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九章 간단한 방법 (32/146)

第九章 간단한 방법

화륜문 문도들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체력 단련을 시작했다. 소윤을 등에 업고서 장원에서 십 리 떨어진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는 것이었다.

물론 소윤은 한 명이니 한 번에 한 사람만 갈 수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다른 한 명이 돌아올 때까지 장원에서 대기했다. 물구나무를 선 채로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 모두 십 차례를 왕복하면 아침 식사를 했다.

그다음엔 화연란이 직접 두 사람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우선 심후에겐 그녀가 창안한 진운패화각검을 전수했다. 물론 각검 자체가 불완전한 무공인 만큼 전수와 보완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화연란으로선 조금 미안한 일이었다.

“미안해요. 아직 내 경지가 깊지 못해 불완전한 무공을 가르치게 됐네요.”

“괜찮습니다. 제게 내일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는걸요.”

심후의 대답에 화연란은 미소를 지었다.

“잘됐어요. 그러니 오늘부터는 수준을 좀 높일게요.”

“어떻게 말입니까?”

화연란은 검은빛 팔찌와 발찌를 두 개씩 내밀었다. 심후가 그것을 받아드니 묵직한 느낌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세연이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구한 것들이에요. 오늘부터는 그것을 팔다리에 차고서 생활하도록 하세요.”

“생활을…… 하라고요?”

“네. 수련을 할 때는 물론이고 자거나 밥을 먹을 때에도 떼어 놓지 마세요.”

심후는 입을 쩍 벌린 채 화연란을 보았다.

‘문주님, 어느 순간부터 정천 대협을 닮아 가는 것 같은 느낌이…….’

진운패화각검의 특징은 각격과 검격이 전개되는 투로에 있었다.

투로는 기본적으로 다수의 허초와 소수의 진초로 이루어지는데, 각각의 허초는 소량의 내공을 증폭시키는 형태를 이룬다.

허초를 뻗는 행동 자체가 진초에 쓰일 내력을 증대시키는 것.

물론 그렇기에 허점도 많았다. 때문에 적이 허점을 노리지 못하게끔 지속적으로 공세를 이어 갈 필요가 있었다.

자연히 내력 소모가 적은 대신 체력 소모는 극심하다. 손발이 계속 움직여야 하니까.

때문에 허초와 진초를 펼치는 자체가 몸을 극히 혹사하는 행위였다.

든든한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 한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바탕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타인에 비해 적은 내력을 지닌 심후로서도 충분히 펼치는 게 가능하다.

그 자그만 희망이 심후를 내일로 이끌고 있었다.

칠삼은 심후의 경우보단 조금 나았다. 나이가 좀 많긴 해도 몸에 큰 이상이 있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랜 문지기 생활은 대부분의 무공 지식을 지워 놓았다.

기껏해야 체조 방법이나 알고 있는 정도.

때문에 처음부터 하나씩 일일이 가르쳐야 했다.

그나마 몸에 약간씩의 움직임이 배어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으니 말이다.

“칠삼 아저씨에겐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처음부터 일일이 모든 것을 익혀야 하니까요.”

화연란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뗄 수 없을 정도로 몸에 배어 있는 습관들, 이미 굳어 버린 체형과 기맥, 안 좋은 버릇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고쳐야 해요.”

“으음, 노력은 하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군요.”

“저도 알아요. 아저씨가 노력하시는 걸 항상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걸요.”

“흠흠, 그런 말을 들으려니 이거 쑥스러워서…….”

“앞으로도 더욱 노력해 주세요, 아저씨.”

“물론입니다. 기왕 시작한 일이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요.”

“좋은 마음가짐이에요.”

싱긋 웃은 화연란이 소윤을 번쩍 들어 내밀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소윤이를 업고서 마보를 취하도록 하세요.”

“…….”

칠삼은 내심 생각했다. 어째 요즈음의 화연란은 정천을 닮아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모용가의 세 남매가 화륜문을 찾은 것은 늦은 오후의 일이었다.

그 즈음 심후와 칠삼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지독할 정도의 체력 단련만을 거듭한 결과였다.

어찌나 땀을 뺐는지 머리카락에 하얀 가루 같은 게 보였다. 땀이 말라 소금기만 남은 것이었다.

마당 한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그들을 보며 모용훈이 웃었다.

“하하, 저들은 시체라도 되는 건가?”

가만히 구경하자니 부엌에서 소윤이 쪼르르 걸어 나와서는 물을 한 동이 끼얹었다. 심후와 칠삼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일어났다.

“문주 언니가 산책이나 좀 다녀오래요. 심신도 단련할 겸 열심히 뛰어갔다 오래요.”

“으으으.”

칠삼이 몸서리를 치더니 다시 기절했다. 심후는 눈을 겨우 부릅뜨고서 물었다.

“어, 어디까지?”

“와룡장 앞까지요.”

“그, 그 정도라면 해볼 만할지도.”

“아참. 세 번 왕복이래요.”

“꼬르륵.”

기묘한 소리를 내며 심후 역시 널브러졌다. 소윤은 쓰러진 두 사람의 몸을 발로 톡톡 찼다.

“무슨 사내들이 이렇게 매가리가 없어요?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요!”

“어, 엄살이라니.”

“정말 죽겠는데…….”

“그럴 줄 알고 문주 언니가 말해 주라고 했어요. 강해지고자 하는 두 사람의 일념이 이 정도로 꺾이진 않으리라 믿는다고요.”

심후와 칠삼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선녀 같은 미소를 짓는 화연란의 모습이 두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선 나찰의 미소로 느껴지게 된 지 오래였다. 요즘은 어째 정천보다도 화연란이 더 무서웠다.

“으으, 아무래도 문주님이 정천 대협에게 물들어 버린 게 분명해.”

“사, 사형도 그 생각을 했는가? 나 역시 요즘 그 생각을 하던 참이네.”

“사제님도 그렇습니까?”

두 사형제는 측은한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러고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걸음을 뗐다.

두 사람은 모용가 삼남매를 보고도 대강 인사만 할 뿐이었다.

“또 오셨군요.”

“정천은 낮잠을 자고 있을 게요.”

힘없이 한마디씩을 하고선 밖으로 나서는 두 사람이었다. 황당한 대접이었지만 삼남매는 따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옛날 생각나는군.”

모용준의 혼잣말에 모용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기초를 다지던 시절엔 죽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의 수련을 거듭했었다.

이는 두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모용훈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니까.

세 남매를 본 소윤이 의외라는 표정을 했다.

“어라? 또 오셨네요?”

모용준이 웃는 낯으로 물었다.

“놀랐느냐?”

“네. 근데 저 언니는 매번 다시는 안 온다면서 자주 찾아오네요.”

모용린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주 약간이지만 그녀의 볼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모용훈이 웃는 얼굴로 소윤에게 다가갔다.

“너도 이곳 사람이니?”

“네. 오빠는 누구시죠?”

“나는 모용가의 장남 모용훈이다. 그리고…….”

짜악!

소윤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모용훈이 별안간 손찌검을 날린 것이다.

“형님!”

“오라버니!”

모용준과 모용린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용훈은 웃는 얼굴로 소윤을 내려다볼 따름이었다.

입은 웃지만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천한 계집 주제에 대모용세가의 적자에게 함부로 맞먹으려 들지 마라.”

“……명심하죠.”

소윤은 피 섞인 침을 퉤 뱉었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왼뺨이 시퍼렇게 부어오른 상태였다.

그럼에도 모용훈을 바라보는 눈은 전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도리어 특유의 독기까지 어려서 보는 이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모용훈의 눈이 한층 가라앉은 것이다.

“네가 아직 매운맛을 덜 보았구나.”

“그만하세요!”

연공실에 있던 화연란이 뛰쳐나왔다. 수련을 하던 중 소윤이 뺨을 맞는 소리에 놀라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달려와선 소윤을 끌어당겨 안았다.

책망 어린 눈빛이 세 남매에게 향했다.

“이게 무슨 행패죠? 대가문의 자제들이라면 마음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건가요?”

평소엔 냉랭하기 그지없던 모용린도 이번만은 고개를 숙였다.

모용준은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이해해 주십시오, 화 소저. 미처 말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미안해 할 것 없다, 준아.”

“형님!”

“무엇을 사과하려는 것이냐? 네가 나를 말리지 못한 것을? 언제는 말릴 수나 있었더냐?”

“…….”

모용준은 이를 악물었다.

이것이었다. 모용세가의 내분이 생기게 된 원인. 장자 모용훈의 실력이 전혀 떨어짐이 없음에도 후계자 다툼의 씨앗이 생기게 된 이유.

모용훈은 웃는 얼굴로 화연란을 응시했다.

“아이가 하는 짓이 사뭇 건방져서 본 공자가 버릇을 좀 고쳐 주었소.”

“이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거죠?”

“날더러 오빠라고 하더군.”

“그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란 말인가요?”

“공자님이라 불렀어야지.”

“공자님이란 분이 그런 사소한 실수조차 참을 수 없었단 말인가요?”

“본 공자가 참는 것보단 그 아이가 버릇을 고치는 편이 낫소.”

모용훈을 노려보던 소윤이 쏘아붙였다.

“그렇다면 실패하셨네요. 댁이 뺨 한 대 때린다고 해서 내 버릇이 고쳐지진 않으니까. 앞으로도 고치지 않을 거니까!”

모용훈이 환히 웃었다.

“그럼 몇 대를 더 때려 줄까? 모가지를 비틀면 좀 나아질까?”

“오라버니!”

참다못한 모용린이 나섰다. 그러나 모용훈은 도리어 불붙은 기름처럼 말을 쏟아 낼 따름이었다.

“뭐냐, 린아. 너도 내게 훈계를 하려는 것이냐? 벌써부터 세가를 휘어잡았노라고 유세를 떨려는 것이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우습구나. 네가 가주의 자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배후 공작을 하는지 훤히 알고 있거늘.”

모용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반박할 말이 없었던 까닭이다.

아니,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럼 왜 그것을 보고만 있었느냐고, 왜 자신이 이렇게 나서게끔 상황을 악화시켰느냐고 말하면 됐다.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모용훈 본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모용린은 끝내 말하지 못했다.

분노나 증오보다도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연민 때문이었다.

그의 큰오빠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형님, 이제 그만하십시오.”

모용준도 나서서 모용훈을 말렸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많이 컸구나, 준아. 예전엔 내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하던 네가 말이다. 그래, 린아의 세력 밑으로 들어가려니 좀 용기가 생기더냐?”

“형님……!”

“너희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것 같구나. 즐거울 테지. 모두가 작당하여 나를 몰아세우려니 그 어찌 즐겁지 않겠느냐?”

“…….”

“…….”

모용린도 모용준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화연란은 당황한 눈으로 세 남매를 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들이 화륜문을 찾아와 시비를 걸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이란 말인가?

그때 안겨 있던 소윤이 자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 큰칼 할아버지랑 비슷해요.”

“응?”

“고독한 거예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고, 주변의 모두가 자신을 몰아세운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래서 다 부수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자신을 향한 신뢰나 호감도. 큰칼 할아버지는 보다 점잖은 방식으로 고독감을 표출하는 거고요.”

“소윤아, 네가 그걸 어떻게……?”

“예전에 한 일 년 정도 관상쟁이 밑에서 심부름을 한 적이 있어요. 관상 보는 것 자체는 완전 엉터리 같은 할배였는데, 행동거지를 보고서 지껄이는 말은 제법 그럴싸했었죠.”

그녀의 목소리는 모용가 삼남매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모용훈이 즉각 웃는 낯으로 쏘아붙였다.

“대단한 관상가가 납셨군그래. 그러니 결국 내가 문제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그래요.”

지지 않고 맞서는 소윤. 분위기는 한층 험악해졌다.

스르릉.

모용훈이 허리춤의 검을 빼어 들었다. 모용린과 모용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형님! 이제 그만하십시오!”

모용준이 모용훈의 어깨를 짚었다. 이윽고 그의 손이 모용훈의 검으로 향했다. 일단은 검을 어떻게든 회수하려는 것이었다.

그때 모용훈의 몸이 왼발을 축으로 회전했다.

다음 순간 자유로운 그의 왼 주먹이 모용준의 얼굴로 쏘아져 들어갔다.

뻐어억!

섬전 같은 일권에 격타당한 모용준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그는 몇 장을 날아가서 장독을 깨며 널브러졌다.

꿈틀. 꿈틀.

몇 차례 움찔거리던 모용준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대로 혼절해 버린 것이다.

화연란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빨라.’

모용훈의 움직임은 물 흐르는 듯하면서도 빠르기가 질풍 같았다.

주먹에 실린 무게, 휘두르던 자세 역시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했다.

그저 주먹질일 뿐인데도 이렇게나 완벽하다니.

그 일권만으로도 화연란은 알 수 있었다.

‘모용린의 실력을 가볍게 상회하고 있어.’

그녀와는 직접 검을 맞대 보기도 했었다. 예전의 일이라지만, 어쨌든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느끼며 패배를 맛봤다.

그런데 모용훈은 그런 모용린을 능가했다. 검법을 보지 못해 속단할 순 없지만, 권을 펼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유추 가능했다.

모용훈은 실눈을 뜨고서 모용린을 보았다.

“너도 날 방해할 테냐?”

“오라버니…….”

“그러지는 않을 테지. 너는 영리하니까. 내가 인망을 잃었다는 걸 알자마자 가주의 위를 이으려고 마각을 드러낼 만큼 야망이 있고 영민하니까. 쓸데없이 여기서 내 심기를 거스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모용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모용훈은 그것 보라는 듯 말을 이었다.

“네가 이빨을 드러내는 건 나를 충분히 능가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직후일 테지. 그렇지 않으냐?”

“오라버니, 저는…….”

“말하지 마라. 역겨우니까. 너도 그렇고 모용세가도 그렇다. 세상 모든 것이 역겨워 견딜 수가 없다.”

“…….”

모용린이 입을 닫자 모용훈은 싱긋 웃었다. 그는 웃는 낯 그대로 화연란을 돌아보며 말했다.

“소저는 어쩔 생각이오? 역시 내게 대적할 것인가?”

그 순간 화연란은 모용린의 얼굴을 보았다. 제발 적당히 비위를 맞춰 주고 물러나라는 표정을.

그렇기에 더더욱 물러날 수 없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요. 공자께선 대체 우리에게 행패를 부리시는 거죠?”

“허세를 부리는구려.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어 하는 게 보이는군.”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아요.”

“물러나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쉬운 법이지. 누구라도 지껄이는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모용훈은 검을 뻗어 화연란을 겨냥했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소윤이 한마디 쏘아붙였다.

“미친 새끼!”

“입을 찢어 놓아도 그렇게 떠들 수 있을까?”

“몇 번이고 떠들어 주지! 미친 새끼, 미치광이, 개 불알 같은 놈!”

“하하하!”

모용훈은 소리 내어 웃었다. 왠지 소름 끼치는 목소리의 웃음 뒤로, 그는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는 화연란을 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최후통첩이오. 비키시오. 그년과 한데로 베어 버리기 전에.”

“비킬 수 없어요.”

“그러면 함께 베어야겠군.”

“그만하세요, 오라버니!”

모용린이 검을 뽑아 들었다.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모용훈이 해맑게 웃었다.

“실수했구나, 린아. 네가 내게 덤벼드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조금 더 훗날의 일이 되어야 했다.”

“덤비려는 게 아니에요. 오라버니를 말리려는 거지요.”

“다를 것은 없다.”

모용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가가 살짝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털어 눈가의 물기를 털어 냈다.

“그만하세요, 오라버니. 더 이상 이러시면 안 돼요.”

“그만할 수가 없다. 세상 모두가 나를 짓누르려 드는데, 그것을 베어 넘기지 않고는 답이 없다.”

“아니에요. 다른 해답이 있을 거예요.”

“무엇이 말이냐? 모두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 말고 무슨 답이 있느냐?”

“훨씬 간단한 게 있지.”

제 삼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우선은 네가 그 멍청한 입을 닥치는 것.”

정천이 방문을 열고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오라버니!”

화연란이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소리쳤다. 반면 모용린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멍청이! 뭘 하러 나온 거예요!”

그녀의 날 선 반응에 정천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희야말로 대체 뭘 하러 여기 온 거냐? 어디서 저런 이상한 놈을 데리고 왔어?”

“하!”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트린 모용훈이 정천을 보며 물었다.

“네놈은 뭐하는 놈이냐?”

“나? 청룡문 문지기.”

모용린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모용훈은 더없이 재미있다는 듯 앙천대소를 터트렸다.

“우습군! 정말 문지기인지 헛소리하는 미친놈인지 모르겠으나 목숨 중한 줄을 아는 게 좋을 것이다.”

“네가 더 웃기는군. 천부의 자질을 지녔다는 놈이 하는 짓은 영락없는 어린애로군.”

“뭐?”

내내 웃는 낯이던 모용훈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 모용린 역시 놀란 얼굴로 정천을 응시했다.

“그걸 어떻게……?”

정천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때려 맞췄지. 미친놈이 미친 짓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둘이거든. 애초부터 미쳤거나, 미칠 만한 이유가 있거나. 저놈 하는 짓을 보자니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실력을 지녔더군. 너나 모용준의 반응을 보자니 처음부터 저랬던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뻔한 일이지. 천부의 재능을 정신이 감당하지 못한 거다.”

모용린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간의 사정을 거의 정확하게 꿰뚫는 말이었던 까닭이다.

모용훈은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이를 갈았다.

“잘도 지껄이는구나. 마치 네놈이 남의 머리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딱히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군. 멍청이들보다 낫다는 생각은 꽤 자주 한다만.”

“앞으론 그런 생각을 할 수 없겠군. 제대로 사고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 거니까.”

“그런 말을 하는 놈들치고 제대로 된 놈은 없지.”

으득 이를 간 모용훈이 성큼성큼 정천에게 걸어갔다. 모용린이 황급히 소리쳤다.

“도망쳐요!”

“누구? 이놈?”

“당신이요, 당신! 어서 도망치란 말이에요.”

모용린은 외침과 동시에 몸을 날리려 했다. 일단은 어떻게든 모용훈을 막아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용훈이 더 빨랐다.

그의 눈이 시뻘건 빛을 토하나 싶더니, 신형이 순간적으로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빠른 속도로 인해 착시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쉬익!

벼락같은 쾌검이 정천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모용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정천이 몸을 비틀었다. 모용훈의 쾌검마저 여유롭게 피할 정도의 회피 속도였다.

“뭣……!”

모용훈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정천의 오른팔이 일직선으로 뻗어 들어왔던 것이다.

‘베어 주마!’

모용훈은 정천의 오른팔을 베어 버릴 심산으로 검을 횡으로 그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정천이 원하는 바였다.

정천은 금나수의 수법으로 모용훈의 검을 붙들었다. 일순 흠칫하는 모용훈이었으나,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으로 미소를 지었다.

부우웅!

모용훈의 검이 빛을 발했다. 검기를 발현해 그대로 손을 갈라 버릴 셈이었으나…….

“어?”

정천의 손은 베일 기미가 없었다. 도리어 검을 죄어 오는 힘이 한층 강해져 있었다.

끼기기긱.

모용가의 명검인 북유아랑(北流牙狼)이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죽음 직전의 강철이 토해 내는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꽈드득!

칼날이 정천의 손아귀 안에서 우그러졌다. 모용훈의 얼굴이 비로소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뻐어어억!

모용훈의 얼굴에 정천의 왼쪽 주먹이 꽂혔다. 뼈가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모용훈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크아악!”

콧대가 뭉개져 걸쭉한 코피를 흘려냈다. 이빨도 몇 개가 부러져, 곱디곱던 모용훈의 옥모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아…….”

모용린은 얼이 빠진 채 그 모습을 보았다. 그 앞에서 정천은 다음 공격에 들어가고 있었다.

“크윽!”

당황한 모용훈이 주먹을 뻗었다.

모용준을 날려 버릴 때와 같은 깔끔하고 벼락같은 일권.

그러나 정천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그의 주먹을 가볍게 흘려내고서 안으로 파고들었다.

정천이 무릎치기를 시도했다. 졸지에 복부를 강타당한 모용훈의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꺼억……!”

정천의 오른쪽 팔꿈치가 모용훈의 턱을 후려쳤다. 뇌를 흔들린 모용훈의 양다리가 힘없이 풀렸다.

쓰러지는 모용훈의 몸 위로 수도 없이 많은 주먹이 꽂혔다.

별다른 내력을 담지 않은 채, 사람의 몸에 고통을 준다는 실용적인 의도로만 가득한 맨주먹이었다.

퍼버버버벅!

“으아아악!”

모용훈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정천은 웃음기조차 띠지 않은 얼굴로 주먹질만 반복할 뿐이었다.

모용린으로선 생경하기만 한 모습이었다. 그렇게나 두려워하고 동경했던 오라비가 저렇게나 무기력하게 당하는 모습이라니.

마치 그녀의 의식 속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정천이 주먹질을 멈췄을 때, 모용훈의 머리는 땅으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정천은 인심 쓴다는 표정을 한 채 마지막으로 모용훈의 턱을 걷어찼다.

뻐억!

모용훈은 죽은 듯이 쓰러졌다. 사실 외관만 봐선 죽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흠. 저질러 버렸네.”

한가로운 어조로 중얼거린 정천이 모용린을 돌아봤다.

“그럼 증거를 인멸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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