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201화 (201/225)

# 201

第四十一章 사혈(死血) (1)

사내는 강신천마보다 강하다. 두 사람의 무공 차이가 모르는 사람 눈에도 확 드러난다.

십마가 장난감처럼 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사내가 너무 쉽게 강신천마를 상대하고 있어서 놀랍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가 승부를 빨리 끝내지 않고 있어서 두렵다.

사내는 지금이라도 강신천마를 벨 수 있다.

사내가 진짜 검을 휘두르면 십마 중에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 검왕에게 죽은 패갑철마의 뒤를 잇게 된다. 그리고 십마는 구마로, 구마에서 팔마, 팔마에서 다시 칠마로 바뀐다.

패갑철마가 죽었지만 강호인들은 십마를 구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십마라는 말은 개개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마도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마도 최강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허나 강신천마마저 죽는다면 이제 더 이상 마도의 하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도의 최강자가 무너진 것이다.

십마라는 말은 마도인들에게는 긍지의 상징이었다.

그런 벽을 무너트린 사람이 검왕이다. 혈천성주를 죽임으로써 마도의 하늘을 뭉개버렸다.

패갑철마와 혈천성주, 이 두 사람의 죽음은 이미 십마가 최강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보다 한 수 더 윗길에 있는 고수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 십마라는 말을 버려야 할 때인가.

쒜에엑! 까앙!

강신천마가 대감도를 들어 올렸다. 쏟아져 내리는 검우(劍雨)를 간신히 막아냈다.

공격? 어림도 없다.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내기만도 버겁다.

“후욱!”

강신천마가 큰 숨을 토해냈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 그 점은 사내만 알고 있는 게 아니다. 강신천마도 안다.

“빌어먹을! 더럽게 강하네.”

“후후! 강한 자에게 죽는 게 무인의 소망 아니더냐.”

“지랄!”

“어쩔 수 없는 위인이군. 네놈은 무공만 강했지 무인이 아니다. 무인은 무공을 존중할 줄 알아야…….”

“퉷! 뒈지는 마당에 존중은 얼어 죽을 존중.”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사내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는 이제 살수를 쓸 생각이다. 살래살래 고개를 흔드는 모습에서 살기가 읽힌다. 그때,

슈우웃! 퍼엉!

무당산 정상에서 빨간 폭죽이 피어올랐다.

“하아!”

강신천마는 또 한 번 큰 숨을 들이켰다.

모두들 빨간 폭죽을 쳐다본다. 강신천마와 싸우던 사내도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이놈아! 어딜 한눈을 팔아!”

강신천마가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쒜에에엑!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들렸다. 산 정상에서 바윗돌이 무너져 내릴 때처럼 우렁찬 굉음이 울려 나왔다.

“후후후!”

사내는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기습은 통하지 않는다. 이 정도 기습이 통할 것 같으면……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돌리던 사내가 눈을 끔뻑거렸다.

쒜에에에엑!

바람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강신천마는 그를 공격한 것이 아니다. 기습을 가해온 것이 아니다. 정 반대로, 반대 방향으로 신형을 퉁겨냈다.

“후후! 도주인가?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사내가 웃었다.

무당산은 이미 녹천 무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녹천 무인들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고, 무당산은 넓디넓다. 하지만 무당산 전역이 녹천 무인들의 수중에 장악되어있다.

녹천 무인 한 명이 장악할 수 있는 반경은 매우 넓다.

더욱이 그들은 공격에 가담하고 있지 않다. 공격은 마인들이 하는 것이고…… 그들은 뒤에서 독려만 한다. 아니면 싸움의 방향이 틀어지지 않도록 조절하거나.

도주할 곳은 없다.

십마뿐만이 아니라 정도, 마도…… 이곳에 모인 모든 자들이 녹천이라는 울타리에 갇혔다.

사내는 굳이 강신천마를 쫓지 않았다.

강신천마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요량이었다면 지금이라도 쫓아가면 된다.

강신천마는 그보다 빠르지 않다.

초식만 느린 게 아니다. 신법도 느리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빨라 보일지 몰라도 사내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나 다름없다.

그가 굳이 쫓지 않는 이유는 강신천마가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후후후!”

사내는 웃었다.

쒜에엑! 까앙!

“크윽!”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그리고 사방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온다.

누가 죽는지, 누가 죽이는지 알지 못한다.

무당산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검왕이 그렇게나 만류하고 싶었던 일…… 처음 그가 벌인 일이었지만, 나중에는 만류하고 싶었던 일…… 정과 마가 무당산 한복판에서 부딪쳤다.

전세는 단번에 판가름났다.

십마가 쭉 빠졌다.

정과 마의 중간에서 양편을 갈라놓았던 그들인데…… 녹천 무인들이 나타나자 단번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장애는 사라졌다.

“카카카!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더냐! 죽엇!”

“새끼들! 죽이는 게 장땡이야! 어디 또 비웃어봐라!”

마도 무인들이 기세 좋게 날뛴다.

정도 무인들이 강풍에 휩쓸린 수수밭처럼 무너졌다.

“쯧! 내 평생 살생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늘…… 내 오늘 살생을 범하고 말겠구나.”

청오도인(靑梧道人)이 불진을 들었다.

청오도인의 무공은 장문인에 버금갈 정도로 높다. 하지만 무공보다는 도(道)를 더 깊이 추구한다. 도와 무공 중에서 하나를 버리라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무공을 버린다.

무공은 심신수련의 일환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 마인들의 살생을 보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불진을 들었다.

“살생을 해보지 않았다? 희한한 사람이군.”

청오도인 앞을 낯선 사내가 가로막았다.

마인들 사이사이에 이름도 없고 무명도 없는 낯선 사내들이 섞여 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나게 강하다. 정도 무인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강하다 싶은 자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살수를 퍼붓는다. 아주 간단하게 제거한다.

지금도 그렇다. 청오도인이 강해 보인다 싶자 당장 낯선 사내들 중에서 한 명이 나섰다.

“혈루마옥이 왜 이리 잔인한가!”

청오도인은 노갈을 내질렀다.

“쯧! 그런 건 나중에 말하고…… 도인, 도인은 살생을 못 할 것이오. 하지만 평생 무공이라는 것을 수련해 왔으니, 어디 마음껏 펼쳐보시오. 마지막 순간 아니오.”

“맞군. 빈도는 평생 살생을 하지 않고 세상을 버리겠군. 허허허!”

청오도인이 웃었다.

도인은 사내의 무공을 알아봤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벽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불진을 든다.

청오도인은 사합(四合)만에 무너졌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심장을 관통당했다.

무당파 장문인과 무공이 버금간다는 청오도인인데, 이름도 밝히지 않은 녹천 무인에게 쓰러졌다.

“내버려둘 것인가?”

“…….”

“그것참…… 평생 바라던 일이긴 한데…….”

십조잔괴가 씁쓸하게 웃었다.

정도인들이 낙엽처럼 쓸려나간다.

녹천 무인들이 힘을 보태주지 않아도 힘들 판인데, 조금만 뛰어나다 싶으면 즉시 달려드니.

원래는 이렇게 무너질 정도무림이 아니었다. 싸움이 시작된다면 정도와 마도, 양쪽 모두 공멸을 감수해야만 할 정도로 세(勢)가 팽팽했다.

헌데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해검지(解劍池)가 뚫렸다.

정도가 무너지는 것은 불 보듯 명확하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상청궁(上淸宮)이 불타오를 것이다.

십마는 이런 광경을 늘 꿈꿔왔다.

검성과 혈천성이 서로를 팽팽하게 노려볼 때부터…… 검왕이 혈천성의 마인들을 마구 벨 때부터…… 검왕이란 놈을 찾아서 중원을 뒤질 때도…….

평소 바라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하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저들은 내버려 둘 건가?”

유계판서가 골짜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유화아와 음악삼귀가 있는 곳이다.

그들 네 명도 숨 돌릴 겨를 없이 싸우고 있다. 정도 무인들은 싸움에 나서지 않고…… 마도 무인들이 그들을 뚫고자 한다. 십마를 뚫었듯이.

헌데 그들 네 명 앞에는 녹천 무인들이 나서지 않는다.

십마에게는 거침없이 달려들던 녹천 무인들이 저들 네 명은 가만히 내버려둔다.

덕분에 펑펑 나가떨어지는 것은 마인들뿐이다.

유화아와 음악삼귀!

그들은 어느새 정도 무림의 희망이 되었다. 그들을 지켜보는 정도 무인들의 눈에 감격이 깃들었다.

음악삼귀는 모르겠다. 하지만 유화아는 명문정파의 자제가 유가장 제삼문주 유가청의 여식이 아닌가. 정도 문파의 핏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검왕은 그들을 빼내지 않고 있다.

“그 여자가 왜 쟤들은 내버려 두는 거야?”

백화요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백화요녀의 화사했던 화복은 갈기갈기 찢어져서 누더기나 다름없이 변했다. 몸 곳곳에 혈흔(血痕)도 비친다. 녹천 무인을 만나서 고전한 흔적들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십마 모두가 크고 작은 상처들을 입었다.

헌데 녹천 무인들이 유화아만은 건들지 않는다. 그들이 마도 무인들을 가로막고 있는데도.

누미가 건드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다.

유화아를 건드리면 검왕이 달려든다. 물론 검왕은 누미가 상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검왕은 누미를 상대하지 않고 피한다. 그러면서 녹천 무인들만 벨 게다.

검왕이 이런 식으로 싸운다면 결국 누미는 혼자 남게 된다.

누미는 눈엣가시인 유화아를 내버려둠으로써 검왕과 일종의 타협을 한 셈이다.

검왕은 무당산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앉아서 전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마인들이 꾸역꾸역 산을 올라간다.

산을 올라간 마인들이 방향을 틀어 유화아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도 무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유화아는 고립무원이 될 것이다.

마인들이 사방을 둘러쌀 것이다.

검왕은 그제야 품에서 폭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하늘에 쏘았다.

슈웃! 퍼엉!

하늘에 검은 폭죽이 퍼졌다.

검은 폭죽…… 조상(弔喪)이다. 무당파를 조상한다. 정도 무림을 조상한다.

그 순간, 마인들과 치열하게 싸우던 유화아와 음악삼귀가 신형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인들을 뚫고 나간다.

무당산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쪽…… 무당산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마인들을 길을 비켜주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당산으로 올라가는 길이지, 유화아와 싸우고자 하는 게 아니다.

유화아가 검왕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유화아를 건드리는 것은 검왕을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혈천성주를 죽인 검왕을.

검왕을 입으로는 욕할지언정 그와 연관있는 사람을 죽일 정도로 용기가 있지는 않다.

유화아와 음악삼귀는 쉽게 몸을 빼냈다.

“우리도 갑시다.”

검왕이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가면 되나?”

백화요녀가 무당파 상청궁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당파가 멸문하는데, 모두 무너지는데…… 정말로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인가?

검왕이 말했다.

“원래 우리가 멸문시키려고 했던 곳, 아니오. 일이 이렇게 되도록 내가 첫 단추를 꿰고 말았지. 후후!”

“그럼 다음은 어딘가? 화산(華山)인가?”

흑포사추가 죽음처럼 잔잔한 음성으로 물었다.

소림사와 무당파가 멸문했다. 허면 다음은 화산파나 아미파, 청성파가 멸문 대상이 될 것이다.

검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멸문한 것은 무당파만이 아니오. 모두…… 정도 무림이 멸문했지. 후후!”

검왕이 말을 하면서…… 먼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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