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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章 다시 황룡성으로 (39/146)

第四章 다시 황룡성으로

어두운 방 안.

모용훈이 드러누운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젖어 있었고, 몸에서 발하는 연기가 연공실 공기까지 데우는 듯했다.

모용린은 말없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하는 일은 그저 물에 적신 헝겊으로 오라비의 얼굴 등을 닦는 정도였다.

끼익.

문이 살짝 열리며 모용준이 들어섰다. 새 물과 헝겊을 가져온 것.

그는 모용린이 쓰던 헝겊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역시 시커멓게 변했구나.”

“그래요.”

모용린의 헝겊은 더러운 것을 닦아 낸 양 시커멨다. 모용훈의 몸에서 흘러나온 이물질이 묻은 것이다.

“이건 마치…….”

모용준이 말을 하려다 말았다.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모용린은 반면 담담한 편이었지만.

“꼭 환골탈태하는 것 같죠?”

모용준이 살짝 움찔했다가 한숨을 뱉었다.

“직접 본 적도 없잖느냐.”

“일어나는 현상 등에 대해서는 서적이나 얘기를 통해 알고 있어요. 체내의 이물질을 배출하고 뼈마디와 근골 등을 보다 이상적인 형태로 재구축하죠.”

“이물질을 흘린다는 것까진 같다만, 속단하긴 이르지 않겠느냐?”

모용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덧붙였다.

“고작 네게 당한 정도로 환골탈태 같은 일이 생길 리도 만무하고.”

모용린은 실소를 지었다. 연공실 안이 어두웠기에 모용준은 보지 못했지만.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하하, 그렇지? 어쨌든 이거 받아라.”

모용린은 모용준이 건네는 헝겊을 받아 들었다. 모용준은 시커먼 물이 담긴 대야를 새것으로 교체한 후 밖으로 나섰다.

그의 등 뒤에다 모용린이 물었다.

“바깥은 어떤가요?”

그녀는 며칠 동안 모용훈을 간호하고 있었다. 소량의 식사를 하거나 잠시 눈을 붙일 때 빼고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지켜보는 모용준이 걱정이 될 정도.

여하간 그러는 동안 모용가의 천무맹 지부인 북풍장의 일은 모용준이 도맡고 있었다.

그래 봐야 하는 일 자체는 거의 없었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모용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너나 형님께 해가 될 일 따위는 하고 있지 않으니. 이제 와 가주 자리에 욕심을 낼 생각도 없고.”

모용린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그러하냐?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모용준 역시 표정을 굳혔다.

“형님께선 깨어난 이후가 나는 걱정이다.”

“…….”

“이번에야 요행이 있어 어찌 제압했다지만, 다음에도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게다. 게다가 네게 당한 경험이 있으니 형님께서도 더욱 악랄하고 치밀해질 게 분명하다.”

“아마도 그렇겠죠.”

남매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던 중 모용준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 사내가 큰 도움을 주었다지?”

“네?”

“린아, 네가 말하지 않았었느냐? 그자가 검로를 모두 간파해 주었기에 형님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아.”

그제야 모용린은 자신이 했던 거짓말을 떠올렸다.

실질적으론 정천이 다한 일이지만, 어쨌든 모용준은 그녀가 정천의 도움을 받아 모용훈을 상대할 수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얘기를 왜 하시죠?”

“왜긴, 이렇게 된 이상 그의 도움을 더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모용린은 침묵했다. 그녀의 동요를 눈치채지 못한 모용준이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너도 그의 능력에 눈독을 들였지 않았느냐. 그리고 이번 일로 그게 옳았음이 증명된 셈이고 말이다.”

“오라버니, 그게…….”

“걱정 말거라. 세가 전체가 상대라면 모를까, 북풍장의 사람들 정도는 내가 설득할 수 있다. 그들도 정천 선배의 실력을 본다면 납득할 테고.”

혈풍대 소속인 모용준은 정천을 선배라고 부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일로 그에게 상당히 빠지게 된 모양이었다.

“그를 북풍장의 외부 교관으로 초빙한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너 역시 형님을 상대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테고.”

“…….”

모용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용준의 말은 상당히 그럴싸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옳기도 했고 말이다.

정천의 지식은 방대하다. 그리고 모용준은 모르지만, 그는 천무맹 내에서도 수위에 달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태양혈반개법의 부작용으로 인해 심화(心火)에 빠졌던 모용훈.

그의 실력은 어지간한 문파의 수장 급이라 해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현재의 모용린 역시 마찬가지.

정천은 그런 모용훈을 가지고 놀 듯했다.

대체 어느 정도의 실력을 더 숨기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천을 끌어들이는 건 실수일지 모른다. 그는 제멋대로이고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을 사내니까.

모용세가의 구애를 이미 거절한 바가 있으니, 다시 부탁하는 것은 짜증만 불러일으키게 될지 몰랐다.

“생각은 해 보겠어요.”

“흐음, 그다지 끌리지 않는 게냐?”

모용준은 맥이 풀린 듯 반문했다. 그의 입장에선 모용린이 여전히 정천을 못마땅해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분이 꽤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실력보다도 본인의 의사가 더 중요하니까요. 그는 아마 우리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설득을 해 볼 필요는 있지 않겠니?”

“아마 힘들 거예요.”

그녀가 이렇게까지 딱 잘라 말하는데 모용준으로서도 별수가 없었다. 그는 한숨을 뱉고서 화제를 돌렸다.

“알겠다. 그나저나 나는 당분간 자리를 비우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무슨 일이 있나요?”

“음, 호출을 받게 됐다.”

모용준의 어조가 은밀해졌다.

“대주님께서 혈풍대를 전원 소집하셨다. 곧 대규모의 작전이 있을 모양이다.”

영민한 모용린은 그 말만으로도 대강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마교도 추적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요.”

“음, 놈들의 교란책에 당했다. 이, 삼조와 함께 갔던 비영대원들이 실종된 모양이야.”

“그렇군요.”

“군사도 대주님도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양이더군. 어쩌면…….”

모용준이 몸서리를 살짝 치고서 말을 이었다.

“마교와의 전쟁이 재개될지도 모른다.”

“…….”

“그런 일이 오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다만, 어쨌든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야겠지. 혈풍대는 내일 바로 떠날 예정이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모용린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보는 모용준이 도리어 불안했다.

“괜찮겠느냐? 만일 그사이에 형님께서 깨어나신다면 큰일인데.”

평소의 모용린이었다면 차갑게 받아쳤을 것이다. 그건 모용준이 있든 없든 차이가 없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의 모용린은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처리하겠어요.”

“응? 그, 그래. 너만 믿겠다, 린아야.”

모용준이 약간 당황한 듯 더듬더듬 말했다. 모용린은 의아한 눈으로 오라비를 바라봤다.

“작은 오라버니?”

“응?”

“왜 그러시죠?”

“아니, 그게 말이다.”

모용준은 뭐라 대답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네가 좀, 착해진 것 같구나.”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실언을 했군. 그냥 마음에 담아 두지 말아라.”

모용준은 도망치듯 연공실을 빠져나갔다.

모용린은 한동안 그의 마지막 말을 곱씹고 있었다.

같은 시각.

혈풍대주 유자서는 천무맹의 환락가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한 사람을 찾기 위함이었다.

“아잉, 어르신. 이리로 오지 않겠어요?”

“자자, 오시는 손님 모두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드리겠습니다. 우리 유엽루로 오세요!”

곳곳에서 향긋한 분내와 술 냄새가 풍긴다.

기녀들의 교태와 점소이들의 호객 소리에 귀청이 떨어질 것 같다.

유자서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그건 그가 찾으려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분은 이곳 어딘가에 계실 거다.’

그 사람의 버릇 중 하나였다. 가장 시끄러운 곳에서 가장 고요하고 진중하게 앉아 한 잔 술을 마시는 것.

그는 기분이 좋을 때마다 그러고는 했다.

유자서는 가장 시끄러운 기루를 찾아들어 갔다. 점소이의 사탕발림을 무시한 채 루주를 곧장 찾아가 대뜸 말했다.

“나 혈풍대주다.”

“예?”

루주는 뭐 이런 놈 있냐는 눈으로 유자서를 보았다. 그러다가 서슬 퍼런 유자서의 눈빛에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혹시 객 중에 기녀도 부르지 않고 혼자서만 술을 마시는 이가 있는가?”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인지…….”

“찾아보도록.”

짤막히 말하고는 팔짱을 낀 채 기다리는 유자서였다. 루주는 이거 미친놈 아닌가 하다가 그의 허리춤에 걸린 철패를 보고는 마음을 바꿨다.

‘혈풍패!’

분명했다. 언젠가 혈풍대원 몇 명이 찾아왔을 때 본 적이 있었다.

루주는 급해져서 점소이들을 총동원했다. 마음속으론 제발 유자서가 말한 인물이 없기를 바라며.

사실 일급 기루쯤 되는 곳까지 와서 여자 한 명 끼지 않은 채, 그것도 홀로 앉아 자작자음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기루 쪽에서도 싫어하기에 적당히 눈치를 주어 쫓거나 어떻게든 기녀를 붙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예외도 분명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런 예외가 있는 날이었다.

“있습니다. 저자가 말한 것과 부합되는 사람이.”

점소이의 말에 루주는 긴장했다.

혈풍대주라는 작자가 찾는 이가 맞아도 문제고 아니어도 문제였다.

자칫하면 시비가 붙거나 싸움판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뭐라 하기도 전에 유자서가 나섰다.

“안내해라.”

“예, 예이!”

점소이가 황급히 앞장섰다.

루주의 간절한 눈빛보다도 유자서의 서슬 퍼런 눈빛이 더 무서웠기에.

점소이는 곧장 유자서를 방 앞까지 안내했다. 유자서가 단번에 문을 박차고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의외로 그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기감을 통해 내부의 인물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는 루주가 걱정한 것보다 세심하고 주의 깊은 인물이었다.

별안간 그의 눈빛이 빛났다.

‘찾았군.’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태산처럼 고요하고 하해처럼 잔잔하지만, 언제라도 태풍과 뇌운처럼 맹렬히 몰아치게 될 이 기운.

유자서의 입이 열렸다.

“대작(對酌)을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잠시 기다리니 안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무슨 일로 왔나?”

“대주님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대주가 아닐세.”

“정정하지요. 선배님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유자서가 곧장 덧붙였다.

“그들과 관련된 일입니다.”

짧은 침묵 뒤로 대꾸가 들려왔다.

“일단 들어와 보게.”

유자서가 성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점소이와 루주의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방 안에선 뇌혈도 장유추가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수라상 같은 안주가 탁상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중에 그가 손을 댄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분이 무척 좋으셨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꼭 그렇지만도 않네.”

약간 투덜대는 듯한 느낌. 유자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자와 결판을 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우신 모양이군요.”

“오십 합만 더 겨뤘어도 그 떠벌이의 머리통을 쪼갤 수 있었을 것이다.”

천하의 마교 칠절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장유추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유자서가 그를 찾아온 이유였고.

“그럴 기회를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장유추는 일언반구 없이 술만 들이켰다. 유자서가 그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마교도들을 추적하던 중 사고가 있었습니다. 정예 비영대원들이 실종됐고 혈풍대 역시 큰 굴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

“군사는 혈풍대 전원을 소집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준 셈이지요.”

“제갈현답군.”

얼핏 칭찬처럼 보이는 말. 그러나 장유추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그에 맞는 대응만 하려고 하지.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고 위험한데도 말이야. 군사 노릇을 이렇게나 해먹었어도 여전히 샌님에 불과하다.”

천하의 천무맹 군사를 업신여기는 말. 다른 누구였다면 대번에 유자서가 목을 갈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뱉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뇌혈도 장유추.

유자서로서도 그저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군사도 우리도 적의 실력을 오판했습니다.”

“그럴 테지. 직접 병기를 맞대 보지 못했으니까. 무인이 무기도 없이 적의 재량을 측량하려 하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네.”

유자서로선 조금 억울한 면이 있는 말이었다. 그들이 마교도에게 당한 것 책략의 측면이지 무위의 측면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장유추의 말에 반박을 할 엄두 따위는 나지 않았다.

“그러니 선배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더러 무얼 해 달라는 건가?”

“소살도 귀도신마를 맡아 주십시오.”

장유추의 눈빛이 순간 서늘해졌다. 유자서는 내심 심호흡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확인한 바 마교도의 숫자는 얼추 잡아도 백여 명. 거기에 칠절의 일인까지 있는 이상 혈풍대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그 정도 마교도조차 상대할 수 없단 말인가?”

“만전을 기하려는 것입니다. 한 놈도 우리의 손을 빠져나갈 수 없도록.”

“흐음.”

장유추가 턱을 쓰다듬었다.

유자서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하려는 것이다.

한 명의 마교도도 남기지 않은 채 척살하려는 것.

그러려면 귀도신마의 존재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신마 자체야 유자서가 어찌 상대할 수 있다지만, 그렇게 되면 나머지 마교도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커지니까.

‘그 싸움질만 아는 놈들이 과연 도망칠 궁리를 할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장유추로선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사실 귀도신마와의 재대결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왠지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천무맹의 명령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장유추가 고심하고 있다는 것은 유자서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어 그를 설득했다.

“선배님께서는 그저 그를 상대할 때만 도움을 주시면 됩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일절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음.”

“원하신다면 제갈 군사에게도 귀띔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 혈풍대만의 행적으로 해 두겠습니다.”

얼핏 보면 공로를 가로채겠다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것에 연연할 장유추도 아니고 그럴 의도가 있는 유자서도 아니었다.

장유추는 그럼에도 한참을 고심했다. 다름 아닌 한 가지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정천, 그 친구부터 만나 봐야 할 텐데.’

추적 작업은 꽤나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기 전에 비무나 한판 더 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요 며칠 동안 정천의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화륜문을 찾아가 봐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대답만을 들을 따름.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었다.

“어쩔 수 없지.”

조금 이상하게 운을 뗀 장유추가 말했다.

“자네의 말대로 함세.”

유자서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입니까, 선배님?”

“이런 일로 농이라도 할 것 같은가?”

“아닙니다.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선배님이 함께해 주신다면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같을 겁니다.”

“못 본 새에 입 발린 소리를 하는 것만 배웠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가히 싫지만은 않은 듯한 장유추였다. 그는 큼직한 술잔을 유자서에게 건네어 술을 따라 주었다.

“쭉 들이키게. 추적 작업에 들어가면 한동안 마실 일이 없을 테니까.”

“예, 선배님도 쭉 들이키십시오.”

두 사내는 잔을 맞부딪치고 술을 들이켰다. 술맛 자체도 뛰어났지만, 오랜만의 전장행인 만큼 그 맛이 더욱 각별했다.

앞으로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 * *

정천은 일단 무릉현에 들러 담미화를 다시 깨웠다.

“회복되는 대로 황룡성으로 돌아오도록 해. 난 먼저 돌아가 있겠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말 그대로야. 마교 사람들은 아마 오늘부로 이곳을 떠날 거다.”

담미화는 당황한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그럼 저는……?”

“방금 말했잖아. 회복되는 대로 화륜문으로 돌아오도록 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정천이었다.

“지금쯤이면 너와 다른 비영대원들은 모두 행방불명 처리되었겠지. 쉽게 말해 죽은 사람 취급을 받게 됐을 거야. 잘된 일이지?”

“…….”

과연 그게 잘된 일일까 싶은 담미화였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문도들 앞에서 은신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다른 의미로 세간의 눈을 피해야 하겠지만.”

정천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제 그녀는 비영대와의 모든 연을 끊어야 했다.

비영대원으로서의 그녀는 마교도 추적 과정에서 죽은 셈이니까.

그의 말마따나 생각만큼 나쁜 일은 아니었다.

도리어 홀가분하기도 했으니까.

“정천 님, 저는…….”

담미화는 머뭇거렸다. 고맙다는 말을 꺼내고 싶은데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천이 픽 웃었다.

“고마워 죽겠지?”

“…….”

“어쨌든 푹 쉬고 돌아오라고. 뭐, 아예 새 삶을 찾아서 떠난다고 해도 뭐라 하진 않겠어. 어찌 보면 그쪽이 네겐 더 나을지도 모르지.”

담미화는 쓴웃음을 지었다.

새 삶. 고향도 없고 친인척도 없는 그녀로서는 먼 나라의 일이나 다름없었다.

“정천 님도 그럴 수 있었을 텐데요.”

“응?”

“용검대나 천무맹의 일에서 벗어나 새 삶을 찾을 기회가 몇 번이고 있었을 텐데요. 그런데도 그러지 않고 돌아오셨죠.”

“뭐, 나야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달리 돌아갈 곳이 없어서 새 삶을 찾을 수 없어요. 화륜문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버렸고요.”

그녀는 정천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회복되는 대로 찾아가겠습니다.”

“좋을 대로 해.”

시큰둥하게 대꾸한 정천이 방을 나섰다. 그래도 담미화는 왠지 그가 웃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정천은 객잔주에게 며칠치의 숙박료를 치르고는 의원을 한 명 고용했다.

돈을 두둑이 지불한 만큼 담미화를 제법 극진히 치료할 것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그녀에 대한 처리를 마친 정천이 황룡성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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