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204화 (20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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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一章 사혈(死血) (4)

누강은 혈오를 안았다.

“네놈이 누미 아들놈이구나. 후후후!”

누강은 아기의 볼을 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그에게 아기는 단지 아기일 뿐이다. 누미가 낳은 아기다. 그래서 친손자 같은 마음이 든다.

혈오?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어준 괴물?

누강에게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아기가 무슨 물건 취급 당하는 것도 싫다.

“하하하! 너 아니었으면 이 목이 날아갈 뻔했구나. 네가 울어준 덕분에 살았다. 고맙다. 고마워.”

누강은 혈오가 왜 울었는지, 어떻게 자신을 알아보는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궁금하다고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욱이 말도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는.

“아이가 예쁜가 보지?”

“예쁘지. 아주 예쁘지. 하하하!”

“나도 예쁘면 좋을 텐데.”

“어미가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 이 아이, 말만 못할 뿐이지 다 듣는다.”

누강은 누미가 편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해도 흡족했다. 헌데,

푹!

등 뒤에서 화끈한 통증이 일어난다. 마치 불에 덴 듯한 뜨거움…… 그리고 곧 뼛골을 저려울리는 통증…… 이가 저절로 악물어지는 불쾌함…….

“크윽!”

누강은 이를 악다물었다. 하지만 저절로 새어나오는 신음은 막을 수 없었다.

“울어?”

등 뒤에서 누미가 혈오를 쳐다보며 말했다.

혈오는 울지 않는다. 누강에게 변괴가 생겼지만 방실방실 웃기만 한다.

“울지 않네?”

“으으윽!”

“흠! 그럼 당신이 상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잖아? 일정한 범위 안에만 있으면 괜찮다는 거네?”

“누미야! 너, 너…….”

“아이를 안게 해줬잖아. 그러면 좋다며?”

“으음…….”

“조금만 참아봐. 아이를 위해서.”

푸욱! 쭈우욱!

칼이 등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위로 쭉 올려졌다.

“크으으윽!”

비명을 지르고 싶지 않았다. 아이 앞에서 인상을 찡그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모두 하고 말았다. 비명도 질렀고, 인상도 찡그렸다.

“확실히 울지 않아. 옆에만 있으면 되는 거네.”

누미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잘못 왔다…….’

음사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지금처럼 후회한 적이 없었다.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하필 그때 왜 누미 말을 꺼냈는지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

누미 말을 꺼냈을 때, 누강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했어야 한다. 목숨이 위험해도 만나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왔을 것을 예측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누미에 대한 말, 누미를 한번 만나 보겠냐는 말 따위는 입 밖에도 내지 않았을 게다.

“당주…….”

“조용히 해라. 괜찮다.”

“이게 괜찮은 겁니까? 뼈가 다 보입니다.”

“죽지 않으면 된 거지.”

“어떻게 사람을 이 모양으로…… 확실히 예전의 누미가 아닙니다. 이젠 미련을 버리십시오.”

“그것 참 이상하지? 무엇이 이 아이를 홀리는 것일까? 핏줄이 전혀 섞이지 않았는데.”

누강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뇌옥 밖에 있는 혈오를 쳐다봤다.

혈오는 그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뇌옥까지 따라왔다.

뇌옥 안에 누강과 음사가 있고, 뇌옥 밖에 시녀와 혈오가 있다.

누미는 없다. 그녀는 혈오에게 정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누강이 보아왔던 그 어떤 어미보다도 모질었고, 매정했다. 혈오를 쳐다보는 눈길이라니.

누강은 그 모든 점이 자신의 불찰 같았다.

자신이 누미를 양딸로 들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미색이라면 고관대작 자제를 만나서 잘살고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복수의 화신이 되어서 무림에 검을 들이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저놈, 신기하게 당주님만 보면 웃네요.”

음사가 생글거리면서 웃고 있는 혈오를 보면서 말했다.

한편으로는 누강 상처를 치료하랴, 다른 한편으로는 혈오를 관찰하랴…… 무척 바쁘다.

“그러게 말이다. 저 놈, 나만 보며 웃어. 하하!”

누강도 웃었다.

‘그때 그 일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혈오가 자신만 보면 웃는 이유를 모르겠다.

자신과 혈오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번에 보기 전까지는 일면식도 없었다.

그런데 웃는다.

이런 일, 검왕의 심부름 때문이 아닐까?

낯선 자들이 옷을 벗겼다. 붓에 물을 묻혀서 간질간질 몸에 글씨를 썼다. 그림을 그렸나?

물로 썼기 때문에 흔적은 남지 않는다.

물? 물이 맞나? 일종의 향유(香油)를 바른 게 아니었을까? 물론 몸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향유를 발랐다면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 할 텐데. 혹, 자신만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혈오만 맡을 수 있는 냄새이거나.

‘그 사람들이 누구지?’

자신에게 이상한 짓을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려고 해도 마땅히 생각나는 얼굴이 없다.

사실, 누강은 그들을 보지도 못했다.

비몽사몽이라고 할까? 머리가 맑게 깨어있지 못했다. 꿈속인지 환각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거기서 무슨 일인가를 당했는데, 도무지 어떤 일을 당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좌우지간 매우 이상한 일을 당했다는 기억만은 확실하게 남아있다.

‘아무래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어.’

혈오가 그에게 끌리는 이유가 있다면…… 그때 무슨 일인가를 당한 것과 연관있을 것이다. 그 외에는 어디서도 혈오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누강은 검왕의 행적을 돌이켜봤다.

자신이 그 일을 당했을 즈음, 검왕은 마인들을 운집하여 정사대전을 벌이기 직전이었다.

음사의 말을 빌리자면 정사대전을 벌이기 직전에 검왕이 잠시 망설였다고 한다. 무당산을 들이치기만 하면 되는데, 몇 날 며칠이고 아무 말도 없이 웅거했다고 들었다.

그즈음에 낯선 자에게 알몸으로 붓질을 당했다.

검왕이 자신이 무당산으로 올 것이라고 예측한 듯하다. 그리고 여기서 혈오를 만날 것도.

이것은 매우 치밀한 안배다.

치밀하다 못해서 귀신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안배다.

검왕이 획책한 계획이 아니라는 거다.

검왕은 똑똑하다. 문일지십의 천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검왕의 천재성은 무공에서 빛을 발한다. 지혜, 지략, 병법적인 측면에서는 천재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검왕은 병법적인 측면에서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검왕이 아니다. 검왕 뒤에 누군가가 있다. 그가 계획을 설정했고, 검왕과 자신을 비롯한 여타의 사람들은 장기판의 기물처럼 착실하게 움직여주고 있는 것이다.

검왕은 배후에 숨어있는 자를 알까?

알 것으로 추측된다. 검왕은 이 계획이 마치 자신이 세운 것처럼 정확하게 따르고 있다. 속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검왕이 획책한 계획들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누굴까? 누가 이토록 치밀한 안배를 진행시키는 것일까?

적벽검문? 적벽검문은 멸문했다. 그리고 적벽검문에는 이 정도로 지략을 발휘할 만한 사람이 없다.

누산은 어떤가? 누산…….

아무래도 그쪽에서 일을 벌인 것 같다. 누산이라면…… 누산은 이만한 병법술을 부릴 수 없지만, 누산 휘하에는 얼마든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쯧! 말씀이나 해주시지.’

누강은 누산이 이번 일을 주도했다고 단정했다.

누산이 아니라면 검왕이 이토록 충실히 따를 리 없기 때문에. 그래서 누산에게 섭섭했다. 자신도 적벽검문 문도인데. 누씨 성을 가진 사람인데.

저벅! 저벅! 저벅!

뇌옥에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뇌옥은 무당파 도인들의 선동(仙洞)에 목책(木柵)을 세워 만든 것이다. 목책 자체는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선동 입구를 혈루마옥 무인이 틀어막고 있는 이상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선동에 발걸음 소리가 울린다.

멀리서 한 사람이 걸어온다. 혈루마옥 무인은 아니지만 상당히 고강한 고수로 보인다.

노인이 목책 앞으로 다가와서 쭈그리고 앉아 누강을 쳐다봤다.

“쯧!”

노인의 첫마디는 탄식이었다.

“요미검체를 발견했거든…… 목숨을 걸고 죽였어야지.”

누강과 음사는 눈을 부릅뜬 채 노인을 쳐다봤다.

노인은 누구인데 혈루마옥 무인을 뚫고 들어와서 누미를 죽여야 했다고 말하는가.

“어디…… 오랜만에 안아나 보자.”

노인이 시녀에게서 혈오를 넘겨받아 품에 안았다.

“허! 제법 묵직해졌구나.”

노인은 친할아버지처럼 자애스런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봤다.

“내가 이놈을 받았네.”

누강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누미가 혈루마옥에 왔을 때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지. 그러니 이놈 근본은 혈루마옥이 아니라 중원인 셈이야. 후후! 그때부터 아이를 낳을 때까지 내가 누미를 돌봤네.”

“감사합니다.”

무엇이 감사한 것일까? 누강은 자신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말을 해버렸다.

“이 아이가 자네를 따른다고?”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어디 한 번 보지.”

노인이 아이를 시녀에게 안겼다. 그리고 목책을 향해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목책 사이로 서슴없이 손을 들이밀었다.

“팔.”

누강이 손목을 내줬다.

노인은 한참 동안 진맥했다. 눈을 감고,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잠을 자는 듯이.

“아는가?”

노인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맥박은 미묘한 물결이네. 율동도 속도도 사람마다 모두 다르지. 생긴 대로, 살아온 대로, 몸에 축적한 대로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물결을 만들어낸다네.”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혈오와 같군.”

“네?”

“이제 갓 세상에 태어난 혈오와 자네의 맥박이 같은 형상이야. 속도와 강약은 다르지만 형상은 같다고 보네.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해야 되겠지만.”

노인이 손을 뗐다.

“무슨 무공을 수련했나?”

“네?”

누강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상대방에게 어떤 무공을 수련했냐고 묻는 것은 상당한 실례다. 더군다나 혈루마옥과는 적대적인 입장이지 않은가. 서로 언제 검을 마주칠지 모르는 처지에…….

“후후후! 말해도 괜찮네.”

“…….”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자네보다 못한 사람이 있는가? 여길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그건…….”

없다. 빠져나갈 자신이 없다.

“냉전류라고 아나?”

“들어는 봤습니다. 동영에서는 알아주는 검술이라고.”

“내가 수련한 무공이네. 허허! 그런데 그 냉전류…… 혈루마옥에서는 삼류무공으로 취급되지. 내 무공도 그리 약하지 않다고 보네만, 혈루마옥에서는 날 무인으로 취급하지 않네.”

누강과 음사는 침묵했다.

그들이 겪고, 보아온 혈루마옥 무인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 노인의 정체를 알 수 없으나 무공만 추구해온 혈루마옥 무인들과는 어딘지 많이 다르다.

석화선생 양청이 말했다.

“난 의원이네. 그러니 내게는 말해도 괜찮아. 환자의 비밀은 보장해 주거든. 후후! 어떤 무공을 수련했는가?”

삭화선생이 다시 물었다.

그래도 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순간,

슈웃!

갑자기 목책 사이로 석화선생의 손이 불쑥 들이밀어졌다. 누강의 목을 움켜잡아왔다.

“웃!”

누강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허나 누미에게 당한 상처가 깊어서 빨리 움직이지는 못했다. 겨우 두어 발자국 정도 미끄러지듯 물러섰을 뿐이다.

“사보(蛇步)? 적벽검문 문도가 사보라…… 사보를 쓰는 무공이라면 팔진검법(八搢劍法)이 있는데…… 묘한 무공을 수련했군. 그 검법은 적벽검문에서도 사장된 무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석화선생은 단지 공격을 피하는 단순한 몸놀림 하나만으로 누강의 근본 무공을 유추해냈다.

팔진검법, 맞다.

중원 무인들 그 누구도, 음사까지도 팔진검법이라는 검법을 알지 못한다.

그는 팔진검법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노인은 적벽검문 무공에 대해서 소상히 알고 있다. 너무 상세하게 알고 있다. 그러니 단지 몸놀림 하나만 보고도 정확하게 무공을 알아맞힌 것이다.

“팔진검법에 완맥(緩脈)…… 재미있군.”

노인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혈오의 맥문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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