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第四十章 정파(正破) (4)
강신천마가 대감도를 들고 우뚝 서있다.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크다. 몸도 훨씬 크다. 뚱뚱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온몸이 근육이라서 단단함이 물씬 풍겨진다.
“후우웁!”
강신천마가 크게 심호흡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대감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이잉! 휘이이잉!
초식이 이어질 때마다 대감도에서 일어난 폭풍이 숲을 휩쓴다.
“이거 어떡하지?”
“그냥 들어섰다가는 여지없이 도풍(刀風)에 휩쓸리겠는데.”
“강신천마와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사람?”
“제길! 저거 지금 혈음마벽이잖아. 저걸 어떻게 이겨?”
“그럼 뭐 결정 났네. 이 길로는 갈 수 없지 않겠어?”
“제길! 기세 좋게 쳐나가야 하는데.”
마인들은 무당산으로 쳐들어가지 못했다. 한참 기세 좋게 달려가다가 강신천마라는 암초를 만나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들이 달려가는 길목에서 강신천마가 수련을 하고 있다.
마인들은 공격 방향을 틀었다.
혈인장(血人杖)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가시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그래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우두둑 뜯겨져 나온다.
그야말로 피의 낙인을 찍어버리는 혈인장(血印杖)이다.
휘링! 휘리리링!
천살마노가 혈인장을 휘두른다.
연공(練功)은 아니다. 십마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줄로 죽 늘어서서 연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강신천마에 이어서 천살마노…… 이것은 분명한 전언(傳言)이다.
이 길로 오지 마라!
십마는 마인들만 가로막는 게 아니다. 무당산에 운집한 정도 무인들도 가로막는다.
마인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정도 무인들도 움직였다. 그들 역시 마인들의 동선을 따라왔다. 백여 명쯤 올라오는 곳에는 정도 무인 역시 백여 명쯤이 몰려들었다.
그들 모두 십마에게 가로막혔다.
사실 십마가 말하는 것은 단순한 전언에 불과하다. 정도든 마도든 전언을 무시하고 공격해 들어갈 수 있다. 한 사람이 열 사람을 막을 수 없듯이, 십마도 전부를 막지는 못한다.
허나 일차적으로 십마를 향해 달려드는 자는 무조건 도륙된다.
마인들은 도륙당하는 자가 자신이 되기 싫었다. 그리고 그 점은 정도 무인도 마찬가지다.
정과 마가 십마를 피해서 다른 길로 움직인다.
검은 복면을 쓰고 흑포를 입었다. 손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편을 들었다.
그는 연공을 하고 있지 않다. 흑편을 축 늘어트린 채 가만히 서있다. 하지만 그 모습이 훨씬 무섭다. 다른 사람들이 연무하는 모습보다도 더 위협적이다.
흑포사추!
“제길! 모두 틀어막은 거야?”
“이렇게 되면 십마가 우리 편이라고 할 수 없잖아!”
“칠까?”
“음! 그래도 흑포사추인데…….”
“십마가 쫙 깔려있다면 우리가 갈 곳은 없어. 천상 길 없는 곳을 골라가야 돼.”
“이럴 때 혈천성은 뭐하는 거야!”
마인들은 혈천성주가 나서주기를 고대했다.
십마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혈천성주 뿐이다. 아니면 검왕이 나서든지.
* * *
“크크크! 크크크크!”
괴인이 괴소를 터트렸다.
‘역혈구마(易穴驅魔)인가.’
검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 ‘구마’란 마귀를 내쫓는다는 뜻이다. 구마의식이라고 하면 마귀를 쫓아내는 의식이다.
무림에도 이와 비슷한 방법이 있다.
혈을 뒤집어 마귀를 내쫓는 것이 역혈구마다.
대체로 주화입마 초기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심신이 평안해지는 역할을 한다.
헌데 그런 방법이 혈천성주 같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혈천성주는 마공으로 단련된 사람이다. 전신 기혈이 정상적으로 운용되지 않는다. 비정상인 사람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치료하면 오히려 상태가 악화된다.
역혈구마가 정인들에게는 유용한 방법이지만, 마인에게는 오히려 주화입마를 걸어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혈천성주는 뇌에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마성을 억제하던 이지가 사라져 버렸다. 당연히, 오직 들끓는 마성만 피어난다.
“성주.”
“크크크크!”
“잘 가시오.”
검왕은 혈천성주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혈천성주와 막역한 사이라서 인사를 건넨 것이 아니다. 그가 검성에 몸담고 있었을 때는 서로가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다만 한 시대를 같이 산 사람이기에 인사를 건넨다.
혈천성주는 제 정신이 아니다. 그가 건넨 인사도 듣지 못한다. 혈천성주를 제정신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요법이 존재한다면 잠시 고민이라도 해보겠지만, 그런 요법조차도 없다.
혈천성주는 이미 죽은 것이다.
스읏!
검을 들어 혈천성주를 겨눴다.
혈천성주는 이지를 상실했지만 그 덕분에 무공은 오히려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마공이 어떠한 걸림도 없이 최상의 힘을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검왕이 검을 들어 올리자, 혈천성주는 즉시 반응했다.
“크크크큿!”
혈천성주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며 합장했다. 순간, 츠으으으읏! 하는 괴이한 소리와 함께 혈천성주의 전신에서 기이한 기운이 몽실몽실 피어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기운이다. 허나 검왕은 본다.
보통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변화도 일어났다. 혈천성주의 전신이 피를 머금은 듯 새빨갛게 변했다.
혈천성주도 혈영마공을 수련한 것인가?
아니다. 전신 기혈이 폭발 직전에 이를 정도로 팽창한 것이다. 선후(先後)를 가릴 필요도 없다는 듯이 일격에 모든 진기를 쏟아내려고 한다.
‘음!’
검왕은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
혈천성주는 매우 위험해졌다. 굉장히 무서워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다. 죽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혈천성주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마성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다. 오직 눈앞에 있는 적만 쓰러트리면 그만이다. 이지가 있는 사람은 방어라는 것도 생각하는데, 정신을 놓은 사람은 그런 부분에서 전혀 개의치 않는다.
죽여라! 나도 죽이겠다!
혈천성주의 무공은 십마 정도다. 허나 그런 무공이 역혈구마로 인해서 두 배, 세 배 강해졌다. 또 그만한 무공을 지닌 사람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달려든다.
검왕은 십마를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지만 죽음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신중하게 상대해야 한다.
패애애앵!
검왕도 전신 진기를 모두 끌어 모았다.
안색이 새빨갛게 변한다. 두 손도 새빨개졌다. 눈동자도, 목덜미도…… 혈천성주처럼 검왕도 혈인이 되었다.
“크크크크큿!”
혈천성주가 웃음을 흘릴 때, 검왕은 허공에 신형을 띄웠다.
쒜에에엑!
검에서 검풍이 일어난다.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몰아친다. 검에서 터져나간 검광이 혈천성주를 후려친다.
쫘악!
혈천성주도 두 손을 활짝 폈다.
순간, 혈천성주의 두 손에서 작은 쇠구슬 백여 개가 투망처럼 활짝 펼쳐지며 비산했다.
퍼퍼퍽! 퍼퍼퍽!
쇠구슬은 정확하게 검왕을 격타했다.
검왕은 쇠구슬을 피하지 않았다. 신형을 물릴 수는 있었다. 비산하는 쇠구슬을 피하려면 일단 땅으로 착지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 다음에 다시 공격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육신으로 쇠구슬을 받으면서 내리치던 벼락에 더욱 강한 힘을 실었다.
꽈지직!
벼락이 혈천성주를 관통했다.
머리를 가르고, 목을 지나서 가슴까지 그어 내린다. 혈천성주에게 가장 빠른, 가장 확실한 죽음을 안긴다.
“감사합니다.”
회회문사가 깊이 읍했다.
회회문사는 검왕의 정면 승부에 감사하고 있다. 쇠구슬을 피했다가 다시 공격할 수도 있었건만, 부상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면 승부를 벌인 점에 감사한다.
혈천성주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무공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 대신에 냉철한 사고를 잃었다. 본능은 강해졌지만 사리판단력을 미약해졌다. 초식 싸움으로 끌고 갔다면 쉽게 이겼을 것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회회문사가 검왕을 염려했다.
“괜찮습니다.”
검왕이 쓰게 웃었다.
혈천성주와 정면승부를 벌인 대가는 컸다. 설마 혈천성주의 병기가 쇠구슬이었을 줄이야. 그것도 백여 개를 일시에 발출할 수 있을 정도인 줄은.
몸이 뚫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타박상이 여간 심하지 않다. 갈비뼈도 몇 대는 나간 것 같다.
쇠구슬에 집약된 진기는 매우 강력했다.
검왕은 유기(有氣)를 믿었다. 유기가 쇠구슬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조금은 조심했어야 한다.
회회문사가 말했다.
“저들은 이미 고삐가 풀려버렸습니다. 막을 길이 없습니다.”
“혈천성주의 주검을 이용해야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압니다. 그것은 제가 하지요. 아무래도 제 주군이니 제가 모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검왕은 회회문사를 정중히 대했다.
혈천성주는 죽어서도 땅에 눕지 않았다. 그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꼿꼿하게 서있다.
회회문사가 혈천성주의 주검 앞에서 절을 한다.
일 배, 일 배, 일 배, 일 배…… 끊임없이 절을 한다. 염불도 하지 않고, 제식(祭式)에도 구애받지 않고…… 계속해서 절을 하고, 또 한다.
“으……!”
“성, 성주님이……!”
마인들은 경악했다.
십마에 가로막혀서 돌고 돌아 온 길에 혈천성주의 주검이 있다. 처참한 시신이 나무에 기대어 서있다.
“누, 누굽니까! 누가 성주님을 이렇게 만든 겁니까!”
“대체 어떤 놈이!”
마인들은 분노했지만 회회문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절을 할 뿐이다. 그런데,
“저거…… 검왕이다. 검왕이 한 짓이야!”
마인들 중에 누군가가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모든 마인들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아주 크게 소리친 것처럼.
“검왕! 검왕이라고!”
“검왕이 왜 성주를! 그러고 보니 이 자식, 공격도 하지 않고 미적거린다 싶더니.”
회회문사가 절을 하다 말고 뒤돌아봤다.
누군가, 누가 불씨에 기름을 끼얹고 있나? 뒤돌아선 회회문사의 눈에 한 사내가 보였다.
사내는 회회문사를 똑바로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묘한 비웃음이 흐른다.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인데, 눈빛에서는 살광이 쫙 흐른다.
‘혈루마옥!’
회회문사는 옅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혈천성주가 몸을 날릴 때, 이상한 기운을 쫓아갈 때…… 그는 성주를 쫓아갔다.
무당산에서 피어나는 이상한 기운은 그도 봤다. 그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중이었다. 도대체 어떤 기운이 저리 요상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기류…… 저게 무엇인가?
그는 혈천성주보다 한 발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덕분에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목격했다. 혈천성주가 누미의 일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비록 그것이 암습이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저 사내는 의도적으로 ‘검왕’을 입에 담았다.
이제 검왕은 마인의 적이 되었다. 그렇다고 정도가 그를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 십마와 함께 하는 한, 검왕은 정도의 친구가 될 수 없다.
검왕은 정과 마의 공동 적이 되었다. 이 세상 전부가, 모든 사람이 적이 된 것이다.
‘후후후!’
회회문사는 쓴 웃음을 흘렸다.
그는 검왕의 의도를 안다. 그는 정사대전을 일으키려고 했다. 무슨 이유에서든. 또 납득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정사대전을 저지시키려고 한다.
허나 다 틀렸다.
이제 마인들은 무당산으로 쏟아져 들어갈 것이다. 아니, 벌써 쏟아져 들어간다.
“가로막는 놈들은 모두 죽여! 검왕이든 십마 나부랭이든 모두 죽여 버렷!”
“이 새끼, 싸움을 질질 끌더니 오히려 성주님을 베? 검왕, 이 새끼 나와! 어디 숨어 있는 거야!”
마인들이 무당산을 밀물처럼 밀고 들어갔다.
그때, 회회문사는 아랫배에서 화끈한 통증을 느꼈다.
배를 쳐다보니 삼청장검 한 자루가 자루까지 깊이 꽂혀있다.
“넌 귀찮은 존재야. 아니, 여기 있는 놈들은 모두 죽어야 되거든. 너도 예외 없이.”
입가에 비웃음을 걸치고 있던 사내가 더욱 진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