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二章 천마 사냥꾼
방을 나선 정천에게 담미화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정천 님, 특이한 소문이 황룡성 내에 들끓고 있습니다.
—특이한 소문?
—예. 마교 무리의 공습이 있었다는 소문입니다.
정천은 크게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왔다 간 건가. 생각보다도 빠른데. 역시 대단하다고 해야 하려나.
—듣기로는 짤막한 일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엔 뇌혈도 장유추 역시 있었다고…….
—그래? 어떻게 알고서 쫓았대? 용한 양반이로군.
—별로 걱정하시는 눈치가 아니군요.
—글쎄. 내가 걱정해야 한다면 과연 어느 쪽을 걱정해야 하지? 뇌혈도 쪽일까, 아니면 귀도신마로 추정되는 쪽일까?
턱을 괸 정천이 담미화에게 물었다.
—역시 찾아온 자는 귀도신마였나?
—문지기들의 증언으론 흑색 검기를 흩뿌리는 중년인이었다고 합니다.
—그것만으론 조금 부족하군. 뭔가 더 없어?
—중년인은 백호문 성문에 무언가 글귀를 남기고 간 모양입니다.
정천의 두 눈이 절로 뜨였다.
—그것이군.
—네. 그날 새매가 그리던 것과 같은 상형문자로 추정됩니다.
—알겠어. 당장 확인해 보지.
정천은 내친걸음으로 바깥으로 향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서 경공을 밟았다. 삽시간에 황룡성의 풍광이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전력으로 달리는 담미화마저 삽시간에 뒤쳐질 정도였다.
해가 완전히 진 밤인지라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천은 이내 백호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 엄청난 숫자로군.”
백호문 근방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횃불을 환히 밝힌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몰려 있었다.
그곳의 구경꾼들을 집행부에서 통제하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곳곳에서 소란이 일었다.
‘그렇다면…….’
정천은 적당한 건물을 골라 지붕 위로 올라갔다. 어차피 초월적인 안력을 지닌 만큼 거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붕에 선 정천이 상황을 살폈다.
집행부원들로 이루어진 인간 벽 너머로 해체된 성문이 보였다.
그 앞엔 깐깐한 인상의 사내가 얼굴을 붉힌 채 연신 무언가를 소리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정천이 실소했다.
“집행부주 군월중이군. 못 본 새 흰머리가 가득해졌는데.”
정천이 활동하던 당시엔 아직 집행부 직속의 수색대를 이끌던 사내였다.
그때에도 이미 깐깐하고 치밀한 성격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도 당시엔 꽤나 신수 훤하던 얼굴이었는데. 저렇게 팍 늙은 걸 보니 왠지 좀 처량해 보이는데.”
“요사이 피로한 일이 많은 모양입니다. 약재부 쪽에 자주 각성단을 청하는 것 같더군요.”
“큼직한 일이 연이어 일어났으니까.”
물론 그중 상당수는 정천 본인이 일으킨 것이었다. 사실 군월중을 하루하루 메마르게 하는 사람은 정천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간단히 일축한 정천이 안력을 돋웠다. 그는 이내 성문에 새겨져 있는 글귀를 읽을 수 있었다.
“너희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으로 오라? 꽤나 추상적인 말을 적어 놓았는데.”
“구체적으로 적어 둔다면 금세 파악될 테니까요. 실제로 군사부엔 강룡단이 사용하던 암호나 문장 등의 기록이 존재합니다.”
“일부러 말을 꼬아 놓았다는 거군. 제법 머리를 썼는걸.”
정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교 측에선 강룡단의 생존자가 서신을 보낸 줄로 알고 있다. 그러니 저 글귀에서 지칭하는 ‘너희’란 강룡단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강룡단이 모든 것이 시작된 곳으로 오라는 말이군.”
“아마도 단체가 창립된 장소 같은 곳이겠네요.”
“그럴 가능성도 높지.”
담미화의 추측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천이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정천은 결국 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
“미치겠군. 그런 얘기까지는 듣지 못했는데.”
“모르시겠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담미화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비영각 안에 자료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겠지. 하지만 괜찮겠어? 너무 자주 들락거리다간 꼬리를 밟힐지도 모르는데.”
“아마도 괜찮을 거예요.”
막연히 대답하는 담미화였으나 정천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달라. 저 내용을 군사부에서 해독하든 하지 않든 간에 내부의 적의 존재를 이미 상정하고 있을 거야.”
“…….”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저 글귀는 암만 봐도 황룡성 내의 누군가에게 전하려는 말로 보였으니까.
“오히려 내부 분열을 조장하려는 계략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요?”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군. 하지만 내부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리란 것은 물 보듯 뻔해.”
담미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당분간은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겠어요.”
“그래.”
정천은 성문 쪽에서 눈을 뗐다. 담미화는 잠시 시간을 가늠해 보고는 정천에게 말했다.
“그럼 물러가 보겠습니다.”
“아, 오늘 임무 시간이 끝났군. 가 보도록 해.”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목례를 한 담미화가 물러났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 비영대 소속인 만큼 정천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거짓 보고를 올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정천과 떨어진 담미화는 비영각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비영대원들은 비영각 내부에 마련된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곤 했다.
“담미화.”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담미화에게 동료 비영대원이 다가왔다.
“대주님께서 찾으셔. 집무실로 가 봐.”
“대주님께서?”
담미화의 가슴이 순간 두근거렸다.
비영대주 무엽. 그의 옥나수정신에 당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했다.
‘당시엔 금제 덕분에 괜찮았었지만…….’
담미화가 옥나수정신을 버틴 데엔 정천의 금제가 큰 역할을 했다.
보다 강력한 공포가 각인되어 있었기에 무엽의 수법에서도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독으로 독을 물리친 셈.
‘하지만 이번엔…….’
더 이상 금제는 없다. 혹여나 또 다시 옥나수정신에 당한다면 속절없이 모든 걸 털어놓게 될 것이다.
담미화는 내심 걱정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을 가장했다. 아직 불확실한 일을 갖고 긁어 부스럼을 낼 필요는 없었다.
“알겠어. 대주님께 찾아가 볼게.”
“그래. 지금 당장 가는 게 좋을 거야.”
담미화는 대주 무엽의 집무실로 향했다.
무엽의 방은 어두웠다. 담미화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다.”
“……!”
바로 옆 귓가에서 들리는 소리. 무엽은 어느새 담미화의 바로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은신술이었다.
담미화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호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음. 네게 명령할 일이 생겼다.”
담미화는 내심 안도했다. 아무래도 뭔가 책잡힐 일이 있었던 건 아닌 듯했다.
그러나 무엽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비영대 이급 요원 담미화, 오늘 부로 네게 걸려 있던 감시 임무를 철회한다. 목표물 갑 정천의 감시를 중단하고 마교 무리의 추적 임무에 가담하라.”
“네……?”
자기도 모르게 반문해 버린 담미화였다. 무엽이 미간을 찡그렸다.
“자네는 능력은 출중한 편인데 사소한 부분에서 실수가 잦군.”
“죄, 죄송합니다.”
담미화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무엽은 혀를 차면서도 별다른 처벌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내일부터 새 임무에 가담하도록.”
“…….”
“마교 무리는 흑령대와 칠절 급 고수 한 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놈들에 의해 동료 여럿이 목숨을 잃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음. 그래.”
무엽은 담미화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간 훌륭히 임무를 완수해 준 것을 대견하게 생각한다.”
“과찬…… 이십니다.”
담미화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자신에 대한 신뢰, 그것을 배신했다는 생각. 더불어 정천과 떨어져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겹치니 판단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눈에 띄게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다행히 무엽은 그 반응을 신입 대원의 혼란 정도로만 생각했다.
“돌아가도 좋다. 내일부터는 다시 임무이니 푹 쉬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담미화는 혼란스러운 가운데 집무실을 나섰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도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 고민은 나만의 몫이 아냐.’
그녀는 비영각 바깥으로 향했다.
혹시나 미행이 따라붙지 않을까 조심하며 화륜문으로 몸을 날렸다.
* * *
모용준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모용린은 몇 번이고 생각해 둔 설명을 꺼냈다.
정천에 대해 말하기엔 위험이 너무 컸기에 적당한 왜곡을 가했다.
“정 대협이 검로를 귀띔해 주었고, 그 검결을 따라 겨우 큰 오라버니를 제압할 수 있었어요.”
“그, 그랬구나.”
모용준으로선 속절없이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기절해 있었던지라 뭔가를 의심할 거리도 없었다.
모용린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이어 갔다.
“그 과정에서 큰 오라버니가 상당한 내상과 외상을 입었어요. 어쩌면 정신적인 면에도 충격이 상당할지도 몰라요.”
“으음…….”
“그래서 일단은 치료를 하려 해요. 하지만 세가에 알려지는 것은 조금 위험할 것 같아요.”
“그건 그렇지.”
모용준은 간단히 수긍했다. 사실 이번 일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밖에 알려져선 곤란한 것 투성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모용린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살짝 축였다.
“우선은 폐관용 연공실에 큰 오라버니를 안치해 두고 치료를 하고 싶어요. 오라버니 생각은 어떻죠?”
“나도 그러는 쪽이 좋을 것 같구나. 그리고 이번 일은 우리들과 화륜문 사람들만의 비밀로 해 두는 것이 좋겠다.”
“물론이에요. 바깥에 알려져서 좋을 일이 없어요.”
“후우.”
모용준은 무거운 한숨을 토했다.
“정말 큰일이구나. 형님이 다친 것은 가슴 아프지만, 깨어난 이후가 더더욱 걱정이다. 얼마나 난리를 치시게 될지…….”
“그러게요.”
모용린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저 기적을 바랄 수밖에요. 큰 오라버니가 잠시라도 정신을 차리는 기적을요.”
* * *
같은 시각.
정천은 담미화로부터 전해들은 얘기에 나직이 한마디를 했다.
“잘됐군.”
“예?”
“결국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얘기 아니야? 네가 내일부터 흑령대 추적에 나선다는 거잖아. 다른 비영대원들과 함께 말이지.”
담미화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정천 님에 대한 감시 작업에선 손을 떼게 됐어요.”
“그 말은 비영대도 더 이상 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소리로군. 당분간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렇겠지요.”
“좋은 일이야. 당분간은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할 수 있겠는데?”
담미화는 내심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리길 바라진 않았지만, 너무 매몰차시네요.’
그녀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동안, 정천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내일부터 너와 함께 다니면 되겠군.”
“예?”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드는 담미화. 정천은 뭐 그리 놀라느냐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 흑령대 추적에 나선다며? 그렇다면 잘된 이야기지. 나는 흑령대를 만나야 하지만 그들이 말한 약속 장소를 모르고, 너와 비영대는 놈들을 쫓아야 하는 입장이니.”
“하지만 어떻게……?”
“뭐, 적당히 은신해서 쫓아다니면 되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그건 그랬다.
아무리 은신과 추적에 능한 비영대라 해도 정천의 은신을 간파할 실력자는 많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비영대주 무엽이나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터였다. 보통의 비영대원 정도론 정천의 은신을 간파할 수 없으리라.
“은신이 까다롭다면 적당히 변장하면 돼. 뭐, 방법이야 차차 생각해 보면 되겠지.”
“그렇군요. 정천 님이라면 무슨 행세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뭔가 좀 비꼬는 듯한 느낌인데.”
장난조로 투덜거린 정천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쨌든 마교 녀석들을 뒤쫓아 가 보자고.”
“그들을 뒤쫓아 가선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정천은 턱을 쓰다듬었다. 말을 하기 전, 생각을 고를 때의 버릇이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강룡단은 우리와 함께 진마동에 갇혀야 했지. 그리고 직접적으로 진마동의 입구를 매몰시켰던 이들은 천무맹 장로들, 그들을 배후에서 조종한 것은 팔부혈선이라 불리는 미지의 존재들이야.”
“그랬지요.”
“그렇다면 마교는? 그들은 단순히 천무맹의 암투에 끼인 피해자일 뿐이었을까?”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담미화.
그녀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그럴 리가…… 없겠군요.”
“놈들은 바보가 아니야. 하물며 천무맹의 끄나풀은 더더욱 아니지. 천무맹 측의 모략으로 자신들의 최고 타격대가 매몰되었다면, 도리어 그 복수를 위해 피의 혈쟁을 불러일으킬 자들이지.”
“…….”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어. 도리어 십 년 동안의 평화를 유지했을 뿐이지. 아무런 이유 없이 마교가 그리 행동했을까?”
“그럴 리 없겠군요.”
정천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날의 일은 마교와 천무맹, 양측의 협잡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다. 최소한 장로들과 직접 대면했던 이들은 분명해.”
담미화는 오래된 진마동의 기록을 떠올려 보았다.
이윽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름.
“철절삼마……!”
칠절의 바로 위 인물들이자 천마 외엔 그 누구도 위에 두지 않는다는 마교의 실세!
그들이야말로 직접적으로 천무맹과 교섭을 행했던 자들이었다.
정천의 말이 이어졌다.
“삼마가 알고 있는 것을 천마라고 모를 리는 없겠지. 최소한 그 네 사람만큼은 직접적으로 이 일에 연관되어 있을 거다.”
“…….”
담미화는 전율 어린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처음엔 장로들, 다음은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팔부혈선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마교에까지…….’
그것도 까마득한 이름들인 철절삼마와 천마. 정천이 궁극적으로 대면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런 존재들인 것이다.
흑령대의 뒤를 쫓는 것도 그 일환. 더군다나 칠절의 한 명인 귀도신마가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잘만 한다면 단번에 마교의 수뇌부에까지 접촉할 길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엔?’
담미화는 떨리는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역시나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만약 그들과 대면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간단한 것을 묻는군.”
정천의 눈이 순간 차갑게 식었다.
“이백 형제들의 죄를 묻는다. 그리고 그게 유죄라고 생각된다면…….”
화르륵.
정천의 두 눈이 순간 용암처럼 타올랐다.
“천마의 하늘 역시 무너트릴 거다.”
〖강룡검제 4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