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200화 (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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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章 정파(正破) (5)

“검왕이 혈천성주를 벴습니다!”

“뭐, 뭐라고!”

“어떻게 그런 일이!”

아주 짧은 보고 한 마디에 경악성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마도가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키는가! 이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가!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리인가!

허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무당 장문인은 두 눈을 꾹 감아버렸다.

무당파 장문인은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좋다 싫다 하는 감정표현도 하지 않는다. 그저 인상을 심하게 일그러트린 채 두 눈만 꾹 감고 있다.

장문인의 표정이 하도 심각해서 기쁨에 들떴던 고수들도 다시 침묵했다.

‘무슨 일이지?’

‘장문인 표정이 왜 저래?’

모두들 무언의 말을 주고받는다.

그들로써는 장문인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검왕이 혈천성주를 벴다는 말은 분명히 희소식인데.

한참 만에 장문인이 눈을 뜨고 말했다.

“이제…… 우리 모두 작별을 구할 시간입니다.”

“……?”

장문인의 말을 이해하기가 참 힘들다. 아! 이제 곧 정사대전이 벌어진다는 소리구나. 그까짓 것 뭐… 쳐오면 힘껏 싸우는 거지. 어차피 싸울 작정을 하고 있었지 않나.

장문인이 등 뒤에 시립해 있던 젊은 도인에게 말했다.

“그만 가 보거라.”

“사부님!”

“무당 조사이신 장삼풍 진인께서는 혼자 몸으로 이곳을 일궈내셨다. 너 역시 그래야 할 터… 고생이 많겠구나.”

“사부님, 옥체 보존…….”

“허허! 그만 가보라니까.”

무당파 장문인이 제자를 꾸짖었다. 하지만 꾸짖는 얼굴 속에는 측은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죽는 사람은 편하다. 죽기만 하면 된다. 허나 살아남아서 무당파를 재건해야 할 사람은 고역이다. 평생을 가시밭길 속에서 뒹굴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당파 장문인과 수제자 함악(?岳) 도인은 사전에 조율해 놓은 것이 있는 터…… 장문인이 일갈을 내지르자, 도인은 두 손 모아 읍을 한 후에 신형을 쏘아냈다.

함악도인이 무당산을 떠나간다.

이는 무당파가 멸문을 각오했다는 뜻이다. 멸문의 길로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야 사람들은 장문인이 서두에 말한 ‘작별을 구할 시간’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장문인이 군웅들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도 떠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장문인! 그 무슨 말씀이시오!”

“장문인! 우린 장문인과 생사를 함께 하고자 찾아온 것이오! 섭섭하게 그런 말씀 마시오!”

군웅들이 눈을 부릅떴다.

그들도 이제 곧 정사대전이 벌어질 것을 예감했다. 실제로 마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무당산 초입에서는 벌써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장문인이 말했다.

“검왕이 한 말이 있소. 마인들이 공격해 오면…… 저들 속에 감당하지 못할 고수들이 대거 있을 것이라고.”

“혈루마옥!”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혈루마옥 고수들이 저들 편에서 살검을 쓴다면 그때는 정말 대책이 없어진다.

원래 정과 마의 세력 균형은 팽팽했다.

마도에 십마가 존재한다면, 정도에는 원로고수들이 재야에 묻혀 있었다.

그러던 균형이 무너졌다.

재야고수들이 혈루마옥 사람들에게 척살당하면서 소림사와 무당파의 무력이 급속하게 약화되었다.

소림사가 무너진 것은 뒤를 받쳐주던 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무당파도 뒤를 받쳐주던 힘이 사라졌다. 십마와 같은 일당백의 고수들이 죽고 없다.

무당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숨겨진 것이 없다.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 있는 사람들뿐이다. 그들만 죽이면 무당파는 무림에서 영원히 멸절된다.

정사대전이 발발했을 때, 무당파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다.

무당파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와 준 무림동도들 중에 십마를 막아줄 사람이 있는가?

있기는 하다. 없지는 않다. 하지만 검왕까지 올라가면 속수무책이 된다. 누가 검왕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검왕이 검을 쓰지 않도록 묶어두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혈천성은 문제가 아니었다. 검왕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묶어둘 고수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왕과 십마가 전장에서 이탈했다.

세력 균형은 다시 팽팽해졌다.

군웅들이 눈을 부릅뜨면서 투지를 불사르는 것도 마인들 쪽에 절대강자가 빠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장 위협적이든 혈천성주까지 죽었다.

이제는 해볼 만하다! 나머지 쓰레기 잡졸들이야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다!

검왕과 십마는 확실히 빠졌는가?

빠졌다. 십마는 마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길목을 차단해 주기까지 한다. 그들이 주요 길목에서 연무를 한다거나, 병기를 뽑아들고 지키고 서있는 모습은 정도 무인들에게도 포착되었다.

일차로 십마가 마도를 막아주고 있다.

검왕의 의도를 모르겠으나…… 아마도 장문인과 단 둘이 독대를 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장문인은 약속을 지켜서 십마를 떠나보냈다.

십마가 무당파에 대포를 쏘았는데, 그런 그들을 얌전히 돌려보냈다.

그때는 장문인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검왕을 너무 믿는 게 아닌가 하는 불만도 있었다.

헌데 오늘을 보니 장문인의 판단이 옳았다.

십마가 마도를 등질 것이라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럼 이제는 정말 싸워볼만 하다.

그런데 장문인이 터무니없는 말…… 혈루마옥을 거론한다.

그렇다. 그들을 잊고 있었다. 그들이 중원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그들이 보이지 않기에, 보이는 곳에서 움직이지 않기에 잠시 잊고 있었다.

아니, 그들에 대한 생각은 애써서 떨쳐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무림에 검을 들면 그때는 지옥불길이 펼쳐진다. 한 폭의 지옥도가 그려진다.

그런 일을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일부 몇몇 고인들은 깊이 우려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책이 없는 것을.

그들이 마인들 속에 섞여 있는가.

장문인이 말했다.

“정사대전…… 후후! 우리는 허풍을 친 것이오. 너희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헌데 그 허풍이 드러난 이상, 이제는 목숨을 보존해야 할 때요. 저들을 상대할 방법은 없소.”

“장문인!”

무당파 장문인을 부르는 소리에 비통함이 담겨 있다.

투지는 침통함으로 바뀌었다. 의기는 단숨에 꺾였다.

‘혈루마옥’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하얗게 지워버린다. 지금까지 수련해 왔던 무공, 지식들이 말끔히 소멸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이 된다.

“시간이 없소. 살 길을 도모하시오.”

“장문인!”

“허허! 이 몸은 이곳의 주인이 아니오. 주인은 자리를 지켜야 하는 법, 여러분은…… 자,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구해주시오. 피하는 게 목숨을 구하는 방법이오.”

정사대전? 대전이 아니다. 일방적인 학살이다.

* * *

“선배, 비켜서시오!”

“누가 네놈 선배냐!”

“크크크! 미친 새끼, 대접해 줄 때 물러날 것이지. 공격하자! 저 새끼도 사람이야! 칼 박으면 뒈지지 안 뒈지겠어! 오늘부터 저놈들은 마도 공적이다!”

“하하하! 쥐새끼가 소리 한 번 요란하구나!”

쒜에에엑!

강신천마가 대감도를 휘둘렀다.

강신천마에 맞서서 당당하게 호통을 치던 마인은 사색이 되어서 몸을 피하려고 했다. 허나 거구의 강신천마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쒜엑! 퍽!

대감도가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마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단 일도에 마명(魔名)이 자자하던 쇄금마도(碎金魔刀)가 절명했다.

“선배! 정말 이러실 겁니까!”

“이럴 거다! 왜?”

“이런…….”

“이런이고 나발이고, 네놈도 죽어!”

쒜에에엑!

대감도가 다시 터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빨간 핏물이 허공 가득히 흩뿌려졌다.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다.

강신천마만 바빠진 것이 아니다. 십마들 모두가 여기저기서 분투하고 있다. 헌데,

“후후! 힘 하나는 좋군.”

싸늘한 비웃음과 함께 한 사내가 나섰다.

순간, 강신천마는 전신에 흐르던 피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사내는 뱀처럼 차갑다.

사내는 검을 들고 있다. 헌데 검에 서리가 맺혀 있는 느낌이다. 검이 너무 차갑다.

“혈루마옥인가?”

“알고도 싸울 거야?”

“어디…… 네놈들 무공 한 번 보자!”

강신천마가 대감도를 들어올렸다.

이런 강신천마의 행동은 분명히 검왕의 지시와는 다른 행동이다.

검왕은 혈루마옥 무인들을 발견하면 절대로 싸우지 말라고 했다. 무조건 피하라고 했다. 아무리 십마라고 해도 혈루마옥 무인들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고. 실제로 십마들 상당수가 혈루마옥 무인들과 손을 섞어본 경험도 있고.

스읏! 슷!

두 사람이 검과 도를 들었다.

“패(覇)는 좋은데, 세(細)가 부족해.”

“크크?! 개소리!”

“우리들은 말이야. 너 같이 힘만 좋은 놈들을 미련곰퉁이라고 불러. 얼핏 보기에는 매우 위험해 보이는데, 사실 미련한 것들이 위험할 리 있나. 슬쩍 치면 쓰러지는 거지.”

“이 자식들, 개소리만 배웠나. 뭔 말이 이리 많아!”

“후후후!”

사내가 차게 웃었다.

사실 혈루마옥 무인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싸움에 임하면 무조건 적을 치고 본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검왕을 상대하면서 무공도 급진전했다. 아니, 혈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혈오를 통해서 진기순환을 하면 내공이 무척 강건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흔히 벌모세수(伐毛洗髓)라고 하는 효능을 얻게 된다.

하루, 이틀, 사흘…… 혈오 곁에 오래 있을수록 더욱더 강해진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혈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일단은 강해지고 싶다.

그들은 무척 강해졌다.

혈루마옥에서 녹천과 증평은 팽팽한 균형을 유지했다. 허나 이제는 다르다.

무인들의 숫자는 중평이 훨씬 많다.

그녀들은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다. 무림 싸움에 나서지 않고 숨어서 지낸 까닭이다.

한 마디로 전력손실이 거의 없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무림에서 그녀들을 찾을 수 있나?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녹천 무인들조차도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허나 분명한 것이 있다. 그녀들은 혈오를 통해서 벌모세수하지 못했다. 혈루마옥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벌모세수를 꾸준히 하지 못했다.

반면에 녹천 무인들은 전력 손실이 심하다.

일단, 적벽검문을 칠 때 절반 가량이 죽었다.

검왕과 싸우면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화천도 그때 죽었다. 또 있다. 녹천주를 가리는 싸움에서 몇몇 절대 고수들이 죽어나갔다. 전대 녹천주도 죽었고.

허나 녹천무인들은 꾸준히 벌모세수를 행해왔다.

녹천 무인들이 증평 아녀자들보다 훨씬 강해졌다. 이제는 감히 중평 무인들은 아녀자라고 부를 수 있다. 그녀들은 싸움에 나서지 말고 집에 틀어박혀서 밥이나 지어야 한다.

무공이 강해진 만큼 달라진 것도 있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싸움은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말을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혈루마옥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만인들 앞에 선포함과 동시에 혈루마옥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알려주려는 것이다.

이 싸움이 끝나면…… 마인들은 혈루마옥에 굴복할 게다.

싸움의 결과는 전혀 상관없다. 정도인이 이겨도 좋고, 마인이 이겨도 좋다. 어쨌든 혈천성주라는 구심점을 잃은 마인들은 혈루마옥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강신천마와의 싸움은 마도를 지배하는 첫걸음이 된다.

“자, 놀아볼까?”

“너 계집애냐? 조잘조잘조잘. 그만 좀 나불거려라.”

“좋아!”

쒜에에엑!

사내가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원래 혈루마옥 무인들은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혈루마옥을 나설 때는 누구를 이용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오직 강인한 무공으로 싹 쓸어버리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 힘이 터진다.

쒜에에엑!

강신천마는 위급함을 느끼고 혼신의 힘으로 대감도를 쳐냈다. 헌데,

퍽!

어느 새 검광 한 줄기가 복부를 스쳐간다.

“거봐, 미련곰퉁이는 쉽게 잡을 수 있다고 했잖아. 건들기만 하면 된다니까.”

퍽퍽!

이검이 더 터졌다.

“이이익!”

강신천마는 휘청거리면서 대감도를 들어올렸다.

복부와 등과 옆구리…… 벌써 삼검을 맞았다. 그것도 피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치명상이다.

주위에서 구경을 하던 마인들은 싸울 생각을 잊어버렸다.

맙소사!

십마 강신천마가 일초지적도 되지 못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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