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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一章 사혈(死血) (5)
“허!”
유계판서 화상상이 기가 막혀서 주위를 쓸어봤다.
유계판서만 기가 막힌 것이 아니다. 모두들…… 검왕을 따라온 십마 모두가 어이없어서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는…… 일당백의 요지네. 산적이라도 이런 곳에 틀어박혀 있으면 토벌될 우려는 없겠어.”
“그러게.”
“식량하고 물만 있으면 천 날도 버틸 것 같지 않아?”
“저쪽 길만 막으면 들어올 길이 없잖아. 천 날이 아니라 만 날도 버티겠다.”
음악삼귀는 천하제일의 요지에 매료되었다.
옛날, 음악오귀 시절에 이런 요지를 물색하고 다닌 적이 있다. 이런 곳을 찾으면 마음 놓고 산적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두 발 쭉 뻗고 잠들고 싶어서.
이제 그런 곳을 찾았다.
십조잔괴가 만족해하는 음악삼귀를 쳐다보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놈들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하는 소리야?”
“여기가 어딥니까? 평범한 곳은 아닌 것 같은데?”
“마공관이다.”
“흡!”
음악삼귀는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이곳이었나? 이곳에 절대 마공이 잠들어 있었나?
음악삼귀는 급히 주위를 쓸어봤다.
물론 마서 같은 것이 남아있을 리 없다. 그 날, 마공관이 급습을 받은 날, 이곳은 마인들의 천국이었다. 무공께나 쓴다는 마인들은 모두 모여들었고, 마서를 찾기 위해 광분했다.
마공관주 누강이 머물던 움막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공관을 지키던 무인들도 사라지고 없다. 거의 대부분 죽거나 검성으로 돌아갔다.
현재, 마공관은 주인 없는 땅이 되었다.
검왕은 십마를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쓸어보다가 대뜸 자신이 거처하던 동굴로 향했다.
그는 십마에게 지시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있어도 지시하는 경우는 없다. 그들은 상하 관계가 아니라 돕고 도와주는 관계다.
“검왕, 우리는 뭘 하나!”
강신천마가 주변이 쩌렁 울릴 정도로 우렁차게 말했다.
검왕은 움푹 파인 구덩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뿐이다. 검왕은 이미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어둠 속으로.
“저긴 마서들이 있던 곳이잖아.”
“마서는 벌써 치워졌는데, 저기서 뭘 하라는 거지?”
그때였다. 한 사람이 나타났다. 마공관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구덩이 속에서.
“저, 저, 저, 저놈…… 쌍첨수괴 도군악 아냐?”
“저놈이 여긴 어쩐 일로……”
십마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쌍첨수괴 도군악은 검성 제이령의 수족이다. 더불어서 혈루마옥과도 모종의 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군 도군악!
그가 십마 앞에 나타났다. 검왕이 가리킨 구덩이 속에서.
누미를 말리려고 했다.
무당산으로 발길을 옮긴 것은 어떻게든 정사대전을 막아보자는 심산이었다.
허나 결국 말리지 못했다.
세 번 죽어서 탄생한 몸으로는 겨우 누미를 상대할 수 있을 뿐이다. 누미가 혈루마옥 무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역시 예전과 마찬가지로 필패다.
그런 사정을 무당산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정사대전은 벌어졌고, 무당산은 초토화되었다. 무당파는 멸문했고, 중원 무림은 피폐해졌다.
이제 중원 무림은 혈루마옥을 막지 못한다.
생각이 맞다면…… 촌장의 무공은 누미를 능가한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누미를 제압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마음 놓고 풀어놓은 것이다.
촌장이 나서면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혈루마옥은 왜 직접 손을 쓰지 않는 것일까? 왜 꼭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서 중원을 피로 물들이는가.
손을 쓰기 싫어서? 귀찮아서? 천만에!
그런 말은 피에 굶주린 늑대가 피가 싫어서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무공이 강한 자는 무공을 뽐내고 싶어 한다.
혈루마옥처럼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한 사람들은 넓은 공간에서 활개치고 싶어 한다.
저들이 중원 무림을 증오했던 것도 그것 때문이다.
자신들은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는데, 중원 무림은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활개치고 살고 있지 않은가.
특별한 원한이 있거나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어린애들 치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아주 사소한 질투로 중원을 피로 물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 그게 이치에 맞는다.
왜 혈루마옥 무인들은 직접 중원을 피로 물들이지 않는 것일까? 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검왕은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어쨌든 이제 한 산에 호랑이가 두 마리가 됐다.
중원은 누가 건드려도 무너질 정도로 허약해졌고, 혈루마옥을 막아설 인재도 없다.
그래서 마공관으로 돌아왔다.
중원에 있으면 호랑이 두 마리와 모두 싸워야 한다. 저들이 서로 정리를 하고 난 다음에 이긴 자를 칠 생각이다. 그토록 강한 자를 어떻게 치느냐는 차후 문제고.
당분간 중원 무림에 지옥이 도래하겠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
검왕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긴 침묵에 잠겼다.
도군악이 마서를 내놨다.
중원 무인들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마서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십마 앞에 놓였다.
“이게 무슨 뜻이오?”
강신천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군악은 혼자 온 것이 아니다. 그의 뒤에는 수하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백살마창, 좌수비마, 칠수선자……
십마에게는 견주지 못해도 나름대로 무공을 자신을 갖고 있는 마인들이다.
쌍첨수괴 도군악은 원래 마인이었다.
십마 중에 일인이었으며, 정도인들을 척살하는데 가장 앞장 서서 움직였던 사람이다.
도군악을 따르는 수하들도 같은 전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같이 정도인의 피를 병장기에 묻힌 전력이 있다. 수하들 중 어느 누구도 마인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검성 쪽으로 돌아섰다.
물론 이 사실 역시 몇몇 사람들만 안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도군악이 은거한 줄로 안다. 여간한 일로는 무림에 모습을 비추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도군악은 검성쪽으로 돌아섰다.
배반이다.
엄밀히 말하면 검성이 아니라 검성 이령주 휘하로 들어섰다.
마도에서 십마라는 당당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마인이 한낱 이령주 휘하로 들어간 것이다.
검성주의 휘하라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인데, 검성주와는 비견도 할 수 없는 이령주 휘하라니. 태산이 동네 언덕에게 머리를 조아린 것과 무엇이 다른가.
도군악은 철저하게 이령주의 지시를 따른다.
이령주가 은거한 지금도 이령주를 따른다. 이령주가 활동을 하지 않으니 그도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마서를 내놓았다.
도군악이 차게 말했다.
“증평주를 만나봤지 않은가.”
“만나봤지.”
“일초지적인들 되던가?”
“그것을 묻는 게 아니잖아. 마군…… 어떻게 된 거야?”
어찌 들으면 마군의 근황을 묻는 것처럼 들린다.
아니다. 강신천마의 물음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강신천마를 비롯해서 십조잔괴, 천살마노…… 그들은 제이령의 근황을 궁금해 한다.
제이령이 활동을 재개한 것인가!
그들이 정작 묻고 싶은 물음이다.
그들 세 사람은 제이령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마군이 그런 것처럼 그들 역시 다른 길이 있다.
검왕과 제이령이 서로에게 검을 겨누면…… 그들은 검왕에게 검을 겨눌 것이다. 이제는 무공 차이가 상당히 벌어져서 맞싸운다는 자체가 우습지만…… 그래도 싸울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최선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마군은 강신천마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나 강신천마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적어도 증평주와 겨룰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지. 그래야 밥값을 하는 게지. 태황!”
“옛!”
마군이 부르자마자 뒤에 서있던 태황도마가 두 손 모아 읍하며 대답했다.
“음악삼귀는 마신천강기를 수련했다. 바늘 들어갈 틈도 없다고 자신하는데, 찔러봐!”
“존명!”
태황도마가 대답과 동시에 칼을 뽑았다.
꾸루루룽! 꽈앙! 꽝!
철도와 철검이 부딪친다.
사귀는 궁술을 사용한다. 하지만 태황도마에 맞서서 철검을 꺼내들었다.
삼귀와 오귀는 뒤로 빠졌다.
태황도마를 상대하는데 한 명이면 충분하리라고 여겼다. 사실, 그들은 십마조차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 무모한 자신감이라고 해도 좋은데, 실전에서 만나면 추호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마신천강기는 그토록 단단하다.
꾸르르르릉!
태황도마가 도법을 전개한다.
거대한 대감도가 벼락같이 내리쳐진다. 그리고 칼이 움직일 때마다 우렁차게 천둥소리가 몰려온다.
“마황절도(魔皇絶刀)……”
십조잔괴가 태황도마의 무공을 알아보고 낮게 중얼거렸다.
마황이라는 마인이 있었다. 무림에 출도해서 딱 삼백 번을 싸웠고, 삼백 명을 죽였다.
그는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마인이건 정도인이건 무공이 강하다고 하면 찾아가서 싸웠다. 그리고 이겼으며, 반드시 상대방의 목숨을 취했다.
그래서 마황이라는 별호가 생겼다.
마군은 과거 마황이 존재했기 때문에 황(皇)자를 취하지 못하고 군(君)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만큼 마도 무림사에 마황이 끼친 그림자는 크다.
태황도마는 마황절도를 구사한다. 마신천강기를 앞에 두고도 유유하게 절도를 쳐낸다.
원래 태황도마의 무공은 뇌정결도였다.
도를 쳐낼 때마다 우레소리가 울린다고 해서 뇌정결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마황의 마황절도에 자신의 뇌정결도를 결합시켰다.
마황절도를 수련한 걸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무공과 융합시키는 단계까지 올랐다.
현재 태황도마의 무공은 십마에 못지않다.
“음! 마공관의 무학을 얻으면 단숨에 절정고수가 된다더니, 헛말이 아닐세.”
십조잔괴가 중얼거렸다.
“그만!”
마군이 태황도마를 중단시켰다.
태황도마는 마군을 거스르지 않는다.
태황도마의 무공이 저 정도로 급성장 했다면 마군은 어느 정도일까? 최소한 태황도마를 누를 수 있는 지경까지는 성취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음!’
십마는 속으로 침음했다.
그들은 마군이 자신들과 동등한 지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뿐만이 아니다. 마공관 마학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신들이 죽는다면 자신들의 무공 또한 마공관에 소장될 것이 아닌가.
십마는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았다.
헌데…… 이제는 마군과 거리가 벌어졌다. 마군의 수하가 동등한 지경까지 달려들었다.
마군이 말했다.
“다른 생각들은 말고……”
세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제이령과 연관된 사람들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선 싸울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겠지. 여기 참고로 할 것들을 두고 가니까.”
마군이 구덩이에서 나왔다.
‘죽는 수밖에.’
이 상태로는 누미와 싸울 수 없다. 촌장과도 싸우지 못한다.
마공관을 찾아올 때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또 한 번 죽어야겠다.
죽는다는 것은 깨어나지 못한다는 위험을 수반한다.
목숨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가 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지금까지 되살아난 것만 해도 천운이다.
허나 한 번 더 죽어야겠다.
운이 따라주어도 좋고 따라주지 않아서 죽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상태로는 어차피 죽음 밖에 돌아올 것이 없다.
스읏!
검을 풀어 무릎 위에 올려놨다.
눈을 감고 무심으로 들어간다. 머릿속을 텅 비운다. 육신이 망각되는 지점까지 파고들어간다.
스으으으읏!
진기를 일주천시킨다.
준비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