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八章 흑령대, 도착 (31/146)

第八章 흑령대, 도착

정천은 황당한 표정으로 눈앞의 사내를 보았다.

“뭘 그런 표정으로 보는가? 내 다시 찾아오리라고 약조를 했잖은가.”

“아니, 분명 그러시긴 했습니다만. 그게…….”

“약조를 지킨 것뿐일세.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텐데만.”

정천은 난감한 표정으로 옆머리를 긁적였다.

사내의 말이 옳다. 자신을 찾아오겠노라고 약조를 한 대로 행동한 것일 뿐이다.

‘설마 바로 다음 날에 올 줄 몰랐으니 문제지.’

정천은 거구의 중년인, 장유추를 보며 생각했다.

‘정말 그동안 무진장 심심했던 모양이군.’

장유추는 광천뇌도를 붕붕 휘둘러 보였다.

딱히 위협을 하려는 게 아니라 습관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물론 지켜보던 심후의 입장에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만.

심후의 눈엔 장유추가 화륜문을 완전히 끝장내러 찾아온 걸로만 보였다.

“으, 으으.”

“음?”

장유추가 심후의 반응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냐, 아이야. 노부의 방문이 불만인 것이냐?”

“그, 그건 아닙니다. 그저…….”

“그저 뭐 어쨌단 말이냐?”

심후는 살려 달라는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정작 정천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누르느라 바빠 보였지만.

혀를 찬 장유추가 말했다.

“뭐 그리 머리를 굴려 대는 건가? 간단히 하면 되는 일일세. 내가 이곳을 찾아왔으니 자네는 약조한 바를 지킨다. 그것이면 되네.”

결판을 내자느니 한판 붙어 보자느니 하는 표현이 아니라 약조를 지키라고만 한다.

정천을 배려해 일부러 어정쩡한 표현을 쓰는 장유추였다. 그가 본 실력을 숨기려 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정천으로선 그런 배려조차 고맙지 않을 정도로 지금의 상황이 황당했지만.

“음, 그러니까 말입니다.”

겨우 입을 뗀 정천을 장유추가 다그쳤다.

“할 건가, 말 건가. 그것만 분명히 말하게.”

“합니다. 한다고요. 하지만 지금은 좀 곤란합니다.”

“왜?”

정천의 말문이 막혔다.

이유 따위가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그냥 하기 싫다고 해 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

그나마 다행한 것은 장유추가 필요 이상의 억지를 부리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저 할 건지 안 할 건지 종용할 뿐. 당장 싸우지 않을 거냐고 윽박지르거나 난장을 피우지는 않았다.

‘체면 때문에 그러겠지.’

장유추는 자부심이 대단한 사내였다.

다른 이들처럼 직책이나 직위 따위에 갖는 허영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무위에 지니는 자부심이 커다랗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강자를 대접하고 약자에겐 철저히 무관심했다.

정천을 배려해 주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래도 생떼 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정천이 생각하는 동안 장유추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노부가 자네에게 반다경의 시간을 주지. 그 동안 변변한 이유를 댈 수 없다면 노부와 같이 가야겠네.”

“……시간을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합니까?”

“기회를 주는 것에 고맙다고 하게. 보아 하니 별다른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예리한 지적이었다.

정천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동안 방문 한쪽이 슬쩍 열렸다. 그 안에서 세 사람이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화연란과 칠삼, 소윤이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낸들 알겠소? 저자가 정천을 찾아왔다는 건 알 수 있겠군.”

“저 할아버지가 왜 또 왔지?”

세 사람은 방 안에서 해어진 옷가지를 기우고 있었다. 수천 냥의 금을 지녔다지만 몸에 배어 있는 검소한 습관만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차에 장유추가 불시 방문을 한 것이었다.

덕분에 불쌍한 심후만 곤욕을 당하게 됐다.

화연란이 칠삼에게 물었다.

“그래도 손님이 오셨는데 접대를 해야겠죠?”

“저자가 손님으로 보이십니까, 문주님? 이 늙은이 눈엔 전쟁 벌이러 온 장수로 보입니다만.”

“그냥 할아버지인데 무슨 소리예요? 좀 성깔이 많이 더럽긴 하지만요.”

소윤의 말에 화연란과 칠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우리 문의 손님인데 숨어만 있을 순 없죠. 차라도 대접해드려야겠어요.”

“괜히 나서시는 게 아닌지 모르겠구먼요.”

“아저씨는 여기 계세요. 소윤이 너도 여기 있으렴.”

“응? 왜요? 나도 같이 나갈래요.”

“하지만…….”

소윤은 대답도 듣지 않고서 문을 벌컥 열었다. 칠삼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고, 화연란은 흠칫 놀랐다.

소윤은 헤 웃고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랜만이네요, 할아버지.”

“오랜만은 무슨. 어제도 봤잖아.”

대답한 사람은 장유추가 아니라 정천이었다. 소윤은 그에게 혀를 쏙 내밀어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인사해야 하는 거예요. 인사질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댔어요.”

“먹고 들어가다니, 뭘?”

“뭐긴 뭐예요. 당연히 목표를 방심시키는 거죠. 나처럼 우아한 숙녀가 인사성도 밝으면 남자들 대부분은 껌뻑 죽거든요.”

“대체 그런 헛소리는 어디서 들은 거야?”

혀를 차는 정천과 달리 장유추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젠 시원하게 당했더군.”

“예?”

“저 아이 말일세.”

정천이 의아한 눈으로 보려니, 소윤이 무언가를 꺼내어 흔들었다. 텅텅 비어 있는 돈주머니였다.

“설마…….”

정천이 장유추를 보았다. 장유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당했지. 도둑맞았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선배님의 기감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요.”

“거나하게 취했을 때 털어 버린 모양이더군. 취기를 미처 날려 버리지 않은 게 실수였지.”

정천은 혀를 내두르며 소윤을 돌아봤다.

“누가 삼류 소매치기라고요?”

소윤이 가슴을 쏙 내밀며 소리쳤다.

정천은 픽 웃고선 지적했다.

“진짜 일류라면 어젯밤 짐 싸서 최대한 멀리 도망쳤을걸. 아니, 애초에 이런 고수의 물건은 건드리지도 않아.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걱정 마세요. 돈주머니엔 딸랑 은전 한 닢밖에 없었어요.”

내내 듣고 있던 장유추가 나직이 말했다.

“그렇더라도 도둑질은 도둑질이지.”

소윤이 찔끔해서는 고개를 움츠렸다. 장유추는 피식 웃고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도둑질이라면 오히려 칭찬을 해 줘야겠군. 근래 노부에게 한 방을 먹인 사람은 네가 두 번째란다.”

“헤헤.”

소윤이 해맑게 웃었다. 장유추는 그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정천에게 전음을 보냈다.

—물론 첫 번째는 자네고 말이지.

—…….

—그나저나 이 장원에 은신한 채 대기 중인 어린 것은 누구인가?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네가 부리는 사람인 것 같은데.

—정확합니다. 암중비약하여 저를 돕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군.

그때 화연란이 찻상을 내 왔다. 장유추는 큼지막한 손을 뻗어 그녀가 내민 찻잔을 받아 들었다.

“손이 참 곱군.”

“네?”

화연란이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매일같이 검을 쥐는 까닭인지 굳은살이 곳곳에 박여 있었다.

피부 빛이 하얗기는 해도 여느 여인의 것보단 거칠다고 봐야 했다.

그럼에도 장유추로선 마뜩찮은 모양이었다.

“문주의 자리에 앉은 이상 그 이상으로 손을 혹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배 이상의 굳은살이 박이도록 노력하도록.”

“네, 조언 감사드립니다.”

침착하게 대꾸하는 화연란이었다. 장유추의 눈에 이채가 살짝 스쳤다.

“그나저나 시간이 다 됐군.”

그는 뜨거운 차를 단번에 들이켜고서 정천을 보았다.

“변명거리는 준비해 두었나?”

정천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대강은 준비된 것 같군요.”

“준비되었다고?”

“역시 지금은 선배님과의 약조를 바로 들어드리기가 좀 어렵겠습니다.”

장유추는 실망하지 않았다.

“노부를 설득해 보게.”

“간단합니다. 저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죠.”

장유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화연란과 소윤, 어정쩡하게 서 있던 심후 역시 미심쩍은 눈으로 정천을 보았다.

“보아하니 할 일이 없어 그냥 빈둥거리는 것 같네만?”

“그게 다 때를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니 때를 기다릴 겸해서 약조를 지키라는 말이네.”

“아, 젠장. 내가 언제 선배님이랑 그런 약조를 했습니까? 본인이 멋대로 정한 거 아닙니까.”

장유추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그러나 그는 노호성을 터트리진 않았다.

“그건…… 그렇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맨손으로 약조를 지켜 드릴 수는 없잖습니까?”

“음?”

장유추가 정천의 맨손과 자신의 광천뇌도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정천이 썼던 대도는 그날 완전히 녹아 버렸다. 물론 그 정도 대도야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거라지만…….

‘그래선 이 뇌혈도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지.’

무기의 차이가 있는 상태에서의 무승부.

그 사실만으로도 장유추는 정천에 내심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

정천은 그 부분을 슬쩍 찌른 것이었다.

장유추가 냉큼 몸을 일으켰다.

“기다리게. 내 좋은 걸로 하나 구해 오지.”

“기다리겠습니다. 선배님의 뛰어난 안목으로 고르시는 거니 무척 뛰어난 녀석이겠지요?”

“으으음.”

침음을 뱉으며 돌아서는 장유추였다. 어째 정천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장유추가 장원을 떠났다. 정천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늘어졌다.

“휴, 귀찮은 혹이 물러났다.”

“오라버니, 대체 무슨 약조를 하신 거예요?”

화연란의 물음에 정천은 볼을 긁적였다.

“그냥 낚시나 같이 가자고 약속했지.”

“그 말을 지금 저희더러 믿으라는 거예요?”

“역시 좀 믿기 어려운가? 어쨌든 알아서 좋을 건 그다지 없을걸.”

“그건 그래 보여요.”

화연란의 대꾸에 모두들 피식 웃었다.

그때 새 한 마리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단순히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무언가 형상을 그리듯 하늘 위를 어지럽게 노닐었다.

자연히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저 새가 미쳤나 봐요.”

소윤의 말에 심후와 화연란이 소리 없이 웃었다. 얼핏 봐선 정말 미친 듯이 날아다니는 모양새였으니까.

그러나 정천은 웃지 않았다.

그저 새가 그리는 궤적을 차분한 눈으로 바라볼 따름이었다.

“오라버니는 뭔가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다고 봐야겠군.”

“저 새는 대체 뭐죠?”

“신호를 보내는 거야. 일종의 상형문자(象形文字)지. 해당 문자를 알고 있는 사람만 읽을 수 있게끔 허공에 글씨를 써 놓는 거야.”

“와, 저 새가 그렇게 영리해요?”

소윤의 물음에 정천은 고개를 저었다.

“저 새는 그저 저 글자를 그리도록 훈련을 받았을 뿐이지. 뭐, 그런 면에선 영리하다고 볼 수도 있겠군.”

“누가 보내는 걸까요?”

화연란이 다시 물었다. 이번만큼은 정천도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가 있구나 싶었다. 화연란은 질문을 바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뜻인지는 알고 계세요?”

잠시 고민하던 정천이 이내 나직이 말했다.

“우리가 도착했다.”

* * *

궤적을 그리던 새매가 귀환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새매의 비행을 본 사람들은 꽤 많았다. 워낙 높은 궤도에 있었던 데다, 황룡성의 곳곳을 오가며 같은 비행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행동에 큰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신기한 광경이긴 해도, 결국은 기괴하게 날아다니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새매는 삽시간에 황룡성의 성벽을 넘고 언덕 하나를 넘어, 숲의 경계에 있는 흑의인의 팔뚝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끝냈는가, 일흑령?”

흑의인의 뒤에 있던 중년인이 물었다. 흑의인은 공손한 자세로 대답했다.

“예. 하지만 과연 이게 통할지는 의문입니다, 신마님.”

“통하면 좋은 일이고, 통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네.”

“너무 낙천적인 전망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나?”

일흑령은 복면 뒤로 쓴웃음을 지었다.

귀도신마가 밟고 있는 땅 주변의 풀들은 거멓게 죽은 상태였다.

그가 숨김없이 발하고 있는 살기로 인해 질식한 것이다.

그는 당당했다. 여느 강자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황룡성을 몇 리 거리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그러한 당당함은 더욱 특별했다.

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싸움을 거는 일을 꺼리지 않는다. 자신을 구태여 숨기지 않으며, 적을 특별히 가리지 않는다.

귀도신마의 당당한 자태는 마인의 귀감과도 같았다.

“강룡단원만이 알고 있는 상형문자로 연락을 취했으니, 빠르든 늦든 반응이 돌아올 테지.”

귀도신마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일까지 각 끼니때마다 같은 신호를 보내도록 하게. 만날 장소는 내가 알리도록 하지.”

“어떻게 하실 것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귀도신마가 담백하게 웃었다.

“비밀이라고 하면 어쩔 텐가?”

“신마님께 애걸복걸 매달려서라도 알아낼 겁니다.”

“재미있겠군. 자네가 매달리는 모습을 한 번쯤은 봐도 좋을 것 같구먼.”

“신마님.”

“알았네, 알았어. 방법은 간단하네.”

귀도신마가 큼직한 대도를 어깨에 걸쳤다. 그의 독문병기인 귀령도(鬼靈刀)였다.

“상형문자를 남기면 되는 일일세. 장소와 시각을 남겨 두면 알아서 찾아오지 않겠나?”

“그 방법에 대해 물어도 되겠습니까?”

“별것 있겠는가? 모두가 알 수 있으며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남기면 되는 게야. 예컨대…….”

귀도신마의 입가가 길게 늘어졌다.

“뭐, 지켜보면 알게 될 걸세.”

* * *

“나가시려는 건가요, 오라버니?”

문지방을 넘으려던 모용준이 고개를 돌렸다. 모용린이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그래. 화륜문에 다녀올 생각이다.”

“화륜문에요?”

“음. 정천 선배와 약조했던 일도 있고 해서.”

모용린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약조라 해도 어제 일이잖아요.”

“응. 근데 아무 때고 찾아와도 좋다고 했으니, 기왕이면 시간이 날 때 미리 다녀오는 게 나을 것 같더구나.”

“그런가요.”

모용린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쉽게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모용준은 그녀의 반응을 보며 뭔가 있구나 싶었다. 무재(武才)도 지재(知才)도 그녀에 비하면 부족한 그였으나, 이런 쪽으로의 눈치는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이 아이, 설마?’

모용준은 헛기침을 조금 하고서 말했다.

“너도 함께 갈 테냐?”

“네?”

모용린의 눈에 당황의 기색이 떠올랐으나 한순간에 불과했다.

그녀는 특유의 차가운 눈으로 냉랭하게 소리쳤다.

“제가 그곳에 갈 용무가 어디 있겠어요. 오라버니나 실컷 다녀오세요.”

짐짓 화가 난 듯한 반응에 모용준은 웃었다.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좋구나, 좋아.”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니다. 그냥 보기 좋아서 그런다.”

“실없는 소리 마시고 얼른 가기나 하세요.”

“하하!”

웃음을 터트린 모용준이 걸음을 떼려 할 때였다.

나직하지만 깊이 있는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재미있는 담소를 나누는 모양이구나. 무슨 얘기인지 나도 알 수 있겠느냐?”

고개를 돌린 모용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모용준 역시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형님.”

모용세가의 장남, 모용훈이었다.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얼굴. 얼핏 봐선 부드러운 인상이, 북방의 자유분방한 기질의 모용세가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두 동생의 반응이 딱딱한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폐관 수련을 끝마치신 겁니까?”

“그래.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좋구나.”

“하지만 아버님께서 정해 두신 수련 기간은…….”

“내 스스로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나왔다.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느냐?”

“아, 아닙니다.”

모용준이 황급이 대답했다.

모용훈이 두 동생에게로 다가왔다.

“그래, 무슨 얘기들을 그리 정겹게 하고 있었더냐?”

“그냥 사소한 잡담이었습니다.”

다소곳이, 그러나 사무적인 어조로 대답하는 모용린.

모용훈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슬쩍 훑고는 모용준에게 향했다.

“아우야, 이 형도 좀 알 수 없겠느냐?”

“형님, 그것이…….”

모용준은 쩔쩔매는 얼굴로 더듬더듬 설명했다.

대강의 설명을 들은 모용훈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흥미가 동하는구나. 나 역시 동행할 수 있겠느냐?”

“예? 하지만 형님…….”

“오라버니의 흥미를 끌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모용린이 급히 말했다. 그러나 모용훈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고개를 저을 따름이었다.

“린아 네가 그리 말하니 더욱 흥미가 동하는구나. 괜찮지 않겠느냐? 너는 별 마음이 없는 듯하니 나와 준이 둘이서만 다녀오겠다.”

“오라버니.”

“걱정 말거라. 별일이야 있겠느냐.”

모용린이 모용준의 눈치를 보았다. 모용준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후우.’

내심 한숨을 쉰 그녀가 말했다.

“그럼 저도 같이 가겠어요.”

“너도? 좋구나. 오랜만에 우리 세 남매가 함께 외출을 하겠어.”

모용훈의 만면에 미소가 피었지만 나머지 두 사람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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