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92화 (19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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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九章 독보(獨步) (2)

하남성 호련읍.

하남성은 문물이 집합하는 곳이다. 아름다운 풍광도 많아서 시인묵객들이 끊임없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호련읍에 들어서면 크고 넓은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른 집들은 다 올망졸망한데 그 집만은 삼 층 높이에 크기도 웬만한 군사들 연무장만큼이나 크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한눈에 턱 들어온다.

만복객잔이다.

하남성에서 만복객잔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만복.’

누강은 남의 집 처마 밑에 서서 만복객잔을 쳐다봤다.

검왕이 이곳으로 가라고 했다. 만복객잔에 들르면 누군가를 만날 것이라고 했다.

검왕이 만나라고 한 사람은 천하의 대세를 좌지우지할 사람이 분명할 것이다. 분명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판세를 불러일으킬 사람일 게다.

그래서 그는 만복객잔에 들어서지 않고 있다.

길을 오는 내내 들은 소리가 있다.

- 검왕, 그놈 완전히 미쳤어.

검왕이 소림사를 멸문시켰다. 그때, 검왕에게 동조한 자들이 다른 자도 아닌 십마다.

마인들이 검왕과 손을 잡고 천년고찰 소림사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검왕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이번에 검왕과 손을 합친 사람은 마의 종주라고 불리는 혈천성이다. 혈천성주가 직접 마인들을 이끌고 정사대전을 벌이기 위해 무당산에 운집했다.

검왕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도 무림은 한 줌 핏물로 녹아버린다.

세상에는 살인, 방화, 약탈이 횡행할 것이다. 누구든 힘만 있으면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법도 없고, 윤리도 없고…… 오직 힘만 득세한다.

무공은 호신(護身)이다. 활인(活人)이다.

정도 무림이 지향하는 바는 일고의 가치도 없게 된다.

검왕은 과연 그런 세상을 원하는 것인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지금으로써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검왕이 미쳤다고 한다. 완전히 마에 물들어서 회생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누가 검왕을 죽여줄 수 없나?

세상 사람들은 검왕을 죽이고 싶어한다. 검왕이 죽어줬으면 한다.

검왕이 왜 이렇게 되었지? 이것이 혈루마옥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이지?

물론 검왕을 철석같이 믿는다.

혈루마옥이 세상에 나왔을 때, 중원 무림은 저항할 수 없다. 대항할 수 없다. 멸문을, 몰락을 피할 수 없다. 전멸을 피할 수 없다. 무림사가 소멸된다.

이것이 적벽검문의 판단이다.

적벽검문은 오로지 혈루마옥을 저지하기 위해 탄생한 문파다.

적벽검문의 역사는 혈루마옥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혈루마옥의 투쟁사와 적벽검문의 투쟁사가 동일하다.

그동안 끊임없이 혈루마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혈루마옥은 저주의 고리를 끊어가고 있다. 곧 중원으로 들어선다.

이때, 누가 혈루마옥을 막을 수 있나.

이미 혈루마옥은 저주를 일부 끊어냈다.

혈루마옥을 임의로 벗어날 경우, 저주를 완전히 풀지 않고 절곡을 벗어나면 무공에 치명적인 제한이 걸린다.

또 몸이 썩어들어가기도 한다.

진기가 일시에 폭주하여 전신 기혈이 터져 죽는 일도 왕왕 벌어졌다.

어떤 자는 절곡을 벗어나자마자 오공으로 피를 쏟으며 죽었다.

혈루마옥의 저주는 갖가지 방식으로 드러났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고, 그렇기에 대처방안을 찾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헌데 드디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화천이 혈오를 통하지 않고도 중원 땅을 밟았다. 검왕을 죽이기까지 했다.

비록 중원에 머물 수 있는 시한에 제한이 있다고 해도 이는 큰 사건이다.

한 달이라는 기한은 결코 작은 기한이 아니다.

혈루마옥을 중심으로 해서 반경 삼사천 리는 혈루마옥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다.

당장 시작이 이렇다. 혈루마옥은 점점 저주를 더 많이 풀어갈 것이고, 그때는 중원 전역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적벽검문은 화천을 예의 주시했다.

그가 한 달 동안 중원을 편안하게 돌아다닌다면, 그다음에도 편안할 수 있다면…… 몸이 썩어들어가지도 않고, 무공에 제한이 걸리지도 않고, 진기가 폭주하지도 않고…… 저주의 증상이 일절 드러나지 않는다면…….

적벽검문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누미를 주었다. 적벽검문이 몰락했다.

혈루마옥에 대항할 수 있는 작은 불씨만 남기고 모두 소멸했다. 전력으로 대항한 결과가 그렇다. 그나마 작은 불씨를 남겨놓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리고 희망을 건다.

그 불씨가 검왕이다.

검왕은 혈루마옥을 저주의 굴레 속으로 다시 밀어 넣을 의무가 있는 것이다.

헌데 그는 그 의무를 저버리고 오히려 칼날을 중원으로 돌렸다.

검왕을 계속 믿어야 하나.

“어쩌자는 겁니까?”

누강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검왕이 말한 대로 만복객잔을 들어서서 어떤 사람을 만나서 검왕이 말한 것을 이행하게 되면…… 그것이 중원 정도 무림에 해를 끼치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누강이 우려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다.

검왕은 검성을 등질 수 있다. 정도 무림에 검을 겨눌 수 있다. 허나 그는 안 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문이 그렇게 하라고 해도 그 짓만은 못하겠다.

그는 며칠 동안이나 망설였다. 그리고 오늘도 만복객잔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자신이 서지 않아.’

스읏! 스읏!

누강이 몸을 돌린 것과 누군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누구냐!”

누강은 검을 뽑으려고 했다. 허나 상대가 한 수 빨랐다. 그가 어느새 손을 써서 누강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꾹 밀었다. 검을 뽑지 못하도록.

‘웃!’

누강은 깜짝 놀라 상대를 쳐다봤다.

상대는 그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만약 지금 상대가 살수를 펼쳤다면 그는 여지없이 죽었을 게다.

“누강?”

맞냐는 질문이다.

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모르게, 엉겁결에.

“검왕이 가라고 하지 않더냐?‘

상대가 고갯짓으로 만복객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구냐!”

누강은 대답 대신 거듭 물었다. 헌데!

“검왕이 죽었다.”

“……!”

누강은 너무 놀라 눈만 부릅떴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검왕이 죽어?

“시간이 없다.”

그가 누강을 잡아끌었다.

“누, 누가? 어떻게?”

“누미. 단 일검에.”

“누미가? 일검에? 에이, 말도 안 돼.”

“농담할 시간이 없다. 네 허락을 받을 시간도.”

상대는 정말로 급해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당장 손을 썼다.

쉑!

손이 다가온다고 느꼈다. 하지만 피하지 못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는데…… 손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턱!

누강은 마혈을 제압당하고 말았다.

“누강인가?”

“그런 것 같아. 본인은 시인했다.”

“왜 안 들어오고 밖에서 얼쩡거린 거야?”

“뭔가 생각이 있었던 거겠지.”

“생각은 무슨.”

저들끼리의 대화는 거기서 중단되었다.

누강은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 관계로 저들이 몇 명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이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만복객잔 안일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한 사람이 다가와 그를 내려다봤다.

천장이 보이던 곳에 웬 늙은이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이놈, 무재(武才)는 아니군.”

“충골(忠骨)이지.”

“충골이란 놈이 어찌 딴생각을 품어. 그러고 보면 적벽검문 늙은이들의 눈도 믿을 게 못 돼.”

늙은이는 감히 사부들을 거론했다.

적벽검문이 문하를 받아들이는 기준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무재다. 그것도 보통 무재가 아니라 용중용(龍中龍)만 받아들인다. 검왕과 누미가 그런 경우다. 혈루마옥과의 싸움에서 죽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또 다른 경우는 누강이다. 충골을 뽑는다.

무재는 아닐지라도 사문에 대한 충심이 가득한 자라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기준은 전적으로 사부들의 안목에 달려있다. 사부가 받아들이고 싶으면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강도 이런 점을 알고 있다.

무공으로는 자신이 죽어라고 노력해도 검왕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검왕과 함께 같은 누씨 성을 갖게 된 것은 사부, 아버지가 그의 충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사문을 생각하는 마음이 천하제일이다.

누강은 다른 점은 몰라도 그 부분만큼은 검왕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처음 보는 늙은이가 감히 사부의 안목을 의심한다.

누강은 뭐라고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입술조차 달싹거려지지 않았다.

“벗겨!”

늙은이가 일갈을 내뱉은 후 뒤로 물러서자

“네.”

가녀린 음성이 들렸다. 여자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다.

스읏! 슷!

몸에 닿는 손길…… 세 명이다. 그녀들이 좌우에서 달라붙더니 허리춤을 풀기 시작했다.

‘뭐, 뭐하는 짓!’

누강은 말도 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여자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앞날을 하늘에 맡긴다는 심정으로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아니다. 눈도 감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스륵! 스륵!

허리춤이 풀어지고, 하의가 벗겨진다. 웃옷도 벗겨졌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고의까지 벗겨진다.

‘아! 그것만은…….’

누강은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낯선 여자들, 얼굴도 모르는 여자들이 옷을 벗겼다. 완전히 알몸으로 만들었다. 낯선 여자들 앞에 하물을 내보이고 있다. 이 무슨 개망신인가.

늙은이가 말했다.

“우선 좀 씻겨라. 이거 원 땀 냄새가 지독해서. 이놈은 목욕도 안 하고 다니나.”

누강은 그다음에 벌어질 일을 생각했다.

‘맙소사!’

호색한에게는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그로서는 천하에 이처럼 난감한 일이 또 없다.

그는 속으로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 늙은이…… 두고 보자!’

여인들의 손이 온몸을 구석구석 누볐다.

곱디고운 손이, 부드러운 옥수가 단단하게 경직된 근육을 노곤노곤하게 풀어놓았다.

누강은 이를 악물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그도 사내인지라 몸이 달아오른다. 손길이 스쳐 갈 때마다 마른침이 삼켜진다.

헌데 더 큰 곤욕은 목욕이 끝난 다음에 벌어졌다.

늙은이가 붓에 물감을 묻혀서 그의 몸에 그림을 그린다.

스읏! 사삿! 스으읏!

붓이 간지럽게 온몸을 누빈다.

‘?! 이게 무슨 짓…….’

그는 제발 그만두라고 사정하고 싶었다.

차라리 때리는 거라면 맞고 말겠다. 하지만 붓으로 농락하는 것은 참기 힘들다.

“음!”

늙은이가 붓질을 멈추더니 침음했다.

“적벽검문이 최소한 거짓은 말하지 않았군.”

누강에게 손을 썼던 자다. 그자의 음성이 틀림없다.

“거짓을 말하지 않은 것이야 멸문을 당할 때 알아봤지. 어떤 미친놈이 거짓으로 멸문을 당하겠어. 상대가 혈루마옥이야, 혈루마옥. 혈루마옥 눈길을 속일 수는 없는 거지.”

“음!”

“남은 거 마저 보고.;”

저들의 대화가 끊겼다.

늙은이가 다시 붓질을 하기 시작했다.

붓에 물감을 묻혀서 그의 몸에 그림을 그린다. 무슨 그림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붓질이 계속된다. 전신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아주 섬세하게.

이번에는 누강도 간지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몸뚱이가 어떤 도구가 된 것 같다. 아니면 적벽검문이 그의 몸뚱이에 무엇인가를 남겨두었거나.

지금 그가 할 수 이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천장만 쳐다보는 일뿐이다.

멀뚱멀뚱…… 천장만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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