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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203화 (203/225)

# 203

第四十一章 사혈(死血) (3)

정사대전은 무림에 적을 둔 무인이라면 누구나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큰 싸움이다. 또한 상당수의 무인들이 정사대전에 참가하기 위해 달려갔다.

누강도 그중에 한 명이다.

그는 검왕이 정사대전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림사를 멸문시키고, 무당파까지 멸문시키고…… 정파의 씨를 말리고 있다.

누강은 검왕을 철저하게 믿는다. 하지만 믿으면서도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검왕이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만약 소림사를 멸문시키고, 정사대전을 일으킨 일이 오판에 불과하다면 검왕은 대악인으로 무림사에 기록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적벽검문 역시 마파(魔派)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해도 누강은 검왕의 행보를 가로막을 수 없다.

이미 주사위는 하늘로 던져졌다. 어떤 결과가 도래하든 주사위를 던진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

누강은 죽을 힘을 다해서 무당산으로 달려왔다. 헌데,

피! 피! 피!

온 사방이 피투성이다.

그는 한발 늦게 도착했다. 아니, 늦어도 많이 늦게 도착했다. 싸움은 벌써 끝났다. 정도인을 멸살되었고, 마인들은 낄낄 웃으면서 떠나갔다.

시신들은 누군가에 의해 치워졌다.

상당히 많은 주검이 있었을 텐데…… 일부는 들짐승이 뜯어 먹고, 일부는 사람들이 묻어주었고, 또 일부는 커다란 구덩이에 던져져서 불태워졌다.

죽고 죽이는 것은 무인들 몫이지만, 시신을 치우는 것은 양민들 몫이다.

시신은 온갖 질병을 몰고 온다.

시신이 썩어들어가면서 풍기는 악취도 인상을 찡그리게 만든다.

시신을 치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누강은 모든 일이 다 끝난 후에야 무당산에 도착했던 것이다. 싸움도, 싸움의 뒤처리도 모두 끝났을 때.

허나 산천초목에 묻어있는 핏자국만 보고도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방에서 풍기는 피 냄새 속에서 치열한 싸움을 읽는다.

이곳, 무당산은 생지옥이었다.

‘숙부, 이것이 정녕 숙부가 그리던 그림입니까.’

누강은 망연자실 붉게 변한 산천초목을 쳐다봤다. 그때,

스읏!

누강의 등 뒤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누구냐!”

누강은 돌아보지 않고 일갈을 내질렀다.

“소신, 음사입니다.”

등 뒤에서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음사!’

누강은 홱 돌아섰다.

그곳에 음사가 있었다. 무척 초췌해진 얼굴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서 있었다.

“음사!”

누강은 한달음에 달려가서 음사의 손을 움켜잡았다.

“무사했던 게냐?”

“무사했습니다. 이렇게 건강하신 모습을 뵈니 여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누강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었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무인이라면 당연히 이곳에 왔어야 한다. 특히 검성 무인이라면 무당파 편에서 싸웠어야 한다. 검성이란 조직은 유명무실해졌지만 정도인의 기치는 살아있어야 한다.

음사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제 심부름이 혈청성주에게 전갈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음! 그랬지.”

“전갈을 전한 후, 지금까지 쭉 뒤를 밟았습니다.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혈천성주가 무엇을 할지 궁금해서…… 그게 정사대전이었습니다.”

음사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전갈을 전해 들은 혈천성주는 혈천성 마인들을 운집하여 정사대전으로 휘몰았다.

강물은 흐르기 시작했다.

정도 무림은 멸문을 향해 나아간다.

지금 음사가 깨달은 검왕의 전갈은 정도 무림을 멸문시키겠다는 공언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무당파를 멸문시키는데 음사도 한몫을 한 것이다.

음사는 그것이 괴롭다. 검왕의 전갈을 이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도 검왕을 믿는다. 검왕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이 아니라 정말로 검을 박고 죽을 자신이 있다.

그런데도 검왕이 야속하다.

누강은 음사의 표정에서 그의 마음을 읽었다.

자신과 같다. 검왕을 믿으면서도 야속하다. 만약, 이런 일을 사전에 상의했다면 재고해 달라고 몇 번이고 간청했을 것이다. 소림사 멸문도 마찬가지고.

음사가 말했다.

“누미를 만나보시겠습니까?”

“누미? 누미가 여기에 있더냐!”

“예전의 누미가 아닙니다. 이제는 당주님이 상대할 수 없는 거인이 됐습니다. 검왕도 쩔쩔맬 정도로 강자예요. 어쩌면 당주님을 보자마자 손을 쓸지도 모릅니다.”

“음! 가보자.”

누강은 음사의 등을 떠밀었다.

스읏! 슷! 스슷!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위험이 닥쳐온다는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불쑥 검이 목에 와 닿는다.

목젖에 하나, 목 뒤에 하나…… 검 두 자루가 목 하나에 연이어졌다.

“네가 누강이란 놈이군.”

목에 검을 댄 자가 말했다.

“후후후! 요미검체가 이런 자를 사부로 모셨다…… 세상에 희한한 일도 다 있군.”

“사부가 아니라 아버지. 의부(義父).”

“적벽검문 놈들은 그게 그거지 뭐.”

누강은 낯선 자들의 정체를 알았다. 혈루마옥 무인들이다.

‘너무 강하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 너무 강해서 검도 들지 못하겠다.

음사도 사로잡혔다.

그는 산길을 따라서 걷고, 음사는 뒤에서 은밀히 따르기로 했다. 헌데 어느새 목에 검이 대여져 질질 끌려 나온다.

“자식, 그렇게나 쫓아다니더니.”

혈루마옥 무인 중에 한 명이 음사를 보며 웃었다.

이들은 음사를 알고 있었다. 음사가 뒤쫓는 것, 지켜보는 것…… 그러면서도 내버려두었다. 아마도 누미가 내버려두라고 지시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으면 벌써 요절났을 것이고.

“가자. 존주(尊主)께서 오랜만에 회포나 풀자고 하시니.”

무인이 누강의 등을 탁 떠밀었다.

누미는 아이를 안고 있다.

누미는 여전히 아름답다.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꼭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 같다.

“네 아이냐?”

누강이 웃으면서 물었다. 순간,

퍼억!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복부에 일권이 틀어박혔다.

신음도 흘릴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고통이 밀려온다. 일순간에 숨통을 막아버리는 일격이다.

“존주님 앞이다. 예의 갖춰서 말해!”

누강은 누미를 쳐다봤다.

사부가 제자에게 어떤 예의를 갖추나. 아비가 딸자식에게 어떤 예의를 갖춰야 하나.

누미는 누강을 쳐다보지 않는다. 아이만 들여다본다.

누미의 뜻을 알겠다. 누미는 모든 인연을 끊었다. 적벽검문을 사문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누강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여전히 누미는 제자이며, 딸일 뿐이다.

“그 아이가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었다는 혈오군. 그놈 참, 똘똘하게 생겼네.”

퍼억!

다시 일권이 틀어박혔다.

누강은 복부를 움켜쥐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복부를 맞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미아야, 넌 여전히 내 딸…….”

퍼억! 푹!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말이나 들어보자구…….”

퍼억! 털썩!

누강은 몇 차례 말을 이어갔다. 말 하나가 끝날 때마다 한 대씩 얻어맞으면서.

그동안 누미는 일절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누강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땅에 쓰러진 몸도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누미가 그때서야 말을 건네왔다.

“검왕 심부름을 다녀왔다고?”

“검왕? 후후! 숙부님에게 검왕이라니, 그 무슨 말본새인고?”

“후후! 안 되겠다. 넌 아무래도 뼈마디 몇 개쯤 부러진 후에나 말귀를 알아듣겠구나.”

혈루마옥 무인이 발을 들어서 누강을 짓밟으려고 했다. 허나 그는 즉시 포권을 취하며 물러섰다.

누미가 제지했다.

누강은 누미의 위세를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누강 정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무인들을 수족처럼 부리고 있지 않은가.

“누강, 세상에 어떤 숙부가 조카를 호랑이 굴 속으로 내던지나?”

“허허허! 이놈아, 넌 내 성씨를 이어받은 내 딸이야.”

“세상에 어떤 아비가 딸을 지옥 속으로 밀어 넣나?”

“하하하! 넌 혈루마옥을 호랑이 굴이요, 지옥이라고 말하나 멀쩡히 살아있지 않느냐. 널 거기로 밀어 넣고 목숨을 버린 분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지.”

“그 말들을 듣고 싶은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생각에서 날 혈루마옥에 들여보냈는지 말해봐.”

“그건 숙부님밖에 대답할 사람이 없다.”

“그럴 줄 알았고. 두 번째 질문, 적벽검문 늙은이들은 왜 죽은 거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죽을 이유가 없어.”

“그 대답을 들으려면 저승에 가야겠구나.”

“그것도 모를 줄 알았어. 당신은 딱 당주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거든. 검성 당주라는 직위도 적벽검문이라는 휘광이 없었다면 얻지 못했을 거야. 세 번째 질문, 어떤 심부름을 한 거야?”

“허허허!”

“이것도 얼버무리려고?”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모르겠구나. 어떤 심부름을 한 것인지. 하하하!”

누강은 허탈하게 웃었다.

자신이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바탕 꿈을 꾸고 일어난 것 같다. 꼭 꿈속에서 무슨 일인가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무슨 심부름을 했지? 그도 모른다.

누미가 누강의 표정을 보고 사실을 읽었다.

“당신, 정말 쓸모없다.”

“나도 그런 것 같구나.”

누미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데리고 나가! 처치해버려!”

무인 두 명이 누강에게 다가와 양쪽 겨드랑이를 잡아챘다.

그들은 누강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 후, 질질 끌고 갔다. 그때,

“으아아앙!”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혈오가 느닷없이 울기 시작했다.

혈오는 그냥 우는 것이 아니다. 누강을 향해 손짓을 한다. 마치 아버지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안아달라는 듯이 양팔을 벌려 허우적거리면서 운다.

“잠깐!”

누미가 혈오를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제자리!”

무인들이 누미의 말을 알아듣고 누강을 원래 누워있던 자리로 데리고 왔다.

혈오가 울음을 멈췄다. 맑은 눈을 들어서 누미를 쳐다보며 생글거린다.

“다시!”

무인들이 누강 양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혈오는 울지 않는다. 여전히 누미를 쳐다보면서 생글생글 웃는다.

무인들이 누강을 데리고 갔다. 천천히, 천천히……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느 순간, 혈오가 또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아아앙!”

다섯 걸음이다. 무인 두 명이 누강을 잡아끈 거리가 딱 다섯 걸음이다. 혈오가 있는 곳에서부터는 어른 큰 걸음으로 열다섯 걸음 정도 된다.

“호호호! 얘, 재밌네.”

누미가 울고 있는 혈오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면서 말했다.

“한 걸음만 와봐.”

무인 두 명이 누강을 데리고 한 걸음 안쪽으로 내디뎠다.

혈오가 울음을 그친다.

분명해졌다. 혈오가 누강에게서 어떤 기운을 읽은 것이다. 읽었다기보다는 느낀 것이다. 이것은 본능적인 감각일 것이고, 태어날 때부터 지녔던 것일 게다.

혈오가 누강과 연관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누미가 누강의 친딸이었다면 같은 핏줄이니 가능성이라도 있다. 하지만 친딸이 아니다. 적벽검문 문규에 의해서 제자가 아니라 딸이라고 부를 뿐이다.

도대체 혈오는 누강에게서 어떤 기운을 감지한 것인가.

어쨌든 누강이 가진 기운은 혈오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강이 멀어지면 혈오가 우는 것이다. 필요한 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당신, 목숨줄 하나 기네?”

“후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 내 목숨줄이 길기는 하구나.”

누강도 혈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누미가 하는 말을 들었고, 무인들이 행하는 바를 지켜봤다.

그 자신, 누미의 실험을 매우 관심 있게 봤다.

혈오가 자신 때문에 운다.

희한한 일이지 않나. 그저 오랜만에 누미나 만나보자고 찾아온 것인데. 가능하면 더 이상 살생을 하지 말라고 충고도 해주고. 물론 후자는 가능성이 없다고 봤지만.

누강이 중얼거렸다.

“재미있군. 재미있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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