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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一章 그가 바라는 것 (34/146)

第十一章 그가 바라는 것

“무슨 생각을 하신 겁니까? 자칫하면 이로써 천무맹과 마교가 전쟁에 돌입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일흑령의 잔소리에 귀도신마가 귀를 막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는 없었다.

십 리 밖 개미 기어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귀도신마였으니 말이다.

“거 종알종알 시끄러워 죽겠구먼. 이 정도로 전면전에 들어가진 않을 테니 걱정 좀 말게.”

“어떻게 그리 확신하십니까?”

“아무도 안 죽였잖아.”

“정파 놈들이 피해자를 위장해서 내세운다면요? 제 놈들이 죽여 놓고 우리한테 덮어씌울지 어찌 압니까?”

“그럼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아, 싸움꾼이 싸울 수 있게 되는 건데 뭐가 문제야?”

“그런……!”

귀도신마가 일흑령의 바로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박력에 일흑령은 지레 말을 삼켰다.

귀도신마가 나직이 말했다.

“자넨 다 좋은데 너무 겁이 많아. 전쟁이 난다고? 그게 어떻단 말인가? 우리에게 누명을 씌운다고? 그게 어떻단 말인가?”

“신마님…….”

“우린 머리털 난 이래로 싸우는 법만 배워 온 종자들일세. 남들처럼 농사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소를 키우거나 닭을 키우는 것도 아니야. 무엇 하나 만드는 법 없이 없애기만 하는 자들이란 말이네.”

“…….”

“그런 우리가 살아 있는 걸 느끼는 곳이 어디인가? 웃기게도 죽음이 옆에서 넘실거리는 사투의 현장이 아니냔 말이야.”

귀도신마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일흑령 역시 왠지 숙연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런 역설 같은 세상을, 우리는 십 년 동안이나 빼앗겨 왔네. 이 정도 사소한 일로 깨지는 평화라면 차라리 지금 깨지는 게 낫다네.”

“신마님.”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지. 어쨌든 다소간의 충돌이야 예상한 바 아니었던가?”

일흑령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문자는 남기고 오셨습니까?”

“물론!”

귀도신마의 얼굴에 다시금 웃음기가 돌아왔다.

“큼지막하게, 누구라도 읽을 수 있게끔 남겨 두고 왔다네.”

“어떻게 말입니까?”

“뭐, 별거 있겠나? 그냥 놈들 성 대문짝에다 큼지막하게 새겨 두고 왔지.”

“…….”

한심한 눈으로 귀도신마를 바라보는 일흑령이었다. 귀도신마가 지레 찔끔해서는 물었다.

“뭐, 뭔가?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신마님, 방법이 있다고 하시더니 고작 그거였습니까?”

“아니, 이게 어때서? 접근성 좋지, 큼지막하니 보기도 좋지, 연락 남기는 데에 이만큼이나 좋은 방법이 어디 있다고 그러나?”

“남들이 해독해 버리면요?”

“해독이라고?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지 아나?”

일흑령은 쏟아지려는 한숨을 애써 참았다.

“새매를 이용한 방법은 거의 해독될 염려가 적습니다. 금세 흔적이 사라지니까요. 하지만 문짝에다 새겨 놓았다면 그런 문제가 없지요. 충분히 시간을 들여 여유 있게 해독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으, 으음.”

“천무맹 군사 제갈현과 군사부의 샌님들은 우습게 볼 인물들이 아닙니다. 놈들이라면 우리의 연락문을 해독하는 것도 일이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큰일이군.”

귀도신마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너무 안일한 게 아닌가 싶었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예?”

“그 정도 위험이야 감수해야지, 어쩌겠나. 그리고 붉은 서신을 날렸던 이가 정말 강룡단원이라면…….”

귀도신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정도 위험은 문제도 아닐 테지.”

“너무 무책임한 말씀 아닙니까?”

“무책임한 게 아니야. 그들을 믿는 거지. 강룡단을 믿는 거지.”

“그들이 그 정도의 신뢰를 받을 만한 자들입니까?”

“쯧쯧. 자네는 뭘 모르는군. 이래서 교단의 역사 공부를 충실히 해야 하거늘.”

“그들의 기록은 저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하나같이 믿기 어려운 일들이더군요.”

“그 믿기 어려운 일을 몇 차례고 해냈었지.”

귀도신마의 눈에 그리움이 스쳤다.

“그들은 그런 자들이었네.”

* * *

어두운 방.

정천은 어둠 속에 누워 있는 사내를 응시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흘러나왔다. 부러진 갈빗대가 폐를 찌르고 있을 테니 숨 쉬는 것조차 쉽지는 않을 터.

그는 모용훈이었다.

정천은 그에게 별다른 연민을 느끼진 않았다. 그렇다고 별다른 적의 역시 느끼지 않았다.

그저 귀찮은 일이 하나 생겼다는 생각만 할 따름이었다.

‘빨리 끝내야겠군.’

정천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정천의 두 눈이 붉은빛 기광을 쏟기 시작했다. 동시에 혼절한 모용훈의 눈이 힘겹게 떠졌다.

파아아앗!

정천의 눈에서 쏟아진 기광이 모용훈의 눈으로 스며들어 갔다. 동시에 정천은 오른팔로 흑색의 기운을 내뿜어 모용훈의 흉부를 점했다.

두 개의 금제가 빠르게 전개됐다.

모용훈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입에서 고통에 겨운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그의 몸이 식은땀에 흠뻑 젖었다. 정천이 펼친 금제가 몸과 정신을 속박하면서 생기는 반응이었다.

덜컹!

모용훈의 몸이 크게 발작했다.

그리고 이내 잠잠해졌다.

“흠.”

정천은 마안을 거두고 기운을 회수했다. 그가 펼친 두 개의 금제는 모용훈의 몸속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의 일은 모용훈과 모용린이 알아서 할 문제였다.

한숨 돌린 정천이 밖으로 향했다. 이내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응?”

방 밖에는 소윤이 서 있었다.

얼굴의 붓기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정천이 펼친 회기영술이 효능을 발휘한 것이다.

“우웅, 그러니까요.”

소윤은 한참 동안 몸을 배배 꼬며 꾸물거렸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정천은 픽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고?”

“우움…….”

“너무 고마워할 것 없어. 녀석을 박살 낸 건 낮잠 자는 걸 방해받았기 때문이고, 널 치료해 준 건 란아 얼굴이 어두워지는 게 싫어서 그런 거니까.”

“치, 나도 알아요.”

소윤이 얄밉다는 듯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정천은 그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래야 너답지. 적당히 까불거리고 적당히 겁이 없고 말이야.”

“아, 아야. 아파요!”

소윤은 금세 울상이 되어선 정천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이내 자기가 아파서 펄쩍펄쩍 뛰었지만.

“씨, 무슨 놈의 다리가 돌기둥 세워 놓은 것 같네!”

“불만이냐?”

“그래요! 엄청 불만이네요, 뭐!”

소윤은 마지막으로 정천의 다리를 걷어차고는 펄쩍펄쩍 뛰며 달아났다. 정작 정천은 쫓아갈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고개를 휘휘 저은 정천이 옆방으로 향했다.

모용린은 얼얼한 손목을 주무르며 앉아 있었다. 그 옆엔 모용준이 고이 잠든 양 누워 있었다.

“대강의 처치는 끝냈다. 다음에 깨어나면 네 오라비는 당분간 백치 비슷한 상태로 있을 거야.”

모용린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백치 비슷한……?”

“그래. 어떻게 얼버무릴 수 있겠어?”

모용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녀의 눈에 빛이 감돌았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할 생각이지?”

“큰 오라버니는 폐관을 중도에 그만두고서 밖으로 나왔어요. 제 생각대로라면 그 이후에 곧장 우리를 만났을 거예요.”

“그러면…….”

“큰 오라버니를 폐관용 연공실에서 옮겨 놓겠어요. 당분간은 그곳에서 간호를 하는 수밖에요.”

“좋아. 그 정도면 괜찮겠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

“그런 말 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요.”

“그렇겠지.”

가볍게 대꾸한 정천이 모용준의 이마를 톡톡 쳤다.

“이 녀석 입단속도 알아서 하도록 해. 적당히 설명하되 쓸데없이 떠들지 못하게 하라고.”

“알고 있어요.”

모용린이 딱딱한 투로 대꾸했다.

예전처럼 마냥 차갑기만 한 어조는 아니었으나, 여전히 뭔가 꿍한 구석이 있는 듯했다.

‘뭐, 상관없으려나.’

정천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모용린이 넌지시 운을 뗐다.

“그리고…… 그러지 마세요.”

“음? 무슨 소리야?”

“아이 취급하지 말라고요.”

정천은 멀뚱멀뚱 모용린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모용린은 미간을 한층 찡그렸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아니, 아이를 아이 취급하지 말라는 게 이상해서.”

“난 어린애가 아니에요.”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데.”

“흥.”

결국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돌려 버리는 모용린이었다. 이 녀석에게도 이런 구석이 있었나 싶어 정천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끝도 없이 시비를 걸던 것보단 낫군. 그땐 정말 한 대 때려 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

“어쨌든 나머지는 알아서 잘하라고.”

정천은 그 말을 끝으로 일어났다. 그때 모용린이 발목을 붙들듯이 한마디를 건넸다.

“정말 이대로 괜찮나요?”

“응?”

고개를 돌리는 모용린은 자존심이 상한 듯한 모습이었다.

“빚만 잔뜩 안고서 이대로 끝나는 건 싫어요. 당신 같은 사람한테 도움만 받았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요.”

“웃기는 아가씨군. 남들은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말이야.”

“난 당신이 말하는 남들이 아니니까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모용린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빚을 졌으니 갚고 싶어요. 당신은 뭔가 바라는 게 없나요?”

“바라는 거라.”

정천의 얼굴에 잠시 피로감이 스쳤다.

“있지. 너무나 바라는 숙원이.”

모용린은 문득 호기심을 느꼈다.

자신이 아는 것보다 많은 것을 숨기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 많은 이들을 속이고 있는 이 남자.

이런 남자가 바라는 숙원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게 뭐죠?”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질문을 건넸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메마른 웃음뿐이었다.

“미안하지만 네가 들어줄 수 없는 숙원이야.”

“그런…….”

“그 누구도 들어줄 수 없지. 내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숙원이다.”

말을 마친 정천이 방문을 열고 나섰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빚을 졌다고 생각하진 않는 게 좋을 거야. 나 역시 남에게 주기만 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그런가요?”

“그래. 나중에 왕창 뜯기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마. 울어도 안 봐줄 거니까.”

“……푸훗.”

모용린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메마른 가뭄에 단비 같은 웃음이었다.

“그날을 기대하죠. 진심으로요.”

“좋을 대로.”

짤막히 대꾸한 정천이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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