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四章 비영각으로 (52/146)

第四章 비영각으로

“험!”

“흡!”

와룡장을 지키던 문지기들의 표정이 일순 경직됐다. 그들은 숙변이 꼬이는 듯한 얼굴로 다가오는 사내를 응시했다.

사내, 정천이 피식 웃고서 물었다.

“총관은 안에 있겠지?”

“그, 그것이…….”

“잠깐 들어가겠소. 괜찮겠지?”

문지기들은 창대를 뻗으려다 거두고서 한숨을 토했다. 이 인간을 막으려 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정천은 제집인 양 와룡장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마당을 걷고 있던 제갈세연이 그 모습을 보았다.

“어? 정천 오빠?”

그녀는 잰걸음으로 정천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네 삼촌에게 볼일이 있어서. 그러는 넌 뭐하고 있던 거냐?”

“아, 저요? 그냥 좀 생각할 게 많아서요.”

제갈세연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요즘 워낙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걸 생각하니 절로 머리가 복잡해져서…… 머리 좀 식힐 겸 산책하고 있었죠.”

“산책? 네가?”

“……그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은 뭐예요?”

“그냥 좀. 어쨌든 네 작은 삼촌은 어디 있지?”

“숙부님이요? 아마 지금쯤 방에 계실 거예요.”

“그렇군.”

정천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제집인 양 일말의 거침도 없는 걸음.

의문이 동한 제갈세연이 뒤를 따랐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나타나선…….”

정천은 그녀의 조잘거림을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제갈세연의 볼이 부풀었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정천은 이내 제갈순의 방문을 앞에 두게 됐다.

“무슨 일이오?”

방 안에서 제갈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기야 인기척을 대놓고 드러냈으니 모르는 게 이상한 일.

정천은 대답 대신에 문을 벌컥 열었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제갈순의 일그러진 표정이 있었다.

“정말 볼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드는군. 그대는 정녕 예의란 걸 모르는 사람이오?”

정천은 제갈순의 가시 돋친 말을 무시했다.

“군사를 만나야겠소.”

“형님을?”

“그렇소.”

제갈순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무시당했다는 사실보다도 정천이 서두르고 있다는 데에 흥미가 더욱 동했다.

“요 근래 워낙 바빴던지라 얘기를 미처 드리지 못했소. 알다시피 요사이 워낙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던지라.”

“그걸 알기에 댁을 찾아온 거요.”

“그건 무슨 말이오?”

정천은 대번에 다가와서는 제갈순의 손을 붙들었다. 그러고는 별안간 잡아당겼다.

“무슨……!”

움찔한 제갈순이 반발하려 했다. 그러나 허무하리만치 간단히 끌려 당겨지는 그의 몸.

“……!”

제갈순은 놀란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간단한 동작임에도 그 완력이 엄청났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제갈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내공을 소실한 게…… 아니었나?”

뒤이어 들어오던 제갈세연이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정작 당사자인 정천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군사부로 갑시다.”

정천은 두말하지 않고 제갈순을 앞세웠다.

“이래 봐야 소용없소. 형님께선 지금 맹주 대리 업무까지 맡고 계신지라 약간의 여유도 내실 수가 없단 말이오.”

정천의 반응이 전혀 없자 제갈순의 언성이 조금 더 커졌다.

“이대로 가 봐야 문전박대만 당하고 말 거요!”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지. 그게 당신이 할 일이오.”

제갈순은 거칠게 몸을 돌려 정천을 노려봤다.

“못하겠다면?”

정천은 피식 웃었다.

“내가 군사의 앞까지 정면 돌파해 가는 꼴을 보고 싶은 거요?”

“…….”

평소라면 허풍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제갈순은 정천의 말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간 보여 줬던 행동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숱한 사람들을 속여 넘겼었던 전적들.

정천은 그가 지금껏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인물이었다.

“무언가 중요한 용무가 있는 모양이군.”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서두르지도 않겠지.”

제갈순은 다시 걸음을 떼었다. 조금 전과 달리 상당히 온순해진 자세로.

“숙부님?”

당황한 제갈세연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제갈순은 대답하지 않고서 정천의 눈치를 보았다. 어떻게 해야겠냐는 의미였다.

상황 전부를 정천의 뜻대로 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넌 따라오지 마.”

딱 잘라 말하는 정천. 물론 그렇다고 얌전히 물러날 제갈세연은 아니었다.

“따라가겠어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야겠어요.”

“나중에 네 숙부한테 들어.”

“직접 확인하겠어요!”

슥.

정천의 손이 허공을 스치는가 싶더니 제갈세연의 몸이 픽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제갈순이 움찔했으나 정천은 태연한 말로 그를 안심시켰다.

“잠깐 동안 기절시킨 거요. 일각 뒤엔 한숨 잤던 것처럼 깨어나겠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괴물이었군, 그대.”

“속은 게 분하오?”

“그럴 리가.”

딱 잘라 말하는 제갈순의 목소리는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오히려 이렇게 되고 보니 그간의 의문점이 해소되는 것 같아 좋군. 확실히 요사이 황룡성 내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았지.”

장로들이 사라지고 마교가 준동하고, 이제는 맹주까지 암습을 당하고 말았다.

그 의문 가득한 사건들 사이에 한 사람의 인물이 들어가게 되면, 아마도 많은 부분들이 바깥에 드러나게 될 터였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제갈순이 물었다.

“모든 일의 흑막은 그대였던가?”

“흑막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하게 느껴지는데, 그렇게 부르는 거야 댁의 자유겠지만.”

“그렇다면 그대가 맹주님을 습격한 것은…… 아닐 테지. 그럴 리는 없겠지.”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지?”

“윤우장로 마철이 만든 동맹은 최소한 오 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세력이니까. 귀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대가 끼어들 자리는 없겠지.”

“마철과 그 무리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지?”

“자잘한 것들밖에는. 정작 가장 중요한 마철이 사라져 버린지라…….”

말을 잇던 제갈순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까닭이다.

그는 다시금 몸을 돌려 정천을 보았다. 이번엔 경악 가득한 눈을 하고서.

“설마…… 그대가 마철을?”

정천은 소리 없이 웃었다.

“일단 군사부터 만나고 나서 얘기합시다.”

* * *

천무맹 군사부는 상위 칠각 중 하나인 비영각에 적을 두고 있었다. 군사부 운영과 동시에 비영대를 움직이는 그곳은 그야말로 천무맹의 눈이며 머리라고 할 수 있었다.

비영각을 지키는 이들은 비영대원 중에서도 특히 무위가 뛰어난 십인들.

이른바 비영십걸(秘影十傑)이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경신술과 은신술 등, 대체로 싸움과는 동떨어진 능력들은 연마하는 비영대 내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전투에 특화된 대원들이 그들이었다.

그 실력은 여타 칠각의 무인들에도 뒤처지지 않는지라, 그 누구도 비영각과 비영대를 우습게 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정천과 제갈순은 그들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일이니 그대 말대로 본인이 저들에게 얘기해 보겠소.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오.”

“그건 좀 곤란한데. 반각 내에 결착을 내시오.”

“미쳤군. 반 시진이 걸려도 다행일까 말까 한데 반각 안에 설득하란 말이오?”

“그러라고 데리고 온 거니까. 좋은 머리 뒀다가 이럴 때 써야지 않겠소?”

제갈순은 비영십걸을 힐끔 돌아봤다.

그들은 이미 정천과 제갈순을 가로막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각. 그 안에 어떻게든 저들을 설득하겠소.”

“일각.”

“제기랄. 암만 본인이라 해도 그건 너무 시간이 촉박하단 말이오.”

정천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이거 실망스러운데.”

“뭐라 말해도 좋소. 하지만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저들을 일각 내에 물러나게 할 수는 없을 거요.”

“그렇게 생각하오? 내 생각엔 단번에 놈들을 물러나게 할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설마……?”

제갈순은 불길한 생각을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여기서 싸움판을 벌일 생각은 마시오. 비영대를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근래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고는 해도 상위 칠각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집단이란 말이오. 저들을 어찌 쓰러트린다 해도 그 사이에 대원 전부가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오.”

그러나 정천의 얼굴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다급해진 제갈순의 목소리가 더 빨라졌다.

“설마 그들 전부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요? 그게 가능할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이후엔 정파공적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오.”

“재미있군.”

“재미? 매일같이 살수들에게 쫓기는 인생이 재미있다는 거요?”

“매일같이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 쫓기는 것보단 나아 보이는군.”

제갈순은 입을 다물었다. 한순간 가면 같은 정천의 얼굴 너머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보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정천은 이내 특유의 여유 가득한 얼굴로 돌아온 채 말을 이었다.

“농담이었소. 내가 싸움질에 미친 투견도 아니고, 모든 일을 주먹질로 풀 생각은 없으니.”

“그럼 그 외의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거요?”

“물론.”

정천은 제갈순의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제갈순이 어찌 반응하기도 전에 허리께에 메인 패검을 뽑아 들었다.

이내 제갈순의 목젖에 와 닿는 시린 감촉.

그의 목을 검으로 겨눈 정천이 소리쳤다.

“군사의 동생을 죽이고 싶지 않걸랑 썩 비켜라!”

* * *

“으음…….”

미약한 신음을 흘리던 제갈세연이 정신을 차렸다.

“…….”

그녀는 자신을 맞이하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멍하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가만히 정좌한 채 심호흡을 했다.

머릿속으로 맑은 공기가 스며드는 느낌. 그제야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떠오르는 기절하기 전의 상황들.

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키고서 이를 갈았다.

“정천 오빠……!”

그러나 분노는 잠시뿐. 영민한 그녀는 제갈순이 그러했듯 한 가지 결론을 이내 도출했다.

“내공을 소실한 게 아니었어!”

감쪽같이 속고 있었다. 그간의 이야기도 대강 알고 있었고, 그녀 스스로가 감지해 보기에도 일체의 내기 운용을 보이지 않았던 정천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정천은 모두를 속인 채 본연의 실력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생각은 이내 주변 인물들에도 미쳤다.

“설마 연란 언니도?”

제갈세연은 대번에 화륜문으로 향했다.

만일 화연란 역시 알면서도 자기를 속였던 거라면, 배신감을 감당하기 어려울 듯했다.

“응?”

화륜문에 다다른 제갈세연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곳을 먼저 찾아온 사람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당신!”

제갈세연의 외침에 모용린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막 문을 두드리기 전이었다.

모용린은 특유의 냉랭한 눈길로 제갈세연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제갈세가의 햇병아리?”

“누가 햇병아리라는 거예요!”

“당신.”

허무하리만치 간단한 대답에 제갈세연은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남는 것은 기운뿐인지라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엔 왜 온 거죠?”

“그러는 당신은 왜 왔지?”

“내가 먼저 물었어요!”

“화륜문주와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요.”

역시나 허무할 만큼 간단한 대답. 제갈세연은 지기 싫은 마음에 곧장 대답했다.

“나도 언니와 할 얘기가 있어 왔어요!”

“그렇군요.”

짤막히 대꾸한 모용린이 문을 두드렸다. 기실 안쪽에선 조금 전부터 기다리던 차였지만.

문을 열어 준 심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두 분의 대화가 안쪽까지 잘 들리더군요.”

“문주는 어디 있죠?”

딱 잘라 본론부터 꺼내는 모용린이었다. 심후는 약간 질렸다는 얼굴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 안채에 계십니다. 불러올까요?”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요.”

“예?”

모용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심후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바깥으로 나오는 화연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니!”

제갈세연이 심후를 밀치고서 화연란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막상 다가가고 난 뒤에도 뭐라도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화를 내야 할지, 무엇부터 따져야 할지 몰랐던 까닭이다.

화연란은 그녀의 표정만으로도 대강의 일을 짐작하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와룡장을 찾아갔었나 보구나.”

“언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응. 미리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제갈세연은 화를 낼 듯 입을 벌렸다가 그대로 닫고 말았다. 저렇게 말하는데 차마 화를 낼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사이 다가온 모용린이 말을 꺼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죠?”

“정천 오라버니 말인가요?”

고개를 끄덕인 모용린이 말했다.

“지금 당장 그를 만나야겠어요.”

“무슨 용무가 있는 거죠?”

“그를 만나면 직접 말하겠어요. 모용세가 천무맹 지부의 대표로서.”

화연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모용린이 말속에 숨겨 놓은 뜻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군요.”

“이름뿐인 문주라고 생각하니까요.”

모용린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제갈세연은 약간 질린다는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 여자, 조금 전에 분명 문주를 만나러 왔다고…….’

물론 모용린은 그 말만 했을 뿐.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하진 않았다. 게다가 지금의 대화를 들어 보자니 그 이유도 명백했다.

그녀는 화연란을 화륜문주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화연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나 화를 내는 대신 의연한 자세로 말을 꺼냈다.

“화륜문의 문주는 접니다. 그러니 세가의 대표로서 찾아온 것이라면 문파의 대표인 저에게 말씀하세요.”

“내가 찾아온 사람은 진짜 문주예요.”

“제가 진짜 문주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할까요?”

화연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열랑을 뽑아 들었다. 예전의 우유부단하던 그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제갈세연은 물론이고 모용린 역시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재미있군요.”

모용린 역시 자신의 연인검을 뽑아 들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제갈세연은 크게 당황했다.

“자, 잠깐만요. 고작 이런 일로 싸우겠다는 건가요?”

“넌 물러나 있어, 연아.”

“피라미는 비켜요.”

동시에 되돌아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 물론 그렇다고 알았다며 물러날 제갈세연은 아니었다.

스르릉.

결국 그녀마저 검을 뽑아 들었다.

“싸우겠다면 나도 끼겠어요.”

“연아.”

“말리지 마세요, 언니. 이런 이유 없는 싸움은 찝찝하지만, 말릴 수 없다면 차라리 나도 끼는 게 낫겠죠.”

기묘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화연란에게나 모용린에게나 썩 내키지 않는 대치란 것은 분명했다.

결국 모용린 측에서 먼저 연인검을 회수했다. 화연란 역시 열랑을 거두었다.

화연란은 더욱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는 들었어요. 북풍장의 무인들 중 상당수가 당해서 세력을 이끌기 힘들다고요.”

“…….”

“오라버니만큼 믿음직하진 못하겠지만, 얘기를 들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일단은 무슨 용무인지 들을 수 없을까요?”

모용린은 결국 무거운 한숨을 토했다.

항상 조각처럼 완벽하던 그녀의 얼굴에 피로라는 균열이 드리워졌다.

“힘들군요.”

“이해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황룡성 한복판에서 겪었으니…….”

천무맹주 남궁운의 피습.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모용세가였지만, 사실상 정파 무림의 모든 방파가 피해를 입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피습에 휘말려 죽은 이들도 부지기수였지만, 무엇보다 황룡성 내에서 일어났다는 점이 더욱 컸다.

정파 무림의 심장과도 같은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니 말이다.

때문에 직접적 피해를 받지 않은 세력이라 해도 정신적인 충격만은 상당했다. 더불어 모용세가와 모용린에 대한 동정심 역시 컸고.

물론 자존심 강한 모용린은 그런 시선 자체가 싫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화연란의 동정은 그리 싫지 않았다. 아마도 진심에서 우러난 동정이기에 그런 것 같았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말하죠.”

모용린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안됐다고, 충격이 크겠다고. 하지만 그런 동정의 이면엔 미소 역시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

“평소 거들먹거리더니 꼴좋다고, 혹은 이참에 모용세가의 영향력을 떨어트릴 수 있겠다고, 그런 계산을 동정 너머에 깔아두고 있는 게 그들이죠.”

화연란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모용세가는 표면적으로 받는 동정과 별개로, 여러 면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는 중이었다.

별다른 원한 관계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기네 문파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 압박을 견디기 위해 모용린이 동분서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실 북풍장에 남은 인물이라고는 그녀뿐이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에 모용준 대협이 생환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다행히. 며칠간 휴식한다면 어찌 회복할 수는 있겠지요.”

왠지 말끝이 편하지 않다. 단순한 부상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눈치.

“뭔가 문제가 있군요.”

모용린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의 말로는 도망치던 과정에서 내상을 입은 것 같다더군요. 바로 치료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무리하게 동료들을 호송하느라 상처를 키웠다고 했어요.”

“그럼…….”

“상당한 내공의 손실이 있겠죠.”

화연란은 그제야 모용린이 찾아온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가 구태여 정천을 만나려 했던 것도.

“오라버니라면 뭔가 답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군요.”

“그래요. 게다가 큰 오라버니의 일도 있고.”

큰 오라버니라면 모용훈을 가리키는 것일 터. 화연란은 더욱 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분은 좀 어떠신지…….”

“여전히 깨어나질 않고 계세요. 그렇다고 크게 악화되어 가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군요…….”

모용린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쓸데없는 얘기를 했군요. 어쨌든 이젠 알려 줄 수 있겠죠?”

그녀는 화연란을 똑바로 응시하고서 다시 물었다.

“정천, 그는 어디 있죠?”

“그게…….”

화연란은 제갈세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분명 외출하기 전에 와룡장에 간다고 했었어요.”

모용린의 시선도 제갈세연에게로 향했다. 당황한 제갈세연이 머뭇거렸다.

“그, 그게…….”

“그는 어디 있죠?”

우물거리던 제갈세연은 기절하기 전의 일을 떠올렸다. 분명 정천은 제갈순을 데리고서…….

“지금쯤 두 사람은 비영각에 있을 거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