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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88화 (188/225)

# 188

第三十八章 비월(飛越) (3)

짹! 째짹! 짹!

산새가 우짖는다.

검왕은 건포(乾脯)로 아침 요기를 했다.

사실은 아침만 건포를 먹은 게 아니다. 어제 저녁도, 어제 점심도 건포로 배를 채웠다.

목마름은 개울물로 해소한다.

그는 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찾아올 것이다. 찾아오지 않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저들이 찾기 쉽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가올 수 있게끔 위치를 노출시킨다.

숙제를 남기고 죽은 무인 다섯 명을 위한 애도 표시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하찮은 미물도 자기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쯤은 안다. 세상에 죽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루라도 더 살고 싶지.

그런데도 그들 무인 다섯 명은 기꺼이 검을 맞았다.

그들을 위해서 기다려준다.

누군가가 찾아오면 찾아오는 대로, 찾아오지 않으면 또 그런대로…… 일단은 찾아오기 쉽게 한 곳에 위치한다. 자신을 환히 노출시킨다.

저벅! 저벅!

숲 저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역시 찾아오는군.’

검왕은 찢어 먹고 남은 건포를 종이에 싸서 행낭에 찔러넣었다.

“사금(査軡)이라 합니다.”

무인이 포권지례를 취했다.

“약속 날짜는 내일인데, 이렇게 찾아온 것을 보니 무엇인가 찾은 것 같군.”

사금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그것을 짐작하고 있었소?”

“당신들 정도 되는 무인이라면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고도 남지. 거의 속도, 깊이, 흐름, 변화, 힘…… 모든 것을 봤을 테니, 무슨 수가 나지 않았겠나.”

“그럼 제가 온 목적도?”

“죽기 위해서 아닌가.”

“후후후! 역시 검왕입니다.”

사금이라고 자신을 밝힌 자가 다시 한 번 포권지례를 취했다.

스릉!

검왕은 검을 뽑았다.

“어떻게 상대해 줄까?”

“모쪼록.”

“모쪼록이라. 애매한 말이군.”

차앙!

사금도 검을 뽑았다. 그리고 검첨(劍尖)이 하늘을 향하는 천중세(天中勢)로 모습을 잡았다.

사금은 급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 죽은 다섯 명은 만나자마자 급하게 휘몰아쳐 왔다. 검왕으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있는 실력 그대로를 몸에 새기기 위해서다.

사금은 차분하게 검초를 준비한다.

사금은 틀림없이 검을 내리쳐 온다. 도끼로 장작을 패듯이 쾌속하게 쳐올 게다. 허면 옆구리가 빈다.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도 칠 수 있다.

사금보다 속도만 빠르다면 전신 어느 곳이든 칠 수 있다.

사금은 초식 변화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검으로 베라는 뜻이다. 허점을 많이 드러낼 테니 그 많은 곳 중에서 한 곳을 골라 베라는 거다.

벨 곳이 무지 많은데, 너 같으면 어디를 벨래?

사금이 취한 기수식을 보면 딱 그렇게 읽힌다.

헌데 아니다. 그것은 어제 죽은 다섯 무인이 취한 것이고…… 사금은 전혀 다른 검흔을 몸에 새겨야 한다.

사금이 검을 꾸욱 눌러 잡으며 말했다.

“모쪼록!”

당부인가, 부탁인가.

“알았다.”

검왕은 검을 수평으로 들어 올렸다.

배를 치겠다는 뜻이다.

쒜에엑!

사금이 달려왔다. 예상했던 대로 천중에서 땅을 향해 검광이 쏟아진다. 하얀 섬광 한 줄기가 벼락같이 흩뿌려진다. 아주 가느다란 회초리가 그어지는 것 같다.

스읏!

검왕은 예고했던 대로 배를 향해 검초를 뻗어냈다.

그가 쳐낸 검속(劍速)은 사금과 비슷하다. 아니, 서로가 번개처럼 빨라서 누가 더 빠른지 가름할 수가 없다. 검속 다툼은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

이때, 사금이 검초를 변화시켰다.

쉐에에엑!

위에서 내리치던 검세가 돌연 빗겨치기로 변했다.

검왕이 배를 가격한다면 맞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금의 검초 호선(弧線)으로 굽이돌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최소한 팔 하나는 잘라낼 것이다.

쒜에엑! 쒜에에엑! 퍼억!

검광과 검광이 간발의 차이로 빗겨 지나갔다.

사금의 검은 하늘에서 떨어져 검왕의 오른쪽으로 스치며 흘러내렸다. 그리고 팔꿈치 부근에서 방향을 뚝 꺾어서 부드럽게 위로 쳐올려졌다.

오른팔, 오른쪽 옆구리를 노리는 일격이다.

반면에 사금 자신은 몸이 절반쯤 비틀려졌다. 검왕이 배를 쳐갔지만 정작 검이 닿은 곳은 왼쪽 옆구리다.

검왕과 사금은 서로 마주 보고 싸웠지만 몸이 틀어진 방향은 모두 같은 곳이다.

이제 남은 것은 누가 먼저 쳤느냐 하는 점이다.

아니, 아니다. 사금은 자신이 검왕보다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이 먼저 맞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퍼억!

날카로운 검날이 복부를 훑고 지나갔다.

그 후, 사금은 최대한 검초를 이어갔다. 검을 맞은 후에도 사력을 다해서 검초를 쏟아냈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의지를 굳게 다잡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검초를 쏟아냈다.

이 검초, 검왕에게 충격을 줄 수 있나!

쉬잉!

사금이 뻗어낸 검초는 빈 허공을 훑었다.

“크윽!”

사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놀랍군. 당신들, 정말 무서운 자들이야.”

검왕이 찬탄했다.

혈루마옥 무인들은 하룻밤 사이에 한 가지 검초와 한 가지 심공(心功)을 창안해 냈다.

사금이 펼친 검초 변화는 아무나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느린 검초로는 수만 가지 변화를 그려낼 수 있지만 섬광처럼 빠른 검초 속에서 변화를 그려낸다는 것은……

이런 검초는 한 가지 검초를 수십, 수백, 수천 번에 걸쳐서 고련했을 때만 가능하다.

사금은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검초를 하룻밤 동안에 수련해서 들고 나왔다.

또 한 가지, 검을 맞고도 심력(心力)이 흔들리지 않았다.

사금은 검을 맞기 전이나 맞은 후나 똑같은 속도로 검을 펼쳐냈다. 검초를 절묘한 각도로 변화시켰는데, 어느 한 곳도 어긋나지 않고 완벽했다.

심공으로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그런 심공이 예전부터 혈루마옥에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새롭게 무장한 것만은 사실이다.

혈루마옥 무인들은 역시 강하다.

“난…… 검왕…… 당신이 더 놀라워.”

사금이 자신의 배를 쳐다보며 피식 웃다가 고개를 푹 떨궜다.

계산대로라면 검왕은 옆구리를 베어야만 한다. 검왕의 검속은 사금보다 빠르지 않았다. 검왕이 일부러 검속을 맞춰주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히 옆구리였다.

헌데 검왕은 배를 갈라냈다.

그가 몸을 틀기 전에 이미 검이 닿았다.

아니다. 검은 사금이 몸을 튼 후에야 몸에 닿았다. 확실히 검왕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헌데도 배가 갈린 것은…… 검왕이 검초를 쓸어내지 않고 찔러 넣었기 때문이다.

검왕도 검초를 변화시켰다. 베는 검에서 찌르는 검으로.

있는 힘껏, 최대한 빠르게 베어오다가 느닷없이 찌루는 검으로 변화시켜서 배를 쭉 갈라버렸다. 검이 옆구리에 닿은 직후, 곧바로 검초를 변화시켰으니.

검왕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숲에서 다른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친구를 데려가도 좋겠습니까?”

그들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후후후!”

검왕은 자조섞인 웃음을 토해냈다.

사금은 자신의 의도를 너무 환히 노출시켰다. 그래서 검초가 변화할 것을 예측했다.

만약 어제처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격해 왔다면?

자신은 최선을 다해서 검초를 뻗어냈을 것이다. 어제 다섯 명과 싸울 때는 그랬으니까.

그렇다면 검초를 변화시킬 틈이 없었다. 최선을 다한 검에는 변화가 깃들지 못한다. 무리하게 검초를 변화시키다가는 주화입마(走火入魔)에 걸린다.

사금이 변검을 구사할 것이기에 그도 속도를 늦췄다. 같은 변검으로 상대하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사금이 졌다.

하지만…… 검왕은 자신이 졌다고 생각한다. 진한 패배감이 밀려온다.

사금은 의도를 드러내고 공격했다. 그 공격에 대해서 파해법이 올바른지 증명해 달라는 거였다.

그들의 파해법은 옳았다.

‘모쪼록이라니. 후후!’

왜 그랬을까? 왜 변검을 사용했을까? 사금이 원한 대로 쾌검을 썼어야 했는데.

그 어떤 죽음에도 미안하지 않다. 하지만 사금에게만은 미안하다.

그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검에 묻은 피를 계류에 씻었다.

맑은 물에 빨간 피가 섞인다. 하얀 물에 빨간 물이 든다.

* * *

“옆구리에서 배로?”

“이건…… 변초(變招) 아닌가?”

“하하하!”

그들은 웃었다.

사금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주검, 사금의 죽음…… 그것이 새로운 희망이다.

“승부는 났어.”

“그럼 남은 문제는 검왕이 최선을 다해서 검을 쓰도록 유도하면 되는 것인가?”

“변초를 쓸 수 없게끔 몰아치면 되는 거야.”

“후후후! 너무 빨라도 탈인 것인가.”

그들은 사금의 몸에 새겨진 검흔을 살피고 또 살폈다.

검왕은 검속을 늦췄다. 분명히 늦췄다.

어제 죽은 다섯 무인은 무지 빠른 검에 당했다. 검흔의 시작 지점과 끝 지점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검이 몸을 훑기 시작해서 빠져나가기까지 일순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혈루마옥 무인이 본 것은 이것이다.

너무 빠른 검!

대체로 이런 검은 검초의 연환(連環)에서 일어난다.

진기가 이어지고, 이어지고, 계속 이어져서 힘을 가일층 강하게 분출시킨다.

이런 지경이 되면 변초를 구사하지 못한다.

혈영마공의 단점은 너무 빠른 쾌검에 있다. 너무 빨라서 변초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쾌검을 맞고 한순간만 버티면 검왕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다.

사금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갔다.

그러나 검왕은 변초를 사용했다. 극강의 혈영마공을 사용했다가는 당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예감한 것이다. 그래서 느닷없이 변초를 끌어낸 것이다.

물론 내일 있을 실전에서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검왕은 촌장처럼 유기(有氣)를 사용한다.

그것이 검에 어떤 변형을 일으킬 것이고, 초식에도 많은 변화를 줄 것이다. 하지만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검형(劍型)은 바뀌어도 검초는 바뀌지 않는다.

“검왕을 몰아세운다. 쉽지 않은 일인데.”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내일까지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야 되지 않겠나.”

“후후후! 우리 모두 모레는 볼 수 없겠군.”

“모레? 하하하! 너 너무 멀리 본 거 아냐? 내일 저녁놀도 보지 못해.”

“그렇군. 그럼 밥도 내일 점심이 마지막이겠군.”

“술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일은 싸워야 하니 취하면 안 되고…… 어떤가? 취해도 좋은 지금 한 잔씩 하는 게.”

“딱 한 잔씩만 하지. 마지막 술맛 아닌가. 후후! 검왕을 몰아세운다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니…… 그 해답을 찾을 때까지 취하면 안 될 것이고.”

혈루마옥 무인들은 마지막을 생각했다.

“찾았다!”

화천은 자신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허나 그가 내지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다. 주변에 얼씬거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녹천 무인들은 내일 싸움을 준비한다.

누미와 남은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다.

화천과 혈오, 단둘만 텅 빈 공간에 버려졌다. 또 그것은 화천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조용한 것이 좋다. 한적한 장소가 필요하다. 촌장이 남긴 기운을 알아야 한다. 촌장이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검왕이 떠올렸던 것이 무엇인지…… 실체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찾았다.

“이것이었나……”

그는 눈을 감고 진기를 풀어서 혈오의 몸을 더듬었다.

혈오의 몸에 틀어박힌 진기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싸움은 내일이다. 시간이 없다.

그는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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