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章 마교의 본진으로
마교의 본대는 고릉(高陵) 근방의 평원에 진을 치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위세가 완연한 군세.
무인만이 느낄 수 있는 기감(氣感)으로 파악해 보니 한층 더 강렬했다.
“정말 정예 중의 정예만 뽑아서 왔군. 다섯 배 이상의 병력으로 맞서야 한다던 말이 과언이 아니었어.”
장유추가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마교 병력과 맞붙어 봤었지만 지금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천마는 정파무림을 멸하러 왔다.
그 사실이 여실히 느껴지는 군세였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지?”
“어쩌긴 뭘 어째.”
백미련의 물음에 정천이 픽 웃었다.
“만나러 가 봐야지.”
정천은 수풀을 벗어나 뚜벅뚜벅 걸어갔다. 다른 네 사람도 망설임없이 뒤를 따랐다.
“환영 인파가 없군. 신호를 보내 줘야겠어.”
윤하월의 청룡창에 푸른 창강이 맺혔다. 그러나 이내 백미련의 구절검이 앞을 가로막았다.
윤하월이 눈을 부릅떴다.
“해보자는 거냐, 계집?”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니야.”
백미련은 정천을 돌아봤다.
“일단은 대화를 하기 위해 온 거지, 그렇지 않아?”
“일단은 그렇지.”
윤하월이 이를 갈았다.
“그래서, 놈들 한가운데에 떡하니 들어가 한가롭게 대화나 나누겠다는 거냐? 차라리 늑대 굴에 맨몸으로 들어가고 말지!”
“그래서, 무섭다는 거요?”
도발적인 정천의 물음.
윤하월은 창강을 거두었다.
“난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그럼 됐군. 들어가서 천마나 만나 봅시다.”
정천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장유추가 그의 옆에 따라붙으며 물었다.
“만일 천마가 우릴 탐탁잖게 여긴다면?”
“뭐, 공격이라도 해 온다면 그때 반격해 주면 될 일이죠.”
“너무 안일한 생각 아닌가?”
“천마는 결코 기습하지 않을 겁니다. 공격을 한다손 쳐도 선공은 양보할 테죠.”
대화를 듣던 윤하월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는 직접 그 상황을 겪었던 까닭이다.
천마는 오만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떤 기습이나 암수도 통하지 않을 거란 눈을 한 채.
그걸 떠올리니 절로 분노가 치밀었다.
“빌어먹을.”
윤하월이 중얼거릴 무렵, 마교의 본대 쪽에서 정천 일행의 모습을 발견했다.
“멈춰라!”
흑색 도포를 입은 무인들이 목책을 뛰어넘어 나타났다. 하나같이 심상찮은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천 일행의 태도는 시큰둥했다.
“몇 수면 될까?”
정천의 물음에 윤하월이 코웃음을 쳤다.
“흥. 다섯 걸음만으로도 모조리 베어 버리고 남는다.”
“그럼 난 네 걸음.”
장유추의 말에 윤하월이 눈을 부라렸다.
“그럼 난 세 걸음이오!”
“다시 생각해 보니 두 걸음이면 될 것 같군.”
“나도 다시 생각해 보니 한 걸음이면 되겠군!”
유치한 말다툼. 그 와중에 백미련이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본후는 이 자리에서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음!”
“…….”
당했다는 표정을 짓는 윤하월과 장유추. 흑색 도포의 마교도들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이건 미친놈들이군. 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이제야 본론이 나왔다. 정천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지.”
“만날 사람?”
“그래. 중요한 얘기를 전하러 왔다.”
마교도들의 표정이 순간 진중해졌다.
차마 이들이 정파 무인들이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느 겁 없는 놈이 감히 천마가 있는 곳을 유유자적 찾아왔겠는가?
“어느…… 곳에서 온 분들이십니까?”
“그런 것까지 자네들한테 말해야 하나?”
장유추가 짐짓 목소리를 높였다.
자연히 수그러드는 마교도들.
“아, 아니. 그게…… 그래도 신분은 확인해야 할 일이므로…….”
“귀도신마가 여기에 있지?”
익숙한 이름에 마교도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신마님의 손님들이십니까?”
“그렇다.”
장유추가 당당히 인정했다. 한 점의 거짓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정천이 힐끔 돌아보니 전음이 돌아왔다.
—뭐, 막무가내로 천마부터 찾는 것보단 이편이 더 낫지 않겠나?
—그래 놓고는 귀도신마와 붙을 셈이 아니고요?
—붙어야지. 그래도 노부는 사리분별이 있는 몸이야. 놈을 보자마자 달려드는 일을 없을 걸세.
정말 그랬으면 좋겠지만. 정천은 머릿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어쨌든 어서 귀도신마에게 전하게.”
장유추가 말을 이었다.
“오랜 악우가 찾아왔다고.”
악우(惡友).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이만큼이나 어울리는 표현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마교도들은 단순히 친구라는 단어를 짓궂게 변형한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 일단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어느 분이라고 전해 드리면 될까요?”
“뇌혈…….”
말을 하려는 장유추의 입을 정천이 막았다.
“정천이 찾아왔다고 전하면 돼.”
“정천……이요?”
전혀 모르는 이름이다.
마교도들은 잠시 의아함을 느꼈다.
그래도 신마를 만나러 온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위명이 있을 거라 생각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내 귀도신마에게로 향했다. 장유추의 서릿발 같은 시선도 시선이었지만, 여차하면 신마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장유추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말렸나?”
“본래 별호를 말했더라면 사단이 났을 겁니다. 지난번 전투 이후로 선배의 이름이 마교에도 퍼졌을 테니까요.”
“흠. 역시 그렇겠지?”
장유추가 마음에 든다는 듯 씩 웃었다.
그걸 본 윤하월이 낮게 끼어들었다.
“흥. 그래 봐야 패배자 아니오. 귀도신마에게 팔 하나 내준 얼간이로만 기억하고 있겠지.”
장유추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돋았다.
“자네가 요즘 겁이 없군.”
“내가 원래 이런 거 모르셨소?”
“그럼 자네는 뭔가? 아마도 천마 진검운에게 개박살이 난 건방진 창쟁이라고 알려졌겠군?”
“말씀 다하셨소?”
“내가 원래 이런 거 몰랐던가?”
그냥 놓아 뒀다간 귀도신마를 만나기도 전에 난리가 날 판이었다.
백미련이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나잇살 먹은 인간들이 잘들 하는 짓이로군.”
“뭐라고?”
“뭐야?”
두 사람이 백미련을 노려봤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미조차 까딱하지 않았지만.
“생각이란 게 있다면 해 보시지. 아마도 천마는 이미 우리가 온 것을 눈치채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자에게 공격의 구실을 만들어 줄 셈인가?”
“…….”
“…….”
“정천의 말마따나 천마는 기습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대들이 싸우게 된다면 더 이상 기습이 무의미해져. 천마는 단번에 이 자리에 나타나 피바람을 일으킬걸.”
논리정연한 말에 두 사람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어찌 됐든 천마가 껄끄러운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때 내내 조용하던 요태희가 한마디를 보탰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뭐?”
“조금 전부터 제가 여러분의 기척을 완전히 지우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백미련이 흠칫했다.
본인의 기척을 지우는 거야 할 수 있다지만, 남의 기척까지 지우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진 않아요.”
정천이 요태희에게 물었다.
“그것도 당신들의 능력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아마 천마가 아니라 중원의 그 누구라도 기척을 읽어 낼 수 없을 거예요.”
장유추가 놀란 얼굴을 했다.
“그 정도나 된단 말인가?”
“단순한 무공과는 그 궤를 달리하니까요.”
요태희가 대답을 할 때 흑색 도포의 마교도들이 돌아왔다.
“신마께서 여러분을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정천 일행은 마교도를 따라 목책 너머로 들어섰다.
수백 개에 이르는 막사들이 그곳에 있었다. 곳곳에서 활기와 전의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 전력은 얼마 후 천무맹을 무너트리는 데에 쓰이게 될 것이다.
“지금 확 쓸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남들에게 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윤하월이 중얼거렸다. 물론 이 자리에서 그 말을 듣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멍청한 짓 말게. 미친 짓을 하려거든 우리랑 떨어진 다음에나 하게나.”
“흥.”
코웃음을 치긴 했으나 청룡창을 출수하진 않는 윤하월이었다.
눈앞엔 어느새 거대한 막사가 가까워져 있었다.
“이곳입니다.”
안내를 마친 마교도들이 물러났다.
“그럼…….”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정천이 안으로 들어섰다. 장유추와 윤하월이 경쟁하듯 뒤를 따랐다.
“잠깐……!”
요태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
팟!
막사 안쪽에서부터 검광이 번뜩였다.
검격은 정천의 뺨을 한 치쯤 남겨 놓은 거리에서 멈췄다. 정천이 짧은 순간 상대방의 팔을 붙들었던 것이다.
“자네 맞구먼.”
안쪽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천 역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렇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귀도신마였다.
그의 애병인 귀령도가 아닌 보통의 검으로 급습을 한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검격의 날카로움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예전에 봤을 때보다 사람이 늘었군. 질적인 면에선 훨씬 뛰어나고…….”
귀도신마의 시선이 일순 멈칫했다.
그의 입에 사나운 미소가 걸렸다.
“익숙한 얼굴도 있군.”
시선이 멈춘 자리. 장유추 역시 귀도신마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떠벌이 놈.”
“그렇구나, 칼도둑 놈.”
두 사람 사이로 날카로운 살기가 충돌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챌 정도였다.
그러나 먼 거리의 마교도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백미련이 힐끗 요태희를 보았다.
“이것 역시?”
“그래요.”
요태희가 순순히 인정했다. 그제야 귀도신마도 뭔가 기이하다는 걸 눈치챘다.
“살기를 차단한 것인가? 희귀한 능력을 지니셨군.”
“계속 그러고 있을 건가요?”
“아니.”
귀도신마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살기를 거뒀다. 여유로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이 몸이야 이미 승리를 맛보았으니 말이야.”
“으음!”
장유추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 아까 전 윤하월과 말다툼할 때와는 기세부터가 비교가 안 됐다.
이내 한 팔뿐인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귀도신마보다도 지켜보던 요태희가 당황했다.
“뇌혈도! 더 기운을 올렸다간 저로서도 감당할 수가 없어요!”
“감당하지 마시게. 그러라고 부탁한 적도 없으니.”
장유추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스산했다.
“잘됐군.”
귀도신마도 어느새 귀령도에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당장 싸움판이 벌어질 기세.
그런 두 사람 사이로 정천이 끼었다.
“그만하시죠.”
“나보다는 저 날강도부터 말리는 편이 나을걸?”
“그럴 겁니다. 장 선배, 저와 약속하셨던 것을 어길 생각입니까?”
“…….”
장유추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 같아선 한바탕 깽판을 놓고 싶기만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자신이 직접 꺼냈던 약속의 무게가 너무 컸다.
“노부가 잠시 실수를 했군.”
장유추가 기세를 잠재웠다. 그제야 일촉즉발의 상황이 끝났다.
“아쉽군. 외팔이가 된 뒤의 실력도 보고 싶었는데.”
입맛을 다시는 귀도신마에게 정천이 넌지시 말했다.
“지금 붙는다면 장 선배가 우세할 겁니다.”
“……그건 그냥 듣고 넘길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싸울 거라면 나중에 하시죠. 어차피 며칠 뒤엔 떡하니 판이 차려질 텐데.”
비무대전을 의미하는 것. 그 말에는 귀도신마도 납득을 했다.
“하긴 이길 거라면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화려하게 꺾는 편이 낫겠군. 어쨌든 저 날강도 놈은 그 자리에 나오는 것이렷다?”
“특별히 신마님과 붙게끔 해드리죠.”
“나야 좋지!”
히죽 웃는 귀도신마.
그는 이내 웃음을 풀고서 정천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 몸을 찾아온 건가?”
“무슨 일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귀도신마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지난번 얘기했던 강룡단에 관한 거라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네. 미안하지만 천마께선 본인의 의중을 확실히 얘기하셨고, 나로서는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마음이 없네.”
천마는 강룡단을 버림 패로 썼다. 그것이 진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불의가 되지는 못한다.
그것이 천마의 의지이기에.
천마는 마교에 있어 유일한 정의요 종교였다. 이는 높은 자리에 있든 아니든 차이가 없는 것.
천마가 그리 마음먹고 행동한 것이라면, 귀도신마로서는 어떠한 불만도 제기할 수 없었다. 그것이 친했던 이들의 죽음이라 해도.
천마는 그들의 의식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존재인 것이다.
정천 역시 그걸 알았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 얘기는 이제 됐습니다. 더 이상 신마님의 심중을 어지럽힐 생각도 없고요.”
“그렇다면 이 몸을 찾아온 이유는 뭔가?”
“사람을 좀 만나고 싶습니다.”
“사람이라고?”
귀도신마는 의문을 느꼈다. 정천이 과연 만나고자 할 사람이 있긴 한 것인가?
정천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천마를 만나고 싶습니다.”
“……!”
귀도신마는 온몸에서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그분을 만나서 무얼 하려고?”
“담판을 짓고 싶습니다.”
“담판이라니? 자네가 그분과 할 얘기라도 있단 말인가?”
“그거야 만나 보면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귀도신마는 혼란스러웠다. 그 의도는 대체 무엇이고, 어째서 자신에게 이를 부탁한단 말인가?
의문은 그뿐이 아니었다.
나머지 셋은 잘 몰라도, 최소한 정천과 장유추는 마교십존에 준하는 강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이곳까지 들어왔는데, 천마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사실 이는 귀도신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천이 다가오는 동안에도 그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정천이 기척을 감쪽같이 죽였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지만, 나머지 넷마저도 그렇다는 건 이상했다.
‘설마……?’
귀도신마의 시선이 요태희에게 향했다.
이상한 여자다. 왠지 다른 네 사람과는 다른 냄새가 그녀에게서 나는 것만 같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요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시는 대로입니다.”
“뭐라고?”
“제가 조금 전부터 우리 모두의 기척을 지우고 있었습니다.”
귀도신마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그렇다면 조금 전의 살기도?”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끔 차단했지요.”
“으음.”
귀도신마는 침음을 흘렸다. 수많은 무공과 술법을 보아 온 그 역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단순히 기운을 차단한 것 때문만이 아니다. 왠지 그녀에겐 뭔가가 더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대동한 채 천마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한다.’
생각할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암살!’
귀도신마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아한 건 마찬가지였다. 굳이 암살을 할 거라면 저 여자의 능력으로 천마에게 접근해 기습하면 될 일 아닌가?
그럼에도 구태여 자신을 찾아와 천마에게 소개해 달라고 했다.
합리를 따진다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설마 자네, 정말 그분을 만나 대화만 할 생각인가?”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당신을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그럴 테지. 암습을 할 거라면 차라리 몰래 가서 하는 편이 나을 테니.”
귀도신마는 확신했다. 정천은 정말로 천마와 대담을 나누고 싶어 하고 있었다.
가볍게 심호흡을 한 그가 운을 뗐다.
“말씀 정도는 드려 볼 수 있네. 그러나 만나고 말고는 그분의 생각에 달려 있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한 가지 더. 만일 그분이 자네들을 처분하라고 말씀하신다면…….”
귀도신마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난 당장 전 병력을 규합시켜 자네들을 공격할 것이야. 그 자리엔 마교십존 모두가 자리하고 있겠지.”
“하! 재미있군.”
윤하월이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빌어먹을 마교놈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오겠다고 겁을 주는군. 그따위 협박에 눈이라도 꿈쩍할 것 같나?”
귀도신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애송이는 또 뭐야?”
“말조심하시지, 노인네.”
“허. 아직 팔팔한 이 몸더러 노인네라니?”
“나 역시 애송이는 아니지.”
귀도신마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평소였다면 더 들을 것도 없이 네놈 목을 뎅강 땄을 게다.”
“재미있겠군. 한번 해보시지.”
윤하월은 아예 본인이 먼저 덤벼들 기세였다. 보다 못한 정천이 짤막하게 말했다.
“그만하시지.”
“네깟 놈이…….”
“약한 개가 더 크게 짖는다더군. 풍신창왕이란 남자의 그릇은 원래 그 정도인가?”
“큭.”
윤하월은 입을 다물었다. 이런 말까지 들은 이상 더 날뛰어 봐야 의미가 없었다.
겨우 상황이 정리됐다. 귀도신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기다리게. 내가 그분께 말씀을 드려 보도록 하지.”
“아니.”
목소리는 의외의 장소에서 흘러나왔다.
“……!”
그 자리의 모두가 이내 경직되었다. 끼어든 목소리의 주인이 앞으로 막사 옆에서 걸어 나왔다.
“본좌를 찾는다고?”
천마 진검운이 그곳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