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章 청화촌
제갈세연과의 선문답이 있었던 바로 이튿날.
정천이 아침부터 일을 나가지 않고 빈둥거렸다. 그것도 나름 규칙적으로.
그날은 비번(非番)이었던 칠삼이 관찰한 바로는 다음과 같은 식이었다.
정천은 두 시진가량을 마루에 큰 대자로 누워선 빈둥거렸다.
그 후엔 일각 정도 정좌를 하고 앉아서 보냈다. 마치 운기조식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내력이 흐른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러곤 다시 드러누워서 두 시진 동안을 빈둥거리길 반복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저렇게 쓸데없이 시간을 축내는군.’
뭔가 있을까 싶어 관찰하던 칠삼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할 일이 없으면 운동이라도 좀 하지 그러나? 몸도 성하지 않은 친구가.”
칠삼의 말에 빈둥거리던 정천이 픽 웃었다.
“걱정해 주는 거야? 눈물 나는 마음씀씀이로군.”
“그렇게 비아냥거릴 건 없지 않나? 뭐, 요즘 자네를 보자면 건강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이네만.”
확실히 그러했다.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요사이의 정천에게선 생기가 느껴졌다.
창백하던 얼굴에도 혈색이 돌았고 전체적인 체형 역시 균형이 잡혔다. 맹주 남궁운의 말이 없었다면 내력이 소실됐다고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읏차!”
빈둥거리던 정천이 몸을 일으켰다. 칠삼이 그 모습을 빤히 보자니 그대로 숙소 바깥으로 나서려는 것이었다.
“정말 운동하러 가나?”
“아니, 찾아가 볼 곳이 있어.”
“찾아가 볼 곳?”
슬쩍 칠삼을 돌아본 정천이 대꾸했다.
“청화촌.”
* * *
천무맹 소속 무인들의 거주 지구는 비단 청화촌뿐만이 아니다.
기실 청화촌이 있는 서부 구역 대부분이 무인들과 그 가족들의 거주지였다.
그러한 마을들이 서로 맞닿아 있는 상황. 황룡성의 거주 지구는 중원 무림의 축소판과도 같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사람 모이면 자연적으로 파벌이 생기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한 파벌은 다른 파벌과 직, 간접적으로 경쟁하기 마련이다.
그 경쟁의 과정에서 약한 파벌은 물어뜯길 수밖에 없다.
물론 황룡성의 집행부가 이를 어느 정도 처리하긴 했다. 때문에 마을과 마을끼리 본격적으로 싸움을 벌인다거나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 마을이 다른 마을을 괴롭히는 방법은 비단 한 가지가 아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청화촌은 그야말로 최약자였다.
황룡성은 무인을 혈액 삼아 돌아가는 사회였다. 그런 만큼 각 마을에 있어 무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자산이요, 힘이었다.
그리고 용검대는 십 년 전에 모두 사라졌다.
청화촌은 벌거벗겨진 채 황야에 놓인 신세였다.
그런 상황에 내던져진 이들을 핍박하는 방법이야 여럿이었으리라.
물론 처음엔 다른 마을들도 함부로 청화촌을 건드리지 못했다.
용검대가 돌아오는 순간 그 재화(災禍)가 몇 배가 되어 돌아올 테니까.
그러나 그들의 귀환이 자꾸만 멀어지고, 마침내는 불가능해졌음을 알게 된 순간.
늑대 같은 이들은 거리낌 없이 먹잇감을 탐하기 시작했다.
가산을 빼앗고 전답을 빼앗는 일이 지난 세월 동안 벌어졌다. 청화촌의 지난 십 년은 그야말로 수탈의 연속이었다.
과거 청화촌에 속해 있던 건물과 전답은 대부분 다른 마을에 넘어간 뒤였다.
가족의 생환을 기다리던 주민들 역시 하나둘 포기하고는 청화촌을, 나아가 황룡성을 떠났다.
백여 호(戶)의 집이 반수가 되는 데엔 오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오 년 동안 나머지 집들도 차츰 사라져 갔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나 남은 곳은 스무 가구가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 그들이 남은 것도 다른 곳에 정착할 능력도 없는 노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몰락의 날을 하릴없이 기다리는 상황.
지금의 청화촌은 그런 처지였다.
청화촌 초입의 거리.
화연란은 눈앞에 쌓여 있는 금전 더미를 노려보았다.
햇살을 반사하여 눈부시게 빛나는 금전들이었지만, 그녀는 원수라도 되는 양 노려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모두 구천구백 개의 금전.
성이라도 살 수 있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말 그대로 자그만 황금산을 이루는 규모.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건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은 군사부의 무인들이었다.
“정말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거요?”
몇몇 노인들이 창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없다는 듯 고개를 치웠다.
무인은 그들을 보며 이를 박박 갈았다.
“제기랄, 평생 일해도 못 벌 돈을 주겠다는데 왜들 지랄인지.”
“그러게 말이야. 나한테 저 돈을 준다면 좋아 날뛸 텐데.”
“저 천분의 일만 얻어도 소원이 없겠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이런 기묘한 대치를 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군사 제갈현의 명령에 따라 청화촌에 구천구백 개의 금전이 지급됐다.
물론 남아 있는 가구는 스무 호가 되지 않았으나, 떠나간 이들의 행적이 묘연한 만큼 모조리 청화촌으로 지급되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주민들 중 어느 누구도 돈을 수령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군사부 무인들이 마을 어귀에 금전을 쌓아 놓고는 지키게 됐다. 수령되지 않은 이상 금전들은 모두 군사부의 재산이었던 것이다.
화연란은 그런 금전에서 몇 걸음 떨어진 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무인들 중 하나가 그녀에게 소리쳤다.
“이년아! 대체 왜 돈을 가져가지 않는 거냐?”
화연란은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그저 원한 어린 눈으로 금전들을 노려볼 뿐.
“말이 들리지 않는 거냐!”
무인이 재차 윽박지르고 나서야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한기가 어린 눈비에 군사부 무인들이 찔끔했다.
“받아 봐야 의미가 없으니까요.”
“의미가 없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어차피 억만금을 손에 쥐어 봐야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에요. 이 근방에서 청화촌 사람에게 제값을 받고 물건을 파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필경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를 테죠.”
“…….”
“그렇다고 먼 곳까지 가서 물건을 사려 했다간 다른 마을에서 고용한 깡패들을 맞닥뜨릴 뿐이고요. 이 돈을 가져가 봐야 우리에겐 의미가 없어요.”
“험험…….”
“그런 일이 있으면 집행부에 신고를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신고를 하면 제대로 처사하기나 하나요? 뇌물을 잔뜩 받은 집행부원이 와서 적당히 수사하는 척하다가 물러날 뿐인데.”
무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못했다. 그들도 청화촌의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싼 사방이 적.
현재의 청화촌의 모습이었다.
화연란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나직이 말했다.
“그러니 저깟 돈일랑 가지고 돌아가요. 받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까.”
“으음…….”
무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가지고서 돌아갔다간 불호령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한숨을 쉰 화연란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그때 마을 어귀에 기다간 그림자가 여럿 드리워졌다. 곧이어 일련의 사내들이 마을로 들어섰다.
건장한 체격, 하나같이 잿빛 무복을 맞춰 입은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절로 생겼다.
화연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흑기단 놈들.’
흑기단은 황룡성 암흑가에 만연한 무인 집단 중 하나였다. 무인 집단이라 해 봐야 그 실상은 무뢰배 무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 배후 세력이 황룡성 이십각(二十閣) 중 하나인 호궁각(虎宮閣)이란 것이었다.
물론 그 배분이 비영각(飛影閣)을 비롯한 상위 칠각(七閣)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어지간해선 넘볼 수 없는 수준임은 분명했다.
하물며 지금의 청화촌으로선 더더욱.
호궁각을 본부로 삼는 호궁위사대는 호상장로인 유군광의 직속 부대였다. 그리고 그들의 마을은 청화촌 북부에 위치한 흑엽촌.
옛 청화촌의 땅과 재산 대부분을 빼앗아 간 마을이었다.
결국 흑기단 역시 그러한 흑엽촌의 깡패 무리라는 소리였다.
“거기 계셨군.”
흑기단 무인들 중 유난히 얼굴이 준수한 사내가 화연란에게로 다가왔다.
흑기단주 유준협이었다.
호궁위사대주 유신청의 아들이자 호상장로 유군광의 손자로 옥연공자(玉燕公子)란 별호를 지니고 있었다. 별호 자체는 반쯤 자칭에 불과했지만.
“오랜만이구려, 화 소저.”
제법 멋들어지게 인사하는 유준협. 그러나 그를 보는 화연란의 눈은 차갑기만 했다.
“또 무슨 일이죠? 더 이상 여기서 긁어 갈 만한 것도 없을 텐데요?”
“하하. 긁어 가다니,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려.”
화사하게 웃어 보인 유준협이 비꼬듯이 말했다.
“오늘은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러 왔소.”
“…….”
“용검대의 전멸이 확인된 모양이더군.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무사들이었는지 알고 있는 입장에서 북받치는 애수를 참을 수가 없더구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시죠.”
“섭섭한 말을 하는구려. 뭐, 좋소. 가시가 있는 꽃은 꺾는 보람도 있는 법이니.”
화연란은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여길 찾아온 건 저것 때문이 아닌가요?”
그녀는 쌓여 있는 금전 더미를 가리켰다. 유준협의 얼굴에 탐욕스런 미소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본인을 욕심 많은 파락호 따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유감이군. 하지만 화 소저에게 충고가 필요할 것 같기는 하오.”
“충고라고?”
“청화촌에서 우리 흑기단에 진 빚이 오백 냥가량 남아 있지 않소?”
“말도 안 되는 소리!”
발끈하는 화연란과 달리 유준협은 여유 가득한 얼굴이었다.
“암만 우겨 봐야 소용없소. 서류가 버젓이 남아 있으니 말이오.”
화연란은 이를 악물었다.
유준협이 말한 서류란 게 분명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마을을 떠난 자가 마을의 명의를 빌려 작성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흑기단은 이 문제를 송사(訟事)로 끌고 갔다. 물론 뇌물을 듬뿍 먹은 판관에 의해 서류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아, 생각해 보니 오백 냥이란 건 지난해의 얘기로군. 이자를 계산해 보니 도합 칠백오십 냥을 받아야 할 것 같소만.”
“그런 폭리가! 연 이자가 오 할이란 건가요?”
“그건 아니오만 송사에 들어간 금액도 배상받아야 하지 않겠소?”
“큭.”
화연란으로선 유준협을 노려보며 이만 갈 뿐이었다.
유준협은 부럽다는 듯이 말을 돌렸다.
“그래도 큰 걱정은 없을 것 같소만? 이 정도의 액수라면 돈을 다 갚고 나서도 엄청난 양이 남겠구려. 본 공자는 어째서 이 거금을 수령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오.”
“흥. 결국은 이 돈이 목적이란 거군요.”
“그렇게 생각한다니 애석할 따름이군.”
빙긋 웃는 유준협의 얼굴이 문득 기묘하게 비틀렸다.
“본 공자로선 그저 걱정스러울 따름이오. 혹여나 무뢰배 녀석들이 이 돈을 노리고서 마을을 급습하지나 않을지 말이오.”
“…….”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하시오. 흑기단은 전력을 다해 청화촌을 도울 것이오. 그리고…….”
유준협의 탐욕스런 시선이 화연란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화연란은 마치 까슬까슬한 혓바닥에 쓸리는 듯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길 바라겠소.”
말을 마치고서 돌아서는 유준협이었다.
화연란은 분개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생각할 것도 없는 협박이었다. 돈을 받아다가 바치지 않으면 깡패들을 부려 횡포를 놓겠다는 의미.
그리고 그 이상의 것까지 내놓으라는 의미.
그러나 화연란과 청화촌 사람들로선 그 제안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자부심이나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 봐야 어차피 피를 빨리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화연란은 쌓여 있는 금전을 다시 돌아봤다. 이번엔 살기 어린 눈이 아닌 애수가 담긴 눈이었다.
‘결국 돌아오시지 않는군요.’
본디 활기가 없는 청화촌이었으나 이 금전 더미가 온 이후로는 죽은 마을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모두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까닭이었다.
용검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의 가족은 모두 죽었다.
금전을 수령하지 않는 데엔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다는 생각도 큰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화연란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저 도둑들에게 모두 넘긴다면 마음만은 편할지도 모르지.’
살기 힘든 거야 마찬가지라지만 최소한 위협은 사라지는 셈. 그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한 화연란이었다.
“후우.”
그녀는 한숨과 함께 몸을 돌렸다. 쌓여 있는 금전을 보자니 마음만 심란해질 것 같았다.
“이건 뭐야?”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사내가 금전 더미를 앞에 두고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내는 대뜸 군사부 무인들에게 물었다.
“어이, 왜 여기다 돈을 쌓아 두고 있는 거지?”
“뭐냐, 네놈은?”
“내가 누군지는 알 것 없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나 설명해 봐.”
“설명이고 나발이고 썩 꺼져라. 돈에 손이라도 댔다간 곤죽을 내 버리겠다.”
“흠.”
사내는 더 묻지 않고서 턱만 쓰다듬었다. 그렇다고 무인들의 말마따나 꺼지지도 않았다.
“받기 싫든지 받을 수 없든지, 둘 중의 하나겠군.”
“…….”
군사부 무인들이 이게 웬 놈인가 하는 눈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조금 전 다녀간 흑기단 놈인가 싶었지만 의복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사내는 더 이상 무인들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뜸 화연란을 돌아보며 물었다.
“소저는 이곳 사람인가?”
“네?”
화연란이 두 눈을 깜빡이려니 사내가 재차 말했다.
“청화촌 사람이냐고 물었어.”
“아, 네. 그렇습니다만.”
“그렇군. 이름이 어떻게 되지?”
갑작스런 질문에 화연란은 조금 당황했다.
대뜸 이름부터 묻는 남자치고 위험하지 않은 놈이 없었던 것이다.
화연란이 머뭇거리자 사내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가 당황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내 이름은 정천이다.”
“정천……? 정천…….”
왠지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부를 때마다 추억을 자극하는 아련한 느낌…….
잠시 동안 그 이름을 곱씹던 화연란의 눈동자가 커졌다.
“정천 오라버니? 정천 오라버니예요?”
“응? 나를 아나?”
“저예요, 오라버니! 화연란이에요!”
정천은 잠시 멍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조금 뒤에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십 년이 지났으니…… 그런데 네가 그 오줌싸개 란아라고?”
“오라버니!”
그녀가 토라진 말투로 소리쳤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정천도 미소를 지었다.
“그 시끄러운 목청은 여전하구나.”
“오라버니도…… 사람 속 긁는 말투는 여전하시네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듯 화연란이 눈 주위를 손으로 훔쳤다.
“그렇다는 건…… 용검대의 유일한 생존자가 오라버니란 말씀이군요.”
“그래, 미안하다.”
정천의 사과에 화연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살아 돌아온 것이 어떻게 미안할 수가 있어요? 오라버니가 살아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정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홀로 돌아온 그와 구천구백 냥의 성과급, 그게 의미하는 것이 분명해졌기에.
정천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다. 그는 용검대의 유일한 생존자다.
화연란은 비로소 그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편히 눈을 감으셨나요?”
묻는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대주님께선…….”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정천이 대답했다.
“마지막까지 널 그리워하셨다.”
“그렇군요.”
화연란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녀의 어깨가 조금 들썩거리는 것도 같았다.
정천이 그녀를 가볍게 안아 주려고 다가갔을 때 화연란이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눈물을 훔치며 웃어 보였다.
“전 괜찮아요.”
“란아야.”
“울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이젠 나 혼자가 아니니까. 짊어져야 할 분들이 곁에 있으니까요.”
정천은 말없이 주변을 돌아봤다. 벽으로 가려진 너머로 몇몇 사람들의 존재가 느껴졌다.
하나같이 느린 호흡.
대부분이 노약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연란은 그런 이들을 데리고서 청화촌을 지켜온 것이었다.
정천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화연란이 애써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들어가요, 오라버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