혈선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 대해 아는 이들은 거의 모두 제거된 셈이로군.”

“남은 일은 하나.”

“이 모든 것을 마교의 행위로 위장하는 것.”

황룡성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거대한 장치. 예의 살진은 그 일부에 불과했다.

이 장치는 무인들의 기운을 흡수한다. 그 순간은 무인이 목숨을 잃는 순간. 그들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는 지하로 흘러들어 궁극적으로 ‘문을 여는 장치’로 흘러들어 가게 되어 있다.

충분한 동력의 확보를 위해선 보다 많은 무인들의 죽음이 필요하다.

살진을 펼쳐 많은 목숨을 빼앗았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했다. 그리고 그것은 황룡성의 모든 무인이 죽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또 다른 목숨이 필요했다.

마인들의 목숨이.

천무맹 수뇌들의 죽음을 마교의 소행으로 위장한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죽은 직후. 천무맹 무인들은 크게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천무맹과 마교의 전면전.

이미 마교 내에도 수하들이 심어져 있는 만큼 문제는 없었다.

물론 그들은 자기네가 이용만 당하리란 것은 꿈에도 몰랐지만.

혈선들은 이에 대해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남은 것은 목격자를 만드는 것이군.”

“이미 몇 명을 포섭해 두었다. 이제 그들에게 명령만 내리면 된다.”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군.”

대화를 나누던 혈선 중 하나가 순간 흠칫했다. 이윽고 천장 쪽으로 향하는 그의 시선.

그 혈선은 별안간 손을 뻗었다. 손아귀로부터 시퍼런 뇌전이 뿜어져 나와 천장을 격타했다.

파바바밧!

“무슨 일인가?”

다른 혈선들의 물음에 예의 혈선이 혀를 찼다.

“누군가가 잠복해 있었다.”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실력자가?”

“그래. 게다가 아슬아슬하게 뇌전을 피해 달아났다.”

혈선들의 표정이 살짝 경직됐다.

기껏해야 자그마한 변수 하나일 뿐.

그러나 그 작은 변수가 언제 어떻게 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강대한 힘을 지녔으면서도 일말의 방심도 하지 않는 그들이었다.

“쫓을까?”

“네 뇌전을 맞았으니 얼마 가지는 못했겠지. 바로 뒤쫓는다면 확실히 제거할 수 있을 거다.”

고개를 끄덕인 혈선들이 순식간에 장내를 빠져나갔다.

“크으…….”

비영대주 비목은 침음을 흘렸다. 코를 찌르는 살 타는 냄새와 함께 격통이 밀려왔다.

그의 복부는 화상으로 인해 반쯤 익은 상태였다. 아슬아슬하게 직격을 피했음에도 이 정도였다.

그러나 그 고통보다도 놀라움이 더욱 컸다.

‘저들이 바로!’

팔부혈선.

천무맹을 배후에서 조종해 온 진정한 실세. 그리고 수십의 무림 명숙들을 일각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학살해 버린 괴물들.

자신이 발각당하지 않은 것은 문자 그대로 행운이었다. 현상성과 무인들이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응전한 덕이 컸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무위에 비해 혈선들의 감지 능력이 낮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그래 봐야 어지간한 초고수 수준이었지만.

그러나…….

‘이대로는 달아날 수 없다.’

혈선들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비목 역시 전력으로 경공을 펼치고 있었으나, 그들에겐 그저 느릿한 거북이걸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비목의 앞쪽에서 모용린과 제갈세연, 그리고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마침 본청으로 오고 있던 그들과 마주친 것이다.

비목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전음을 날렸다.

—도망치시오! 혈선들이 쫓아오고 있소!

보통 사람들이라면 무슨 소린지 의아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용린과 제갈세연은 결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들이 나타난 것은 비목에게 있어선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모용린과 제갈세연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제갈세가 무인들도 묻지 않고서 그녀들을 따랐다.

대화는 전음으로도 충분했다.

—어떻게 된 일이죠?

—혈선들, 그들이 거의 모든 천무맹의 수뇌들을 죽였소. 각 문파의 문주급 인물들은 모두 죽었다고 봐도 좋을 거요.

시간이 없었기에 비목은 가장 중요한 사실들만을 알렸다.

영리한 모용린과 제갈세연은 그것만으로 대강의 상황을 파악했다.

이야기 전달이 끝나자마자 비목이 표정을 굳혔다.

—여기서 찢어집시다. 내가 그들을 유인할 테니 최대한 멀리 도망치시오.

—네? 하지만…….

—각오는 한 일이오. 저들이 압도적인 무위에 비해 감지 능력이 떨어진다는 데에 감사해야겠군.

비목은 그 말을 끝으로 방향을 바꿨다.

모용린과 제갈세연도 그의 뜻을 존중하여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이 얘기를 반드시 살아남은 이들에게 전해 주시오!

비목은 그 말을 남기고서 멀어졌다.

잠시 후 모용린과 제갈세연은 느낄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비목의 뒤를 쫓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윽고 그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들은 다시는 비목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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