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95화 (19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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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九章 독보(獨步) (5)

검왕의 검은 정도무림을 향하지 않는다. 검왕은 마도무림을 노려보지도 않는다. 검왕은 주적을 혈루마옥이라고 지칭했다. 분명하게 적을 규정하고 있다.

헌데 왜 정도무림을 멸하는가.

소림사를 멸한 행위는 분명히 비정상이다.

마도무림을 휘몰아쳐서 정도무림을 공격하는 것도 비정상이다.

허나 그런 행동들이 비정상이라고 할망정……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가 되어 버렸다.

정도와 마도…… 중원 전 무인들이 달리는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상태다.

누구든 물러서면 물려 죽는다.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서로에게 검을 겨누게 됐지만, 양쪽 모두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공멸(共滅)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물러설 수는 없다.

“장문인, 뭘 기다리는 겁니까!”

“장문인께서 검왕을 만났다고 하던데, 혹여 밀약이라도 맺으신 겝니까?”

“허어! 답답합니다. 뭐라고 말씀 좀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림 명숙들이 무당파 장문인을 다그쳤다.

그러나 장문인은 묵묵부답, 침묵만 지킨다.

뿐만이 아니다. 산 능선에서 공격을 하던 십마에게 길을 내주기까지 했다.

십마가 사라진 이유를 꼭 무당파에서 찾는다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무당파 문도들이 포위를 풀고 물러선 직후에 십마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석연치 않은 의문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장문인, 한 마디만 묻겠습니다. 장문인께서는 이 싸움을 하실 의향이 있으신 겝니까?”

“허허허!”

“장문인, 이 질문은 웃음으로 얼버무릴 일이 아닙니다. 분명한 답을 주셔야 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시구려.”

“……?”

“딱 이틀만 기다립시다. 이틀 후에는 반드시 답을 드리리다. 하지만 마와 정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빈도 역시 뼛속 깊이 각인하고 있다는 점,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음!”

무림 명숙들은 침음했다.

사실, 그들은 무당파를 지원하기 위해 달려왔다. 마인들이 대거 들이친다는 소문을 듣고 무당파를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무골들이다.

헌데 와서 보니 기도 안 찬다.

마인들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혈천성까지 전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말뿐이 아니라 진짜 정사대회전이다.

여기서 지는 쪽은 영원히 일어서지 못한다. 그것이 마도라면 무림은 평화로워질 것이고, 지는 쪽이 정도라면 무림을 혈운으로 뒤덮일 것이다.

이런 마당인데, 정작 무당파가 나서지 않는다.

답답한 노릇이 아닌가.

하지만 무당파 장문인이 마도와 협상을 하거나 뒤로 몰래 암수나 꾸미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마를 철저히 미워하는 사람이다.

그런 장문인에게 마도와 싸울 뜻이 있냐고 묻는 것조차 실례다.

알면서도 물은 것이다. 그리고 장문인은 이틀 정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분명히 검왕과 어떤 약조가 오고 갔다.

그것이 어떤 약조인지 모르겠지만 장문인이 며칠 동안 싸움을 하지 않을 것만은 분명하다.

“이틀만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무당파 장문인이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문인, 정말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무림 명숙들이 떠난 후, 운현궁주(雲峴宮主)가 물었다. 장문인의 사제로 일명 ‘장문인의 복심(腹心)’이라고 불릴 정도로 장문인을 잘 아는 도인이다.

“이틀만 기다리시게.”

장문인의 대답은 똑같았다.

“장문인, 제게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자네이니까 한 마디 더 함세. 난…… 검왕을 믿기로 했네.”

“네? 검왕은 소림사를 멸했는데…….”

“그래도 믿네.”

“검왕이 저희 무당파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공격할 걸세.”

“네?”

운현궁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 무당파도 공격할 것이고, 정도 무림도 공격할 것이고…… 싸움이 일어나겠지. 하지만…… 허허허! 어쩌겠는가. 난 여전히 검왕을 믿고 싶네.”

확실히 장문인과 검왕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있었다. 그러나 운현궁주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운현궁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문인의 심사는 누구보다도 복잡할 것이다. 적이 공격해 올 것을 알면서도 믿어야 하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쉬운 생각은 아닐 것이다.

내막은 모르겠다. 하지만 장문인을 편히 쉬게 해주고 싶다.

* * *

“으음!”

혈천성주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마인들이 대거 운집했다. 혈천성 무인들이 한 놈 빠짐없이 모여들었다.

마도의 기세는 정도를 능가한다.

이대로 확 몰아치기만 하면…… 한두 시진 후에는 무당산 정상에서 술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헌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무당산을 에워싸고 있는 기세가 있다. 다른 놈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인데, 그에게는 명확하게 보인다.

기세…… 느낌이다.

공격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일어난다. 마치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저것이 무엇일까?

“유념해야 할 자는?”

한 시진 전에 물었던 질문을 또 던진다.

“동일합니다.”

“추가된 자가 없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후후후! 말도 안 돼.”

진구량은 볼을 씰룩거리면서 웃었다.

확실히 수하들은 저 기세를 보지 못한다. 무당산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지형변화는?”

“동일입니다.”

역시 같은 대답이다.

무당산에 진형이 깔렸을 것을 우려했다. 그러잖아도 무당산에는 오행검진(五行劍陣)을 비롯해서 다양한 진형이 계승되고 있다. 그리고 그 진형들은 검성이라는 정도 무림의 중심을 거치는 동안 더욱 정교해졌다.

마도가 극성을 부린다면 정도 역시 최고 성세를 구가하고 있다.

무당파가 새로운 검진을 찾아낸 것일까? 저것이 검진에서 발생하는 기세일까?

그런데 변한 것이 없단다.

사람도 지형도 변한 것이 없다. 적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는데 한 시진 전과 똑같다.

아니다. 기세는 한 시진 전에 비해서 월등히 강해졌다.

‘이대로 이틀만 지나면 공격하고 싶어도 못한다.’

진구량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저 기세와 부딪친다면 백중세(百中勢)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틀 정도 더 성장하게 내버려둔다면 필패(必敗) 형국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검왕도 마찬가지다.

검왕이 나선다면…… 지금은 이길 수 있다. 하루가 지나면 백중세요, 이틀이 지나면 검왕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다.

진구량은 무당산에서 피어나는 기세를 예사롭지 않게 봤다.

그때, 회회문사가 들어서며 깊이 읍했다.

“보고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뵀습니다. 방금 전에 무림 명숙들이 회합을 가졌다고 합니다.”

“흥!”

진구량은 코웃음부터 터트렸다.

회회문사가 말했다.

“회합의 내용은 공격시기입니다. 언제 싸울 것인지, 공격해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흥! 제 놈들이 감히!”

혈천성주는 회회문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무의미한 논의다. 지금 정도무림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무것도 없다.

마도가 정도를 능가한다.

마도가 공격하면 멸문당하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역공을 취한단 말인가. 정도 명숙들이란 자들이 정세 판단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회회문사가 말을 이었다.

“헌데 무당파 장문인의 대답이 묘합니다. 이틀만 기다리자고 했답니다.”

“뭐라고! 이틀!”

‘이틀’이라는 말에 진구량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뿐만 아니라 고함까지 버럭 내질렀다.

이틀! 이틀이라!

이틀은 기세가 부쩍 성장하는 시간이다. 최소한 진구량이 보기에는 그렇다. 이틀이 지나면 저 기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다. 마도 쪽에서는.

무당파 장문인!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인가!

진구량이 회회문사를 급히 다그쳤다.

“회회. 그게 무슨 말이냐? 자세히 말해봐! 왜 이틀을 기다리자고 한 건지!”

“대화를 엿들은 자가 판단하기로, 장문인이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후후후! 그렇겠지. 기다리겠지.”

“장문인이 기다리는 자를 추측하십니까?”

“알지.”

진구량은 무당산에서 피어나는 기세에 눈길을 주었다.

회회문사가 말했다.

“간자는 기다리는 사람을 검왕으로 추측했습니다. 무당파 장문인이 검왕을 기다린다고…….”

‘검왕이 아니다. 저거야!’

회회문사는 혈천성주를 흘깃 쳐다봤다. 진구량이 쳐다보는 곳을 같이 봤다.

진구량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무당산에는 아무것도 없다. 변한 것이 없다. 헌데 진구량은 무당산에 무엇인가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한다.

조사해봤다. 마인을 상주시키고 있다. 헌데도 진구량이 말한 곳에서는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눈길을 줄 만한 것이 티끌만큼도 없다.

벌써 누누이 말한 일이건만.

회회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도 기세가 피어나고 있으신지?”

“후후후! 회회…… 정말 저게 보이지 않는 것이냐?”

“저만 못 보는 게 아닙니다.”

회회문사가 진중하게 대답했다.

“정도 무림 쪽에서도 저것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전갈입니다. 무림명숙들은 물론이고, 무당파 그 누구도 무당산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회회문사가 말을 길게 했다.

진구량은 회회문사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저 기세…… 기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정도 무림 쪽에서 몇몇 사람은 느끼고 있겠지만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게다.

저 기세는 적어도 십마쯤은 되어야 볼 수 있다.

정도 무림 쪽에서도 그 정도의 무공을 지닌 사람은 있다. 당장 무당파 장문인만 해도 십마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렇다면 장문인은 보고 있을 것이다. 말을 하지 않을 뿐.

이틀만 기다린다? 그 이틀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무당파 장문인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검왕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 저것, 저 기세가 충분히 불타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저것이 무엇인가!

‘내가 직접 내 눈으로 봐야겠어.’

혈천성주는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후웁!’

진구량을 큰 호흡을 했다.

확실하다! 무엇인가가 있다!

진구량은 무당산 초입에서 걸음을 멈췄다.

자신이 본 기세는 무당산을 깊이 들어간 계곡에서 피어난다. 그러니 그곳까지 잠입해 들어가야 확인할 수 있다. 허나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들어가면 싸워야 한다!

이것 역시 느낌이다.

기세를 본 것이 느낌이라면 방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 또한 느낌이다.

기세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기세를 확인하는 순간, 손속을 부딪쳐야 한다. 저것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에 삶과 죽음을 결정지어야 한다.

‘이것이 무엇이든 이틀을 더 놔두면 아예 승산이 없다!’

쒜에에엑!

진구량은 진기를 끌어올려 신형을 쏘아냈다.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일어나지만,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절박감도 동시에 일어난다.

저것을 검왕이 상대할 수 있다면 놔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는 검왕도 상대가 안 된다. 이틀만 더 지나면.

무엇인가! 어떤 것이 점점 더 성장하고 있는가.

곳곳에 무당파 도인들이 잠복해 있다. 정도 무림 무인들도 대거 눈에 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혈천성주 진구량이 무당산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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