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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207화 (207/225)

# 207

第四十二章 화화(火火) (2)

검왕을 만질 수 없다.

검왕은 생명이 끊겼다. 생기(生氣)를 느낄 수 없다. 시커먼 동굴 속에 괴기로움만 감돈다.

검왕에게 달려가서 맥을 짚어보고 싶다.

허나 그러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매우 중요한 순간에 잘못된 접촉을 해서 방해를 한 것이라면…… 또, 다시 영원한 죽음이 확인되기라도 하면…….

유화아는 어둠 속에 앉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공조식에 들어간다.

운공조식을 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에는 조식을 풀고 일어서야 한다. 하지만…… 일어서지 않을 생각이다. 검왕이 일어서기 전에는.

검왕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같은 공간에서 머문다.

츠으으읏!

진기를 끌어올려 무념(無念)의 깊이까지 들어갔다.

참 묘한 인연이다.

태어난 곳이 다르고, 자란 환경이 다르고, 보고 배운 것이 다른데…… 어느 날 불쑥 만난 순간부터 상대를 내 자신이라도 된 것처럼 가슴에 담아버렸다.

그 후부터 상대를 떼어낼수록 가슴이 아프다. 찢어진다.

떼어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떼어내는 것은 너무 아픈데…… 지금도 이렇게 아픈데.

‘휴우!’

가는 한숨을 토해낸다.

동굴 밖은 밝은 햇살로 가득하다.

한 걸음만 안으로 들어가면 칠흑같이 어두운데,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면 환한 광명이 쏟아진다.

그러나 가슴은 빛을 담지 못한다. 여전히 어둡다. 동굴 깊은 곳처럼 캄캄하다.

‘기어이 죽은 모양이네.’

유화아가 취한 행동을 통해서 검왕이 어떤 모습인지 짐작된다.

검왕이 돌아올 수 있을까?

가슴이 아리다. 아프다.

‘살아올 거야. 이렇게 가면…… 안 되지. 내 심장에 검을 찔러야 하잖아. 그러기 전에는 못 가.’

제이령은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기(運氣)는 주시(注視)다.

운기를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몸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들에게서 느낌을 받아야 한다.

신경, 피, 근육, 뼈…….

그다음에 경맥(經脈)이 드러난다.

경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흐름이다.

육신을 해부했을 때, 존재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은막(銀幕)에 가려진 흐름이다.

이 흐름은 광대해서 기경팔맥(奇經八脈)을 이룬다.

기경팔맥은 눈으로 볼 수 없다. 느낌으로도 감지할 수 없다. 인간이 지닌 어떤 감각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러 볼 수는 있다. 의념(意念)을 통해서.

여기까지 진척이 있으면 비로소 운기조식을 취할 수 있는 기본을 닦은 것이다.

의념으로 진기를 끌어내고, 경맥을 타통시키는 것이 운기조식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적으로 흐르는 진기를 의념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원하는 경맥으로 유도해간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주객(主客)이 있다는 점이다.

의념을 일으키는 자가 있고, 의념이 가리키는 대로 움직이는 진기가 있다.

지켜보는 자가 있고, 지켜보여지는 대상이 있다.

이 관계는 운기조식을 취하는 한, 변할 수 없는 영고불멸의 관계가 된다.

운기조식을 심도 깊게 진행하면 몰아지경(沒我之境)에 이른다고 한다. 육신을 잊고, 감각을 잊고, 나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운기조식만 취한다.

이 말은 틀렸다.

운기조식을 취하는 한, 몰아지경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육신을 잊고, 감각을 잊을 수는 있지만 주시(注視)……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는 계속된다.

고도의 집중에 따른 망아(忘我)를 몰아지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허면 이 주시를 놓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의념이 사라진다. 진기도 사라진다. 내공을 형성하고 발산하는 흐름도 사라진다.

그때부터는 운기조식이 아니다.

혈영마공은 혈영마공 특유의 경맥 흐름을 지니고 있는데, 그 흐름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진기는 단전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주시를 놓아버리면, 단전을 보지 않으면, 단전에서 일어나는 진기를 보지 않으면…… 진기가 어떤 경맥을 통해서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볼 수 없다.

결국 운기는 주시라는 결론에 이른다.

운기는 주시다. 고도의 주시다. 다른 것은 일체도 보지 않고 오직 진기만 보는 망아지경이 최선이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한 게다.

죽으면 육신이 멈춘다. 모든 기능이 정지된다. 감각도 멈춘다. 경맥도 사라진다. 진기 흐름은 오직 산 자에게서만 나타나는 생명유지현상이다.

그런 상태에서 홀연히 한 줄기 진기가 피어난다.

죽음에서 돌아와 다시 살기 시작한다. 한 줄기 진기가 죽은 육신에 꽃을 피운다.

한 줌의 진기는 찰나 만에 전신을 장악한다.

삶이 죽음을, 죽음이 삶을……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 순간은 인간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인간이 지닌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만큼 순간적이다.

한순간, 죽음으로 떨어지려던 육신을 진기 한 줌이 구해낸다.

이 진기는 다시 육신을 소생시킨다.

제일 먼저 전신 경맥부터 부활시킨다.

육신을 소생시키기 전에 경맥부터 되살린다. 몸과 감각과 느낌이 살아나는 것은 그다음이다.

진기가 다시 경맥을 소생시킬 때…… 화화사령공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인간의 의식은 그 순간이 마치 저승 입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 줌의 진기가 전신 경맥을 되살리는 순간인데, 마치 사령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전신 경맥을 가장 완벽한 상태로 부활시킨다.

진기가 가장 강맹하게 흐를 수 있도록 경맥을 다시 조절하고, 생성시킨다.

탄생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순간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주시나 느낌으로는 결코 잡아낼 수 없는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죽은 자의 느낌으로 잡아내는 것이다.

진기가 경맥을 부활시킬 때, 티끌만큼이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재조정하기 위해서.

첫 번째 시도는 성공했다.

검성에서 뛰쳐나와 마공관 동굴에 터를 잡고 일시에 전신경맥을 차단시켰다.

죽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 화화사령공을 증명했다.

두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한 줌 진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육신은 죽은 상태를 유지했다. 경맥을 일깨워야 할 한 줌 진기마저 소멸해버렸다.

혈천성주가 사법으로 되살리지 않았다면…….

세 번째 시도 역시 실패했다.

죽음이 덮쳐왔고, 잠복시켜둔 한 줌 진기는 일어서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 실패를 경험했기에 세 번째는 유화아를 옆에 두고 시도했다. 화화사령공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유화아가 살려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의 투살진기는 잠복시켜둔 진기를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시기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라면 즉시 손을 쓸 테니까.

이번이 네 번째…… 한 줌 진기는 일어나는가?

턱! 턱!

무엇인가 걸린다. 쑥 나가지 못하고 톡 튀어나온 돌부리 같은 것에 걸린다.

까아악!

강한 힘으로 뭉개버린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앞으로 나갈 길에 장애물처럼 버티고 있으니 없애버린다.

텅! 꽈르르릉!

장애물이 제거되자 물줄기가 다시 흐른다.

가로막는 장애물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모조리 뭉개버린다.

장애물을 제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없다. 그냥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가도록 조정하는 것뿐이다. 굳이 장애물을 제거할 이유도 없고, 제거하라고 시킨 사람도 없고, 제거해야 한다고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다.

누가 시킨 사람은 없다. 그저 해야 한다.

턱!

또 걸린다.

무엇이 걸리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것이 어느 정도로 튀어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물줄기가 흐르다가 턱 걸리고, 그런 느낌이 전해진다.

느낌을 전하는 것은 무엇이고, 느낌을 전달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 것은 없다. 특정한 어떤 것이 튀어나온 게 아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 튀어나와 있고, 튀어나왔다는 느낌이 일어나고, 동시에 누군가가 제거한다.

여기에는 오직 행동만 있다.

‘누가 무엇을’이라는 존재는 없다.

터엉!

천지가 진동하는 듯, 큰 울림이 일어난다.

물길을 회로(回路)를 치닫는다. 물길이 시작되는 점과 끝나는 점이 같다.

원천에서 일어나 원천으로 돌아온다.

꽈르르르릉!

순환을 시작한 물줄기는 끊임없이 흐른다.

흐르고, 흐르고, 흐르고……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이쯤에서…… 눈길[目]이 들어온다. 시선이라는 것이 들어와서 물길을 쳐다본다.

‘살아야 한다!’

의지도 생겨난다.

자신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고 생각되며, 물길을 잘 유도하려고 노력한다.

이른바 사령이라는 것을 만나는 게다.

헌데…… 바꿀 것이 있나? 없다. 사실은 아무것도 바꿀 것이 없다. 바꿀 것은 시선이 들어오기 전에, 주시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모두 바뀌어졌다.

화화사령공은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

인간의 의식으로는 쫓아갈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래도 어떻게든 설명해야겠기에 ‘사령’이라는 말을 끌어냈으나, 사실은 사령이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화화사령공의 요체는 진기 소생에 있지 않다.

죽음이 일어나기 전에 화화사령공의 요체는 끝난다. 죽음이 일어나더라도, 육신이 정지해도 마지막 한 숨을 돌이킬 수 있도록 진기를 숨겨놓는 것에 있다.

한 줌 진기가 살아나면 화화사령공은 성공한 것이다.

이번에는 살아났다. 살아나서 주시를 한다. 물길이, 진기가 흐르는 것을 지켜본다.

자연스럽게 주시가 운기로 이어진다.

만사(萬事)를 겪어본 자와 방안에서 글공부만 한 사람과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두 번 싸워본 자와 열 번, 스무 번을 싸워본 자가 같을 수 없다.

화화사령공은 경험으로 축적된 의식을 손질한다. 경험 속에 녹아든 무공을 다듬는다.

죽기 직전, 검왕의 모든 의식은 무공 증진에 모아져 있었다.

다른 것은 일절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무공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염원했다.

죽음에서 깨어난 진기가 제일 먼저 한 일도 그것이다.

죽음 직전에 떠올렸던 의식을 바로 이어서 활동을 재개했다.

툭툭 튀어나온 돌부리를 제거하고, 물줄기가 바로 흐르도록 개선했다.

자, 이제 어떤 무공이 나타날 것인가.

우우우우웅!

운기를 하는 몸에서 가는 진동이 일어난다.

육신과 공기 사이에 얇은 막이 생긴 것 같다. 어떤 공간이 따로 존재하는 느낌이다.

운기를 하면 진동이 일어난다.

얇은 막을 울리고, 공기를 울린다.

일주천(一周天), 또 일주천…… 무인들이 말하는 몰아지경 속에서 진기를 지켜본다.

유화아는 운공조식을 풀고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는 그대로 무너지듯이 쓰러졌다.

검왕을 향해 큰절을 한다.

그녀는 절을 한 채로 일어서지 않았다. 일어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몸이 떨린다. 그리고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한없이 고맙다는 말만 나온다.

이 사내를 가슴에 품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다른 여인만 쳐다보고 있는 사내인데.

그래도 고맙다. 이렇게 살아났으니 됐다.

우우우우우웅!

공기의 울림을 듣는다.

이것이 인간이 운공조식을 하는 현상인가?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나? 어떻게 운기를 하면서 진동을 일으키나.

유화아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경지다.

그러나 지금은 무공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검왕이 살아났다는 것만 생각한다. 은은한 진동이 검왕의 생존을 말해주는 것이기에 고맙다.

‘고마워요.’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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