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二章 흔들리는 천무맹 (50/146)

第二章 흔들리는 천무맹

“크으…….”

마철은 끊어질 듯한 신음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두개골을 쪼개는 듯한 두통.

그리고 온몸을 구속하는 불쾌한 느낌.

“이건 대체……?”

마철은 흐릿한 두 눈을 깜빡이며 시야를 회복하려 노력했다.

기실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가 할 수 일이란 결국 그것뿐이었다.

마철은 잠시 후에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하반신은 땅에 파묻힌 상황.

잘려 나간 두 팔엔 정성스럽게 붕대가 매여 있었다. 그것을 보니 잊고 있던 기억까지 함께 떠올랐다.

“으으.”

마철은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의문을 느끼면서.

‘왜 격통이 없는 거지?’

두 팔이 잘려 나가도 온몸에 화상을 입은 그였다. 그 타격이란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지경.

그럼에도 그는 살아 있다.

이미 삼도천에 발을 담근 게 아닌가 싶었으나, 반신이 땅에 파묻힌 지금 상황이 저승일 것 같지는 않았다.

마철이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이제야 깨어났군.”

“……!”

익숙한 목소리! 마철은 잠시 잊고 있던 공포와 분노가 동시에 깨어나는 것을 보았다.

이내 그의 앞으로 두 다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몸을 낮추어 시선을 맞추는 이의 얼굴 역시.

정천이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내게 고마워하는 게 좋을 거야.”

“……뭐라고?”

“그냥 내버려 뒀어도 죽었을 네가 살아 있는 건 내 덕분이거든.”

그제야 마철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치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이곳에 파묻은 사람 역시 누구인지를.

“그리고 날 원망하는 게 좋을 거야.”

정천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부턴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거라 생각하게 될 테니까.”

“뭐, 뭐라고?”

반문하는 순간 마철의 왼팔로 정천의 발이 날아들었다. 정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잘려 나간 왼팔의 절삭면을 짓이겼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마철을 엄습했다.

“크아아악!”

“머릿속을 헤집어 보려 해도 불가능하더군. 누군가에 의해 네 기억과 정신에 금제가 걸려 있었어. 아마도 팔부혈선의 짓일 테지.”

‘뭐, 뭐야?’

마철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눈을 둥그렇게 떴다.

단 한 번도 팔부혈선에 의해 세뇌나 정신 조작 따위를 당한 적이 없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 정천의 말을 들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놈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 이상…….’

마철도 모르게 팔부혈선이 수를 썼으리라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되니 그들에 대한 공포가 새삼 치솟았다.

그러나…….

콰아악!

“으으악!”

멀리 있는 공포보다도 눈앞의 고통이 큰 법. 마철은 저항도 못한 채 왼팔의 고통에 몸부림쳤다.

정천이 발을 뗐다.

마철의 상처에선 피가 다시 배어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쉬운 방법을 쓸 수 없게 됐어. 결국은 가장 무식하고 직접적인 방법을 쓰게 됐지.”

“그, 그게 무슨 뜻이냐.”

“보면 알잖아. 널 심문하겠다는 거지.”

마철은 이를 갈며 정천을 노려봤다. 정천은 빛 하나 비치지 않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괴물!’

마철이 느낀 사실은 그것뿐이었다. 지금 정천의 눈빛은 여타 무인들보다도 팔부혈선의 그것을 오히려 닮아 있었다.

일말의 인간성조차 남아 있지 않은 듯한, 그저 상대방을 파괴하겠다는 일념만이 남아 있는 눈빛.

‘이런 놈들에게 저항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마철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마, 말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전부! 혈선들에 대한 것을 모조리 말하겠다!”

“허무할 정도로 미약한 충성심이군. 하긴 너 같은 인간이 혀를 깨물고 자결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비아냥거리는 말임에도 마철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협력하겠다는 눈빛만을 연신 정천에게 보낼 따름이었다.

‘살아만 남는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두 팔이 이 모양이 되었다고 해도. 버러지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살아만 남는다면!’

내심 의지를 다지는 마철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일체의 적개감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때 정천이 웃었다.

“말하지 마.”

“……뭐?”

“말하면 넌 죽는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마철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정천을 응시했다.

정천은 웃음기를 다시 지우고서 설명했다.

“조금 전에 얘기를 듣지 못했나? 놈들이 네 머릿속에 금제를 심어 두었다는 걸.”

“무, 물론 들었다. 하지만 그게 대체 뭐란 말이냐?”

“간단한 거야. 네가 배신할 경우를 대비한 거겠지.”

“배신이라고?”

“그래. 지금처럼.”

정천은 마철의 태양혈이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평소엔 무의식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다가, 일정한 조건에 부합하게 되면 발동하게 된다. 금제는 삽시간에 태양혈을 파괴하고 너를 백치로 만들어 버릴 거다. 예컨대 자신들, 혈선에 대한 정보를 누설하려거나 한다면.”

정천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

“네 머릿속은 그대로 진탕이 되어 버리겠지.”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마철이 즉각 반발했다.

혈선들에 비할 바는 아니나 그 역시 상당한 실력의 고수였다. 게다가 남궁운은 물론 군사부마저 속일 수 있을 정도의 수완가이기도 했다.

그러한 그가 알지도 못하는 새에 금제에 걸려 버렸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정천은 당황하는 마철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혈선이란 놈들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자들이라고.”

“…….”

마철이 입을 다물었다. 끓어오르는 불신을 차마 가라앉히진 못했지만.

턱을 쓰다듬은 정천이 말을 이었다.

“그들이 네게 걸어 놓은 수법은 마교의 마안과 닮아 있더군. 그것도 천마안(天魔眼)의 경지에 필적하는 수준이야.”

“천마안이라고!”

마철이 재차 놀랐다. 천마안은 현재로는 실전(失傳)되어 버린, 현 천마조차 펼칠 수 없다는 전설적인 무공이었던 것이다.

물론 무공이라기보다는 사술에 가까운 수법이었지만.

어찌 됐든 믿기 어려운 일임엔 틀림없었다.

“뭐, 나도 추측만 할 따름이지만. 솔직히 말해 놈들이 네게 무슨 수법을 썼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군.”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멍청한 소리를 또 하는군. 내가 구태여 네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나?”

“그거야 그렇지만…….”

마철은 불안한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간단해.”

정천은 구부렸던 상체를 펴고 일어났다. 덕분에 그의 얼굴을 보던 마철의 고개만 꺾일 듯 넘어갔다.

“네가 내게 협력하려는 순간 금제가 발동한다. 이건 결국 의식의 문제니까, 요는 네가 내게 협력하려 하지 않으면 된다는 거다.”

“그게 무슨 소리냐?”

“간단해.”

파앗!

순간 정천의 눈자위가 검게 물들었다. 동시에 그의 손끝에서부터 희미한 흑색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강룡수라마공의 기운.

두 번째 목도하는 것임에도 마철은 피가 메말라 버리는 기분이었다.

“난 지금부터 네게 극한의 고통을 선사할 거다. 넌 그 고통에 맞서도록 해.”

“뭐, 뭐라고?”

“간단히 고통에 굴복하려 해선 안 될 거야. 그랬다간 금제가 발동해 버릴지도 모르거든.”

정천이 마철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흑색 기운은 천천히, 그렇지만 분명히 마철을 향해 다가갔다.

“최대한 버텨. 죽음 직전에 겨우 정보를 내뱉을 정도가 되어야 금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을 거야.”

마철은 그제야 상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절규했다.

“빌어먹을! 이런 개 같은 일에 동참하라고? 날 죽도록 고문할 테니 죽기 전까지 버티다가 정보를 뱉으라고? 제기랄! 그런 것에 동조할 것 같으냐?”

“그럼 그냥 죽든가.”

정천의 대답은 매몰찼다. 마철은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정천이 자신을 치료한 것은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자신을 최대한 살려 정보를 빼내기 위함이란 것을.

‘그렇다면 이 고문을 버텨 봐야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정보를 모두 빼내게 되면 그의 효용 가치는 없어진다. 정천은 필시 만신창이가 된 그를 버리고 갈 것이다.

마철의 얼굴에 핀 갈등을 읽은 것일까?

정천이 나직이 말을 덧붙였다.

“한 가지를 약속하지.”

“뭐?”

“네가 모든 고문을 견디고 정보를 내뱉어 준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마철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지금 그 말을 믿으란 말이냐?”

“그럼 죽든가.”

“크으……!”

이를 가는 마철을 보며 정천은 피식 웃었다.

“선택은 언제나 간단한 법이지. 그 주변을 둘러싼 상황이 복잡할 뿐.”

“…….”

“어쨌든 최대한 버텨 보라고. 그런 몸이라도 일단은 살아 있는 편이 좋지 않겠어?”

마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까지 흑색 기운만을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볼 뿐.

흑색 기운이 그의 몸으로 파고든 순간, 마철의 입에서 끓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 *

“크아아악!”

치이이익!

살갗이 익는 냄새와 사방을 메우는 비명, 맨살을 칼로 저미는 모습과 살점을 뜯어내는 모습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피와 비명, 고통과 몸부림이 가득한 그 모습은 실로 지옥과 다름없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우린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크아악!”

비명을 뱉는 이들은 고문당하고 있는 무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고문하는 이들은 집행부에 소속된 부원들이었다.

“…….”

집행부주 군월중은 착잡한 심경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들에 대한 연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들 자체는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쓰레기들이었다. 군월중이 착잡함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맹주께서 암살 시도를 당하시다니! 그것도 황룡성 한가운데에서!’

이는 기나긴 천무맹의 역사 속에서도 최초였다.

물론 맹주에 대한 암살 기도야 자주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마교나 세외신교와 같은 무리에 의한 경우였다.

이번처럼 천무맹 내의 배신자들이, 황룡성 내에서 일을 벌인 경우는 없었다.

‘그것도 내 임기 중에……!’

군월중은 이번 일로 최악의 집행부주로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사실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군월중은 고문당하고 있는 무인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백 년만 지나더라도 스러질 이름, 어떠한 오명을 얻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대답은 없었다. 고문실 안의 인물들은 모두 고문당하거나 고문하거나, 둘 중 하나에 열중하고 있었으니까.

군월중 역시 그 사실에 신경 쓰진 않았다.

“그러나 맹주께서, 천무맹의 심장이 죽음을 맞이할 뻔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치욕이다! 그것으로 모자라……!”

뿌드드득.

군월중은 이를 갈았다.

실상 지금 고문당하는 이들은 배신한 문파의 말단들이었다.

쉽게 말해 고문해 봐야 얻을 것도 없는, 서로가 피곤하기만 한 관계였다.

그럼에도 이들을 쑤시고 지지는 이유는 간단했다.

“대가리들이 죄다 뒈져 버릴 줄이야!”

군월중이 정말 열불을 내고 있는 이유는 여기 있었다. 자칫하면 사건 자체가 미궁에 빠지게 되어 버린 것이다.

상황은 대강 이러했다.

남궁운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행부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이에 군월중은 직접 정예들을 이끌고서 상황 정리에 나섰다.

우선은 북풍장에서 도망친 이들을 추격, 연루된 문파 모두를 솎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집행부는 주요 정보를 지니고 있는 이들의 심문에 들어갔다.

그런데 심문받게 된 이들이 모조리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나자빠졌던 것이다.

고문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협조적으로 나온 이들조차 다를 것 없이 피를 쏟으며 죽었으니까.

결국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는 모두 죽어 버린 상황.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린 집행부였다.

할 수 없이 해당 문파의 말단 무인들을 족치고는 있었으나…… 당연하게도 별다른 정보를 캐낼 수는 없었다.

“제기랄!”

군월중은 신경질적으로 이를 갈아 댔다.

“이것으로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 처음엔 장로들이 당하더니 이제는 맹주께서도…… 게다가 그 원흉은 정체는커녕 그림자조차 찾을 수가 없다니!”

귀신에 홀린다는 게 이러할까? 어찌나 머리가 아픈지, 원래 반백이던 군월중의 머리칼은 이제 거의 흰색이 되어 버린 뒤였다.

그나마 모용세가의 증언에 의해 주동자는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물론 윤우장로 마철이었다.

그러나 마철 역시 행방이 묘연한 상황. 게다가 그 역시 모든 일의 배후인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가 배후에 있다. 우리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물론 그것이 마교인지 제삼 세력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군월중으로선 한숨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 맹주께서 깨어나신다면 좋으련만.”

맹주 남궁운은 혼절한 채 며칠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섯 개의 극독이 배합된 신형 독에 중독된 데다 중상까지 입은 상태.

비록 목숨까지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지만, 수많은 신의들이 달라붙었음에도 당분간은 일어날 수 없을 거라 했다.

“깨어나신 후에도 이 모양인 것을 아시면 단단히 역정을 내시겠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군월중은 결국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옆의 집행부원에게 명령했다.

“고문을 중지해라. 더 이상 열을 내 봐야 서로 간에 기력만 낭비할 따름이다.”

“알겠습니다.”

집행부원은 별다른 반발 없이 대답했다. 그 역시 이 작업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당연한 것을 묻는군.”

군월중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천하일통 천무맹에 반기를 든 반역 세력이다. 모조리 참하여 효시(梟示)하도록.”

“모조리 말입니까?”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극히 일부일 뿐, 반역 세력으로서 연루된 이들의 숫자는 최소한 오백 이상.

아직 색출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나게 될 터였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말 그대로 말단일 뿐. 엄밀히 말해 직접적인 반역 세력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군월중의 의지는 확고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그런 만큼 어느 때보다도 분명히 선을 갈라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혹여나 앞으로 생겨날지 모르는 세력에 경고하기 위해서라도.”

“알겠습니다.”

군월중은 고문실을 나섰다. 바깥으로 나선 그는 어둑어둑한 하늘을 우울하게 바라봤다.

“천무맹이 흔들리고 있다.”

천무맹의 실세이기에 그 위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지금 군월중이 느끼는 바로는, 천무맹은 마교와 연일 격돌하던 시기보다도 큰 위기에 빠져 있었다.

단순히 맹주가 피습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일에 연루되었던 문파 중 상당수는 최근 급성장을 하고 있던 무리였다. 천무맹의 기둥과도 같은 이들이 하루아침에 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내란이라 해도 부족할 게 없는 상황.

그들을 쳐내게 된 만큼 천무맹의 힘은 약화될 게 뻔했다. 그뿐인가?

내란은 그 자체로 집단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사건이었다.

하물며 맹주까지 쓰러진 상황이니, 자칫하면 천무맹 자체가 흔들릴 터였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천무맹이 와해될 수도 있다고?’

군월중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집행부주라는 자가 이런 재수 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겉으론 그렇게 중얼거렸으나, 머릿속에선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불안한 상황의 연속은 갈등을 낳을 테고, 이는 나아가 천무맹의 와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수백 년을 계속되어 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수백 년을 계속하게 되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게 둘 것 같은가?”

군월중은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반드시 막아내겠노라고 다짐하며.

* * *

모용린은 난장판이 된 북풍장의 안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체들은 모조리 치운 뒤였으나, 그 흔적까지 채 치우지는 못했다. 덕분에 안뜰은 적과 아군이 흘린 피가 낭자했다.

“…….”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작된 떨림은 쉽게 진정되지 않고서 당분간 계속되었다.

한동안 몸을 떨던 모용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무니, 그래도 약간은 진정이 되는 것도 같았다.

‘그들은 대체 뭐였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철의 주도로 이루어진 반역 세력. 그 목표는 맹주인 남궁운의 암살. 계획이 벌어지는 시기는 아버님의 생신날.’

계획은 실패했고 반역 세력은 와해되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된 듯 보이는 상황.

그러나 모용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천과 마철이 나누었던 대화를 이미 들었던 까닭이었다.

‘마철은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했어.’

그를 부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자들이야말로 정천의 목표일 터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모든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보다도 더한 일들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거센 바람은 모용린과 북풍장, 나아가 모용세가 역시 집어삼키게 될 터였다.

‘그 바람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모용린은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평소 스스로를 강하다고 자부해 왔다. 아니, 정확히는 강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분명 빛을 발했다.

그녀는 용봉소회에서도 필두에 위치했었고, 또래에선 겨룰 이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항상 자신을 우러러 보는 이들이 주변에 있었고, 적들은 자신을 꺼리거나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그녀는 실감할 수 있었다. 세상엔 자신 정도는 손바닥 뒤집듯 간단히 죽일 수 있는 강자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위엔 또 다른 강자가 있다는 것도.

모용린은 어깻죽지로 손을 가져갔다. 사실은 등허리에 손을 대고 싶었으나 팔이 닿지 않았다.

등허리의 상처가 욱신거리는 듯했다.

상처 자체는 깊지 않았고 몸을 파고들던 독 역시 해독한 뒤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때 죽을 뻔했다. 분명 자신보다 한 수 위인 상대에 의해.

그 사실에 좌절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녀가 느끼고 있는 것은 분노였으니까.

모용린은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느꼈다.

‘그 살수는 분명 나보다 강했어. 하지만 압도적인 무위를 지녔던 것은 아니야.’

대련이었다면 못해도 백 합. 잘하면 무승부까지 이끌어 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전에선 결국 일합에 승부가 갈렸다.

그가 살수였기 때문에?

암기를 쓰고 독을 썼기 때문에?

‘아니.’

모용린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내가 약했기 때문이야.’

비겁이니 암수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정말 그녀가 강했다면 그러한 변수를 감안하고서도 승리했을 테니까.

‘그 사람처럼.’

모용린은 정천을 떠올렸다.

정천이 강하다는 것이야 알고 있었다. 그가 모용훈을 가지고 놀듯 쓰러트렸던 그 순간부터.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달랐다.

죽음이 바로 앞에 있는 곳에서의 정천은 달랐다. 그는 존재 자체로 죽음이었다. 생사의 간극을 숨 쉬듯 넘나드는 진짜 무인이었다.

‘반면에 나는 가짜 무인이었어. 그저 대련이나 비무에서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갑자기 자신이 무력해지는 듯했다. 나아가 모용세가를 이끌고 갈 수 있으리란 자신감도 사라졌다.

이럴 때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지금 그녀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오라버니.”

모용린은 목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제야 모용훈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큰 오라버니는 괜찮은 걸까?’

싸움이 벌어졌던 안뜰은 연공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모용린이 연공실로 향하려 할 때였다.

하인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가씨!”

모용린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이 충분히 침착해 보이길 바라며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죠?”

돌아보니 하인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작은 도련님께서 중상을 입고 돌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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