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四章 모용린의 방문 (16/146)

第四章 모용린의 방문

“이런 멍청한 새끼!”

콰지직!

정운장의 장원.

본당 건물의 문이 박살 나며 서윤학이 튕겨져 나왔다.

그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든 데다 의복 역시 갈가리 찢겨져 걸레 쪼가리가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상처투성이의 몰골.

화연란에게 당한 것도 있지만, 상처의 대부분은 장주로 인해 생긴 것이었다.

서윤학보다 머리 하나는 큰 거한이 걸어 나왔다. 그는 쿵쿵 다가와서 서윤학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서윤학의 두 발이 허공에서 대롱거렸다.

“커어억! 스, 스승님!”

“닥쳐라! 네놈 따위에게 스승으로 불리는 것 자체가 역겹다!”

정운장의 장주 도열궁의 두 눈이 용암처럼 이글거렸다.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서윤학의 온몸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퍼버버벅!

“끄아아악!”

안 그래도 상처투성이인 몸 곳곳에서 피가 터졌다. 서윤학은 공중에 들린 채 저항도 못하고 얻어맞았다.

그가 입에 거품을 물 때쯤에야 도열궁이 주먹질을 멈추고서 일갈했다.

“용봉소회에 네놈을 집어넣으려고 들인 노력이 얼마인지 아느냐! 들인 돈은 얼마고 받은 수모는 얼마인지 아느냔 말이다!”

“스, 스승님!”

“평소에도 계집년들 주변만 얼쩡거리더니 결국 일을 내는구나. 오늘 네놈을 죽여서라도 일말의 분을 풀어야겠다!”

그의 두 주먹에 권기가 뭉쳤다. 부르튼 눈으로 그걸 보던 서윤학이 기겁을 했다.

“허억!”

지금껏 그를 두들긴 주먹도 아프긴 했지만 내력이 실려 있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저걸 맞으면 필경 죽을 것이다.

“사, 살려 주십시오!”

서윤학이 무릎을 꿇은 채 싹싹 빌었다.

도열궁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은 채 말했다.

“네놈이 벌인 짓이 얼마나 큰 죄인지는 아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기필코 이 죄는 만회하겠습니다!”

도열궁은 이를 뿌드득 갈고서 주먹에 힘을 풀었다.

“방으로 가서 부를 때까지 찍소리도 말고 있어라. 언제고 오늘의 손실을 만회해야 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서윤학이 황급히 일어나선 자신의 방으로 뛰어갔다. 도열궁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잘 참으셨습니다. 그가 큰 잘못을 하긴 했으나 이대로 버리기엔 아까운 실력입니다. 한 번 기회를 주심이 옳겠지요.”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도열궁이 그를 힐끗 보고는 물었다.

“장 군사, 화륜문이란 곳에 대해선 알아보았소?”

정운장 군사 장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은 파악했습니다. 알려진 게 거의 없어 상당히 애를 먹었지만 말입니다.”

“그 정도인가?”

“예, 청화촌이란 마을에 장원을 두고 있더군요. 폭뢰검 화륜패의 독문무공인 패화영신검을 잇는 문파인 듯합니다.”

“화륜패라고? 용검대의 대주 말인가?”

“그렇습니다.”

도열궁이 놀란 얼굴을 했다.

이미 십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용검대의 명성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었다. 하물며 그들을 이끌던 대주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용검대는 행방불명되지 않았던가? 화륜패의 무공 역시 소실되었다고 들었는데.”

“화륜문의 문주, 그러니까 서윤학에게 승리한 여인이 화륜패의 딸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아버지로부터 검을 익혔겠지요.”

“듣기론 서윤학을 대신해 용봉소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들었소만, 그렇다면 아직 새빨간 핏덩이가 아니오?”

“예. 아직 어린 나이라고 들었습니다.”

“어이가 없는 일이로군!”

도열궁이 이를 갈았다. 설령 패화영신검을 익힌 게 사실이라 해도, 기껏해야 서윤학과 비슷한 나이라는 것 아닌가.

그런 계집이 일문의 문주인 것도 황당했고, 용봉소회의 일원이 된 것도 어이없었다.

장휴가 말을 덧붙였다.

“제가 따로 수소문을 해 보았습니다. 얼마 전 용검대의 성과급이 그녀에게 전달된 모양이더군요. 그녀는 그 돈을 밑천 삼아 문파를 세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윤학이 놈을 제물로 삼아 자기네 문파를 알렸다는 거군.”

“예. 홍보가 목적이었다면 대단히 큰 효과를 본 셈이지요.”

이를 갈던 도열궁이 물었다.

“설마 용봉소회 놈들도 한패인 것이오? 그 계집이 뇌물을 먹여 환심을 샀다거나 한 것은 아니오?”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깟 뇌물에 눈독을 들일 인물들도 아니거니와, 당시 목격자의 말을 듣자면 서윤학이 먼저 추파를 던진 것 같더군요.”

“멍청한 놈! 역시 지금 아주 끝장을 내 놓는 게 나을 것 같군!”

용봉소회는 단순한 후기지수의 모임이 아니다. 나아가 정파의 내로라하는 문파들과 인맥을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때문에 도열궁은 엄청난 투자를 해 문파 최고의 기재 서윤학을 가입시켰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것.

죽 쒀서 개 준 꼴이나 다름없었다.

도열궁은 당장 달려가 서윤학을 요절낼 기세였다. 그런 그를 장휴가 말렸다.

“참으십시오, 장주. 그보다는 이 상황을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기회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장 군사?”

“생각해 보십시오. 화륜문이란 곳이 얼마나 취약한 문파인지 말입니다.”

장휴가 간단하게 화륜문에 대해 설명했다.

기반은 없고 문도도 없다. 본래 존재했던 마을인 청화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흑기단과 흑엽촌에 의해 핍박받던 곳이었다.

도열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치기들 주제에 연이어진 기연을 얻은 격이군. 거금이 들어온 데다 흑기단마저 사라져 버렸으니.”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 것이겠지요.”

장휴의 얼굴에 은밀한 미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도 침범하지 않은 신천지이기도 합니다.”

“신천지라니?”

“간단합니다, 장주. 그곳엔 수천 냥의 금이 있을 겁니다. 그것을 지키는 건 빈약하기 짝이 없는 문파 하나뿐이고 말입니다.”

도열궁의 눈에도 생기가 감돌았다.

“그렇군. 결국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거군.”

“예. 게다가 우리에겐 명분도 있지요. 서윤학이 큰 망신을 당했으니 말입니다.”

“용봉소회가 좀 거슬리지 않겠소? 어쨌든 화륜문의 계집도 그 일원인데.”

“그거야 얼마든 무마할 수 있습니다. 소회의 문파들도 이름 없는 문파를 위해서까지 우리와 대립하려 들지는 않을 겁니다.”

“좋군!”

도열궁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서윤학에 대한 분노도 어느덧 눈 녹듯 사라진 상태였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우선은 흑엽촌에 연락을 취하십시오.”

“흑엽촌에? 그곳엔 왜 연락하란 것이오?”

“지금 누구보다도 화륜문을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디 흑엽촌은 청화촌에 있어 원수나 다름없다. 화륜문의 입장에서도 좋게 보이려야 보일 수가 없다.

현재 무력을 상실한 흑엽촌으로선 당연히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화륜문을 없애려 들 터였다.

“게다가…….”

장휴가 날카로운 미소를 지었다.

“잘하면 그들 역시 집어삼킬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추황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운장에서 사람이 왔다고?”

그는 흑엽촌의 촌장이자 흑엽상회의 회주였다. 그리고 유군광의 최고 심복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지난 한 달 동안은 그야말로 악몽과 같았다.

유군광을 비롯해 흑엽촌을 지켜 주던 무력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말이다.

일단은 상회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무인들을 고용한 상태였다. 주변에 적도 많았던 만큼 이 기회를 노릴 이들도 많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버틸 수만은 없는 노릇.

하루하루 이마에 주름이 깊어지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정운장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접점도 없던 곳인 만큼 의문이 들 수밖에.

“일단 들여보내라.”

안으로 들어선 이는 정운장 군사 장휴였다.

“장 모라고 합니다.”

“추황우요. 이곳엔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사방이 적뿐이니 자연히 말투도 날카로웠다. 장휴는 추황우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하자고 생각했다.

“상회의 회주이시니 쓸데없는 겉치레는 필요 없겠지요. 곧바로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그러시오.”

“오늘은 화륜문의 일로 상의할 게 있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화륜문?”

추황우의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안 그래도 요즘은 그 이름만 들어도 두통이 날 지경이었다.

“그곳의 일이라니.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것이오?”

“얼마 전 칠성루에서 벌어진 사건을 모르십니까?”

“칠성루?”

추황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간 무인들을 고용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탓에 주변 정황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장휴를 앉게 했다.

“우선 자세히 설명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장휴는 중요한 부분만을 요약하여 설명했다.

그것만으로도 추황우는 정운장의 분노가 어떠할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를 갈면서 중얼거렸다.

“화연란 그 계집이 정녕 미쳤군. 돈 조금 들어왔다고 기고만장해서 날뛰는 꼴이라니.”

“동감입니다. 어린 계집이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고 신이 났겠지요.”

“그런데 조금 의문이로군. 정운장의 힘이라면 화륜문과 그 계집을 대번에 쓸어버리는 것도 가능하잖소? 굳이 우리를 찾아올 필요는 없을 터인데?”

장휴는 웃었다.

“이참에 함께 실리를 도모해 보자는 말씀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요사이 흑엽촌과 흑엽상회가 어려운 처지에 처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으음.”

추황우가 침음했다. 장휴의 말이 아픈 곳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군광의 실종은 커다란 타격이었다.

일시적인 행방불명이라 믿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만 커져 가고 있었다.

“요사이 어렵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겠군. 그런데 실리를 함께 도모하자는 말씀은 무엇이오?”

“간단합니다. 우리 정운장엔 안정적인 자금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흑엽상회는 든든한 방패가 필요할 테고요.”

장휴의 목소리가 은밀해졌다.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이 이처럼 들어맞으니, 이만한 기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군.”

추황우는 크게 마음이 동하는 눈치였다. 내심 미소를 지은 장휴가 말을 이었다.

“이참에 두 세력이 협력한다면 능히 어느 문파와 세가도 업신여기지 못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구파일방의 아성에도 도전할 수 있겠지요.”

“음.”

‘물론 그때쯤 남아 있는 것은 정운장뿐이겠지만 말이다.’

장휴는 꺼내지 못할 말을 속으로만 되뇌었다.

같은 순간 추황우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운장을 내부에서 집어삼킨다면 큰 도움이 되겠군.’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좋소. 거래는 성립되었소.”

“감사합니다, 추 회주.”

미소를 지은 장휴가 말했다.

“서로가 든든한 동지를 얻었으니, 화륜문을 그 제사상으로 삼아 결의의 맹약을 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좋은 생각이오. 그런데 계획은 세워 두셨소이까?”

“물론입니다.”

장휴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미 수를 써 두었습니다.”

* * *

화륜문의 장원.

화연란은 마당을 쓸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괜찮은 걸까?”

정천의 호언장담과 달리 며칠이 지나도록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때문에 개파식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문도가 하나라도 있어야 문파 행세라도 할 테니 말이다.

‘생각보다 칠성루의 일이 널리 퍼지진 않은 걸까?’

그렇지는 않았다. 이미 소문은 황룡성에 내에 쫙 퍼졌고, 화륜문의 이름도 심심찮게 사람들 입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찾아오는 문도는 없는 걸까?’

화연란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역시 문주가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그런 거겠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녀.

잠시 후 어딘가에서 전음이 날아들었다.

—그렇진 않을 거예요.

화연란은 놀란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되도록 사람 하나 찾아오질 않는걸요. 오라버니에겐 미안하지만 방법이 잘못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분이 잘못된 방법을 택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겠죠? 이제 곧 문도로 받아달라는 사람들이 오겠죠?”

—아마도…….

“어째 확신이 없는 말투네요.”

쓴웃음을 지은 화연란이 말했다.

“그런데 항상 숨어 계실 필요는 없지 않아요? 나오세요, 담 언니.”

—그냥 담미화라고 부르세요, 문주님.

“저보다 언니시잖아요. 그리고 전 아직 문주 자격을 갖추지도 못했어요. 어쨌든 집에서는 편하게 나와서 지내세요.”

—전 이게 편합니다.

“하지만…….”

화연란은 머뭇거렸다.

담미화가 비영대원이라는 것, 본디 정천의 감시 임무를 맡았었다는 것은 정천을 통해 들었다.

때문에 그녀가 항시 은신하는 것도, 전음을 통해서만 대화하는 것도 이해는 됐다.

그래도 이곳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정말 괜찮으세요?”

—전 괜찮습니다.

사무적인 투로 사양하는 담미화. 그렇게까지 말하니 화연란도 더 권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오라버니는 어디 가신 걸까요?”

—그건 저도 잘…….

정천은 외출한 상태였다. 그것도 담미화까지 남겨 둔 채로. 아무에게도 모르게 움직이고 싶다는 의미였다.

화연란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아마도 복수와 관련된 것이겠죠?”

—…….

그저 하루하루 빈둥대는 것으로 보이는 정천이다. 그러나 화연란은 알고 있었다. 그가 배후에서 차근차근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도.

그로 인해 황룡성, 나아가 온 무림이 발칵 뒤집힐지 모른다는 것도.

하지만…….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요. 그런 고사도 있잖아요? 악귀를 잡으려다 본인이 악귀가 되어 버린 신선 이야기. 정천 오라버니만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담 언니?”

화연란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때 담미화가 짤막히 전음을 보내왔다.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네?”

더 이상의 전음은 없었다. 미약하게 느껴지던 담미화의 기척도 완전히 사라졌다. 잠행술을 극도로 발휘한 것이다.

제갈세연이라면 담미화가 저렇게 반응할 리 없다. 결국은 그녀가 모르는 제삼자라는 의미였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원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설마?’

화연란은 기대 반, 근심 반의 심정이 되었다.

어쩌면 가입을 청하는 문도일지도, 어쩌면 화륜문을 노리는 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후자라면 담미화가 말을 했을 터.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문으로 다가갔다.

“누구시죠?”

“저예요. 모용린.”

“아…….”

화연란이 낮게 탄식했다. 어쩌면 첫 번째 문도일지도 몰랐는데…….

문이 여니 약간 화가 난 듯한 모용린이 서 있었다.

“그렇게까지 실망할 것까진 없지 않나요?”

“아, 미안해요. 딱히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화연란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첫 문도가 왔나 싶어서 내심 기대했거든요.”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모용린은 혼자였다. 평소 용봉소회의 여회원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의외였다.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았나요?”

“혼자 왔어요. 그런데…….”

짤막히 대꾸한 모용린이 대뜸 말했다.

“문도가 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닌가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아무도 화륜문이 청화촌에 있다는 것을 모르니까요. 나도 사정을 몰랐다면 찾아오지 못했을 거예요.”

“앗. 그러고 보니!”

화연란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알려진 것은 화륜문의 이름뿐이었던 것이다.

사실 청화촌의 위치 자체는 그렇게까지 소외되지 않았다. 구석진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중심가까지의 거리도 멀지는 않으니까.

문제라면 역시 접근성.

지난 십 년 동안 흑엽촌에 의해 지속적으로 견제를 받아온 청화촌이었다.

그런 만큼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고, 애초에 찾아오는 이가 적었다. 때문에 화륜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소문 낼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화연란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은 거구나. 아니, 찾아오지 못한 거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문득 시선을 돌려 담벼락 쪽을 바라보았다.

‘담미화 언니는 알고 있었을까? 정천 오라버니는?’

아마 알고 있었으리라.

담미화라면 모를까 정천은 분명했다.

아무나 오느니 알짜배기만 오는 편이 낫다는 식으로까지 말했을 정도다. 이렇게 되리란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 화연란에게 모용린이 물었다.

“저기, 괜찮아요?”

“네? 아, 저는 괜찮아요.”

애써 손을 내저은 화연란이 말했다.

“그런데 여기엔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죠?”

“그냥, 당신들이 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싶었으니까요.”

모용린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보통은 냉랭하다고 느낄 법한 표정으로. 하지만 화연란에겐 왠지 새침한 얼굴로만 느껴졌다.

겨우 그것만이 용무 같지는 않았지만.

화연란이 별안간 손뼉을 쳤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기다리세요. 차랑 다과를 좀 내올게요.”

모용린은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잠깐 왔다 가려는 건 아닌 듯했다.

찻상이 차려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한 채 찻잔을 들었다.

화연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단둘이만 있는 건 처음이네요.”

“그렇군요.”

“모용 소저는 정말 대단하더군요. 따르는 소저들도 많고, 잠깐 견식해 본 실력도 무척 뛰어났고요. 과연 모용세가의 대표란 생각을 했어요.”

“과찬이세요.”

“용봉소회 역시 대단했어요. 참석해 본 건 서너 번뿐이지만요. 회원들 각각의 실력도 후기지수란 표현에 걸맞더군요.”

“그럴 테죠.”

계속되는 짤막한 대꾸.

화연란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저……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모용린은 찻잔에서 입을 뗀 채 눈을 깜빡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냥…… 아까부터 별말이 없으셔서.”

“아.”

모용린이 미안한 얼굴을 했다. 그래 봐야 얼음장 같던 얼굴이 눈송이 같은 얼굴로 바뀐 정도였지만.

“사과하죠. 사실 화 소저보다는 그 사람을 좀 보려고 찾아온 거였어요.”

“그 사람이라면, 정천 오라버니 말인가요?”

“그래요. 용검대의 제삼조장.”

화연란이 흠칫했다.

모용린은 다시 날카로워진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세가의 정보력을 통해 대강 조사해 봤어요. 황룡성의 뒷골목 출신. 어린 나이에 집행부의 골머리를 썩게 하던 청년 도당의 우두머리. 당시 집행부원이던 화륜패에게 붙들려 그의 양자가 되었지요. 기록상으론 이때 일로 화륜패의 승진이 상당히 늦춰졌다고 하더군요.”

하기야 그럴 터였다.

집행부원 대부분이 이를 갈던 녀석을 양자라고 거두어 버렸으니.

“성장하며 화륜패에게서 무공을 사사, 아류를 기반으로 각종 무공을 섭렵했다더군요. 이후 군사부 휘하 타격대인 천풍대에 입대. 출신과 범법 기록에도 불구하고 실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하여 최강의 타격대인 용검대에 입대.”

잠시 말을 멈춘 모용린이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그날 보았던 이와 딴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그런 무뢰배 같은 인간이 사실은 살아 있는 신화 같은 인물이라니.”

확실히 놀라운 기록이긴 했다. 정천의 승진은 오 년이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이루어졌으니까.

그 짧은 시간 동안 곳곳에서 공을 세우고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난 십 년 간의 변화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정천은 충분히 천재적인 무인이었다.

“그 이후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계시죠?”

“이 이후로는 대부분 전투와 관련된 것뿐이더군요. 마교와의 일차 양화산 대전에서 활약. 산서성 분서현의 마교 분타를 격멸. 이차 양화산 대전에서 패전하나 생환. 이때 천무맹을 배신한 호북성 조양현의 연원파를 격멸. 그 직후 귀환하던 도중 강룡단과 조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활로를 뚫고서 생환. 다시 삼차 양화산 대전에서 활약…….”

모용린은 말을 멈추고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전쟁사예요. 당시 서른 남짓이던 나이를 생각해 보면 더 놀랍죠.”

“오라버니는 항상 말했어요. 동지들의 목숨을 딛고서 살아남았다고.”

“그것도 실력이 있으니 가능한 거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본인이 동지들의 처지가 됐을 테니.”

“너무 무정한 말씀이네요.”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냉랭히 대꾸한 모용린이 말했다.

“어쨌든 이후의 기록은 알 수가 없었어요. 갖은 수단을 동원해 봤지만 접근할 수가 없더군요. 대략 십 년 전부터의 기록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더군요.”

“확실히 말해 주세요. 여긴 찾아온 목적이 뭐죠.”

“그자를 포섭하는 것.”

모용린이 딱 잘라 말했다.

“그 십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용검대 조장 출신이라면, 그것도 역전의 무인이라면 필시 세가에 큰 힘이 될 테죠.”

“오라버니를 모용세가에……?”

“그를 외부 교관으로 초빙할 생각입니다. 최고의 대우를 갖춰서요.”

“……!”

“성격이 좀 문제지만, 그거야 절충을 하면 될 일이겠죠. 게다가 실력이 있다면 그 정도 건방진 것은 문제도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는 모용린은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그만큼 많은 준비를 했고, 자신이 있다는 의미일 터.

그렇기에 화연란으로선 쓴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힘들 거예요.”

“난 지금껏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적이 없어요.”

“그럼 이번엔 실패하겠군요.”

모용린의 두 눈에 반감이 드러났다.

“방해할 생각인가요?”

“그 반대예요. 진실을 알려 주려는 거죠.”

“진실?”

화연란은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오라버니는 내공을 소실했어요.”

“……!”

유리 같던 모용린의 표정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화연란을 응시했다.

“그 말, 사실인가요?”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것 같아요?”

“그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모용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한 점은 처음부터 있긴 했다. 그 정도 인물이 천무맹에서 중용되지 않은 게 의아했던 것이다.

당시엔 그 출신과 성격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더불어 화륜패와의 인연 때문에 화륜문을 돕기로 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설마 이런 사실이 더 있었을 줄이야.

‘내공 없는 교관이라고?’

문파의 교관이란 말 그대로 각 무인들을 직접 가르치는 인물이다.

가르치려면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신뢰를 얻으려면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내공 없는 무인이 인정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름난 무공을 익혔다면 또 모른다.

하지만 정천이 익힌 것은 독문 무공. 실전을 통해 갈고닦은 것이기에 이론만으론 부족한데다 신뢰도 역시 턱없이 떨어졌다.

용검대 조장의 이름만으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실망했겠군요.”

화연란의 말에 모용린은 표정을 바로 했다.

“부정하진 못하겠군요.”

“그렇군요. 아쉽겠어요. 아마 오라버니가 온전했더라도 그 제안을 따르진 않았겠지만.”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정천이란 사람을 잘 알고 있으니까.”

모용린과 화연란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침묵뿐인 가운데 방 안의 공기가 세차게 흔들렸다.

먼저 손을 털고 일어난 사람은 모용린이었다.

“이런 장난이나 할 생각은 없어요. 이만 가 보죠. 차는 잘 마셨어요.”

“배웅해 드리죠.”

“그럴 필요는 없…….”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가 두 사람의 귀를 찔렀다. 담벼락 옆 장독이 깨지는 소리였다.

파밧!

모용린과 화연란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장독에 박혀 있는 화살이었다.

그리고 그 화살대에 매여 있는 종이. 아마도 수십 장 바깥에서 날아온 것이리라.

추격을 포기한 화연란이 급히 다가가 종이를 끌렀다.

그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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