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七章 실력을 보이다 (42/146)

第七章 실력을 보이다

매화장(梅花場).

화산파의 천무맹 내 지부였다.

천무맹 설립 당시 최초로 만들어진 다섯 지부 중 한 곳으로, 그 영향력 역시 소림의 여래관(如來館)과 더불어 가장 큰 곳이었다.

정천은 매화장에 들어서기 전, 담 바깥을 빙 돌아 그곳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못해도 와룡장의 열 배 이상.’

와룡장 역시 그리 작지 않은 곳임을 생각해 보면, 매화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정천은 매화장 정문으로 향했다.

황룡성 사대문에 비할 바는 아니나 거대한 규모의 정문이었다. 그 위에 걸려 있는 네 글자가 정천의 눈을 사로잡았다.

오악검극(五嶽劍極).

‘화산은 오악검파의 수장을 자처하는 곳. 그 칼끝이 이곳에 있다는 건가?’

그들의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는 글월이었다.

매화장 문지기들이 정천을 향해 물었다.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소?”

“화군장로 백운신을 만나러 왔소.”

담담한 정천의 대꾸에 그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안 그래도 불안한 시기, 정천의 인상도 수상하게 여겨졌다.

“왜 그분을 찾지?”

“용무가 있으니까.”

문지기들이 서로 시선을 맞댔다. 그래도 화산의 이름이 있는데 문전박대할 순 없었다.

곧 문지기 하나가 대표 격으로 말했다.

“잘못 찾아오셨군. 장로님을 만나려거든 그분이 기거하시는 화군각으로 찾아가야 할 거요.”

“귀찮은 일은 그쪽 문지기들에게 떠밀겠다는 거군.”

문지기들이 흠칫했다. 정천은 피식 웃고서 말을 이었다.

“백 장로가 정운장의 일로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거든.”

정운장의 이름이 나오자 문지기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래도 정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쨌든 비키시지. 몸 성할 때 물러나는 편이 낫지 않겠어?”

“협박하는 것이냐!”

“응.”

간단한 대답에 문지기들은 잠시 멍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육모곤을 쥐어 들었다.

“이런 미친 자식, 감히 어디서 행패를 부리려는 건지 아느냐?”

“귀찮군. 더 떠들 것도 없겠어.”

“뭐야?”

정천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성큼 매화장 안쪽으로 걸음을 내딛을 뿐.

“이 새끼!”

체격 큰 문지기가 정천을 향해 육모곤을 휘둘렀다.

사실 그들은 단순한 문지기가 아니라 화산의 하급 문도들이었다.

하급이라 해도 그 실력은 어지간한 군소 문파의 직계 제자쯤은 되었고, 그런 만큼 단순히 곤방(棍棒)을 휘두르는 데 있어도 화산검의 풍미가 느껴졌다.

정천에겐 별 의미가 없었지만.

“엇?”

육모곤을 휘두르던 문지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눈앞의 허공이 빙그르르 돌고 있었던 것이다.

정천이 달려들던 그의 힘을 역이용, 몸을 그대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윽고 회전하는 문지기의 몸통에 정권을 꽂았다.

“컥!”

문지기는 내팽개쳐지듯 날아가선 거품을 물었다. 연이어 달려들려던 문지기들이 딱딱하게 굳었다.

고수다. 그것도 자신들이 손끝이나 댈 수 있을까 의심되는 절정 고수.

‘이런 씨……!’

‘된통 걸렸다.’

그들이 속으로 울상 짓는 동안, 정천은 문지기들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사이 여섯 발의 타격이 문지기들의 몸을 훑고 갔다.

우르르 무너지는 문지기들. 하나같이 급소를 맞아 거품을 물고 있었다.

가볍게 일단락한 후 정천이 매화장으로 들어서려 할 때였다.

“멈추시오!”

진중한 목소리가 정천을 멈춰 세웠다. 어느새 매화장 안쪽에서 일련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제법 기감이 좋군.’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문지기들을 제압했다.

어지간히 감각이 좋지 않은 한은 낌새도 눈치챌 수 없었으리라.

‘못해도 이대제자쯤 되겠군.’

정천은 다가오는 무리를 한차례 훑었다. 그중에서도 정천을 불러 세운 사내가 으뜸인 듯싶었다.

사내는 매서운 눈으로 정천을 응시했다.

“귀하는 무슨 연유로 매화장 정문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안 들여보내 줘서.”

사내가 잠시 멈칫했다.

참 별것 없는 이유였지만, 어쨌든 매화장은 오는 이를 막지 않고 가는 이를 잡지 않는 곳이었다.

그가 조금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저들이 실수를 한 모양이군. 괜찮다면 매화장을 찾아온 이유를 말해 주실 수 있겠소?”

“화군장로 백운신을 만나러 왔소.”

사내의 얼굴이 다시 딱딱해졌다. 용건도 용건 나름이지, 선약도 없이 찾아온 이라면 당연히 문전박대를 당할 일이었다.

“죄송한 말씀이나 좀 예의가 없으시군. 선약도 없이 그분을 찾아왔다면 응당 박대함이 당연한 것 아니겠소?”

“선약은 예전에 했소만.”

“오늘 손님이 찾아오실 거란 얘기는 듣지 못했소.”

“그야 딱히 날짜를 정해 두지 않았으니까.”

사내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성함을 말해 줄 수 있겠소?”

“소용없을 거요. 백 장로는 내 이름에 대해 다른 이에게 말한 적이 없을 테니.”

“그럼 대체 무엇을 믿고 귀하를 장로님께 데려간단 말이오?”

“내 힘.”

단순 명료하면서도 광오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사내의 목소리에서 인내가 사라졌다.

“시절이 하도 수상하니 별별 무뢰배가 판을 치는군. 약간의 재주를 믿고서 대화산파를 도발하려는 것인가?”

“받아들이는 거야 너희 자유겠지. 그래서 안내를 하겠다는 건가, 말겠다는 건가?”

“안내해 주지.”

스릉!

사내가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네게 어울리는 곳으로. 흠씬 두들겨 패서 진흙탕에 처박아 주지. 내게도 연민이란 게 있으니 목숨을 취하진 않겠다.”

“대단한 의협지사가 나셨군.”

정천의 빈정거림에 사내가 일갈했다.

“따라와라! 연무장 한가운데에 처박아 주지.”

“좋을 대로.”

정천은 구태여 피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었다면 이들을 따돌리는 거야 당연하고, 애초에 몰래 숨어들려 했다면 그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이참에 화산의 힘을 측량해 봐야겠어.’

백운신이 움직이면 응당 화산도 움직인다. 그가 마음을 뒤집는다면 모르나, 그렇지 않은 이상 중요한 것은 한 가지.

그가 동원할 수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가.

정천은 그를 만나기에 앞서 이를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연무장은 차라리 거대했다. 사내를 따르는 십여 명의 무리가 서 있어도 휑하게 느껴질 정도.

사내가 매서운 눈으로 정천을 돌아봤다.

“나는 화산의 일대제자인 조철운이다. 그대의 이름을 말하라.”

조철운.

정천도 익히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그것도 꽤나 오래전에 들어 봤었다.

“익숙한 이름이군. 분명 여산일검(驪山一劍)이라고 했던가?”

조철운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별호를 들은 까닭이다.

한때 그가 여산일검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십 년도 전의 일.

독문무공으로 녹림도나 무뢰배들을 때려잡던 시절의 일이다.

스무 살이란 늦은 나이에 화산에 입문한 이후로 들을 일 없었던 별호다.

대신 그는 십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빠르게 화산의 무공을 흡수해 갔다.

그리고 서른이 되기 전에 일대제자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리하여 현재 그가 불리는 별호는 화산쌍룡.

매화검수인 진운열을 제외하면 화산의 젊은 제자 중 그와 겨룰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별호로군.”

“그런가? 하긴 나도 꽤 예전에 들었던 기억이 나.”

“오랫동안 여행이라도 갔다 왔던 것인가?”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조철운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그냥 봐선 나이 어린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칼밥 먹은 듯싶었다.

그가 재차 질문했다.

“그대의 이름은?”

“정천.”

조철운은 그 이름을 잠시 입속에서 굴려 보았다.

왠지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이름. 그러나 쉽사리 떠오르진 않았다.

“혹시 달리 불리는 이름이 있나? 별호라거나…….”

“그런 건 안 키우는 성미라서.”

“그럼 그냥 무뢰배라 불러야겠군.”

정천의 미소가 짙어졌다.

“강한 무뢰배라고 불러야겠지?”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자부하는군.”

“그냥 내 역량을 잘 알 뿐이지. 최소한 너보단 강하다는 것 역시.”

“가장 먼저 그 입부터 박살 내 놓아야겠군.”

조철운이 눈짓을 했다. 매섭게 정천을 노려보던 화산의 제자들 중 하나가 검을 건넸다.

조철운은 그 검을 정천의 발치에다 던졌다.

“받아라. 무기도 없는 자를 베어 버리고 싶진 않다. 원한다면 무기 없이 싸워 줄 수도 있다.”

정천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검을 주워 들었다. 박투(搏鬪)도 나쁠 것 같진 않았지만, 조철운의 본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화산 하면 역시 검이니.’

정천이 검을 주워 들자 조철운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전의가 그의 주변으로 퍼졌다.

확고함이 보이는 기의 덩어리.

조철운은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화산의 유려함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지만, 강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자신의 독문 무공을 화산의 무공에 가미시켰군. 상당한 자질이야. 그 덕에 빠른 속도로 화산의 검을 흡수할 수 있었겠지.’

어떻게 보면 정천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완전히 같다고 하기엔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지만.

‘그런 것엔 한계가 있는 법이지.’

단순히 두 무공을 효과적으로 배합하는 수준. 변칙적이기에 깊이는 그만큼 얕은 법이다.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 내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한, 조철운은 매화검수의 이름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뭐라고?”

정천의 혼잣말의 조철운이 반응했다.

정천은 굳이 설명하지 않고서 검을 휘휘 저었다.

“어서 덤비기나 하라고. 선수는 양보해 주지.”

조철운이 뿌득 이를 갈았다.

“그 입으로 자비를 구하게 될 거다!”

조철운의 몸이 비약했다. 시작부터 큰 초식을 펼치려는 모양. 하기야 선수를 양보한다는데 간이나 볼 필요는 없으리라.

“타앗!”

기합성과 함께 조철운의 검기가 순간 묵직해졌다. 동시에 섬광처럼 정천을 향하여 쏘아지는 일검!

화산의 태양검(太陽劍)에 천근보(千斤步)의 묘리를 가미한 수법. 빠르며 강한, 더없이 실전적인 배합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론 불충분하지!’

정천은 마찬가지로 천근보를 펼친 후 가볍게 검을 떨쳤다.

순간적으로 검극이 일곱 갈래로 나뉘어선 갖가지 방향에서 조철운의 검을 난타했다.

타타타타탕!

각각의 타격으로 태양검의 위력이 상당 부분 상쇄되었다. 빠르기와 강함이 사라지니 남는 것은 쇠붙이인 검 하나뿐이었다.

‘쾌검의 달인인가?’

정천이 펼친 검식은 모용세가의 칠연구화검을 닮아 있었다. 뭔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칠연구화검만으로는 나의 천양검을 막을 수 없었을 텐데?’

조철운은 이내 숨겨진 변수를 깨달았다. 정천의 발아래 땅이 움푹 파여 있음을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천근보를 펼쳐 중(重)의 힘을 담았구나.’

힘의 규모가 엇비슷해지니 보다 빠른 속도로 연격을 펼쳐 위력을 줄일 수 있었다. 그저 빠르기만 했다면 위력의 상쇄는 없었으리라.

조철운은 신중해졌다. 정천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난 실력자였다.

“조금 전의 방어식은 모용세가의 검을 닮았군.”

“놀랐나?”

“모용세가에서 왜 화산을 도발하려는 거지?”

정천은 픽 웃었다.

“모용가의 검을 썼다고 그곳 사람이라고 단정 짓다니, 생각이 얕군.”

“그럼 아니란 말이냐?”

“차차 확인할 수 있겠지. 더 덤벼 봐.”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정천이었다. 조철운은 검을 힘껏 쥐고는 다음 공격에 나섰다.

‘우선은 틈을 노린다!’

조철운이 걸음을 내딛었다. 순간 천근보의 육중한 걸음이 비화보(飛花步)의 날렵한 걸음으로 돌변했다.

보법이 변하면 검끝도 자연히 변한다. 대부분의 공격이란 땅을 내딛는 힘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조철운이 펼치기 시작한 검법은 청풍검(淸風劍). 빠르기로는 화산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검법이었다.

“하앗!”

조철운의 검이 순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워낙 빠른 속도에 검의 잔영이 생기는 것이었다.

파파파팟!

그의 검극이 곳곳의 허공을 격하며 파열음을 냈다. 마치 정천을 둘러싼 공간이 마구 깨어지는 것만 같았다.

검막으로 이루어진 감옥.

그것이 정천을 중심으로 조금씩 축소되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정천의 몸을 난도질하게 될 터였다.

‘중검 이후엔 쾌검인가? 하긴 나쁜 생각은 아니지.’

속도로 틈을 만들어 한순간에 찔러 들어간다. 정석 중의 정석이지만 결코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만한 효력이 있으니 정석이라 할 수 있는 거고.

‘하지만.’

정천이 검을 느슨하게 쥐었다. 그 역시 속도로 맞서려는 것이었다.

변수가 적어지고 공방이 단순해질수록 무공 역시 숫자 싸움이 되어 버린다. 보다 빠르고 보다 강하면 이기는 법이다.

정천의 손이 허공으로 떨쳐졌다.

타타타탕!

그를 둘러싼 허공 곳곳에서 시뻘건 불꽃이 튀었다.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각각의 검을 요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타타타타탕!

조철운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자신과 같은 속도로 자신의 검을 일일이 쳐내는 정천 때문이었다.

‘이럴 수가……!’

같은 속도라면 당연히 방어하는 쪽이 힘들다. 상대의 속내를 읽지 못하는 이상, 공격자가 검을 뻗은 이후에나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엄밀히 말해, 지금의 속도 대결은 결코 동률이 아니었다.

“이젠 나도 공격하지.”

정천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조철운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무의식중에 방비를 해야겠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이런.’

조철운은 낭패감을 느끼고는 스스로를 꾸짖었다.

‘멍청한! 심리전에서 밀리면 어쩌자는 거냐!’

잡념은 검극을 무디게 만드는 법이다. 잡념은 확신을 잃게 만들고, 그로 인해 내딛는 걸음 대신 뒷걸음을 치게 만든다.

나아가지 않고선 싸울 수 없는 법. 하물며 화산의 검수라면 더더욱 그랬다.

조철운은 내심 부끄러움을 느끼며 마음을 다잡았다.

‘흔들려선 안 된다. 부동의 마음으로 놈의 검에 맞서야 한다.’

이미 정천을 박살 내겠다는 생각은 사라진 뒤였다. 눈앞의 상대는 시건방진 무뢰배가 아니라 일생의 적수나 다름없었다.

“이번엔 내가 일검을 양보하마. 와라!”

조철운의 외침에 정천이 픽 웃었다.

“쥐가 고양이 걱정을 다 하는군.”

“…….”

조철운은 분노를 느꼈으나 애써 억눌렀다.

이성을 잃는 것이야말로 정천이 노리는 바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압도적인 방어로 기선을 제압하고 한마디 도발로 평정심을 흔든다. 그것이 놈의 방식일 터.’

조철운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흐트러졌던 그의 검기가 다시 올곧아지며 하나의 바위처럼 변했다.

감탄스러울 정도의 우직함이었다.

‘어쩌면 방어보다 공격이 더 까다로울지도.’

정천은 칼끝을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했다.

‘어떤 무공으로 공격해 들어갈까.’

승패만이 중요하다면 강룡수라마공을 펼쳐 일격에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철운의 실력을 보는 것이었다.

‘조금 더 흔들어 볼까?’

생각을 마친 정천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텅!

정천이 땅을 박찬 순간 조철운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 검법은?’

그 순간 조철운뿐 아니라 비무장의 모두가 코끝을 찌르는 매화향을 느꼈다.

스르륵.

정천의 검이 별빛처럼 흘렀다. 유성매화검(流星梅花劍)의 유화진천세(流花眞天勢)가 펼쳐지며 조철운의 전방을 점해 들어갔다.

검신에서 흘러나온 빛이 버드나무 가지인 양 하늘거리며 다가왔다. 그러나 그 본질은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검기의 다발!

‘어떻게 놈이 화산의 검을……!’

조철운은 어이가 없어 멍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멍하니 시선을 빼앗기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베여 나가는 수가 있었다.

“큭!”

침음을 뱉은 조철운이 태양검의 방어식으로 맞섰다. 그가 발출한 검기가 정천의 검기를 우악스런 기세로 두들겼다.

그러나 잘려 나가는 쪽은 조철운의 검기.

조철운은 질린 표정으로 비화보를 펼쳤다.

강하고 예리하되 속도가 느리니 피하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멈춰 섰다. 정천이 잇따라 날린 검기가 그가 이동하려는 자리를 점하고 있었다.

“쳇!”

혀를 찬 조철운이 내력을 끌어올렸다. 이렇게 된 이상 무리해서라도 뚫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아압!”

검기가 폭발적으로 증식했다. 막대한 기운이 버거운지 검신이 부들부들 떨리며 검명을 토했다.

카아아앙!

조철운은 오른발로 힘껏 땅을 밟고는 전방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그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초인 낙화일섬(落花一閃)이 전개됐다.

번쩍!

붉은빛이 폭사되며 조철운의 몸이 유화진천세를 향해 쇄도했다.

콰앙!

막대한 기운을 일점에 모은 위력은 과연 대단해서, 어렵잖게 유화진천세의 검기를 깨부술 수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조철운은 서둘러 정천의 신형을 좇았다. 이미 내력을 상당량 소모한 만큼 끝을 내려면 지금 내야 했다.

정천은 처음 서 있던 자리에 곧게 서 있었다. 조철운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를 향해 짓쳐들어 갔다.

손속을 조절할 여유도 없었다.

조철운은 있는 힘껏 검을 내질렀다.

“하아앗!”

카아앙!

강철과 강철이 충돌하는 소리가 났다. 낙화일섬의 기운이 도중에 정지했고, 조철운은 그 엄청난 반발력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았다.

울컥!

시커먼 핏덩이가 조철운의 입에서 토해져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기에 조철운은 당황했다.

‘녀, 녀석은……?’

정천을 살핀 조철운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정천은 검을 쥐지 않은 오른손으로 조철운의 검신을 움켜쥐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흑색 기운이 오른손 전체를 뒤엎은 채 넘실대고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정천의 목소리가 조철운의 귀를 때렸다.

“안일하게 이 검으로 막으려 했다간 검과 함께 동강이 났겠어. 이런 절초를 숨기고 있는 걸 보면 역시 한가락은 하는 모양이군. 일대제자의 위명은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크, 으…….”

“다만 적이 좋지 않았군.”

“이런…… 괴물 같은.”

“너 이긴다고 다 괴물이냐?”

싱거운 듯 대꾸한 정천이 조철운을 슬쩍 밀었다. 조철운은 검을 내뻗은 자세 그대로 벌러덩 쓰러졌다.

“자, 그럼 백운신 장로에게 안내나 해 주시지.”

화산파의 문도들을 돌아보며 말하는 정천이었다.

그러나 문도들은 그 말을 따르는 대신 둥글게 정천을 둘러쌌다.

쯧 하고 혀를 찬 정천이 말했다.

“너희도 덤빌 테냐?”

“모용세가의 악적! 화산의 이름으로 가만두지 않겠다.”

“비무 한 번 이겼다고 악적씩이나 되어 버리는군. 그리고 요즘 모용세가 검수들은 화산의 검법도 익힌다더냐?”

화산검법의 이름에 문도들이 잠시 동요했다. 그들 역시 정천이 펼치던 화산검을 직접 목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포위망을 풀리지 않았다. 여러 의문점보다도 조철운이 쓰러졌다는 사실이 더 컸기에.

“뭐, 그렇다면.”

정천이 주먹을 꾹 쥐었다. 어차피 여럿 쓰러트린 뒤니 거기에 더하여 몇 명을 더 박살 낸대도 상관은 없을 터였다.

그때 쩌렁쩌렁한 일갈이 들려왔다.

“무엇들 하고 있는 것이냐!”

화군장로 백운신이었다. 그가 잔뜩 분노한 채 비무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자, 장로님!”

문도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서던 백운신은 정천을 확인하고서 침음했다.

‘어쩐지 익숙한 기운이더라니…….’

정운장의 뒤처리에 대한 집무에 열중하던 중 매화장 비무장에서 심상찮은 살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하던 일을 멈추고 바삐 달려온 백운신이었다.

그런데 그 정체가 정천이라니, 맥이 풀림과 동시에 기가 막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백운신이 따지는 어조로 정천에게 물었다.

정천은 쓰러져 있는 조철운과 백운신을 번갈아 보고서 대답했다.

“장로님을 만나려 하니 이 녀석들이 방해하더군요. 그중 하나가 싸워 보자고 해서 응해 주던 차입니다.”

“으음.”

백운신은 앞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했다. 문도들이야 정상적인 대응을 한 것뿐이지만, 정천 역시 그의 입장에선 별다른 잘못이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이유로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실력을 숨겨야 한다던 건 자네가 아니었나? 그런데 이렇게도 간단히 깽판을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전음으로 역정을 내는 백운신. 그러나 정천은 여전히 태연했다.

—이 정도야 장로님이 수습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문도들의 입을 막거나 적당히 얼버무리는 정도는 어렵지 않을 텐데요.

—그, 그야 그렇지만…….

—저는 멍청이가 아닙니다. 뒤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아니까 힘을 쓴 것뿐입니다.

—…….

저렇게까지 말하니 백운신으로선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그의 한마디면 오늘의 일이 영원히 묻히는 것도 어렵잖았고.

—게다가…….

정천의 말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이제 곧 제 본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올 겁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그리 오래 웅크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움직인다고?’

백운신은 정천이 말하는 바를 대강 알 것 같았다.

‘팔부혈선과 정면으로 맞서려는 것인가? 하지만 아직 그들의 정체조차 모호할 텐데?’

이것저것 정천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 전에 지금 일부터 수습하는 게 먼저일 듯했다.

백운신은 전음 대화를 잠시 멈추고서는 문도들을 돌아봤다.

“조철운을 데려가 간호하라. 이 청년은 내 손님이 맞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그리고 이 일은 어느 곳에서도 꺼내선 안 될 것이다.”

“…….”

“알겠는가!”

“아, 알겠습니다, 장로님.”

문도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로서도 일대제자가 외부인에게 박살이 난 사실은 숨기고픈 일이었다.

게다가 백운신의 엄포까지 들은 뒤.

어지간해선 입 밖에 내지 않을 터였다.

‘내더라도 정천의 정체까지야 알려지지 않겠지.’

생각을 마친 백운신이 몸을 돌렸다.

“따라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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