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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章 귀도신마와의 대면 (37/146)

第二章 귀도신마와의 대면

흑일령이 느낀 놀라움도 상당했지만 귀도신마의 경악에 비할 수는 없었다.

적의 존재를 미처 간파하지 못했다.

똑같은 사실이라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한쪽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라면.

“네놈은 뭐냐?”

흑일령이 물었을 때, 정천은 담미화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우선은 회기영술로 심각한 상처들만 처리했다. 그 외의 상처는 대강 헝겊으로 묶어 지혈했다.

그게 모두 끝나고, 담미화를 적당한 자리에 눕힌 뒤에야 정천이 몸을 돌렸다.

흑일령은 이를 악물었다.

조금 전, 못해도 수십 번은 더 공격할 틈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멍청하게 다 날려 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을 자각하니 이유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네놈은 누구냐고 물었다.”

흑일령의 목소리는 거의 으르렁거리는 수준이었다. 정작 정천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고.

“너희를 부른 사람.”

“뭐야?”

“나는 황룡성에 있다.”

“……!”

일흑령의 눈동자가 절로 커졌다. 이는 분명 귀암산으로 날아들었던 핏빛 서신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그래. 내가 당신들에게 그 서신을 보냈다.”

일흑령은 기가 막혀 입만 벙긋거렸다. 어떻게 저런 놈이 강룡단 전용의 서신을 보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때 누가 일흑령을 옆으로 밀어냈다. 어느새 앞으로 걸어 나온 귀도신마였다.

그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평소의 것이 장난처럼 보일 정도의 살기 어린 광소였다.

“네놈이 대(大)천마신교를 농락했단 말이렷다?”

“표현이 좀 적절하지 못한 것 같군. 딱히 곯려 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니까.”

“그럼 대체…… 아니, 됐다. 네놈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우린 동지를 찾아 이곳까지 왔으니 말이다.”

우우우웅!

귀령도가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에 맞추어 귀도신마의 등 뒤로도 거대한 어둠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귀도신마가 귀령도를 겨누었다.

“네놈은 우리의 기대를 무너트렸다. 그 죗값은 목숨으로밖에 거둘 수 없겠지.”

정천은 피식 웃었다.

“말로 하자고 해도 통하지 않을 분위기로군.”

“일단 네놈의 목을 베고 난 뒤에 변명을 들어 주도록 하마!”

귀도신마가 곧장 신형을 날렸다. 귀령혈섬의 기운이 정천을 향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정천은 전각을 밟으며 우권을 뻗었다. 귀도신마가 손속에 여유를 상당히 두었던 만큼, 정천으로서도 굳이 전력으로 맞설 필요까진 없었다.

콰아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순간적으로 두 기운이 충돌한 자리에 움푹한 고랑이 파여 나갔다.

짧은 순간, 귀도신마는 내심 감탄했다.

‘강하다. 감쪽같이 기척을 숨겼던 게 우연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그 순간 귀령도에 실린 기운이 한층 강렬해졌다. 동시에 정천 역시 표정을 굳혔다.

‘어쭙잖게 상대하다간 낭패를 본다.’

귀도신마의 실력은 장유추에 필적하는 수준. 마인 특유의 흉포함을 생각해 보면 공격력만큼은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정천으로서도 여유만 부릴 수는 없었다.

스르르륵.

정천의 오른팔에 흑색 기운이 감돌았다. 그 순간 귀도신마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기운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동시에 무척이나 낯설기도 했다.

실로 역설적인 느낌.

그러나 의아해하기엔 여유가 부족했다. 이미 두 사람의 거리는 지척이었던 것이다.

“차앗!”

귀도신마가 선공에 나섰다. 반준을 절명시켰던 흑무령섬이 재차 펼쳐져 정천의 목을 노렸다.

그 순간 정천의 눈자위가 흑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허공에 구현되는 강룡검.

카아앙!

흑무령섬의 기운과 강룡검이 충돌했다. 놀랍게도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은 흑무령섬 쪽이었다.

“웃!”

당황한 귀도신마가 우선 거리를 벌렸다. 정천의 손에 들린 흑색 검이 내뿜는 귀기가 심상찮았던 것이다.

‘검강? 하지만 저런 식으로 검강이 구현될 수가 있었던가?’

당황하는 새 정천이 날린 검기가 귀도신마에게 쇄도했다. 귀도신마는 반사적으로 귀령도를 들어 검기를 막으려 했다.

그 순간 흠칫하는 느낌이 다시 들었다.

‘어설프게 막았다간 귀령이 끊어진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느낀 귀도신마가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도기를 두른 다음에야 귀령도를 내뻗을 수 있었다.

까아앙!

두 기운이 충돌하며 귀도신마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동시에 뻐근해져 오는 손목.

“…….”

귀도신마는 황당함마저 느끼며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로 밀린 것이 얼마만이던가?

귀도신마는 장난기가 사라진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네놈, 보통내기가 아니로구나.”

“이제라도 알았다니 다행이군.”

“그런 실력을 지니고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니, 놀랄 일이로군.”

“이름이 알려질 기회가 없었지. 땅속에 파묻혀 있었으니까.”

“뭐라고?”

귀도신마는 의아함을 느꼈다. 설마 죽어서 무덤 속에라도 있었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을 테고…….’

그 순간 귀도신마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 정천에게서 느껴졌던 익숙한 기운을 대입해 보니, 이내 답이 나왔다.

귀도신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놈, 혹시 진마동의……?”

“그래.”

고개를 끄덕인 정천이 대답했다.

“내 이름은 정천. 용검대 제삼조장이자 진마동 토벌대의 일원이었다.”

“……!”

귀도신마는 물론, 일흑령을 비롯한 흑령대원들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던 것이다.

“그, 그렇다는 건…….”

귀도신마의 목소리가 절로 떨렸다.

“강룡단원들 중에도 생존자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

정천이 씁쓸히 고개를 저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나 혼자다. 강룡단도 용검대도 모두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귀도신마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믿을 수 없다. 네놈의 말을 어떻게 믿으란 것이냐?”

“내 기운에서 강룡단의 흔적을 읽었을 텐데?”

“그 정도야 조작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터. 우리를 교란하고자 훈련을 받은 것이라면…….”

결코 논리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얘기다. 현실을 부정하고자 말도 안 되는 억측을 내놓는 귀도신마였다.

“뭐, 그렇게 나온다면.”

정천이 피식 웃었다.

“두 눈으로 확인시켜 줄 수밖에.”

“뭐야?”

탓!

정천이 땅을 박찼다. 그의 몸이 순간 일직선으로 길게 늘어지듯 귀도신마를 향하여 튀어 나갔다.

귀도신마가 익히 알고 있는 보법이었다.

“이건…… 천마보!”

마교 최고의 보법 중 하나인 천마보. 이를 익힌 사람은 강룡단원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 핵심 구결 역시 철저하게 지켜졌었던 만큼, 정파 놈들이 아등바등한다고 익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놀랄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쉬릭!

천마보로 귀도신마의 지척까지 접근한 정천이 왼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일순 그의 주먹이 붉은빛 포말을 흘리며 귀도신마를 향해 쇄도했다.

마교일권으로 불리는 적륜권(赤輪拳)의 초식이었다.

“큭!”

귀도신마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귀령도를 들어 올렸다.

터엉!

검의 옆면이 아닌 날로 방어를 했는데도 검신 전체가 찌르르 울렸다.

귀도신마가 한 걸음 물러났다. 정천 역시 한 걸음 물러나서는 선혈이 흐르는 주먹을 핥았다.

“명도는 명도로군. 그대로 부숴 버릴 생각이었는데.”

“으음.”

귀도신마는 침음을 삼켰다. 정천이 펼친 두 무공 모두 강룡단원이 아니고서야 익힐 엄두도 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두 가지 모두를 익혔다는 건, 분명 강룡단과의 접점이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는 건, 정녕 그들이 모두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말인가?’

귀도신마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이었다.

그들 모두가 무사히 돌아오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설마 한 명도 남김없이 진토가 되었을 줄이야.

귀령도가 스르르 늘어졌다. 귀도신마의 얼굴에서도 종전의 광기가 사라졌다.

“자네, 토벌대의 유일한 생환자라 했던가.”

“그렇소.”

“그들…… 강룡단원들의 무공을 익힌 것을 보니, 필시 보통 사이는 아니었던 듯하군.”

정천의 눈빛이 조금 깊어졌다.

“피를 나눈 사이와 같았소.”

“그랬던가? 그랬군. 그렇다면 우리를 불러낸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군.”

귀도신마는 귀령도를 완전히 회수해 검집에 넣었다. 흑령대원들 역시 무기를 회수했다.

“그들의 마지막에 대해 듣고 싶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귀도신마의 물음에 정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당신들을 불러들인 거였소.”

“그랬군. 우린 그것도 모르고 실례를 해 버렸군.”

귀도신마는 비영대원들의 시체를 돌아보았다. 이들을 감쪽같이 처리하긴 할 테지만, 천무맹 측과의 사이가 악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네의 잘못도 있네. 처음부터 모습을 드러냈다면 이런 사고는 없었을 것이네.”

정천은 피식 웃었다.

“내가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지부터 생각하는 게 먼저 아니겠소?”

“음? 그게 무슨 말인가?”

“뭐, 천천히 얘기하면 되겠지. 어쨌든…….”

정천은 뒤로 걸어가 담미화를 들어 올렸다.

“우선은 이 녀석을 좀 치료했으면 하는데.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최소한이었으면 좋겠소만.”

귀도신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대화를 하는 건 나와 자네, 둘이면 충분하겠지.”

그는 흑일령을 돌아보고는 명령했다.

“자네들은 이곳의 뒤처리를 한 후 약속 장소로 먼저 가서 기다리게. 내가 곧 뒤따라감세.”

“저희들 먼저 말입니까?”

“그렇다네. 저 친구와는 나 홀로 대화를 나누고 싶군.”

흑일령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역시 정천의 정체나 진마동 토벌대에 대해 호기심이 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명령을 어길 순 없는 일. 더군다나 그것이 칠절이 내린 것이라면 더더욱 지켜야 했다.

“아, 그리고 말일세.”

귀도신마는 나직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혹여나 따로 상부에 보고할 생각은 말게.”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일은 내가 저 친구와 대화를 해 본 후 직접 보고할 것이네. 그러는 편이 서로 간에 더욱 편할 것 같아서 말일세.”

돌려 말하긴 하지만 결국은 함구령이었다. 물론 어겼다간 칠절의 분노에 맞서게 될 것이다.

흑일령은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고맙군.”

싱긋 웃은 귀도신마가 정천을 돌아봤다.

“근방의 고을로 가서 의원을 찾도록 하세. 그 소저의 상처를 치료하려면 그 편이 빠를 것이네.”

* * *

“이런 빌어먹을!”

혈풍대 이조장인 낙유성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혈풍대의 이조와 삼조는 낯선 숲에서 길을 잃은 상태였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비영대의 전서구도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두 눈을 잃고서 덩그러니 버려진 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더욱 답답했다.

“비영대 놈들이 미친 건가?”

정신이 나간 비영대가 혈풍대를 엿 먹이려고 작정한 것일까?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반준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가 정말 미친놈이었다면 제갈현이 미연에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낙유성이 아는 반준은 결코 미친 작자가 아니었고.

그렇다는 건 한 가지 사실만을 의미했다.

“방해 공작이 있었던 것인가?”

낙유성은 마지막 서신에 대해 떠올렸다. 필체 쪽엔 조예가 없으니 그렇다 쳐도, 그 진행 방향이란 게 그 전까지와 너무나 달랐다.

만약 그게 마교에 의한 교란책이었다면, 그들은 정말 크게 당한 것이었다.

“에잇, 일단은 되돌아가 비영대부터 수색하자!”

지금쯤이면 비영대 역시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혹은 적의 함정에 빠졌을지도…….’

낙유성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눈뿐 아니라 귀와 코까지 잃는 셈이었다.

당연히 임무 자체도 실패하는 셈.

“그렇게 둘 순 없다!”

당황한 낙유성과 혈풍대원들은 반 시진 전의 자리로 돌아가 수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비영대의 흔적을 찾을 순 없었다.

애초에 추적이 전문도 아닌데다, 이미 흑령대에 의한 증거 인멸이 끝난 뒤였던 것이다.

결국 낙유성은 황룡성으로 회군하기로 결정했다. 괜히 시간만 축내느니 욕을 좀 먹더라도 얼른 알리고 대책을 꾀하는 편이 나았다.

천무맹 수뇌부는 이내 큰 혼란에 빠졌다. 물론 그 혼란이란 전적으로 군사부와 비영대의 것이었다.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단 말이냐!”

혈풍대주 유자서가 벌게진 얼굴로 탁상을 내리쳤다. 탁상은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둘로 쪼개져 버렸다.

낙유성은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멍청한! 놈들의 교란책에 그리도 간단히 넘어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어리석은 소관을 문책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아도 그럴 셈이다!”

유자서는 두 주먹을 으스러지도록 불끈 쥐었다. 당장이라도 낙유성을 두들겨 팰 것 같은 기세였다.

비교적 침착한 음성이 그를 말렸다.

“문책은 조금 뒤로 미루도록 하시오, 유 대주. 우선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요.”

“하오나 군사, 최정예 비영대원들을 잃은 것은 크나큰 손실이 아닙니까?”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잖소. 게다가 저들을 과소평가하고 일을 쉽게 생각한 우리의 잘못도 크오.”

“으음.”

천무맹 군사 제갈현이 낙유성을 돌아봤다.

“피 냄새나 전투의 흔적 등은 감지하지 못했나?”

“반경 십여 리를 샅샅이 뒤져 봤습니다만, 전혀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들의 인멸 작업이 뛰어났던 것인지 뭔지 감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무엇도 확신하기 힘든 상황이군.”

제갈현은 턱을 괸 채 침묵했다. 이번만큼은 그로서도 판단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제갈현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두는 것이 좋겠소.”

“그 말씀은, 비영대원이 모두 전멸했다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 같소.”

제갈현은 유자서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유 대주, 혈풍대 전원을 동원할 수 있겠소?”

유자서의 두 눈이 순간 빛났다.

용검대의 뒤를 이어 천무맹 최강 타격대의 이름을 물려받은 이래, 혈풍대의 전력 전부가 출진하는 것은 최초였다.

“무엇을 하면 되겠소?”

“무엽과 함께 그들의 흔적을 추적하시오. 비영대가 되었든 마교도가 되었든 그들을 발견한다면…….”

제갈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전원 격멸하도록 하시오.”

유자서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체면치레를 할 기회를 주신 데에 감사드리오, 군사.”

“대주만 믿겠소.”

“물론이오. 맡겨 주시구려.”

유자서가 예를 표하고는 군사실을 나섰다. 낙유성이 쭈뼛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홀로 남은 제갈현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이로 인해 마교와의 전면전이 벌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상황이 누군가에 의해 획책된 것 같다는 느낌을 버리기가 힘들군.”

잠시 침묵하던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설마 ‘그들’이 수를 쓰는 것인가?”

* * *

정천 일행은 무릉현이란 작은 마을에 머물기로 했다. 그곳 객잔의 방을 빌리고는 정천이 직접 약재를 구입해 담미화를 간호했다.

담미화는 정신을 잃은 지 사흘 만에 깨어났다. 회기영술의 영향으로 상처는 빨리 아물었으나 체력은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다.

그녀는 침상에 누운 채 정천을 응시했다.

깨어나서 처음으로 꺼낸 말은 질문이었다.

“일부러 그런 거죠?”

“응?”

정천이 의아한 듯 쳐다보자 담미화가 말했다.

“비영대원들 모두가 쓰러질 때까지 일부러 기다린 거였죠? 그들이 당신의 정체를 알면 곤란할 테니까요.”

“…….”

“자기 손으로 직접 처리하기는 찝찝했나요? 그래서 마교도들이 처리할 때까지 기다린 거였나요?”

질책이나 힐난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저 평소의 그녀처럼 침착하고 나직한 말투였다.

정천은 뭐라 대답할까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만일 그렇다면, 날 원망할 건가?”

담미화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나 역시 죽었을 테니까.”

“내가 마교도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죽을 위험 자체가 없었겠지.”

“어차피 우리의 삶은 항상 죽음과 밀접해 있어요. 여느 무인들이 그런 것처럼.”

“어째 날 위로하려는 것 같은 말투로군.”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내가 운이 좋구나 싶을 따름이죠.”

담미화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우스운 일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떨어지던 제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으니.”

“그건 간단해. 네 실력이 그중 가장 뛰어났거든.”

“네?”

정천이 피식 웃었다.

“너 자신은 자각하지 못했겠지만, 네 실력은 날 만난 이래로 상당히 성장했어. 추적과 은신 쪽이 아닌 전투 쪽이란 게 특이점이지만.”

“그런…….”

“금제들을 겪으며 담력이 세졌고 순발력과 냉정함을 기르게 되었지. 그것만으로도 사지에서의 생존 능력은 일취월장하게 돼.”

“…….”

“그리고 난 네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리란 걸 확신했어. 여차하면 나설 생각이었고, 네가 오래 버텼기에 마지막 순간에 나선 것뿐이지.”

담미화는 한참 말을 고르다가 농담조로 말했다.

“어째 절 위로하려는 것 같은 말투네요.”

“좋을 대로 생각해.”

피식 웃으며 정천이 말했다. 담미화도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만 더 쉴게요.”

“그러도록 해. 몸도 회복해야 할 테니.”

그녀는 이내 혼절하듯 잠에 빠졌다. 정천은 그제야 몸을 일으키고서 방을 나섰다.

바깥에선 귀도신마가 벽을 등을 지고 서 있었다.

“그 소저가 깨어난 모양이군.”

“예. 바로 다시 잠들었습니다만.”

“그렇군. 그럼 이제야 얘기를 나눠 볼 수 있겠어.”

귀도신마의 말에 정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사흘 동안에도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귀도신마 측에서 도리어 거부를 했다.

“그녀가 깨어난 뒤에 얘기를 나누지.”

귀도신마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은 약간의 죄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도 본인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칠절 중에서도 강룡단과의 유대가 상당히 강했던 귀도신마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전멸을 받아들이는 데엔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저나, 얘기는 이곳에서 나눌까요?”

정천의 물음에 귀도신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을 밖으로 향하지. 최대한 이곳에서 떨어진 곳으로 말이야.”

“굳이 그렇게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있고말고.”

귀도신마의 눈매가 순간 날카로워졌다.

“우선은 자네와 다시 한 번 붙어 보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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