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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六章 균열 (41/146)

第六章 균열

“으으음…….”

중황장로 엄백은 손끝을 깨물고 있었다. 그간 유지해 왔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기 전이었다.

‘맹주께 말씀드려야 한다.’

정천과의 약속…… 이라기보다는 그가 풍겼던 위압적인 모습 때문에, 엄백은 그의 존재를 지금껏 맹주 남궁운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하고 있었다.

마교의 무리가 천무맹의 앞마당까지 짓쳐들어왔다가 물러났다.

별다른 전투가 있진 않았다지만,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천무맹은 도발을 당한 셈이었다.

그뿐인가. 장로들이 실종되고 정운장주 도열궁이 증발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무맹이 흔들린다.

그 사실은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그들 장로들이 그 누구보다도 크게 통감하고 있었다.

물론 엄백은 그 속사정을 알고 있는 극소수 중 한 명이었다. 허나 진실이 언제나 약이 되어 주지는 않는 법이었다.

‘맹주께선 확신을 잃고 계신다.’

남궁운과 엄백, 그 외 소수의 동지들은 긴 시간 동안 힘을 길러 왔다.

목적은 물론 천무맹을 배후에서 제어하고 있는 팔부혈선들. 그들의 천하를 끝맺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러나 그 전에 남궁운의 지위부터 흔들리게 생겼다. 잇따른 내부 문제로 말들이 많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장로들이 사라진 것은 맹주에 대한 불신 때문이 아닐까?

그러한 분위기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누군가 의도한 것인지 자연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문제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맹주님 본인부터 불안해하고 계신다는 거다.’

천무맹주로서 남궁운은 신용을 잃어선 안 된다. 그의 지지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신용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혈풍대 전원이 움직이게 된 것이고.

마교의 일이야 혈풍대를 움직임으로써 일단락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실종된 장로들.

남궁운으로선 필연적으로 실종된 그들의 수색에 전념해야 했다.

반(反)팔부혈선 연맹으로선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야말로 팔부혈선에 반기를 드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기로였기에.

‘역시 정천의 정체를 알려 맹주님을 안심케 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엄백은 그렇게 확신했다.

장로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제거된 것이며, 그 당사자가 우리 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남궁운에게도 큰 힘이 될 터였다.

엄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번 마음을 정하니 순식간에 생각이 기울어졌다. 이제는 어서 빨리 알려야겠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엄백은 급히 맹주각으로 향했다.

맹주각은 황룡성 심장부의 천무맹 본당 중앙에 위치했다. 말 그대로 황룡성의 중심이자, 천무맹 내에서도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이었다.

절세의 고수라도 홀로 침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곳.

물론 장로인 엄백에겐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의 직위로는 과장 조금 보태어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었으니까.

엄백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그로선 왜 지금껏 말하지 않았던 걸까 싶기만 했다.

‘백 장로도 백 장로지. 미련하게도 정말 계속 그의 정체를 함구할 생각이었던가?’

정천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그에겐 지킬 것이 있으니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하려 한 것일 터.

그러나 엄백은 비밀을 지킬 자신 있었다. 자신과 남궁운, 그 외의 소수 동지들만이 알고 있으면 그만이 아닌가 말이다.

마침내 엄백은 맹주각 안으로 들어섰다. 남궁운은 최상층의 집무실에 있을 터였다.

집무실까지 향하던 엄백은 낯익은 인물을 만났다.

윤우장로 마철.

엄백과 마찬가지로 반혈선 연맹의 동지였다.

“오. 마 장로, 오랜만이구려.”

“그렇구려, 엄 장로. 맹주님을 만나 뵈러 가는 길인가 보오.”

“그렇소이다. 마 장로께선 맹주님을 만나 뵙고 오는 길이오?”

“아니오, 엄 장로도 헛걸음하신 것 같소.”

엄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집무실에 계시지 않은 모양이오. 불러 보아도 답변이 없더구려.”

철통처럼 지켜지는 외부와 달리 맹주각 내부에는 변변한 호위 한 명 없었다. 암살자가 호위로 위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적을 도리어 완전히 지움으로써 암살 위협을 없앤다. 얼핏 보면 역설 같지만 영 이상한 얘기만은 아니었다.

역대 맹주들 모두가 누각 하나 정도는 기감을 통해 샅샅이 훑을 수 있을 실력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기감에조차 걸리지 않을 정도의 초고수가 없지는 않지만, 맹주각 외부에 배치된 호위들만 해도 대단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애초에 외부인이 본당 바깥에서부터 모든 호위와 감시를 뚫고 들어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하간 그런 연유로, 맹주를 찾아오는 이들은 시종이나 호위를 부리지 않고 본인이 직접 맹주를 찾아가야 했다.

대개는 각 내에 들어올 때 맹주가 알아차리기 마련이었지만.

평소라면 지금쯤 맹주의 전음이 들려왔을 것이다.

“하긴 별말씀이 없으신 걸 보니…….”

“아무래도 외출하신 것 같소이다. 아니면 본당 쪽에 계신 걸지도 모르겠구려.”

“음, 그럼 헛걸음을 한 것인가.”

살짝 애가 타는 엄백이었다. 어서 빨리 진실을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마철이 그런 엄백을 유심히 쳐다봤다.

“뭔가 급한 용무라도 있소?”

“음, 급히 맹주께 알려야 할 일이 있소이다.”

“아주 중요한 일인가 보오?”

“그렇소.”

마철의 눈빛이 은밀해졌다.

“혹시 본 장로가 들을 수 있겠소?”

“으음, 그것이…….”

엄백은 말끝을 흐렸다. 언제고 알려야 할 일이긴 했으나, 일단은 맹주에게 먼저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마철이 끈덕지게 엄백을 설득했다.

“사적인 일이라면 또 모르겠소만, 중요한 일인 것을 보니 단순한 일 같지는 않구려. 혹여나 우리 동지들과 관련된 것이라면 본 장로가 미리 알더라도 나쁠 건 없지 않겠소?”

“음…….”

“정 내키지 않는다면 자세한 내용까진 요구하지 않으리다. 대략적인 설명만 해 준다면 좋을 듯하구려.”

엄백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사실 마음이 급했던 터라 일단은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차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엄백은 마철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약간이라면 괜찮을 듯도 싶구려.”

“하하, 그럼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술이라는 말에 엄백의 군침이 동했다. 그간 머리 싸매고 고민하느라 뭘 입에 댈 새도 없었다.

“그럼 그러도록 합시다.”

엄백과 마철이 맹주각 바깥으로 향했다.

* * *

화륜문의 연무장.

정천과 화연란을 비롯한 화륜문의 식구 전부가 그곳에 모여 있었다.

“두 분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패화영신검을 전수받게 될 거예요.”

심후와 칠삼의 얼굴에 벅찬 감정이 드러났다. 지난날의 지옥 같던 단련이 뇌리를 스쳐 갔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육체 단련을 게을리해선 안 되겠죠?”

“그, 그건…….”

“그렇겠지요.”

떨떠름한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면서도 화연란은 싱긋 웃었다.

반응이야 저렇다지만 두 사람 모두 몸에 뭘 얹고 물 길어 오는 정도는 이제 땅 짚고 헤엄치듯 간단히 해내고 있었다.

“정말 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어요.”

화연란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화륜문의 문도가 여전히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에요.”

“…….”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정천은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화연란이 그런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아무래도 대대적인 홍보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라버니?”

“주루에서 호객 행위 하듯이? 그래 봐야 어중이떠중이들만 몰려들 뿐이야. 게다가 굳이 화륜문이 수십, 수백의 문도를 거느릴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소수 정예가 보기도 좋잖아?”

“그래도 딱 두 명인 것은 좀…….”

정천이 소윤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쟤도 문도 시키라니까.”

소윤이 도끼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왜 자꾸 문도로 못 들여서 안달이에요?”

“머릿수 하나라도 채우려고 그런다. 너는 식충이 노릇 하기도 지겹지 않냐? 내가 너라면 미안해서라도 문도 하겠다.”

“그러니까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니까요.”

“그놈의 마음 정하다가 백발 노인네 다 되겠군.”

소윤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서 정천을 째려봤다. 물론 지난번에 도움을 받은 게 있어서인지 이내 그만두었지만.

정천은 화연란을 돌아보고서 말했다.

“란아, 마음이 급한 건 이해하겠는데 그렇다고 너무 앞서 갈 것은 없어. 지금은 일단 저 두 사람을 단련시키는 데에 전념해.”

화연란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오라버니 말씀이 옳은 것 같아요. 모용 소저 때문인지 요즘은 자꾸 마음이 앞서 가는 것 같네요.”

예상 못한 이름에 정천은 의아함을 느꼈다.

“걔는 또 왜?”

“그녀한테만은 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딱 잘라 대답하는 화연란이었다. 아무래도 본인 나름대로 경쟁의식을 불태우는 모양.

정천이 떨떠름함을 느끼고 있으려니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전음.

—돌아왔습니다.

담미화였다. 몸이 대강 회복됐는지 귀환을 한 것이다.

‘아직 완전히 나은 것 같진 않은데.’

기감을 통해 그녀의 몸을 살핀 정천의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경공을 펼칠 수 있게 되자마자 돌아온 모양이었다.

“들어와.”

정천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끼이익.

연무장 문이 열리며 담미화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가운데, 화연란만이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돌아오셨군요, 담미화 언니.”

담미화는 당황 어린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그녀였다.

오랜 비영대 생활로 인해 의식 자체가 몸을 숨기는 데에 익숙했던 것이다.

정천이 간단히 설명했다.

“담미화다. 앞으로 잘 지내도록.”

“…….”

정말 간단하기 그지없는 설명이었다. 심후와 칠삼은 그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반면 소윤은 그리 놀라지 않은 듯했다.

“가끔 뒤통수가 따끔하던데, 그게 저 언니 때문이었나 보네요. 맞죠?”

“그래.”

태연히 대답하면서도 내심으론 놀라는 정천이었다. 소윤의 직감이랄까 하는 게 생각보다 무척 뛰어났던 까닭이다.

‘담미화 정도의 은신술이라면 어지간한 고수도 쉽게 알아챌 수 없을 텐데. 이 녀석은 별로 익힌 것도 없으면서 감지하고 있었다는 거군.’

기실 무재(武才) 자체만으론 심후나 칠삼을 가볍게 뛰어넘는 소윤이었다.

평소 정천이 그녀를 닦달하는 것도 반쯤은 그 때문이었고.

‘그냥 날로 먹고 노는 것이 아니꼽다는 게 더 크지만.’

화연란은 담미화에게 다가가 두 손을 꼭 쥐었다.

“비영대 얘기는 들었어요. 힘드셨죠?”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말씀 놓으세요. 저번엔 말 놓으셨잖아요? 저도 그쪽이 편하고요.”

“……응.”

화연란이 환하게 웃고서 물었다.

“그럼 앞으로는 비영대원으로 지낼 수 없겠군요?”

“아마도…… 그럴 것 같아.”

정천을 힐끗 보면서 대답하는 담미화였다.

“그럼 정식 화륜문의 식구로서 지내도록 해요. 혹시 달리 갈 곳이 있다면 모르겠지만요.”

“그런 곳, 없어. 이곳 식구로 받아들여 준다면 정말 기쁠 거야.”

화연란은 정천을 돌아봤다.

“괜찮겠죠, 오라버니?”

“뭐, 문주인 네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지. 담미화는 더 이상 내 부하도 아니고.”

장로들의 정보를 모두 얻은 시점에서 이미 담미화에게 볼일은 없게 된 정천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담미화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 화연란은 담미화의 자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막연히 한 식구라고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으음, 언니를 제자로 받는 건 좀 그럴 테고, 어느 자리가 좋으세요?”

“글…… 쎄?”

담미화도 화연란도 쉽사리 생각을 정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이름뿐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제대로 된 직책이 있는 편이 그림이 살았던 것이다.

보다 못한 정천이 한마디 했다.

“대강 총관이나 뭐 그런 자리 하나 줘. 어차피 감투뿐인데 뭘 그리 고민해?”

“그래도요. 지금 잘 정해 놓아야 나중에 문제가 덜 생기죠.”

“뭐, 그럼 열심히 생각해 보든가.”

정천은 대강 대꾸하고서 몸을 일으켰다. 담미화와 머리를 맞대던 화연란이 그의 등 뒤에 물었다.

“어디 가시려고요, 오라버니?”

“잠깐 만나 볼 사람이 있어서.”

“중요한 일인가요?”

“응.”

정천이 그렇다면 정말 그런 것이리라. 화연란은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럼 다녀오세요, 오라버니.”

화륜문을 나선 정천은 일단 와룡장으로 향했다. 용무를 보기에 앞서 제갈순을 만나려는 생각에서였다.

문지기들이 정천을 발견하고는 긴장했다. 그래도 몇 번 당한 게 있어서인지 예전처럼 대놓고 으르렁거리지는 않았다.

“무, 무슨 일이오?”

피식 웃은 정천이 말했다.

“총관 나리 좀 보자고 전해.”

“…….”

표정을 구긴 문지기들이 안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이 나와 정천을 안내했다.

제갈순은 자신의 방에 있었다. 며칠 새 무척이나 초췌해진 얼굴이었다.

“바쁜지라 오래 얘기할 순 없소. 용건이 있거든 어서 빨리 말하시오.”

대뜸 본론부터 꺼내라는 제갈순이었다. 정천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마교 일로 죽을 맛인가 보군.”

“……놀리려고 온 거면 당장 꺼지시오.”

“그런 건 아니오. 그렇게 날선 반응을 보일 것까진 없지 않소?”

“할 말이나 얼른 하시오.”

정천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지. 군사를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놓아 줄 수 있겠소?”

제갈순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형님을 왜 만나려는 거요?”

“용무가 있으니까.”

“말해 보시오.”

“당사자와 직접 나눌 얘기요. 댁한테 말할 이유는 없지.”

“그렇다면 나도 대답하기 편하군. 말하지 않는다면 형님께 말씀드릴 이유도 없소.”

정천은 피식 웃었다.

“실종된 장로들에 대한 얘기인데도?”

“…….”

제갈순은 심각해진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뭔가를 알고 있단 말이오?”

“물론 알고 있지.”

제갈순은 정천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거짓인지 진실인지 가늠해 보려는 행동이었으나, 늘 그랬듯이 알 수 없다는 것만 깨달을 따름이었다.

‘정말 속을 파고들 수 없는 눈이다.’

정천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저 눈동자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세상 누구보다도 교활하고 의뭉스러운 눈동자가 아닐까 싶었으니까.

제갈순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운을 뗐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소?”

“간단한 거라면.”

“지난번 장로들의 실종과 이번 마교도의 움직임에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소.”

제갈순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선문답이오? 뭔가 제대로 된 답을 기대한 내가 멍청이로군.”

“뭐,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거요. 예컨대 장로들이 마교도에게 붙은 것인가 하는 질문이라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 반면 장로들이 사라진 것과 마교도들이 움직인 것이 같은 연유 때문이냐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고.”

제갈순의 표정이 그제야 진지해졌다.

“그 말, 확실한 거요?”

“내가 거짓말을 할 것 같소?”

그렇다는 말이 제갈순의 목구멍까지 치솟았다가 내려앉았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닐지도.’

정천이 많은 것을 숨기고는 있다지만, 어쨌든 거짓말을 하진 않았던 것 같았다. 어쩌면 너무나 감쪽같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천이 뭔가 알고 있으리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군사인 제갈현을 만나려 하진 않을 테니.

제갈순은 두 손을 깍지 끼고서 대답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주선하리다.”

“그렇게 믿고 있지.”

정천은 할 말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에게 제갈순이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그런데 이제 와 형님을 만나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할 얘기가 있었다면 예전에도 기회가 있었을 텐데.”

“간단하오. 이제야 털어놓을 생각이 들었거든.”

“털어놓다니? 무엇을 말이오?”

정천은 대답하지 않고서 방을 나섰다. 제갈순은 그의 뒷모습을 그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볼 따름이었다.

* * *

‘이제 승부수를 던질 때가 됐다.’

와룡장을 나서며 생각하는 정천이었다.

장로들을 해치우고 마교를 움직여 가며 천무맹을 흔들어 놓았다.

그 여파는 평범한 이들보다도 천무맹의 실세들을 당혹케 했다.

엄밀히 말해 장로들의 실종은 보통 무인들에겐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는다. 실감하기엔 너무 먼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마교도의 접근 역시 마찬가지. 불안감을 유발하긴 한다지만 그게 전부다. 실질적인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반면 천무맹의 실세, 즉 윗대가리들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그들은 엄밀히 말해 정치꾼들이다. 무인 집단인 문파들의 연합인 천무맹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와도 같기에.

또 다른 국가가 영역을 침범했다. 국가의 중진 중 여럿이 사라졌다.

그들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때에야말로 진정한 속내가 드러나는 법. 그렇기에 정천은 군사 제갈현을 만나려는 것이었다.

적이라면 가장 까다로운 인물이 될 수 있고, 아군이라면 가장 든든한 인물이 될 수 있기에.

무엇보다도 팔부혈선의 실체에 접근하려면, 그 누구보다도 그를 만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럼 이쪽 일은 이제 됐고.’

정천은 걸음을 옮겨 황룡성의 시가지 쪽으로 향했다.

지금 그가 향하려는 곳은 매화장.

화군장로 백운신을 만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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