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一章 계획의 태동
“멈춰라.”
정천을 가로막은 사람은 검왕이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북제혈랑을 뽑아 정천을 겨누고 있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만약 제가 패한다면 그때 맹주께서 저자와 붙으면 될 일입니다.”
“아니. 그래서는 의미가 없다. 본좌가 먼저 저 개자식과 붙겠다.”
“하지만 당신이 패하게 되면 천무맹은…….”
“본좌는 패하지 않는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정천은 이를 악물었다.
남궁운이나 제갈현을 돌아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 역시 말릴 수 없다는 얼굴로 있었으니.
검왕은 이미 각오를 다진 듯 말을 이었다.
“내가 패할 경우 맹주 대리인은 남궁운에게 맡기겠다. 본디 맹주였던 만큼 잘 대처할 수 있겠지.”
“맹주…….”
“살아서 패배하진 않을 것이다.”
검왕은 그 말을 끝으로 천마에게 향했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던 천마가 운을 뗐다.
“어차피 살려 둘 생각도 없다. 너뿐 아니라 저것들 역시.”
“마음대로 해라. 네놈은 내가 죽일 테니까.”
“하! 네가?”
“그래!”
검왕이 북제혈랑을 높이 쳐들었다. 그 순간.
꽈르르릉!
또 하나의 뇌전이 북제혈랑의 검신으로 내리꽂혔다. 조금 전 천마가 펼쳤던 것과 동일한 신기.
천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허풍선이는 아니로군. 하긴 정파 놈들에겐 검왕이라 불렸다던가?”
“맹주가 된 지금도 더 자주 불리는 이름이지.”
“그래 보이는군. 그것도 정파에서나 통용되는 것이겠지만 말이야.”
“크크큭!”
광소에 가까운 웃음과 함께 검왕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럼 해보자꾸나!”
“그러마!”
콰쾅!
두 사람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그것만으로도 여파가 생겨나 사방으로 바람이 몰아쳤다.
“멀리 떨어지도록 하죠.”
정천의 말에 모두들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건 마교 측 역시 마찬가지였다.
꽈광! 꽝!
황금빛과 은빛이 한데 어우러져 연신 폭발을 일으켰다. 황금색의 나찰수라와 은색의 북제혈랑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향해 이빨을 내밀었다.
쾅!
검격의 여파가 숲 전체를 휩쓸었다. 한 번 검과 검이 충돌할 때마다 멀리 있던 나무가 쓰러지거나 폭발해 날아갔다.
이미 인간의 싸움을 초월한 수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괴물들이군.”
장유추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역시 뇌전에서 힘을 얻는 천뢰강림을 펼치지만, 저들에 비하면 애들 장난에 비하지 않았다.
“검왕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어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요태희의 말이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넘었다니?”
장유추의 물음에 요태희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지금 그는 본래 실력을 훨씬 웃도는 위력을 내고 있어요.”
“그렇다면 좋은 것 아닌가? 그만큼 성장을 했다는 의미니까 말이야.”
“올바르게 성장을 한 결과라면 그렇겠죠.”
“그 말뜻은…….”
백미련이 끼어들었다.
“혼령연소(魂靈燃燒)를 펼치고 있다는 거군.”
남은 수명을 불살라 내공으로 화한다.
동귀어진이 일격에 모든 것을 담는다면 혼령연소는 천천히, 그러나 보다 효율적으로 수명을 소모하는 수법이었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 단번에 죽든 조금씩 죽어가든 결국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처럼 엄청난 내력을 쏟아붓고 있는 바에는…….
“검왕을 말려야 해요. 이대로 가다간 반다경도 지나기 전에 목숨을 잃을 거예요.”
“하지만…….”
윤하월이 차갑게 말했다.
“저걸 무슨 수로 말린다는 거지?”
“…….”
요태희도 다른 이들도 할 말이 없었다. 저 둘을 막으려면 마교와 천무맹의 모든 무인들이 몰려든다 해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승패는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콰아앙!
“크윽!”
검왕이 신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그의 왼팔에 뼈가 드러날 정도의 참격이 틀어박혔다.
그러나 순식간에 아무는 상처.
그것을 본 천마가 피식 웃었다.
“예상 이상의 실력이다 싶었더니, 수명을 불사르고 있었군.”
“우스운가?”
“아니. 존경스럽다.”
조금은 낯간지러운 소리. 물론 천마도 검왕도 눈매 한번 씰룩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그것만으로는 세상의 정점이라 할 수 없다.”
파지지직!
나찰수라가 내뿜는 기운이 기묘하게 달라졌다. 본디 황금색이던 빛깔도 검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검왕은 그제야 실감했다. 이것이야말로 천마의 궁극검이라고.
그리고 그건 놀랍게도 익숙했다.
‘놈의 검과 같다.’
정천의 마검 강룡검.
그게 지니고 있던 기운과 거의 같다고 할 정도로 흡사했다.
“한 가지만 묻지.”
“시간을 끌려는 건가? 그래봐야 의미는 없겠지만 대답 정도는 해 주지.”
“네놈, 정천과는 무슨 관계냐.”
천마는 실소를 머금었다. 죽음을 앞두고 고작 묻는 것이 이런 것이라니.
“아무 관계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놈이 지금 네놈의 것과 같은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거지?”
천마의 눈썹이 약간이지만 꿈틀거렸다.
“나의 무한천강(無限天剛)과 같은 기운이라고? 허튼수작 부리지 말아라.”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리라 보는가? 본좌가 보기에 두 기운은 놀랄 정도로 흡사하다.”
“그렇다면…….”
천마는 나찰수라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네놈을 빨리 쓰러트리고 놈과 붙어 봐야겠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니 말이야.”
“쉽게 쓰러져 줄 것 같으냐!”
천마와 검왕이 다시 충돌했다.
정천은 그들의 검격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있었다. 또한 그 와중에 검왕과 같은 결론을 내고 있었다.
‘천마의 검, 강룡검과 닮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금의 검은 멸천의 그것을 거의 완전히 닮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기운의 규모.
멸천이 모든 것을 일격에 쏟아붓는 것이라면, 천마의 무한천강은 어느 정도 힘을 억제하여 적당량만 뽑아내는 식이었다.
그렇기에 그만큼 약하지만, 보다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약하다는 것도 멸천을 기준으로 했을 때뿐. 보통의 검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어차피 사람을 죽이는 데엔 산을 허물 정도의 힘은 필요 없어. 방패를 뚫고 호신강기를 뚫고 육체를 찢어발길 정도면 되니까.’
천마는 지금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파파팍!
“크으윽!”
검왕의 몸에 연신 상처가 새겨지고 있었다. 처음엔 제법 빠르게 회복했으나, 갈수록 그 속도가 더뎌지는 중이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몸은 시뻘겋게 물든 상태.
혼령연소 역시 끝을 앞두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의 육체는 몰라보게 노화가 진행되어 있었다.
처음엔 천마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였으나, 이제는 그의 아버지뻘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허억. 허억. 허억…….”
숨도 거칠었다.
북제혈랑을 감싸는 검강 역시 많이 약해져, 이제는 검기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끝이 다가왔다.
‘이것이 놈과 내 사이에 있는 격차란 말인가?’
검왕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다른 이들의 앞이 아니었다면 모든 걸 팽개치고 울부짖었으리라.
‘나는 이렇게 패하기 위해 살아왔던가?’
아직 끝은 아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어도 감상적이 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검왕은 이미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천마 역시 그 사실을 간파했다.
‘끝났군.’
마음의 칼날이 이미 꺾였다. 이런 상황에선 어린아이조차 베어 넘길 수 없다.
이미 무인 유극태는 죽음을 고한 것이다.
천마는 무한천강을 없앴다. 휘황찬란하게 몸을 감싸던 기운도 사라졌다.
당황한 검왕이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이미 알고 있을 것 아닌가? 더 이상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 너는 패배했고 본좌가 승리했다는 것이지.”
“나, 나는 아직 지지 않았다!”
검왕이 소리쳤다.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성량. 육체 자체도 쪼그라들어 버려서, 바라보는 이들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나는 지지 않았어! 검을 뽑아라, 천마!”
“너는 훌륭히 싸웠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본좌를 몰아붙였던 건 네가 처음이다.”
칭찬 따위는 필요 없다. 검왕은 마음속으로 되뇌었으나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는 패배했다. 승리한 것은 어디까지나 본좌다. 이미 그것을 내심으로는 느끼고 있을 터.”
“크윽……!”
“돌아가라. 지금이라도 절세의 영약이나 내단을 먹는다면 어느 정도 수명을 회복할 수 있겠지.”
“…….”
“그 후엔 다시 맞서든 도망치든 마음대로 해라. 본좌와 마교 본대는 무자비하게 정파의 세상을 무너트릴 테니까.”
“나, 나는…….”
더 이상은 본좌가 아니다. 검왕은 차마 스스로를 본좌라 부를 수가 없었다. 이미 그가 마음속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천마는 정천을 돌아봤다.
“마지막 대결이 되겠군. 어떤가, 기권해도 좋으니 마음대로 하게.”
“기권할 리가 있습니까?”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지. 그럼 어서 준비하고 나오게. 그러나 좀 아쉽군.”
천마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숙적들을, 하루에 두 명씩이나 꺾어 버려야 하다니.”
정천은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때.
불길한 느낌이 그의 감각을 붙들었다.
‘뭐지?’
정천이 고개를 돌렸다. 알 수 없는 이질감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천마가 정천을 닦달했다.
“시간을 끌려는 생각이라면 관두게! 본좌는 더 이상 노닥거리고 있을 수가 없네.”
“그게 아니라…….”
정천이 설명하려 할 때였다.
탓!
폐허가 된 나무 사이에서 인영 하나가 튀어 올랐다. 그 손에 들린 채 시린 빛을 토하고 있는 것은 분명 기다란 환도였다.
인영은 삽시간에 쇄도했다. 그 돌진의 끝에 있는 것은 멍하니 있던 검왕.
파악!
시뻘건 피와 함께 검왕의 목이 하늘로 치솟았다.
천무맹주이자 정파의 정점, 유극태의 허무한 최후였다.
“네놈!”
천마가 조금 늦게 반응했다. 무언가가 그의 감각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쐐액!
금빛 검강이 습격자를 향해 날아들었으나 허공만 격타하고 말았다. 습격자는 마치 담을 오르는 고양이처럼 무너진 나무 위로 피신했다.
“으음.”
천마가 침음했다. 분명 맞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미묘하게 빗나가 버렸다.
“살진입니다!”
정천의 외침이었다. 천마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
“살진이라니? 이 주변의 살진이 펼쳐져 있단 말인가?”
“확실합니다.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있는 수준이니 설치하는 데에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검왕과 한창 싸우던 때에 설치했다는 것.
‘대체 어떤 놈들이?’
검왕의 의문은 길지 않았다. 곧 사방팔방에서 인영들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 숫자는 물경 일백.
그들은 정천 일행과 마교도들을 둥글게 포위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백미련이 침음을 흘렸다. 익숙한 얼굴들이 그곳에 널려 있었다.
마라혈천.
그들 전원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크크크. 오랜만이로군, 구절검후. 그리고…….”
천연살이 앞으로 나서며 웃었다.
“정천과 천마. 오늘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날이 되겠어.”
“네놈이 살진을 설치했군.”
“물론이다! 고맙게도 저 머저리와 대판 싸우는 통에 아무도 눈치를 못 채더군! 주변을 다 박살 내 놓은 것도 진 설치에 큰 도움이 됐어.”
천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고작해야 진 하나 설치했다고 우쭐대는 꼴이라니.
“아무래도 네놈이 우두머리 같지는 않군. 우두머리가 그 모양이어서야 위신이 서지 않을 테니.”
“뭐라고!”
천연살이 발끈했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살기 어린 천마의 시선이 그의 눈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크, 크윽.”
기가 죽은 천연살이 뒤로 물러났다. 살진을 펼쳤다고는 해도 기껏해야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수준. 그 정도로는 천마를 막기 어려울 것이다.
천마는 마라혈천을 한 차례 훑어보고는 말했다.
“우두머리가 누구냐. 꽁무니 빼고 숨어 있을 게 아니면 나서라.”
흑천살이 앞으로 나섰다.
“우두머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굳이 대표를 따진다면 나요.”
“그렇군. 이곳엔 무슨 일로 왔지?”
“당신.”
천마를 가리킨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흑천살이었다.
“천마의 목을 따러 왔소.”
“허허.”
천마는 정말 우습다는 듯 웃었다. 천연살이 이를 뿌드득 갈았지만 차마 천마에게 뭐라 하지는 못했다.
웃음을 그친 천마가 물었다.
“정말 본좌를 죽일 수 있다고 보느냐, 애송이들?”
“……상당히 난항을 겪을 테지. 평소라면 더더욱 그럴 테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오.”
흑천살은 진백란을 가리켰다.
“당신에게 혹이 딸려 있으니까.”
“영악한 애송이로구나. 팔부혈선, 그놈들이 키운 애송이냐?”
“그렇소.”
“그렇군.”
천마는 고개를 끄덕인 후 스산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살아 돌아가는 놈이 있걸랑 혈선 놈들에게 전해라. 천마가 너희들의 모든 것을 부수러 갈 거라고.”
“……무의미한 소리요. 당신은 이곳에서 죽게 될 테니.”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희들이 파멸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천마는 정천을 돌아봤다.
“자네,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줄 수 있겠나?”
“뭡니까?”
“우리 란아를 부탁하네.”
정천은 주먹을 꾹 쥐었다.
“우리들 모두가 싸운다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겠네만, 놈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아마 최우선 목표는 본좌인 것 같으니, 자네들은 그나마 빠져나가기 수월할 걸세.”
“천마…….”
“부탁하지.”
“…….”
정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흑천살이 물었다.
“유언은 그걸로 끝입니까?”
“……허허, 허허허허!”
천마는 유쾌하다는 듯 광소를 터트렸다. 이윽고 그의 나찰수라에서 황금빛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예의도 바른 놈들이군. 그에 감사하는 의미로!”
쉬익!
“……!”
금빛 섬광이 마라혈천을 덮었다. 모두들 반사적으로 호신강기를 끌어올린 덕에 큰 타격은 입지 않았지만, 몇몇은 피를 쏟는 경상을 입었다.
흑천살이 득달같이 소리쳤다.
“방심하지 마라!”
“모두 죽여주마!”
꽈릉!
금빛 뇌전이 숲을 휩쓸었다. 천마의 노호성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그는 한 마리의 야수가 되어 마라혈천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 * *
급박한 상황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검왕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는 빨아 당겨지듯 땅으로 스며들었다.
스스스스.
그 피는 긴 거리를 이동하여 황룡성의 지하로까지 흘러들었다.
보통은 흙에 흡수되어야 정상이지만, 놀랍게도 그 대부분이 온전히 이동되었다.
자연적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
그러나 혈선들은 지난 수백 년의 노력을 통해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투투툭.
몰려든 피는 기다란 항아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열여섯 개의 붉은 눈동자.
“시작되었다.”
“그렇군.”
팔부혈선. 그들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침내 계획이 실행된다는 감격 때문일까?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마도 당사들이 아닌 한은 알 수 없을 터였다.
“마침내 돌아갈 수 있겠군.”
“그래. 그곳으로…….”
“많은 희생이 있었군.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고, 너무나 많은 피를 앗았어.”
“우스운 소리. 이제 와서 죄책감을 느끼는가?”
“언제나 느껴 왔지. 자네는 그렇지 않은가?”
“…….”
정천이나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그들은 태생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도 결국은 인간.
요태희가 그렇듯이, 그들도 중원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다.
단지 가치관과 목적의식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너무나 긴 여정이었어. 우린 오직 이 순간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괴물이 되어야 했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제 와서 용서를 빌 수도 없어. 당장 오늘만 해도 수만, 수십만의 목숨이 사라지게 될 것이네.”
“그래. 이미 의식은 시작되었다.”
순간 방 안의 어둠이 걷혔다.
피로에 찌든 여덟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우두머리로 보이는 노인이 선언하듯 말했다.
“천마는 쓰러지고 마교와 천무맹은 전쟁에 들어설 것이다. 많은 이들의 피가 대지를 적실 테고 수많은 죽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노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리라.”
〖강룡검제 8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