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一章 연회를 둘러싼 음모 (46/146)

第十一章 연회를 둘러싼 음모

마철은 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 금역의 광륭혈독무가 스멀스멀 다가와 그의 몸을 휘감아 들었다.

‘언제 보아도 기분 나쁜 안개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인 양 온몸을 휘감는 느낌은 꼭 뱀이 기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사실 어지간한 독사 따위는 장난처럼 보이는 것이 광륭혈독무였다.

암만 대단한 독사라도 물어야만 중독시킬 수 있지만 이 녀석은 닿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생물을 죽음으로 이끄니 말이다.

그러나 마철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광륭혈독무의 독기마저도 그의 몸에 침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 곧 만나게 될 이들 앞에서 싫은 표정을 할 순 없기 때문이 더 컸다.

이윽고 그가 걸음을 멈췄다.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다가왔다. 마철의 몸이 자기도 모르게 전율했다.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그들을 대면할 때마다 마철은 대호 앞의 생쥐가 되는 기분이었다.

스르르르.

여덟 개의 인영이 안개 너머에서 나타났다. 그렇다고는 해도 형체만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뿐, 얼굴조차 볼 수 없었지만.

마철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렸다.

“팔부혈선들을 뵙습니다.”

“고개를 들어라.”

마철은 명령을 따랐다.

공포 위에 군림하는 자들, 팔부혈선들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준비는?”

“철저합니다. 남은 것은 때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실수가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마철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을 위해 수년을 투자했습니다. 이미 상당수의 문파를 포섭한 뒤입니다. 맹주 남궁운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 본인뿐이지요.”

“반혈선연맹이라는 알량한 무리 역시 처단해야 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그중 하나인 중황장로 엄백을 제거했습니다.”

“훌륭하다.”

단조롭기까지 한 한마디.

그간 마철의 노력이 실로 어마어마함에도 불구하고 혈선들이 내리는 것은 짤막한 한마디의 치하뿐이었다.

그래도 마철은 만족할 수 있었다.

그들의 신뢰가 의미하는 바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차기 천무맹주의 자리는 나의 것이다.’

팔부혈선의 끄나풀이라 해도 좋았다. 허울뿐인 권력이라 해도 좋았다.

그렇다고 해도 정파일통의 가장 높은 자리다. 혈선들의 심기만 거스르지 않는다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시행은?”

짤막한 질문이 마철의 귀를 붙들었다. 마철은 달콤한 꿈을 잠시 접어 두고서 대답했다.

“예. 며칠 뒤가 모용세가주의 생일입니다. 이를 기념해 북풍장에서 연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 자리엔 남궁운 역시 참석할 테고요.”

마철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 자리에서 그를 척결할 생각입니다.”

“뒤처리엔 문제가 없겠지?”

“걱정할 것 없습니다. 맹주 암살의 혐의야 모용세가에 뒤집어씌우면 될 일이니까요.”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나?”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연회 참석자 중의 칠 할을 이미 포섭해 두었습니다.”

구파일방 급의 문파나 대가문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 이들은 거대한 만큼이나 자존심도 강해서 쉽사리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마철이 노린 것은 중간 규모의 문파와 가문들.

그들은 항시 굶주려 있었다.

대문파들의 자리를 자신들이 빼앗을 수 있기만을 항시 바라고 있었다.

마철은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신중하고도 끈질긴 작업이었다.

물론 그들은 팔부혈선의 존재까지는 몰랐다. 그저 마철이 모든 일의 배후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러는 편이 다루기도 쉬웠고 말이다.

“남궁운은 저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 맹점을 찔러 그를 쓰러트릴 것입니다. 그 후엔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팔암객(百八暗客)들과 함께 연회장의 모든 목격자를 처리할 것입니다.”

“…….”

“그 후엔 적당히 죄를 덮어씌우면 끝입니다. 모용세가는 악적으로 남을 테고, 저와 공모자들은 맹주의 원수를 갚은 의협지사들이 되겠지요.”

“실수가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마철이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팔부혈선들의 눈동자가 순간 빛을 토했다.

“만일 일이 수틀린다면 모든 비밀은 안고서 죽는 쪽을 택해야 할 것이다. 살아남는다면 우리가 너를 찾아갈 것이니.”

“…….”

마철의 등허리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들이 직접 나선다는 것, 그게 의미하는 바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언젠가 하남신성(河南新星)이라 불리던 유가장이 하루아침에 멸문당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마교의 짓이라거나 내분이 있었다는 식으로 수군거렸지만 끝끝내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마철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염려…… 마십시오.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너를 믿겠다, 마철.”

마철은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주변을 잠식하던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철은 고개를 들었다. 더 이상 팔부혈선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홀로 남은 그가 안개 속에서 중얼거렸다.

“반드시 성공하여 천무맹주가 될 것이다.”

* * *

몸을 일으켜 앉은 모용훈이 정천에게 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뭘? 네가 깨어나지 못한 척하고 있었다는 거? 저 멍청한 아가씨랑 같은 취급하지 말라고.”

모용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린아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세상 전부를 뒤져 봐도 대협뿐일 겁니다.”

“아부는 됐어.”

“딱히 아부하려고 한 말은 아닙니다만…….”

정천은 손을 내젓고서 말했다.

“그나저나 미친개처럼 덤비질 않는 걸 보니 제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모용훈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덕분에…… 그렇습니다.”

“그 말은 미쳐 있을 때의 일도 대강 기억한다는 소리로군.”

“예.”

모용훈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벌인 행적들을, 나아가 화륜문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정천에게 당한 것 역시.

그리고 그렇기에 차마 정신을 차린 척할 수 없었다.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 때문에.

“언제까지 죽은 척하고 있을 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계속 저 녀석을 속이고 있을 수는 없을걸. 안 그래도 은인인 나한테 따지려고 들고 있는데 말이야.”

“그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린아나 다른 사람들을 마주볼 용기가 없습니다.”

“그거야 네 사정이고.”

모용훈은 입을 다물었다.

위로를 받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정천의 말은 가차 없었다.

“저는 언제까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모용훈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정신을 차린 것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정천이 나직이 되물었다.

“네 몸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있겠지?”

“예.”

정천이 걸어 놓은 금제가 모용훈의 몸을 얽매고 있었다.

금제는 그의 태양혈을 억누르고 있었고, 그 덕에 모용훈은 더 이상 타인들의 상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 금제는 언제까지 유효한 것입니까?”

“나한테 개박살이 났던 네 몸이 회복될 때까지.”

모용훈은 쓴맛을 느꼈다.

확실히 그의 몸은 당분간 내공을 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난 상태였다.

다만 체내의 불순물이 배출되면서 그것이 상당 부분 회복되었다는 게 문제.

빠르게 몸이 낫는 것이야 여느 때라면 좋은 일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타인들의 생각을 읽게 될 거란 말씀이군요.”

“그래.”

딱 잘라 단언하는 정천이었다. 모용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더 이상 가문과 린아에게 폐를 끼칠 순 없습니다.”

“…….”

“달리 방도가 없겠습니까?”

정천은 어깨를 으쓱거리고서 말했다.

“글쎄. 그냥 속세를 다 잊고 어디 산중으로 들어가 평생 처박혀 있는 게 어떨까?”

“린아가 저를 찾으려 할 겁니다.”

“꼭꼭 틀어박혀 있으면 찾지 못하고 포기하겠지.”

“그 아이가 그렇게 끈기가 적었더라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한창 때인 그 아이에게 저를 찾는 수고를 하게 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날더러 방안을 찾아 달라고?”

“제발 부탁드립니다, 대협.”

정천은 혀를 찼다.

“남매가 하나같이 날강도들이군. 주는 것 하나 없이 있는 대로 받아먹으려고만 하네.”

“……북제혈랑(北帝血狼)을 드리겠습니다.”

모용훈이 뼈를 깎는 심정으로 꺼내 든 제안이었다. 정천은 그저 눈만 깜빡거릴 따름이었지만.

“그게 뭔데?”

“모용세가 최고의 명검입니다. 혈운철(血隕鐵)을 일 년에 걸쳐 제련하여 만든, 명검칠존(名劍七尊)에도 뒤지지 않는 걸작입니다.”

명검칠존은 문자 그대로 중원의 정점에 있는 일곱 검을 일컫는 말이었다.

천마의 나찰수라(羅刹修羅)라거나 검왕 유극태의 태천검(太天劍) 등이 이에 속했다.

그에 준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가보 급의 검이라는 소리.

그것을 내놓겠다는 것은 모용훈으로서도 정말 엄청난 결심을 한 것이었다.

“흠.”

정천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내다 팔면 꽤 나오겠는데.”

“……네?”

“아니면 녹여서 다른 철이랑 합성해서 여러 자루로 만들어도 괜찮겠어. 정말 혈운철제 검이라면 합금을 만들어도 대단한 명검이 나오겠지.”

“북제혈랑을 녹여 버리겠다고요?”

모용훈의 목소리는 숫제 비명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무인이라는 자가 그런 명검을 내다 팔거나 녹여 버리겠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정천은 그저 태연했다.

“나한텐 그다지 필요가 없으니까. 내 주변에도 그렇게까지 대단한 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고.”

“하, 하지만…….”

“네 말마따나 명검칠존에 준하는 검이라면, 쓸데없이 강하고 예리한 검이란 뜻이잖아.”

어떻게 그 말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모용훈은 기가 막혀서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천이 아무 생각도 없이 말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명검칠존 급의 검을 상대할 일이 없는 이상, 그 검의 강도는 언제나 필요 이상이라는 거지. 그리고 명검칠존과 맞부딪칠 일은 어지간해선 일어날 일도 없고. 일어난다고 쳐도 대부분은 싸우지 않고 도망치는 게 나은 경우일 테지.”

“그, 그거야 그렇겠지만…….”

“다시 말해 모든 게 과잉이란 거다. 그러느니 그보다 조금 떨어지는 검 여러 자루를 갖는 편이 낫지. 그 정도만 되어도 천하에 적수를 찾기 힘들 테니.”

분명 합리적인 말이다.

하지만 세상엔 합리만으로 따질 수 없는 게 있는 법이었다.

모용훈은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다른 걸 드리겠습니다. 황금이라거나 뭐 그런 거요. 조금 전의 말은 잊어 주시길.”

“그럼 그러든가.”

정천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모용훈은 절로 쓴웃음이 나오는 듯했다.

‘정말 명검에 욕심이 없는 모양이구나.’

조금은 이상했다.

그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지만, 어쨌든 그는 정천과 대결을 펼쳤었다. 그때 느낀 것은 정천이 초절정의 검수라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명검에 욕심이 없다니…….’

북제혈랑, 혹은 명검칠존을 능가하는 검이라도 지니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정말 문자 그대로 계산에 밝은 것뿐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정천이 입을 열었다.

“네 동생이 징징거리는 것도 귀찮으니 한 번만 더 은혜를 베풀어 주지.”

“감사드립니다, 대협……!”

“아, 물론 맨입으로 하겠다는 건 아냐.”

정천이 딱 잘라 말했다.

“금전 천 냥, 혹은 그에 준하는 보물을 내놔.”

금전 천 냥.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북제혈랑의 가치에 비할 바는 아니라지만 모용세가 정도의 가문으로서도 상당한 부담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내 몸을 고칠 수만 있다면…….’

모용훈이 그러겠노라고 대답하려 할 때, 정천이 말을 끊듯이 덧붙였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엔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 실패한다면 십중팔구 네가 죽게 될 테니.”

“…….”

모용훈은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아무 위험도 없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직접 입으로 들으니 느낌부터가 달랐다.

“죽을 수도 있는 거군요.”

“죽을 수도 있는 게 아냐. 실패한다면 그냥 죽는다고 생각해.”

“그 정도로 위험합니까? 그럼 성공할 확률은 어느 정도입니까?”

“몰라.”

정천이 딱 잘라 말했다.

“나도 처음 해 보는 거니까. 그냥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이론만 있을 뿐이지.”

“그럼…….”

“모든 것이 미지(未知)다. 성공한다 치더라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해결되리라고는 말할 수 없어. 애초에 그걸 성공이라 할 수도 없겠지만.”

“…….”

“결정하는 건 네 자유다. 어차피 나도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봐.”

모용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천은 할 말 다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하지. 그때까지 죽은 척이나 열심히 하고 있으라고.”

“죽은 척까지는 아닙니다만…….”

“뭐, 그게 그거 아니겠어?”

정천이 손끝을 흔들자 멸혼겁화의 불꽃이 사라졌다. 주변은 다시 완연한 어둠에 잠겼다.

정천은 연공실 내를 감싸고 있던 기막 역시 해제했다. 모용훈은 그사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몸을 눕혔다.

정천은 바깥에 대고 소리쳤다.

“볼일 다 봤으니 문 열어.”

기다렸다는 듯 기관장치가 작동하여 문이 열렸다. 모용린이 황급히 다가와서 정천에게 물었다.

“오라버니의 상태는 어떻죠?”

“나쁘지 않아. 지금쯤 별별 생각을 다 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리겠지만.”

모용훈의 몸이 살짝 움찔했으나 모용린은 미처 보지 못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별 뜻 없어. 어쨌든 며칠만 기다리면 눈을 뜰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알겠어요.”

모용린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빈말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정천의 한마디로 근심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정천이 홀가분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젠 내 용건을 마칠 차례로군.”

“네?”

모용린이 의아한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큰 오라버니의 일로 온 게 아니었나요?”

“그거야 겸사겸사 온 거고. 진짜 용무는 따로 있어.”

두근.

모용린의 가슴이 순간 요동쳤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방망이질을 친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나아가 정천이 그 사실을 알기나 할까 염려됐다. 괜히 이상하게 비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용무라는 게 뭐죠?”

그녀가 애써 평정을 가장하여 물었다. 정천이 자신을 비웃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정천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얼굴로 모용린에게 말할 따름이었다.

“네 아버지의 생신 연회, 나와 화륜문 사람들은 참석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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