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권 - 第一章 마지막 세 사람 (73/146)

第一章 마지막 세 사람

덜컹.

문이 열리며 정천과 제갈순, 요태희와 장유추가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검왕과 무림 명숙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왔는가.”

“부른 건 우리 셋뿐입니까?”

검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지만 도착한 건 자네들 셋뿐일세. 예상한 것보다 빨리 왔군.”

“길이 가까웠으니까요.”

짤막히 답한 정천이 물었다.

“놈들의 용건이 정확히 뭡니까?”

“제갈 총관이 설명하지 않던가?”

“흘려들었습니다.”

어이없을 정도로 당당한 대답에 검왕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어째 맹주가 된 이후로 더욱 자신이 초라해지는 듯했다.

“천마가 비무대전을 제안했네. 이쪽의 대표 다섯과 저쪽의 대표 다섯을 앞세워 결전을 벌이자는 것이지.”

“시간 벌이일 리는 없고, 이쪽의 신경을 끌겠다는 뜻이군요.”

정천의 단정에 무림 명숙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신경을 끈다고? 놈들이 비무대전을 고작 그런 용도로 벌일 거란 말인가?”

어느 문주의 말에 정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비무대전이라 해 봐야 결국 다섯 대 다섯이서 붙자는 것 아닙니까? 고작 그따위 장난이나 치려고 만 단위의 대군을 이끌고 오진 않았겠죠.”

“고작 그따위라니!”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문주들의 반응은 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섯 명의 대표 중엔 천마 본인도 포함될 것이 때문이었다.

더불어 이쪽에선 검왕이 나설 것이 뻔한 상황.

양 진영 최고의 무인들이 나서는데, 정천의 말은 너무나 예의 없고 개념이 없었다.

검왕이 손을 들었다. 일순 조용해지는 좌중.

“천마 본인이 나서서 시선을 끌 거라는 말인가?”

문주들은 다시금 놀랐다.

검왕의 말투는 정천을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는 이의 것이었다.

“물론입니다.”

“어찌 그리 확신하지?”

“천마도 어느 정도 눈치는 있을 테니까요.”

“눈치라니?”

정천은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검왕에게만 전음이 들려왔다.

—혈선들의 존재 말입니다.

—혈선?

—그들이 과연 가만히 있겠습니까? 수를 쓴다면 아마 비무대전이 일어나는 시점일 겁니다. 천마 입장에서도 두고 보지만은 않겠죠.

또다시 혈선인가. 검왕은 새삼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린 혈선들의 존재 자체조차 얼마 전에 겨우 알게 되었네. 자네는 그 이상의 뭔가를 알고 있단 말인가?

—모릅니다.

이쯤 되니 검왕도 기가 막혔다.

—모르면서 그렇게 단정 지을 수가 있단 말인가?

—모르니까 단정 지을 수 있는 겁니다.

—그게 무슨 선문답인가?

—좀 더 간단히 말씀드리죠. 지금으로선 어떤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단 말입니다.

검왕은 멈칫했다.

혈선들이 손을 쓸지 구경만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모든 상황에 맞춘다.

‘손을 쓰는 상황에 대비하여 준비를 한다. 손을 쓰게 되면 그에 맞설 수 있으니 좋고, 아닐 경우 헛수고를 하게 되겠지만 그 역시 감수할 수 있다.’

그럴싸한 생각이었다.

—천마도 그럼……?

—그자 역시 나름대로 혈선들과 결판을 내려 할 겁니다. 혈선을 거꾸러트리지 않고는 정파무림을 손에 넣는 의미가 없을 테니.

검왕은 그제야 개안하는 기분이었다.

외관상 천무맹과 마교, 두 세력의 결전으로 보이지만 그 실상은 삼파전이었다.

보이지 않는 혈선의 세력이 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셈.

하지만 그렇다는 건 또 다른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만일 마교와 혈선들이 손을 잡았다면? 과거에도 그러했으니 이번이라고 다를 건 없지 않나?

—그렇겠죠.

이번에도 너무 싱겁게 인정해 버리는 정천이다.

검왕은 약간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좋은 방법은 더 없는가?

—글쎄요. 일단은 천마의 의중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검왕은 가슴을 주먹으로 치고 싶었다.

—답답한 소릴 하는군! 그게 힘드니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 아닌가!

—제가 다녀오죠.

—다녀오다니?

피식 웃은 정천이 입을 열었다.

“천마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검왕보다도 문주들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현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거니와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정천은 그들의 반응을 무시했다. 어차피 지금 중요한 건 한 사람의 의중이었다.

시선은 여전히 검왕에게 고정된 상황.

검왕은 신중히 입을 뗐다.

“천마를 만나 무엇을 하려는가?”

“그의 심중을 파악해 봐야죠.”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무모한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칼밥 하루 이틀 먹은 줄 아십니까? 그 정도야 언제나 각오하고 있습니다.”

“…….”

검왕은 입을 다물었다. 정천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알 수가 없었다.

‘이자는 내 편이 되려는가, 아니면 적이 되려는가.’

생각해 보면 황룡회 때부터 정천에게 질질 끌려 다니고만 있었다.

그때의 결판도 일방적으로 정천에 의해 나 버렸고, 이후로도 모든 상황은 정천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변수. 정천을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단어이리라.

어찌 보면 천마나 혈선보다도 천무맹에 있어 위험한 존재일 수 있었다.

정체가 분명한 적보다는 의중을 알 수 없는 동지가 더 위험한 법이니.

‘하지만 판단을 해야 한다.’

정천을 보낼까, 말까?

고심하던 검왕은 장유추와 요태희가 정천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단순한 모습만으로도 많은 것이 분명해졌다.

‘이미 저들은 정천과 한패로군.’

장유추야 그렇다 쳐도 요태희는 조금 의외였다. 그녀를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검왕 자신이 아닌가.

‘어쨌든 당장은 정천의 행동을 막을 수가 없겠군.’

일단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둔다. 검왕은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어찌 대응할지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뇌혈도와 궁후를 함께 보내도록 하지. 천마를 만나 그자의 의중을 살펴보게.”

“알겠습니다.”

정천은 대답과 함께 몸을 돌렸다. 그것으로 볼일은 끝났다는 듯.

“잠깐! 아직 비무대전에 내보낼 대표를…….”

타앙!

문 닫히는 소리가 제갈현의 말을 잘랐다. 제갈현은 난감하다는 눈으로 검왕을 쳐다봤다.

“나와 뇌혈도, 궁후와 윤하월, 그리고 정천이 나갈 것이네. 현상성과 마태륜에겐 굳이 올 필요가 없다고 정하게.”

“맹주님?”

“본좌는 이미 마음을 정했네. 혹 이 결정에 불만이 있다면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해도 좋네.”

강경한 검왕의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제갈현 역시 그 네 사람 외의 누군가를 떠올리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묵묵히 있던 남궁운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정천에게도 적합한 별호를 주어야겠군요.”

“별호?”

“모두가 거창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그 친구만 없잖습니까? 별호가 아니더라도 뭔가 부를 만한 직함이 있는 편이 낫겠지요.”

“뭔가 괜찮은 거라도 있나?”

검왕의 물음에 남궁운은 피식 웃었다.

“용검대주 정도라면 괜찮을 듯싶습니다만.”

“……!”

검왕보다도 문주들이 더욱 놀랐다. 그 이름을 상기하는 데 있어선 수십 년의 연륜까지도 필요없었다.

고작해야 십 년 전의 이름이다.

그러나 천무맹의 역사 속에서도 그 무엇보다 활활 불타올랐던 이름.

검왕 역시 남궁운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대주가 있다면 그가 통솔할 부대도 있어야 할 텐데?”

“대주 본인에게 선택하도록 하십시오.”

“그게 올바른 처사일 것 같군.”

고개를 끄덕인 검왕이 낮게 읊조렸다.

“용검대의 부활인가.”

부활.

십 년 전의 전설이 눈앞에서 재현되는 듯한 기분에 문주들은 전율했다.

“그, 그자에게 용검대주의 이름을 이을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어느 문주의 물음에 남궁운이 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든 도전하시게. 아마 그자는 도전을 피할 성격은 아닐 거야.”

“…….”

“한 가지만 미리 말해 둠세. 지금의 정천은 전성기의 화륜패를 압도하는 실력이야.”

“……!”

문주들이 다시금 몸을 떨었다. 화륜패의 무위야 누구보다도 그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화륜패를, 고작 서른 남짓한 애송이가 압도한단 말인가?

그러나 남궁운은 허튼소리를 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그렇다면 정말 그런 것이리라.

‘하긴…….’

‘마지막까지 맹주와 함께 황룡회의 단상에 서 있던 자가 아닌가.’

‘최후 전투가 조금 싱겁기는 했어도 실력만은 진짜배기라고 봐야겠지.’

문주들의 생각은 그러했다. 검왕의 상대는 되지 않지만 어쨌든 마지막까지 남았을 정도의 실력자라는 것.

멸천의 진면목을 알았다면 평가도 완전히 바뀌었겠지만, 구태여 그들의 무지를 일깨워 줄 생각이 검왕에게는 없었다.

“그나저나 천마를 찾아가려는 진짜 의도가 궁금해지는군.”

검왕의 혼잣말에 제갈현이 물었다.

“그 세 명만 보내서 괜찮을까요?”

“그들을 걱정하나?”

“세 사람이 각기 짝을 찾기 힘든 강자들이긴 해도, 상대는 마교의 정예 대군입니다. 게다가 천마와 마교십존까지 있으니…….”

“고작 수적 우위 때문에 마음을 놓는다면 그들이 큰일에 처할걸.”

“예?”

검왕은 농담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얼굴로 말했다.

“마음 놓다간 천마라 해도 어찌 될지 모를 걸세.”

‘천마를 찾아가겠다고?’

회의장 밖 창가에 있던 윤하월은 이를 악물었다.

‘나보다 앞서서 천마를 치려는 건가?’

윤하월의 팔뚝 위로 힘줄이 돋았다.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천마의 멱을 따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난 천마를 이길 수 없다.’

윤하월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사실. 이미 하늘과 땅과 같은 실력 차를 깨닫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정천은?

놈은 천마를 이길 수가 있단 말인가?

엄밀히 말해 윤하월은 정천의 본 실력을 몰랐다.

황룡회에서 붙어 보았다지만, 그것은 정천과 검왕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했던 것. 그것만으론 본 실력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천마에 미치지는 않는다는 점.

아니, 그래야만 했다.

‘나조차 천마의 십초지적이 되지 못했다. 놈이 가능할 리가 없어!’

윤하월은 그렇게 확신했다. 곳곳에 상처를 입고 겨우 목숨만 건졌지만, 얼음장 같은 자존심만은 꺾이지 않은 그였다.

“천마도 정천도 모두 내 손으로, 나의 청룡창으로 꺾고 말 것이다.”

맹세하듯 중얼거리는 윤하월.

그런 그의 아래로 세 사람, 장유추와 요태희와 정천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어딜 가려는 거지?”

윤하월은 그들의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거리도 최대한 벌려 놓았다. 쥐새끼처럼 뒤를 쫓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괜히 저들에게 발각당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저들을 쫓는 건 비단 윤하월뿐만이 아니었다. 이내 윤하월의 목에 칼날이 와 닿았다.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백미련이었다. 윤하월은 이를 뿌득 갈았다.

“이 칼 치워라, 계집.”

“본후의 말에 대답부터 하는 게 좋을 거다.”

“칼 치워라. 세 번 말하지 않는다.”

백미련의 눈에 비웃음이 감돌았다.

“안 치운다면?”

휘잉!

고개를 젖혀 구절검을 벗어난 윤하월이 원심력을 이용, 그대로 청룡창을 백미련의 미간에 꽂아 넣었다. 백미련 역시 순간적으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결과적으로 검을 치우게 된 셈. 그러나 청룡창도 목표를 꿰뚫진 못했다.

침을 탁 뱉은 윤하월이 말했다.

“제법이구나.”

“그대야말로.”

“건방지기까지 하군. 감히 나를 평가하려 들어?”

“먼저 시작한 건 그대 아닌가?”

윤하월은 입을 다물었다. 쓸데없는 말다툼으로 시간을 끌 때가 아니었다.

“평소라면 끝장을 봤겠지만 지금은 본좌가 좀 바쁘다. 저리 꺼져라.”

“미안하지만 그러진 못하겠군. 왜 저들을 쫓는지 먼저 말해.”

“뭐야?”

“말을 못 알아듣나? 왜 저들의 뒤를 밟고 있는지 말하라고 했어.”

“젠장! 놈들이 뭘 하려고 하는지 알려고 그런다.”

윤하월의 대답에 백미련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랬군.”

“그러는 너는 뭐냐? 놈들의 수신호위라도 되는 거냐?”

“그럴 리가. 본후도 그대와 같다.”

“뭐야?”

백미련이 고운 입가에 실소를 머금었다.

“본후도 정천이 뭘 하려는지 궁금해.”

* * *

“자네, 너무 막나가는 것 아닌가?”

장유추가 투덜거렸다.

세 사람은 이미 황룡성을 벗어난 상태였다. 회의장을 나서자마자 신속의 경공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마교 놈들이 무섭진 않네만 이건 좀 갑작스러운 것 아닌가?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하고서 놈들과 맞댔으면 싶은데.”

“무섭습니까?”

“노부의 말을 못 들었나? 놈들이 무섭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네.”

“귀도신마를 다시 봐야 하는 게 무섭습니까?”

장유추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한 번만 더 그따위로 물었다간 자네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걸.”

“하하.”

가볍게 웃는 정천. 조금 전의 말이 농담이었음을 깨달은 장유추가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정말 이대로 천마를 만나러 갈 건가?”

“그래야죠. 일단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인지는 봐둘 필요가 있으니.”

옆 동네 건달패라도 만나러 간다는 듯한 어조다. 천마를 입에 담으며 이렇게까지 여유로울 수 있는 건 정천뿐이리라.

하지만 천마는 옆 동네 건달패가 아니다. 평소 남을 말리는 것보다 남들이 말리는 데 익숙한 장유추였지만, 이번만은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천마가 끌고 온 병력에 대해선 얘기할 것도 없겠지. 거기에 마교십존이란 어처구니없는 놈들까지 있어. 그놈들 열 명만 해도 우리 셋으로선 벅찰지도 모르네.”

“아마도 그렇겠죠.”

정천은 순순히 인정했다.

멸천을 펼친다면 모를까, 그냥 싸워선 강룡검까지 동원한대도 그들 전부를 당해 낼 수 없을 터였다.

게다가 그 무엇보다도 강대한 전력인 천마까지 있다.

지금 그들은 문자 그대로 호랑이 아가리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천마가 우리를 죽이지 않을 거라 확신하나?”

“예.”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정천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곧바로 대꾸했다.

“그 작자, 천마잖습니까.”

“…….”

장유추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천을 강제로 끌고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후후후.”

요태희의 웃음이었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정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교의 지존이자 중원 어디에도 겨룰 자가 없을 자존심의 화신. 그런 자이기에 고작 세 명뿐인 우리를 죽이지 않을 거란 말인가요?”

“잘 아는군. 정확히는 다섯이지만.”

장유추도 요태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미 쫓아오고 있는 백미련과 윤하월의 기척쯤은 엊저녁에 간파한 뒤였다.

정천은 장유추를 돌아봤다.

“그래서 물어본 겁니다, 선배. 무섭지 않느냐고요.”

“끄응.”

앓는 소리를 낸 장유추가 될 대로 되라는 듯 내뱉었다.

“젠장! 이제 와서 노부 혼자 발을 뺄 수도 없지. 좋을 대로 하게.”

“그럴 겁니다. 뭐, 어쩌면 가볍게 싸움이 일어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오히려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건 아니고?”

“그럴지도 모르죠. 어쨌든 그 전에…….”

정천은 요태희를 돌아봤다.

“일단은 당신과 먼저 담판을 지어야겠지?”

조금은 갑작스러운 말.

요태희의 얼굴이 살짝 경직되었다.

“응? 궁후와? 담판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장유추가 의아해할 때, 정천은 이미 강룡검까지 뽑아 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까 전, 회의장으로 향하는 길에도 정천은 강룡검을 뽑아 들었었다.

그때는 어영부영 상황을 넘겼지만, 못내 의아함이 남았던 장유추였다. 대체 왜 정천은 갑자기 그녀를 공격하려 했단 말인가?

그 의문에 대답하듯 정천이 입을 열었다.

“본인이 최후의 혈선이란 게 무슨 의미지?”

“뭐야?”

장유추의 입이 쩍 벌어졌다. 최후의 혈선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한편 요태희는 정천과 장유추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정천에게서 멈췄다.

“이자, 뇌혈도를 신뢰하는 모양이군요. 굳이 그 얘기를 입 밖에 낸 것은 그에게도 모든 것을 들려줘도 된다는 의미겠죠?”

“그래.”

이렇게 되니 요태희도 더 이상 숨길 게 없었다.

“그래요.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저는 마지막 혈선입니다.”

“…….”

정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장유추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궁후? 그대도 놈들과 한패라는 소린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어요.”

“말장난하지 말고 확실히 설명하게!”

요태희는 작게 한숨을 뱉었다.

“좀 정확하게 말해야겠군요. 저는 그들과 같은 태생입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요태희는 정천을 돌아봤다.

“진마동은 어떤 곳이었죠, 정 소협?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마수들은 어떤 존재였죠?”

정천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생각하기 싫은 것을 떠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놈들은……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만 같았지.”

“그게 정답이에요.”

요태희의 말에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린가?”

“말 그대로예요.”

요태희가 설명했다.

“혈선들은 지속적으로 한 가지 목적에 매진해 왔어요. 그 결과물이자 실패작이 바로 진마동이었죠.”

“결과물이자 실패작?”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 정 소협의 말대로 그들이 불러내려 했던 것은 그런 것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진마동은 그 결과물이지요. 하지만 그들이 불러내려던 것은 진마동이 아닌 다른 것이었죠. 그런 의미에선 실패작이라 할 수 있죠.”

정천과 장유추는 입을 열지 못했다. 요태희가 말하는 바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시선만으로도 충분했다. 고개를 끄덕인 요태희가 덧붙였다.

“그래요. 그들과 저는 다른 세상의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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