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九章 천마의 검 (69/146)

第九章 천마의 검

멸살독마는 뿌드득 이를 갈았다.

‘괴물 같은 놈!’

철절삼마, 천마 외엔 그 누구도 위에 두지 않는다는 마교의 정점이 그였다.

요사이 십마 중 몇몇이 치고 올라온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밀리진 않는다고 자부해 왔다. 하물며 정파 놈들에게 쩔쩔 맬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지금 그 자부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으음.”

멸살독마는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봤다. 상완(上腕)에 큰 구멍이 나 팔 전체가 너덜너덜했다.

심줄까지 끊어진 듯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왼팔이 움직일 줄은 몰랐다.

“참으로 지독한 놈이다.”

멸살독마는 다시금 진저리를 쳤다. 설마 극성의 혈산독무마저 뚫고 들어와 치명타를 입힐 줄이야.

물론 그 대가가 작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네놈도 이걸로 더 움직이기는 힘들 것이다.”

멸살독마는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그곳엔 몸 절반이 푸르죽죽하게 물든 윤하월이 서 있었다.

혈산독무의 기운은 만독불침인 그의 몸마저 퍼렇게 오염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엄청난 고통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럼에도 윤하월은 태연했다.

“흥. 독인지 뭔지 몰라도 간지럽군.”

“허세 부리지 마라. 지금도 혈산독무의 기운이 네놈의 살점 하나하나를 갉아먹고 있을 터. 그 고통이란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간지럽다고 했잖나, 늙은 마두.”

그렇게 말하면서도 섣불리 창을 들지 못하는 윤하월이었다. 그 역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멸살독마가 이죽거렸다.

“참으로 어리석은 놈이구나. 본괴와 붙을 것이 아니라 아군을 구하는 편이 나았을 것을. 어리석은 선택을 하여 죽음을 재촉했구나.”

“…….”

“지금쯤 나의 독마대가 너희 천무맹의 찌꺼기들을 학살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네놈이 와서 얻는 것은 개죽음밖에 없게 됐다.”

“흥.”

윤하월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청룡창을 짤막하게 쥐어 왼팔을 죽 그었다.

푸화학!

엄청난 악취와 함께 썩은 피가 뿜어졌다. 그럼에도 윤하월의 표정은 얼음장 같았다.

피를 한 됫박은 뽑아낸 그가 왼팔을 흔들어 보았다.

“이제 좀 낫군.”

“끈질긴 놈. 아직도 싸울 생각이냐?”

“먹잇감이 죽기 일보 직전인데 관둘 수야 없지. 그리고 넌 착각하고 있다, 늙은 마두.”

“본괴가 착각하고 있다고?”

청룡창을 바르게 쥔 윤하월이 냉소를 지었다.

“청성이나 종남의 떨거지들이 죽든 살든 내 알 바 아니다. 천무맹이 승리하든 마교가 승리하든 알 바도 아니야.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휙.

청룡창의 아가리가 멸살독마를 향했다.

“그리고 난 지금 네놈을 산산이 박살 내고 싶다, 늙은 마두.”

“……허!”

멸살독마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보니 정파의 썩은 세상에도 무인이 있었군. 네놈과 적으로 만난 게 아쉽구나. 네가 마교인이었다면 천마님도 좋아하셨을 터인데.”

“천마? 내가 네놈들처럼 그 자식에게 알랑방귀나 뀔 것 같나?”

침을 탁 뱉은 윤하월이 말했다.

“됐으니 그만 떠들고 죽을 준비나 해라.”

“하긴 이제 결판을 낼 때도 되었지.”

멸살독마는 오른팔로 왼팔을 잡아당겼다.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왼팔이 뜯겨졌다.

어차피 쓸 수 없는 팔, 남겨 둬 봐야 방해만 됐다. 그러느니 떼어서 두는 편이 후에 봉합하기에도 편했다.

팔이 살아나느냐 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네놈을 얼른 해치우고 돌아가야겠구나. 너무 늦었다간 마의(魔醫)의 의술로도 고치기 못할 테니!”

“걱정 마라. 살아 돌아갈 일은 없을 테니까!”

윤하월의 청룡창이 양옆의 나무를 번갈아 후려쳤다. 빠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아름드리 거목이 멸살독마 쪽으로 쓰러졌다.

“흥!”

멸살독마는 일장을 뻗어 동시에 두 나무를 격타했다. 팔 하나를 잃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신속의 장법이었다.

극성의 혈산독무는 닿는 순간 나무의 생기를 모조리 빼앗았다.

흐물흐물해진 나무를 쳐낸 멸살독마가 그대로 윤하월에게 돌진했다.

그 순간 윤하월도 청룡창을 전방으로 출수하고 있었다.

“죽어랏!”

“내가 할 소리!”

속도로는 중원 으뜸이라는 풍신격(風神擊)이 펼쳐졌다. 멸살독마는 혈산독무를 전방에 뭉쳐 방패처럼 만들었다.

카앙!

첫 번째 충돌. 풍신격의 창강은 혈산독무를 완전히 뚫지 못했다.

“본괴의 승리다!”

멸살독마가 소리치는 순간, 윤하월은 이미 두 번째 창격에 들어가고 있었다.

또 한 번의 풍신격. 찰나의 시간 차도 두지 않은 채 첫 공격이 들어갔던 자리를 후려쳤다.

퍼엉!

혈산독무가 약간이지만 흩어졌다. 반격하려던 멸살독마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리고 또 한 번!

파아앙!

혈산독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그마한 빈틈이 생겼을 뿐. 하지만 청룡창이 비집고 들기엔 충분했다.

쐐애액!

청룡창이 벌어진 틈으로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윤하월의 공격 방식은 실로 단순했다. 찌른 곳을 찌르고 또 찌른다. 반격 따윈 생각도 못할 정도의 초신속 창격으로. 무식하고 과격하지만 이보다 좋은 전술도 없었다.

그 단순함에 묵직한 창강이 얹히니, 어지간한 비전절기가 두렵지 않을 위력이었다.

‘그러나!’

멸살독마는 침착하게 일장을 뻗었다. 시퍼렇다 못해 거멓게 물든 독수(毒手)였다.

‘일방적으로 물어 뜯기진 않으리라!’

어차피 피해 없이 이길 생각은 예전에 버린 뒤였다. 살을 찢긴다면 뼈를 끊고, 뼈를 끊긴다면 내장을 헤집으리라 다짐한 그였다.

창강과 독기가 부딪쳤다.

콰콰콰콰!

주변으로 강렬한 돌풍이 몰아쳤다. 독기와 창강이 섞인 그 기운에 나무들이 썩는 동시에 갈가리 찢겼다.

충돌의 중심에서 멸살독마가 먼저 튕겨졌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상태였다.

“크앗!”

오른손바닥에 큼직한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뜯겨진 왼팔보다야 양호하다지만 결코 작지 않은 상처였다.

반면 윤하월은 비교적 멀쩡했다.

“음…….”

아예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빼냈던 독기가 다시금 몸을 잠식하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윤하월의 시야는 상당 부분 독으로 인해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그러나 멸살독마 수준의 치명상은 없었다.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에 멸살독마는 이빨이 부러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저 빌어먹을 창! 저것 때문이다!’

청룡창.

검으로 친다면 명검칠존에 준하는 궁극의 병기. 주먹만 한 크기만 있어도 성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만련철(萬鍊鐵)로 만들었다는 전설적인 창.

그것이 혈산독무의 힘 대부분을 상쇄시켰다.

‘실로 괴물 같은 쇳덩이다.’

꽤나 명품으로 통하는 무기조차 멸살독마의 독기를 견디지 못한다. 그만큼 멸살독마의 혈산독무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다.

한두 번이면 모를까, 이 정도로 손을 섞는다면 금속 자체가 녹슬거나 부식되기 마련이다. 나아가 그것을 쥔 주인의 팔조차도 독기로 인해 썩어 문드러질 터.

그러나 청룡창은 멀쩡했다. 또한 혈산독무의 기운 대부분을 방어하기까지 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생사가 갈리는 혈투에 있어 이 점은 너무나 컸다.

엄밀히 말하면 윤하월이 이긴 것은 그 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멸살독마로서는 더더욱 치가 떨리는 것이었고.

“비겁하다고 할 텐가, 늙은 마두?”

윤하월이 비웃듯 물었다. 그러나 멸살독마는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승패에 비겁이고 뭐고는 무의미했다. 승리 자체가 강함의 증거라는 게 마교인들의 사고방식이었으니까. 그리고 강한 것은 언제나 옳은 법. 마교천하의 관점으로 볼 때 윤하월은 누가 보든 확실한 승자였다.

“흥. 비겁이니 뭐니 하는 건 네놈들 정파인의 방식이겠지.”

“그렇군. 그렇다면 패배를 인정하는 건가?”

“뭘 모르는구나, 애송이.”

멸살독마는 클클 웃으며 일어났다. 마교인들의 또 다른 사고방식 하나를 떠올리며.

“죽기 전엔 그 누구도 패배한 게 아니다.”

윤하월이 피식 웃었다.

“고루한 생각이군. 하긴 어차피 네놈을 살려 둘 생각 따위는 없었다.”

청룡창을 몇 차례 휘둘러 본 윤하월이 선언했다.

“이제 끝을 내 주마.”

“…….”

멸살독마는 죽음을 각오했다. 동시에 체내의 모든 독기를 끌어올려 오른손에 응축시켰다.

‘이게 본괴의 최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꾸르르륵.

뚫려 버린 오른손바닥의 상처에 시커먼 피가 솟아났다. 그러나 아래로 흘러내리진 않았는데, 점액질의 물질처럼 그의 손아귀를 감쌀 뿐이었다.

멸살독마가 지닌 궁극의 절독, 흑점(黑粘)이었다.

목표에 적중하는 순간부터 결코 떼어지지 않고서 목표를 썩게 만드는, 그야말로 최후의 절기. 아마 천마쯤 되는 이라 하더라도 일단 적중당하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직은 독기가 활성화되지 않았기에 안전하다. 그러나 일단 활성화시키면 멸살독마 역시 흑점에 중독된다. 그 해독은 멸살독마 본인도 불가능했다. 이른바 동귀어진의 독공이라 할 수 있었다.

‘혼자 죽지는 않겠다, 어디 매운맛 좀 보아라!’

멸살독마가 동귀어진을 각오했을 때였다.

그의 머릿속을 흔드는 한마디의 전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 흑점을 거두게.

—……!

묵직한 전음에 멸살독마는 전율했다.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탓!

그러는 사이 돌진해 오는 윤하월. 멍청히 있다간 그대로 두개골에 구멍이 날 것이다.

그러나 멸살독마는 흑점을 없앴다. 그 목소리를 믿기 때문이었다.

파앗!

붉은색의 돌풍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순간적으로 멸살독마의 시야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사위로 몰아치는 혈색의 폭풍!

콰과광!

다음 순간, 윤하월은 돌진하던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크으윽!”

윤하월의 몸은 뒤편에 있던 나무와 부딪치고서야 멈췄다. 잠시 비틀거리던 그가 왈칵 피를 토했다.

“이런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는 윤하월의 앞에서 핏빛 바람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중후한 목소리.

“제법이군. 죽일 생각으로 손을 썼는데 그 정도에 그치다니.”

기분 나쁠 정도로 차분한 말투였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저은 윤하월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네놈은 뭐냐!”

“불청객이지. 여느 불청객이 그렇듯 자네로서는 반갑지 않겠군.”

멸살독마가 사내의 앞에 부복했다.

“홀로 쫓아오신 겝니까?”

“음. 독마 자네라면 본좌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대로 공격해 들어갈 것 같았거든.”

“클클클, 이 늙은이는 그 서신이 가짜인 줄로만 알았지 뭡니까.”

“남을 좀 믿는 버릇을 가져야겠어, 독마.”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조아린 멸살독마가 말을 이었다.

“천마님.”

“천마? 천마라고?”

윤하월이 놀란 듯 사내를 뚫어져라 보았다.

사내, 천마는 윤하월을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말로만 듣던 이의 첫인상은 어떤가?”

“……휘황찬란한 소문에 비해 정말 별것 없는 개자식이로군.”

“정파 놈들답잖게 입이 험하군. 꼭 내 부하놈들을 보는 것 같은데.”

“실력은 천지차이일 거다.”

“글쎄…….”

어깨를 으쓱인 천마가 비웃음을 띠었다.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흥!”

윤하월은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도 타격이 컸던 듯 온몸이 삐걱거렸지만 그는 정신력으로 버텼다. 뼈와 근육이 하나같이 비명을 질러 댔지만, 그는 격통을 느끼면서도 애써 웃었다.

“크크큭…….”

어쩌면 여기가 끝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크하하하!”

살기로 범벅이 된 광소였다.

윤하월은 핏대가 오른 눈으로 천마를 노려보았다.

“이젠 네놈이 그 늙은이 대신 덤빌 테냐? 어느 쪽이든 좋으니 어서 덤벼 봐라!”

살기만으로 사람을 죽일 기세였다. 실제로 그가 내뿜은 살기에 질린 풀잎들이 하얗게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마는 천하태평이었지만.

“글쎄. 본좌는 딱히 싸울 생각이 없는데.”

“그 무슨 헛소리냐. 전쟁을 벌이러 온 주제에 싸울 생각이 없다고?”

천마는 빙그레 웃었다.

“전쟁이라. 보통은 그래도 급이 맞는 사람끼리 붙을 때나 전쟁이라고 칭하지 않나?”

“……네놈!”

윤하월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은 시간 끌 것도 없이 공격하고 공격하는 게 답이었다.

“어디 계속 무시할 수 있나 보자!”

그의 전력이 청룡창에 실렸다.

우우우웅!

청룡창이 가늘게 떨리며 파공음을 내기 시작했다. 극성의 공력이 실릴 때만 흘러나온다는 청룡명(靑龍鳴)이었다. 그 울음에 공명하기라도 한 듯 주변의 공기가 파르르 떨렸다.

“타아아앗!”

주변의 바람이 윤하월과 함께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언뜻언뜻 뇌전이 작렬하고 있었다.

그 역시 어느 정도는 검왕의 자연지경(自然之境)에 발을 걸어 놓은 단계였다.

“포효하라, 청룡!”

푸른빛 창강이 창끝의 일점에 응축되었다. 이제 청룡창은 이름 그대로 한 마리의 용인 양 허리를 뒤틀어대고 있었다. 강렬한 공명으로 인해 창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힘이 응축된 일격에 맞는다면 그 무엇이든 허물어질 터.

창신열파(槍神熱波).

윤하월이 펼칠 수 있는 궁극의 창격이었다.

파바바밧!

푸른빛 기운에 휩싸인 윤하월의 모습은 한 마리 청룡이었다.

그 기세는 멸살독마에 의한 중독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허…….”

강한 것은 아름답다던가. 멸살독마는 자기도 모르게 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천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

“여유 부리지 마라!”

크르르릉!

청룡명이 극한에 달했다. 그야말로 청룡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사위를 흔들었다.

그러한 가운데, 푸른 기운에 휩싸인 윤하월이 천마를 향해 쇄도해 갔다.

“죽어라!”

콰과과과!

두 사람 사이의 땅이 헤집어지며 하늘로 치솟았다. 뜯겨져 나온 거목들이 폭풍에 휘말린 양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로 돌진해 오는 한 마리 청룡.

‘천마님!’

멸살독마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천마를 돌아봤다.

그리고 천마가 땅을 박찼다.

“놀아보자꾸나, 나찰수라(羅刹修羅).”

스르릉!

천마의 허리춤에서 한 자루 검이 뽑혀 나왔다.

태천검마저 능가한다는 명검칠존의 정점, 마검 나찰수라였다.

키이이잉!

기이한 귀곡성이 울렸다. 불그스름한 기운이 나찰수라의 칼날에 맺혔다.

천마는 나찰수라를 쥔 검을 뻗은 채 몸을 날렸다. 붉은 검강이 허공을 갈랐다.

다음 순간.

윤하월의 청룡은 붉은빛 섬광에 의해 사방으로 찢기고 있었다.

“크아아악!”

윤하월의 가슴팍에서 피가 솟구쳤다. 천마의 검강이 그의 창강을 뚫고 들어와 흉부를 갈라 버렸던 것이다.

상처가 깊었던 만큼 뼈까지 드러날 정도였다.

“커억…….”

윤하월의 몸이 볼썽사납게 땅을 굴렀다. 천마는 언제 검을 뽑았냐는 듯한 태도로 땅에 내려섰다.

청룡이 불러일으켰던 폭풍은 어느새 사라진 뒤.

너무나 허무한 일전이었다.

“오오, 오오오오!”

멸살독마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전율했다.

강하다. 너무나 강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비록 부상을 입고 기력도 쇠했다고는 해도, 정파 최강 중 한 명으로 불리는 풍신창왕을……!’

철절삼마 중 하나인 그가 고전했을 정도면 십마를 제외한 어떤 마교인도 그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다. 풍신창왕 윤하월은 그만큼 강한 사내였다.

그러나 그조차 일격에 저 꼴이었다.

‘천마님은 이미 무림지존이시다. 검왕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멸살독마는 눈물까지 핑 도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의 눈은 어느새 젖고 있었다.

그것을 본 천마가 물었다.

“왜 우나, 독마?”

“이 늙은이가 너무나 감격해서 그렇습니다. 죽기 직전에 무신(武神)을 만났다는 데에 너무나 감격해서 그렇습니다.”

“싱거운 소릴 하는군.”

천마가 피식 웃고 있을 때였다.

“크으, 으으으…….”

윤하월이 아직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미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 냈음에도, 그는 아직 청룡창을 쥔 채 몸을 떨고 있었다.

그것을 본 멸살독마가 비웃음 가득한 얼굴을 했다.

“클클, 정말 지독한 놈이군요. 천마님의 일격을 맞고도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본좌가 죽지 않도록 힘을 조절했거든.”

“과연! 그렇겠지요. 저런 놈에게 일순간의 죽음은 사치일 테지요.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는 것이 어울릴 겁니다.”

“아니.”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놈은 여기서 죽지 않을 걸세.”

“예?”

천마는 부들거리고 있는 윤하월을 응시했다.

“본좌 나름의 찬사라고나 할까? 저 정도의 사내를 지금 죽여야 한다는 게 조금 아깝거든.”

“하오나 천마님, 싹은 밟아 버릴 수 있을 때 밟아야 합니다.”

“걱정 말게. 놈이 온전한 상태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본좌의 십초지적이 되지 못해.”

“그건 그렇습니다만…….”

천마는 빙긋 웃었다.

“이 정도의 여흥은 괜찮지 않겠나? 게다가 넓게 보더라도 놈이 살아 돌아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네.”

“예?”

“놈이 여기서 죽는다면 그건 천무맹 놈들의 전의를 불사르게만 할 뿐이겠지. 구원군이 되어 홀로 목숨을 불사른 무사의 이야기, 이 얼마나 숭고하겠느냔 말이야.”

“그, 그렇겠군요.”

멸살독마는 그제야 알겠다는 얼굴을 했다.

“반면 놈이 목숨을 부지해 돌아간다면, 천무맹 놈들은 생생한 눈앞의 광경에서 공포를 느끼게 되겠지.”

천마는 담담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편이 더 재미있지 않겠나?”

“클클, 과연 묘안이십니다.”

멸살독마의 밭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천마가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아직까지 일어나려 애쓰고 있는 윤하월에게 다가갔다.

천마는 윤하월의 머리를 콱 밟았다.

“조금 전의 얘기를 들었을 테지?”

“크으……!”

“이걸 먹어라.”

천마가 무언가를 떨어트렸다. 자그마한 내단이었다.

그것을 본 멸살독마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그 내단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던 까닭이다.

“천마님! 그깟 놈에게 적엽단(赤葉丹)이라니요?”

적엽단이라 하면 마교 내에서도 다섯 번째 서열에 위치하는 영약이었다. 어지간한 무인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물건.

그런 것을 적에게 주는데도 천마는 아쉽지 않은 얼굴이었다.

“조금 전 참격으로 내장의 절반이 날아갔네. 그냥 두었다간 반 시진 내에 까마귀밥이 될 테지. 적엽단쯤 되지 않고선 목숨을 건지지 못할 게야.”

“하오나 그런 녀석에게 너무 은혜를 베푸시는 게 아닐지…….”

“은혜?”

천마는 피식 웃었다.

“놈에겐 이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 텐데?”

과연 그랬다. 윤하월은 극한의 치욕감 속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이걸 먹을 것 같으냐!”

“먹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그걸 먹지 않는다면 네놈이 목숨을 부지할 수도 없다는 걸 알도록.”

“천마!”

“우리는 지금 돌아간다. 그 다음은 네 스스로 택해라. 패배감 속에서 몸부림치며 죽어 갈 것인지, 치욕을 참고 살아남아 복수를 꿈꿀 것인지.”

천마는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멸살독마가 아쉬운 듯 적엽단을 힐끔힐끔 쳐다봤으나, 이내 떨어진 왼팔을 주워 들고는 천마를 뒤따랐다.

파괴된 공터에 적막이 찾아왔다.

“크흑, 크흐…….”

윤하월은 심장이 찢길 듯한 굴욕감 속에 흐느꼈다. 인간의 울음이 아니라 숫제 짐승의 울음에 가까웠다.

처음 창을 쥔 이래 단 한 번도 울었던 적이 없는 그였다. 그만큼 지금 그가 느끼는 굴욕감이란 엄청난 것이었다.

텁.

윤하월의 손이 내단을 붙들었다. 그는 흙이 잔뜩 묻은 내단을 그대로 쥐어 처박다시피 입안에 밀어 넣었다.

으드득. 으득!

내단보다도 흙이 씹혔다. 역한 맛이 입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윤하월은 천하의 별미라도 먹는 양 꼭꼭 씹어 삼켰다.

목구멍을 겨우 넘어가는 내단과 흙덩이. 식도가 찢길 듯한 느낌에 윤하월은 몸을 떨었다.

“절대로, 절대로 잊지 않는다.”

첫 번째보다도 치욕적이었던 두 번째 패배. 그것이 한 사람의 무인을 광기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 굴욕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 천마!”

윤하월이 충혈 된 눈으로 소리쳤다. 그의 외침을 천마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 *

정천은 생각했다.

‘정말 이 힘은 제어할 수 없는 걸까?’

정천의 몸속에는 활화산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평소엔 그곳에서 약간의 불길을 길어 낼 수 있다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일부조차도 중원의 상식을 넘어서는 힘이었다.

제일검 열파나락부터 제사검 뇌천월인까지, 각각의 초식들은 정천이 본디 알고 있던 용검대와 강룡단의 초식들을 아류로 변형한 것이었다.

그 위력은 실로 절대적.

그러나 정천과 마찬가지로 인세를 초월한 초고수들에겐 통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멸천은…….’

너무나 강하다.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였다.

앞선 네 개 검식들이 불길을 약간 길어 내는 정도라면, 멸천은 화산 자체를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그 힘은 실로 초월적이었지만, 그만큼 위험하며 극단적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네 개 검식과 멸천 사이의 거대한 간극에서.

‘멸천은 모든 힘을 쏟아내 버리는, 최후의 최후까지 써서는 안 되는 검이다. 그러나 검왕과 같은 이들에겐 네 개의 검식들은 통하지 않아.’

네 개 검식을 능가하면서도 멸천처럼 극단적이지 않은 검식.

정천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허나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정천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을 머릿속에서 정리했고, 그것들과 강룡검을 저울질하며 적당한 초식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번번이 막히기만 할 뿐이었다.

무공 창제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짧게 잡아도 수년을 퍼부어야 가능할까 말까한 일.

그것은 정천에게도 통용되는 사실이었다.

엄밀히 말해 앞선 네 개의 검식도 결국은 불완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컨대 열파나락은 무당의 열화검을 아류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편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모든 것을 무(無)에서 시작해야 할 판.

그렇기에 정천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방식을 바꿔야 할까?’

정천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가 지니고 있는 힘은 중원에서 말하는 기(氣)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 다시 말해 무공보다도 다른 방식으로 펼치는 것이 어울렸다.

그런 것을 억지로 무공이란 틀에 끼워 맞추는 게 실수일지도 몰랐다.

‘다시 생각해 보자.’

정천은 머릿속에서 무공을 지웠다. 태어난 이래 단련해 왔던 하나하나의 움직임, 하나하나의 깨달음을 차차 지워 갔다.

물론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애초에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떠올린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었으니.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정천 스스로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무인이란 것도 잊고, 태어나 살아온 모든 기억과 추억들까지 잊었을 때.

정천의 의식 속에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뱀과 같은 눈자위. 시커먼 강철을 몸에 두른 듯한 흉물스런 비늘, 정천 정도는 단박에 찢어발길 듯한 발톱과 이빨.

드러난 갈빗대 사이로 폭발할 듯 쿵쾅거리는 심장.

‘너로군.’

정천의 동료들을 앗아간 원수이자, 그에게 새 생명을 준 은인.

진마동의 마룡이 싯누런 눈동자로 정천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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