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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二章 화화(火火) (3)
싸울 줄 아는 사람은 새로운 무공을 배우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특정 권법의 달인이라고 해서 다른 문파의 무공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우행은 저지르지 않는다. 자신이 제일 강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도 타 문파의 무공에서 흡수, 병합할 수 있는 요건이 있으면 당장 끌어온다.
헌데…… 이것에 ‘최고’라는 말이 붙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최고라는 말은 고집과도 연결된다.
자신이 제일 강하다는 고집, 자신의 무공이 제일 좋다는 고집, 세상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은 없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자신의 무공을 발전시켜 나가려는 고집.
십마 정도 되는 사람에게는 이런 고집들이 있다.
그들은 마공관의 마서들을 건성건성 살폈다.
자신들이 죽으면 자신들의 무공도 마공관의 마서와 동등한 위치에 놓일 것이다. 그러니 굳이 다른 마인의 무공을 섭렵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래도 본다. 혹시 도움이 될 부분, 보탤 부분은 없나?
검왕은 이런 무공들 중에 하나를 취했다. 아니, 여러 개를 취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무공을 창안해 냈다.
검왕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무공은 혈영마공이다. 허나 그 이전에 적벽검문의 무공이 있다. 혈영마공을 극성까지 끌어 올려도 마성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 보면 적벽검문 무공이 아주 단단한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검왕 무공의 근간은 적벽검문 무공이다.
겉보기에는 혈영마공처럼 보이지만, 혈영마공의 외형만 가져왔을 뿐이다.
십마의 판단은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무공을 버리지 않는다. 마공관 마서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저 참고로 할 부분이 있는지, 아니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살핀다.
“이제 우리도 행동을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마군이 진중하게 말했다.
“마군.”
“네, 말씀하시지요.”
“마군은 왜 제게 충성하는 거예요?”
“주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주군이냐고요? 무공, 경륜, 배분…… 모든 면에서 따라갈 수가 없는데, 왜 이런 제게 머리를 숙이고 시키는 일을 하는 거죠?”
“촌장님께서…….”
“단지 이유가 그것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촌장님의 명을 거스르고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럼 곤란하지 않나요? 전 단지 명에 의해 받들어진 몸이고, 진짜 명은 촌장님이 내리는 것이고. 두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의 말이 최우선이죠?”
“영주님입니다.”
“왜요?”
“현재 제 주군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대화가 반복되었다.
“마군, 돌아가세요.”
“…….”
“촌장님께 돌아가세요.”
“검왕을 선택하신 겁니까?”
“검왕과 나…… 우리 두 사람……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어요. 우린……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녜요.”
“알고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게 아녜요. 마군이 해야 해요. 그리고 마군의 선택이 어떤 방향으로 결정 나든 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요. 진심으로.”
“알겠습니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겠습니다.”
마군이 정중하게, 지극히 정중하게 두 손 모아 읍을 했다. 마치 하직인사를 하는 것처럼.
“내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낄낄낄!”
태황도마가 키득거렸다.
쌍첨수괴 도군악은 태황도마를 흘깃 쳐다본 후, 말을 이었다.
“너흰 십마에 버금갈 정도로 강해졌다. 그러니 나도 너희에게 선택권을 주려고 한다.”
“주군은 어느 쪽으로 선택했어요?”
칠수선자가 물었다.
마군은 고개를 저었다.
“내 의사를 살피지 말고 너희 뜻대로 해라. 그러라는 뜻에서 내 결정은 밝히지 않겠다. 아무 거리낌 없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독단적으로 결정해라. 서로 상의도 하지 말고.”
“주군.”
귀면사자가 조용하게 말했다.
“주군이 영주님과 만날 때, 우린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주군께서 말씀하지 않으신다니, 우리 결정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을지.”
“말해라.”
“우린 마옥을 버릴 수 없습니다.”
“너희 모두 같은 뜻인가?”
“그렇습니다. 주군께서는 영주님을 떠날 수 없겠지만…… 저희는 반대 길을 가야겠습니다.”
귀면사자가 모두를 대신해서 말했다.
“후후! 후후후!”
마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역시 혈루마옥 사람들이다. 혈루마옥 사람들이 어떻게 혈루마옥을 변절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의 형제가 녹천에 있다.
이들의 어미, 누이, 자매가 증평에 있다.
혈루마옥의 저주를 억지로 벗겨내느라 무공의 절반 이상을 잃어버린 채 중원에 나선 사람들이지만…… 중원이 고향이다시피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뿌리는 역시 혈루마옥에 있다. 마옥을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너희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생각한 게냐?”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좌수비마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것도 오늘 죽을 것이다.”
“후후후! 그 정도 각오쯤이야.”
“좋다. 그럼 가자.”
마군이 수하들을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어! 그럼 주군께서도?”
“아! 우리 불쌍한 영주님, 이제 어떡하나. 혼자 남으셨으니. 쯧! 그러게 왜 사내에게 눈을 뜨셔가지고.”
“사내에게 눈을 뜨는 것이 뭐 어떤가. 상대가 검왕이라는 게 문제지. 검왕 그놈……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이야. 그런 곳에 빠지셨으니 허우적거리는 것이 당연하지.”
“그런가?”
“적벽검문…… 정말 치밀한 곳이야. 난 적벽검문이 검왕을 검성에 파견한 거라고 봐. 영주님이 검성에 들어갈 때, 딱 그 시기에 검왕도 입성했잖아.”
“동감, 한 마디로 말해서 미남계에 넘어간 건데…… 검왕 저놈이 진실하지만 않았으면 내 가만히 안 놔뒀다.”
“가만히 안 놔두면 건드릴 수나 있었고?”
“쯧! 하기는 그때도 상대는 안 됐지.”
그들은 마군 뒤를 쫓으면서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는 홀로 남아서 중원을 떠돌 제이령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영주, 불쌍해서 어떡하나.
십마들 중에 몇몇은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또 일부는 운공조식을 취하고, 몇몇은 아직도 마공관 마서들을 뚫어지게 훑어보고 있다.
쉬는 사람이나 운공하는 사람이나, 비급을 읽는 사람이나 모두들 마공관 마서에 심취해 있다.
그러나 저들은 많은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마공관 마서는 혈루마옥이 먼저 점검했다. 현음자가 혈루마옥에 대비해서 만든 비급들이니 한 번쯤은 살펴봐야 하지 않느냐 하는 판단에서다.
살펴본 결과는 대실망이다.
마공관 마서로는 결코 혈루마옥을 상대하지 못한다.
마공관 마서를 모두 살펴본 결과, 마공관 마서 전부를 한 사람이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않는 한은 결단코 혈루마옥의 무공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면에서 보면 검왕이 대단한 것이다.
검왕이 수련한 무공이 대단하다는 게 아니다. 하찮은 무공을 절정 무공처럼 연마해낸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십마는 검왕 같은 천재가 아니다.
십마들 역시 무공 귀인들이지만 검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검왕도 그런 점은 잘 알 것이다. 헌데 왜 저들에게 마공관 마서를 내주라고 요청했을까?
십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라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꺼이 내줬다. 가지고 있어 봐야 짐만 되는 물건들이기도 하고.
십마는 마군과 수하들이 그들을 지나쳐 동굴로 들어서는 것을 내버려두었다.
그들을 저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잘 봐. 처음부터 끝까지.”
칠수선자가 귀면사자에게 말했다.
“후후후!”
귀면사자는 나직이 웃었다. 그러나 행동은 빨랐다.
쉬잇!
그는 어느새 동굴 천장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생기(生氣) 일체를 죽였다.
이제, 귀면사자는 사라졌다.
귀면사자는 분명히 동굴 안에 있는데, 그 누구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인간의 오감의 걸려들지 않고, 무인의 육감에도 감지되지 않는다.
“혼자 하려고? 그럼 외롭지.”
백살마창이 칠수선자 옆에 섰다.
“어차피 우리 모두 우르르 몰려들어 봤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놈이니까.”
좌수비마도 칠수선자 옆에 섰다.
“흐흐흐! 뒤는 내가 맡지.”
태황도마가 칠수선자 등 뒤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들은 검왕을 공격하기 위해서 동굴로 들어선 것이다. 검왕이 수련해 낸 새로운 무공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나 강한지 알아보기 위해서.
사실, 촌장은 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촌장이 제이령이나 마군에게 명령을 내린 지는 꽤 오래되었다. 어느 날, 증평주와 함께 홀연히 사라진 후부터는 어떠한 지시나 명령도 하달되지 않았다.
검왕을 공격하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그들 독단이다.
혈루마옥은 마공관 마서를 섭렵하면서 단 하나의 무공만은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했다.
검왕이 수련했다는 화화사령공이다.
화화사령공은 상식이나 논리, 무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아니, 망상 속에 포함시키기는 것도 과분할 정도인 쓰레기 허상이다.
그런데 검왕은 그런 허상을 이뤄냈다.
검왕은 분명히 죽었다. 허나 살아난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숨 쉰다.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다.
검왕이 생사를 넘나드는 행동이나 화화사령공의 말도 안 되는 무리나…… 이 둘이 결합하여 정말로 검왕이 화화사령공을 수련해 낸 것이라면, 이런 무공이라면 반드시 점검을 해봐야 한다.
자신들은 죽을 것이다.
검왕이 동굴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도 그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밖에 있는 십마 전부가 달려들어도 상대할 수 없는 거목이었다.
그런 무인이 또 한 번 죽었다가 깨어났다.
필패는 불가항력이다. 그리고 패배는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한 명은 남겨놓는다. 만약, 검왕이 펼치는 화화사령공이 혈루마옥 무공에 미치지 못할 것 같으면 돌아볼 가치도 없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마옥에 보고해야 한다.
“검왕.”
칠수선자가 동굴 안을 향해 말했다.
동굴 안쪽은 굽이진 곳이라서 칠흑같이 어둡다. 자신의 손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는 싸울 수 없다.
싸울 수는 있지만 귀면사자가 제대로 보지 못한다. 오직 느낌만 받을 뿐이다.
정확하게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검왕을 끌어내서 비교적 빛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서 싸워야 한다.
“연공을 마쳤으면 나와줬으면 해.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럼 긴 말이 필요 없잖아? 이제 서로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아.”
검왕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화화사령공을 연마했을까? 아직 연마하기 전일까?
제이령이 동굴에서 나왔다는 것은 검왕이 자진을 감행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검왕이 모습을 보인다면, 조금이라도 기척을 보인다면 화화사령공이 성공한 게다.
‘죽어라. 제발 나오지 마라.’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선다. 바짝 일어선 긴장감에 머리칼이 빳빳해진다.
“검왕, 우린 검왕이 있는 곳에서는 손도 쓰지 못해. 그러니 발악이라고 하게 해줘야지? 움직일 수 있으면 밖으로 나와줘. 우리가 있는 곳까지만 와주면 돼.”
그때, 모든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리는 음성이 들렸다.
“이러지 않기를 바랐는데.”
검왕의 음성이다.
검왕의 음성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산산이 부수면서 잔잔히 울린다.
“너희가 죽으면 영주가 외롭지 않겠나.”
저벅! 저벅!
묵중한 발걸음 소리도 들린다.
왼발, 오른발…… 발걸음에 실리는 진기가 고르다. 매우 안정되어 있다. 더군다나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우면서, 소리는 매우 묵중하게 울린다.
‘우린 상대가 안 돼!’
칠수선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