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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209화 (20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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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二章 화화(火火) (4)

저벅!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검은 무복을 입은 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검은 무복, 치렁하게 늘어트린 흑발.

검왕은 예전 모습으로 서 있다.

칠수선자가 살짝 보조개를 피워내며 웃었다.

“보기 좋네. 죽었던 사람 같지 않아.”

“이러지 않기를 바랐는데.”

검왕이 두 눈에 차디찬 한광을 실어내며 답했다.

칠수선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단지 눈빛만 접했을 뿐인데, 어두운 그림자가 온몸을 덮어온다.

검왕과 싸우면 죽는다!

검왕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동굴로 들어서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점을 알고도 동굴로 들어섰다. 검왕과 힘껏 싸우다가 죽을 요량으로.

죽음에 대한 각오는 서 있다. 허나 검왕은 현실을 말해준다.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확실한 죽음을 말한다.

저절로 몸에서 찬바람이 일어난다.

백살마창이 창을 굳게 움켜잡으며 말했다.

“상대가 안 되는 줄은 알지.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줬으면 하는데. 할 수 있다면 일수에 숨통을 끊어줘도 좋고. 그럼 더 바랄 게 없겠는데.”

그들은 말을 하면서 공격준비를 했다.

좌수비마가 왼손으로 검 자루를 잡고 반 보씩 앞으로 나갔다.

태황도마는 칼을 꽉 움켜잡고 성큼 두 걸음이나 앞으로 나섰다. 언제든 칼을 쓸 수 있는 거리다.

“귀면이 빠졌군.”

검왕이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몸이 시원치 않아서…….”

백살마창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마군, 좌수의 뒤를 이을 생각인가?”

검왕이 네 명을 쓸어보면서 말했다.

“정확……하군.”

팔짱을 낀 채 수하들의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마군이 말했다.

사실, 마군도 벌써 공격준비를 끝낸 상태다. 수하들이 공격하면 가장 강한 쪽을 받쳐줄 생각이다.

수하들은 일수에 나가떨어질 것이다. 수하들이 비록 강해졌지만 검왕은 더 강해졌다. 아니, 검왕이 강해지기 전이라고 해도 상대하기 버겁다.

그러나 대가는 생긴다.

첫째로 검왕의 무공을 알아볼 수 있고, 두 번째로…… 잘하면 검왕에게 틈을 만들 수 있다. 검왕이 네 명을 쓸어내는 동안 잠깐이라도 허점이 생길 수 있다.

마군은 좌수비마 쪽에서 그 허점이 가장 크게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좌수비마의 뒤를 쫓아 들어갈 예정이다. 좌수비마가 열어놓은 허점에 혈무기를 쏟아 넣는다. 허면 최소한 타박상이라도 입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검왕을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지는 못할지라도.

검왕이 말했다.

“좌수 쪽이 아니라 선자 뒤를 받쳐주겠소?”

“뭐라고?”

“좌수나 마창이나 태황이나…… 사정없이 손을 쓸 수 있겠는데, 선자는 망설여지는군.”

“호호호! 그런가? 말이라도 고마워.”

칠수선자가 고혹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고 나를 놓아줄 수는 없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 죽이실 생각이야?”

“회룡각(回龍脚)을 생각하고 있지.”

“회룡각? 보지 않고 찰 수 있으니까? 호호호! 그런데 그렇게 초식을 딱 정해놓고 사용하려면 뭔가 어긋나지 않나?”

검왕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좌수 다음에 마창, 그리고 선자. 마창을 쳐내고 회룡각으로 치면 되니 딱 알맞은 수순이야.”

“후후후! 그러니까 그 생각이 마음대로 되냐 이거지.”

츠으으읏!

백살마창이 장창에 진기를 실었다.

파르르륵!

창끝이 살아서 꿈틀꿈틀 움직인다. 금방이라고 튀어 나가려고 용틀임을 한다.

‘선자 뒤를 이어달라. 음!’

마군은 농담인 듯싶은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검왕은 죽고 죽일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 공격해 오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말해주었다.

함정인가? 쉽게 상대하려고 수를 쓰는 건가?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겠지만 검왕은 다르다. 검왕은 굳이 이런 수를 쓰지 않아도 모두를 상대할 수 있다.

아직도 마공관에 처음 왔을 때가 기억에 새롭다.

검왕을 찾아냈고, 자신과 수하들이 전력을 다해서 공격했다. 정말로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도 펑펑 나가떨어졌다.

그 후로 수하들은 십마에 버금갈 정도로 강해졌다. 하지만 검왕 역시 강해졌으니.

검왕은 진실로 가장 강한 공격 형태를 말해주었다.

그것은 검왕 자신도 자신의 무공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최강의 공격을 최상의 상태에서 막으려는 것이다.

‘후후후! 이번 싸움이 내 일생 마지막 싸움인가?’

츠으으읏!

마군은 혈무기를 최극상으로 끌어냈다.

어차피 한 번 쓰면 두 번 다시 펼칠 수 없는 공부다. 그러니 진기인들 아낄 필요가 있는가. 혈무기 뿐만이 아니라 원정진기까지 모두 끌어낸다.

쒯!

좌수비마는 말 한 마디 없이 즉각 공격했다.

검왕의 판단이 옳다. 검왕은 좌수비마 쪽에서는 허점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좌수비마가 제일 먼저 공격해 올 것을 짐작한 듯하다.

슷! 퍽!

눈 깜짝할 순간에 한 차례 격돌이 끝났다.

언뜻 보면 좌수비마가 검을 찔러넣었고, 검왕이 좌수비마의 왼팔 겨드랑이 밑을 파고든 듯한 형상이다.

물론 겨드랑이 밑을 파고들지는 않았다. 파고들려는 듯 살짝 허리만 숙였다. 좌수비마도 겨드랑이 밑을 내줄 사람이 아니다. 그 전에 그가 뻗은 검이 머리를 떼어낼 게다.

두 사람은 서로 찌르는 시늉, 허리를 숙이는 시늉만 했다.

헌데도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좌수비마가 휘청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쒜에엑! 쒜엑! 파파파파팟!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창, 편, 칼이 날아들었다.

백살마창은 일수사십칠 연환창을 전개했다. 상대가 한 초식을 펼쳐낼 때, 그는 사십칠 연환창을 쏘아낸다. 말도 안 되는 빠름으로 창호지 뚫듯이 뚫어낸다.

칠수선자는 편을 사용했다.

그녀는 편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사용한다. 극단의 순간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을 뿐. 그렇다. 편법은 그녀가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은 구명절초다.

그만큼 자신 있고, 능숙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고루마편(??魔鞭)을 쥐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태황도마는 무림에서 가장 많이 펼쳤던 절기, 뇌정결도를 쳐냈다.

강도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빨간 불덩이가 검왕을 향해 쏘아진다. 빨갛다 못해서 하얀 백색으로 변한 화도(火刀), 백도(白刀)가 동굴을 유린한다.

동굴 같은 좁은 공간에서 피하기에는 너무 폭급하다.

검왕은 보이지 않고 창날만 보인다. 하얀 백광만 보인다. 그 사이를 인골(人骨)이 누빈다.

슈웃!

가공할 폭풍 속으로 한 줄기 붉은빛이 소리 없이 스며든다.

칠수선자의 고루마편을 쫓아서 붉은 기운이 따라붙는다. 검왕이 말한 대로…… 좌수비마는 이미 나가떨어졌고, 백살마창과 태황도마는 격중하기 직전이고…… 오직 칠수선자만 살아남아 있다. 딱 검왕이 말한 대로다.

투투투툭!

백살마창이 부러지기 시작했다.

사십칠 연환창이 가닥가닥 끊어져 나간다.

동시에 태황도마의 하얀 백도가 빛을 잃어갔다. 하얀색이 새빨간 색으로, 붉은색으로, 그리고 옅은 붉은색으로 점점 화기를 잃어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공격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쩍 벌렸다.

백살마창은 왼쪽에서, 태황도마는 오른쪽에서 공격하고 있다. 그 중심에 칠수선자가 있다.

검왕은 백살마창과 태황도마를 동시에 상대한다.

가운데로 버려두고 왼쪽과 오른쪽을 거의 한순간에 방어, 역공한다.

휘릭!

검왕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휙 뒤집어졌다.

회룡각이다! 다음 목표는 칠수선자다!

“크윽!”

“컥!”

백살마창이 답답한 신음을 흘리면서 물러섰다. 태황도마는 짧은 숨을 토해내고는 억센 힘으로 던져진 듯 힘없이 날아가 떨어졌다. 그리고 일어서지 못했다.

일어서지 못한 사람은 많다.

좌수비마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허나 이미 생기는 소멸되고 없다.

백살마창도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삼 척 길이로 짧아져 버린 마창을 움켜쥐고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내 축 늘어졌다.

휘릭! 퍼억!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하아!’

칠수선자는 웃으려고 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회룡각을 봤다. 너무나도 완벽한 무공을 봤다. 자신이 지닌 어떤 절기로도 막지 못할 빠름이다.

허나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그저 풀썩 쓰러졌다.

“큭!”

짧은 단말마가 칠수선자의 육신을 덮었다.

칠수선자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녀의 영혼은 육신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세상을 벗어나 버렸으니까.

“혈무기가…….”

어처구니없는 듯, 탄식인 듯, 허탈한 음성이 동굴을 울렸다.

“어떻게 혈무기를…….”

마군이 검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검왕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십마의 무공 또한 이 가슴속에 있는 것을.”

“그런가. 우리 무공도 꿰고 있었던 것인가. 그럼 지금 이 상황은 온전히……?”

“촌장이 수련한 무공은…… 후후! 그것은 무공이 아니지. 어른이 되면 어린아이들의 싸움이 한 눈에 읽히게 되어 있지. 싸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일 뿐, 무공으로 논할 성질이 아니지.”

검왕은 자신의 무공을 말해주었다.

높은 성취를 이루면 성취가 낮은 사람의 움직임이 환히 보인다. 무공을 알든 말든…… 전혀 본 적이 없는 무공을 펼치더라도 한눈에 읽어버린다.

이것이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특권이다.

촌장이 이런 경지다. 검왕도 이런 경지를 이뤘다.

“후후후!”

마군은 웃었다.

‘굉장하다!’

하마터면 탄성을 토할 뻔했다.

마군, 백살마창, 패황도마, 칠수선자, 좌수비마…… 이들이 촌각 만에 나가떨어졌다.

이들을 절명시킨 무공은 대단한 절학이 아니다. 사실은 아무 절학도 펼치지 않았다. 단지 반사신경만으로, 육신의 반응만으로 공격을 피하고 반격했다.

검왕은 다섯 고수의 무공을 환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검왕은 가슴을 가리키면서 무공이 가슴 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은 혈무기가 어떤 식으로 터져 나오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떤 형태로 공격하는지는 안다는 뜻이다.

가슴으로 무공을 느끼고 있다.

보고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보고해야 할 사안이다. 마군이 자신을 남겨둔 이유,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귀면사자는 호흡을 멈춘 채 검왕이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기만 기다렸다. 헌데,

스읏!

갑자기 눈앞에서 거미줄 비슷한 것이 어른거렸다.

‘웃!’

귀면사자는 즉시 검왕을 봤다. 검왕을 피해서 움직일 수 있을까? 없다. 검왕은 동굴 밖으로 나가고 있지만, 아직은 동굴 안에 있다. 움직이면 발각된다.

스읏!

거미줄 같은 것이 또 움직였다.

“제길!”

귀면사자는 툴툴거렸다. 작은 음성이지만 거침없이 새어 나왔다. 지금 움직이면 검왕에게 발각되겠지만 그렇다고 거미줄 같은 것에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만은 없다.

귀면사자는 즉시 동굴로 뛰어내렸다. 아니, 뛰어내리려고 했다. 그가 막 몸을 움직이려고 했을 때, 거미줄 같은 것이 아주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목을 휘감아 버렸다.

“큭!”

귀면사자는 손으로 거미줄을 움켜잡았다.

“웬 놈!”

“이놈아, 너보다 한참 어른이신데 놈이 뭐냐, 놈이.”

귀면사자의 머리 위에서 회성(回聲)처럼 웅웅 울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넌!”

“이놈이 아직도 어른보고!”

귀면사자는 다급했고, 머리 위에서 말하는 자는 차분했다.

목에 감긴 거미줄이 점점 조여든다. 귀면사자의 손가락을 파고든다. 손가락을 자른다.

“컥컥!”

귀면사자는 다급한 비명을 토해냈다. 하지만 목을 조여오는 거미줄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십마 중에 일인인 비형은잠, 그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마공관 마서를 전달하는 자리에도 비형은잠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근처 어디엔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워낙 은신술을 좋아하는 인간이라서.

비형은잠이 검왕을 호신하고 있었던 것인가.

귀면사자의 사지가 바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그러나 거미줄은 계속 목을 파 들어갔다. 마치 뼈까지 잘라내지 않고는 멈추지 않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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