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章 예상치 못한 방문 (45/146)

第十章 예상치 못한 방문

“후우우.”

장유추는 무거운 한숨을 토하며 광천뇌도를 내려놓았다. 끈적끈적한 피가 달라붙은 광천뇌도가 천 근인 양 무거웠다.

이제야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니 잊고 있던 피로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남은 것은 이게 전부인가?’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그를 비롯해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혈풍대원들이 그곳에 있었다. 하나같이 몸이 성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망원곡에서 수십 리는 떨어진 이름 모를 숲.

겨우 혈로를 뚫고서 협곡을 빠져 나온 게 어젯밤의 일이었다. 그들은 밤새도록 추격을 따돌리느라 싸우고 또 싸워야 했다.

다른 이들이 어찌 됐는지는 모른다. 제 목숨 건사하기조차 바빴으니 말이다.

다만 혈풍대주 유자서가 목숨을 불살라 마교도들의 시선을 딴 데로 끌었던 것만은 기억났다. 그의 희생이 없었다면 혈로를 뚫을 수 없었으리라.

‘구질구질하게도 목숨을 건졌구나.’

나직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 역시 아무 희생도 치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장유추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향했다.

‘팔 하나면 싸게 먹힌 셈인가.’

그의 왼팔은 팔꿈치 아랫부분이 사라진 상태였다. 난전 중에 끊어져 버린 것이다.

워낙 정신이 없었기에 어쩌다 당한 것인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팔을 들고 껄껄 웃던 귀도신마의 모습만이 떠올랐다.

“이 강도 녀석! 귀령이를 훔치려다 팔만 잃게 되었구나! 물론 목숨도 곧 잃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 얄미운 목소리를 떠올리자니 절로 입 안이 쓴 장유추였다.

“떠벌이 놈, 다음엔 이 빚을 꼭 갚아 주겠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다짐을 한 장유추가 다른 혈풍대원들을 돌아봤다.

“모두 괜찮으냐?”

“예…….”

“괜찮습니다.”

힘없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하기야 장유추 본인도 기절할 것 같은데 저들의 피로는 오죽할까 싶었다.

“대주님과 다른 동지들은 모두 죽었을까요?”

한 혈풍대원이 혼잣말처럼 질문했다. 상당히 큰 체격과 달리 제법 앳된 얼굴엔 공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를 물끄러미 보던 장유추가 입을 열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모용준입니다.”

“움직일 수 있겠나?”

혈풍대원, 모용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유추는 대뜸 왼팔을 내밀었다.

“그럼 이 상처 부위 좀 천으로 묶어 주게. 혈도를 눌러 지혈하긴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한 듯싶군.”

“…….”

모용준은 터벅터벅 다가와 장유추의 상처에 천을 덧대어 묶었다. 시큼한 피 냄새가 코끝을 찔렀지만 어느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다.

“배신자가 있었다.”

장유추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마교도들이 사전에 준비하고 있었던 걸 본다면 배신자는 상부에 있었다. 최소한 군사부와 혈풍대 사이에서 정보를 빼낼 수 있을 정도의 권력자다.”

“…….”

“만일 무사히 살아남아 황룡성까지 갈 수 있는 자가 나온다면 이 사실을 꼭 알리도록 하라. 군사 제갈현은 마음에 들지 않는 샌님이지만 믿을 수는 있는 자다. 어떻게든 그에게 꼭 알려야 한다.”

“선배님께서 알리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용준의 물음에 장유추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놈들과 맞붙게 된다면 혈로를 뚫을 사람은 노부밖에 없다. 그러려면 필시 죽음을 각오해야 할 터.”

“저희 역시 일전은 각오했습니다.”

“멍청한 소리 말게. 개죽음을 당하느니 살아서 복수할 생각을 하게.”

모용준은 이를 잘근 악물었다. 분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장유추는 한숨을 쉬며 허공을 응시했다.

“산다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려운 법이지. 노부가 무림에서 숱한 은원을 만들어 가며 알게 된 사실이야.”

“…….”

“자네들은 아직 젊어. 굳이 죽음을 재촉하려 들지 말게나. 게다가 앞으로는 살아 있는 자체로 더욱 힘든 시기가 올 걸세.”

천무맹 제일 타격대인 혈풍대가 궤멸됐다. 이는 십여 년 전 용검대의 소실과는 격이 달랐다.

그때는 용검대에 준하는 강룡단 역시 사라졌던 데다, 마교와 화친을 체결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마교의 타격은 비교적 적었고, 이번 전투로 인해 화친은 깨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곧 전란의 시기가 다가올 터였다.

장유추가 말하는, 살아 있는 자체로 더욱 힘들다는 말은 그런 뜻이었다.

“약하다는 것이 너무나 분합니다.”

모용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정파 최강의 타격대라고 자부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그 허명은 지난 십 년 동안의 평화가 있었기에 생긴 것일 뿐이었습니다.”

“자네들은 강하다네. 이번엔 그저 상황이 좋지 못했을 뿐.”

“놈들보다 약하다면 강한 게 아닙니다. 저는 그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모용준이 주먹을 꾹 쥐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있다면, 뭔가?”

반문하는 목소리는 장유추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혈풍대원 대다수가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장유추가 퍼뜩 광천뇌도를 움켜쥐었다. 혈풍대원들 역시 긴장하여 각자의 병장기를 집어 들었다.

귀도신마가 수풀을 헤치며 걸어 나왔다.

“패잔병들이 여기 모두 모여 있었구먼.”

장유추를 발견한 그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걸 가져가야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며 귀도신마가 던진 것은 끊어진 장유추의 팔이었다. 굳은 피가 말라붙어 시커메진 그 모습은 고깃덩어리와 다를 게 없었다.

장유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피로한 가운데에서도 광천뇌도를 휘둘러 검기를 날렸다.

쾅!

검기에 직격당한 그의 팔이 그대로 산산 조각이 났다. 장유추는 고집스러운 눈으로 귀도신마를 노려봤다.

“필요 없다, 그런 거.”

“쇠심줄 같은 고집이군. 하기야 그쯤은 되어야지.”

“그만 떠들고 붙자꾸나. 네놈 하나로는 부족하니 망할 마교 새끼들을 모두 불러들여라.”

“그 망할 마교 새끼들은 지금 다른 곳에 있다.”

귀도신마가 웃는 낯으로 대꾸했다.

“너희를 발견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지.”

혈풍대원들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귀도신마 한 명뿐이라면 협공하여 어떻게든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반면 장유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귀도신마 혼자서라도 자신들을 몰살시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망치게.

장유추는 혈풍대원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내가 놈을 맡는 동안 최대한 도망치게. 산개해서 최대한 달아나면 목숨을 건질 확률도 높을 게야.

곧 반발하는 대원들의 시선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장유추의 표정은 확고했다.

—협공해 봐야 개죽음을 당할 뿐이네. 어쭙잖은 생각 말고 달아나게!

그런 장유추의 전음을 엿듣기라도 한 듯 귀도신마가 말했다.

“도망칠 테면 도망치게.”

“…….”

장유추는 광천뇌도로 귀도신마를 겨냥했다.

“네 상대는 나다, 떠벌이 녀석.”

“알아, 안다네. 하지만 애석하군. 이대로 싸워 봐야 지난번처럼 재미난 대결을 펼칠 수는 없겠지.”

“그거야 도를 맞대 봐야 알 일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아는가?”

“때로는 똥 같은 된장도 있는 법이니까.”

“그게 된장 같은 똥일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장유추가 광천뇌도를 허공에다 거칠게 휘저었다.

“말장난은 됐다! 싸울 테냐, 말 테냐!”

귀도신마가 빙긋 웃었다.

“싸우지 않는다.”

“……뭐야?”

“말 그대로다.”

귀도신마는 긴장한 혈풍대원들의 얼굴을 빙 둘러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유추의 얼굴에다 시선을 고정했다.

대원들이나 장유추나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혹여나 자신들을 조롱하는 건 아닐까 싶은 얼굴들.

귀도신마가 다시 말했다.

“이쯤했다면 충분하겠지. 구태여 쓸데없는 사상자를 더 늘릴 필요는 없을 게야.”

마교도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장유추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허튼수작을 부리려는 거라면 집어치워라. 그런 것에 넘어갈 노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 수작을 부려 무엇 하겠나. 근방에 다른 교도들이 없는 것을 천운으로나 여기게.”

“꼴에 선심을 쓰겠다는 것인가?”

“그래.”

귀도신마는 순순히 말했다.

“이 귀도신마가 머리털 나고 거의 하지 않았던 짓인 선심을 쓰려는 것이네.”

“이유가 뭐지?”

“우선은 본교의 지원 병력을 보낸 사람이 철절삼마라는 것이지. 그 덕에 목숨을 건졌다고는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이거든.”

“…….”

“게다가…….”

귀도신마는 잠시 정천을 떠올렸다. 그와 나눴던 대화들 역시 뇌리를 스쳤다.

“지금의 마교에 충성을 다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그게 무슨 소리냐?”

“알 것 없네. 그저 오늘 목숨을 건지는 것을 다행으로나 알면 되네. 혹은 절치부심하여 복수를 다짐하는 것도 좋겠지.”

복수할 테면 해 보라는 듯 당당히 말을 하는 귀도신마였다. 그러한 광오함을 보자면 그가 마인은 마인이구나 싶었다.

잠시 침묵하던 장유추는 광천뇌도를 회수했다. 그가 그러니 다른 대원들도 더 싸우려 들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의 변덕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사타구니의 솜털 빠진 이래로 후회란 놈이랑은 척을 져서 말이야.”

“그럼 이번에 새로이 실감하게 되겠군.”

“좋을 대로 생각하게.”

귀도신마는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오직 장유추를 대상으로만 전음을 날렸다.

—혹여나 천무맹의 정천이란 친구를 만나걸랑 전해 주게. 귀령이를 정갈히 하고서 기별을 기다리겠다고.

—……!

장유추의 표정이 일변했다.

—네놈이 정천, 그 친구를 알고 있다고?

—응? 안면을 튼 사이인가 보군?

—방금 전의 그 말은 무슨 뜻이냐. 기별을 기다리겠다니?

—흘흘. 자네는 알 것 없는 일일세. 어쨌든 아는 사이라면 곱게 전해 주기나 하게.

장유추는 더 묻고 싶었지만 그 전에 귀도신마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왠지 모를 아쉬움과 안도감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어쨌든 목숨은 건진 셈인가?’

싸웠다면 십중팔구 패배했으리라. 혈로를 뚫고 나오느라 기력이 쇠진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왼팔을 잃은 것이 컸다.

몸의 균형이 깨지고 검로에도 제한이 생기게 됐다. 왼팔을 잃음으로써 장유추는 전력의 삼 할 이상을 소실했다고 봐야 했다.

살아남게 된 이래 처음으로 집중할 일이 생기게 된 셈이다.

‘우선은 한 팔로 싸우는 법부터 새로 익혀야겠군.’

장유추는 피식 웃었다.

패배한데다 적에게 목숨을 구원받고, 이전보다도 약하게 됐음에도 웃음이 나왔다.

전의를 다지는 웃음이었다.

‘무인 장유추의 삶은 여기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 * *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모용린은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일어섰다.

간밤에 워낙 피곤했던 듯 평소 비단결 같던 머리칼이 난잡하게 일어나 있었다. 평소의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기시감을 느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홀로 세가의 일을 전담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녀였다.

‘연회 준비는 대강 끝냈고, 이달의 지출 내역도 모두 확인했고…… 본가에 서신을 보내는 일은 이따가 하면 되겠지.’

화장대에 얼굴을 비추며 생각하는 모용린이었다. 평소 어린아이의 것인 양 부드럽던 피부가 푸석푸석하게 느껴졌다.

‘내가 피로하긴 피로하구나.’

그녀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전과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모용훈이 반쯤 미친 이래 북풍장의 대소사는 모두 그녀의 몫이었으니까.

그러나 느끼는 피로는 예전과 지금이 너무나 달랐다. 시기도 시기였지만 모용훈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오라버니가 깨어나지 못한다면…….’

모용훈은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처음엔 그가 깨어나면 어찌해야 할지 걱정했었으나, 이제는 그가 영영 깨어나진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었다.

물론 최근의 그들 남매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걷기만 했던 게 사실이었다.

다만 모용린은 그런 연유만으로 큰 오라비에 대한 연민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괴물이 되기 전, 큰오빠는 그야말로 그녀의 이상향이었기 때문이다.

자상하고 부드럽지만, 필요할 때는 세상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진취적인 인물. 모용세가의 미래를 두 어깨에 짊어진 천재 중의 천재.

그것이 본래의 모용훈이었다.

그녀가 질투하면서도 닮고 싶어 했던, 동시에 동경했던 사람.

‘큰 오라버니…….’

모용린은 우울한 얼굴로 옥경(玉鏡)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야.’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잔칫날이 얼마 앞으로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모용세가주이자 그녀의 아버지인 모용중강의 생신.

당사자가 요녕성 본가에 있는 만큼 북풍장에서 벌이는 연회는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본가에서의 잔치보다도 중요하다 할 수 있었다.

초빙되는 손님들의 면면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무맹주 남궁훈부터 시작해서 어지간한 대문파의 대표들, 모용세가와 연을 돈독히 하고자 하는 여러 가문의 대표들 역시 참석한다.

그야말로 모용세가의 현 위치와 위세를 세상에 확인시키는 일.

사소한 실수나 문제가 발생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잔칫상에 올릴 음식들은 모두 준비되었고, 오늘 중으로 주안상에 오를 술병들도 오겠지.’

문제는 없다. 예상 못한 변수가 생긴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사람처럼.’

모용린은 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녀의 큰 오라비인 모용훈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남자를.

그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한 가지였다.

‘엉망진창이야.’

그녀는 그가 싫었다.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데다 말도 함부로 하고 예의도 없었다.

세상에 잘난 사람이 자기뿐이라는 듯한 그 태도는 또 얼마나 얄미운지.

그가 모용훈을 구해 주었다는 사실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구한 거라고 할 수도 없잖은가. 모용훈은 깨어나질 못하고 있었으니.

‘정말 싫어.’

모용린은 옥경을 다시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옥경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화가 나서 그래. 그 인간한테 화가 나서.’

속으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뇐다. 한참을 그러고 나면 그 행동 자체가 참 무의미한 것이라는 걸 깨닫고 헛웃음을 짓게 된다.

“일이나 해, 모용린. 이 바보야.”

자기 자신에게 속삭인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가씨.”

북풍장 최고령 하녀인 장씨의 목소리였다.

평소 그녀의 시중을 드는 만큼 익숙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으나, 왠지 오늘따라 낯설게 들리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죠, 장 아주머니?”

“그게 말입니다…….”

장씨의 목소리는 기묘했다. 왠지 난처한 듯도 하고 화가 난 듯도 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데 그러나요?”

모용린이 다시 부드럽게 물으니 장씨가 머뭇머뭇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것이, 웬 무뢰배 같은 녀석이…….”

“무뢰배?”

“예. 아침부터 찾아와서는 대뜸 아가씨를 당장 데려오라고 하는지라 말입니다. 아가씨를 보려면 선약부터 해야 한다고 타일렀는데도 막무가내라서요.”

“저를 만나겠다고요?”

“예. 평소라면 흠뻑 두들겨서 쫓아내겠는데, 공연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싶어서…….”

그 순간 모용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홱 고개를 돌려 옥경을 보았다. 머리칼은 여전히 푸석푸석하고 눈 밑엔 약간이지만 기미도 끼어 있었다.

치장을 하려면 한 식경이고, 대충 정돈만 하는 데도 한 다경은 걸릴 터였다.

그 인간이 그러는 동안 기다려 줄 리가 없었다.

“치.”

그녀는 대강 머리칼을 천으로 동여매고는 바깥으로 나섰다.

예상했던 대로 그 인간이었다. 그는 대뜸 모용린을 보더니 담담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로군. 아니면 그게 진짜 모습이려나? 여자는 역시 화장발인 모양이야.”

모용린의 뱃속에서 뭔가 울컥 치솟았다. 어쩜 이렇게 속 뒤틀리는 말을 무신경하게 내뱉는지.

그녀는 애써 울화를 가라앉히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아침나절부터 찾아오는 쪽이 잘못 아닌가요?”

“응? 뭐가?”

정말 모르겠다는 듯 되물으니 그녀로서도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말을 더 나눠 봐야 열불이 나는 쪽은 그녀였고.

결국 본론으로나 들어갈 수밖에.

“됐어요. 무슨 일로 찾아왔죠?”

“그 녀석 좀 보려고.”

그 남자, 정천의 말에 모용린은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 녀석이라뇨?”

“그 좋은 머리로 생각 좀 하시지. 이 집구석에서 내가 볼 녀석이라면 한 명뿐이잖아.”

“아.”

그제야 정천의 말뜻을 깨달은 그녀였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또다시 화가 울컥 치솟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라도 돋아요?”

“응?”

이번에도 뭔 소리냐는 듯 그녀를 빤히 보는 정천이었다. 그게 꾸며낸 게 아니라 진심인 것 같아서 모용린은 더 화가 났다.

“됐어요! 따라오기나 해요!”

그녀는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그 태도 때문인지 마당을 쓸던 하인들이 그들 쪽을 돌아봤다.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정천이 말했다.

“쟤들 치워.”

모용린은 허공에다 무언가 손짓을 했다. 은신 중인 호위 무사들을 물린 것이다.

그들 뒤를 따르던 인기척들이 전부 사라졌다.

“그 녀석 상태는 어때?”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어요. 혹시 그때 뭔가 실수를 한 건 아니에요?”

“이래서 요즘 애들은 안 돼. 물에 빠진 것을 구해 줬더니 보따리도 내놓으라고 하는군.”

“그,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아니긴 뭐가 아냐. 지금 내가 네 오라비에게 실수를 해서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따지려는 거잖아.”

“…….”

“내가 그때 나서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알아요, 안다고요.”

모용린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암만 옳은 말이라지만 저렇게나 무신경하게 툭툭 내뱉으니 화가 났다.

‘꼭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속으로만 항변하는 모용린이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었다. 북풍장 내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한 폐관용 연공실에 도착한 것이다.

“잠시 기다려요. 천 근이 넘는 문이라 기관 장치를 작동해야 열 수 있어요.”

“필요 없어.”

정천이 냉큼 한 걸음 나서서는 연공실의 문을 밀어젖혔다. 콰드드득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강철로 된 문이 종잇장처럼 밀려났다.

“…….”

모용린이 할 말을 잃고 있으려니 정천이 아무 일 없었던 양 안으로 들어섰다.

“흠.”

나직이 콧소리를 내는 정천이었다.

모용훈은 연공실 한가운데에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그런 것치고는 꽤나 정갈한 자세와 상태였지만.

“얼마나 저러고 있었지?”

“네?”

“데려왔을 때부터 저렇게 깔끔하진 않았을 거 아냐.”

모용린이 아차 싶어서 대답했다.

“처음엔 온몸의 모공에서 이물질을 배출했었어요. 호흡도 상당히 거칠었고요. 그게 겨우 멈춘 것은 사흘도 되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는 저렇게 잠든 듯이 누워만 계세요.”

“그렇군. 잠깐 문 닫고 나가 있어.”

“……네?”

“방금 들었잖아.”

잠시 우물쭈물하던 모용린이 바깥으로 나갔다. 그녀가 기관장치를 작동시키자 문이 다시 닫혔다.

캄캄한 어둠이 사위를 메웠다.

정천은 일단 허공에다 손을 떨쳤다. 멸혼겁화의 불길이 피어나서는 도깨비불인 양 허공에서 일렁였다.

연공실 내가 환히 밝아졌다. 정천은 이윽고 체내의 기운을 일으켜 연공실 내부를 감쌌다.

그의 입이 나직이 열렸다.

“이로써 연공실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다. 천둥소리가 울리더라도 바깥에선 모를걸.”

이어지는 고요.

살짝 혀를 찬 정천이 다시 말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남매가 똑같군. 일어나서 앉아. 시체처럼 누워만 있지 말고.”

그 순간 모용훈의 눈이 느릿하게 뜨였다.

그는 담담한 시선으로 천장과 정천을 번갈아 본 후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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