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87화 (18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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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八章 비월(飛越) (2)

사인(死因)을 보면 무공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검왕이 얼마나 강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굳이 사인을 살필 필요도 없다. 검왕이 화천을 이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납득된다.

그러나 그들은 사인을 살핀다.

검왕의 무공을 살피고자 함이 아니다. 검왕이 검초를 펼칠 때 드러나는 허점을 살피기 위해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은 합공을 염두에 둔다.

늑대와 호랑이는 맹수들이다. 그렇다고 같은 맹수들이니 일대일로 싸워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싸움은 상대에 따라서 달라진다.

비무가 아니다. 무공의 우열을 논하지 않는다. 오직 상대를 죽이는 것에 목적을 둔다.

원래 그들은 이런 싸움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혈루마옥 무공은 천하 최강이다. 어느 누구와 싸워도 결코 지지 않는다.

그들은 적벽검문을 멸문시킬 때도 일대일의 싸움을 고집했다.

강자라고 해서 두 명, 세 명이 합격하지 않았다. 한 명이 죽으면 다음 사람이 뒤를 이어 싸웠다. 두 명째도 죽으면 세 명째, 세 명째도 죽으면 네 명째가…… 순서를 지켜가면서 싸웠다.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그렇게 싸우지 못한다.

그런데 검왕에게는 자부심이 무너졌다.

일대일의 승부에서 화천이 졌다. 녹천에서 제일 강한 무인이 패배를 했다.

두 명이, 세 명이 연합해서 공격했다. 헌데 졌다.

그들은 파해법(破解法)을 찾는다. 사인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검왕을 죽일 수 있는지 방법을 모색한다.

“어떻게 생각해? 방법을 찾을 수 있겠어?”

누미가 얼굴에 분을 바르며 말했다.

그녀는 속살이 환히 비치는 나삼(羅衫)을 입고 있다.

가렸으나 가리지 않았다.

속곳조차 입지 않은 완벽한 나신이 나삼 한 자락에 휘감긴 채 요요한 자태를 뽐낸다.

“…….”

화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답을 원하고 있다. 허락을 구하고 있다. 누미가 도와주기를 바란다.

“가서 같이 찾아 봐야 되는 거 아냐? 기세 좋게 나갔다가 패배한 경험도 들려주고. 그런 게 뭐야…… 실전에서는 가장 좋은 조언이지 않을까?”

허락을 구한다. 그 밖에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누미가 어떤 모욕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화천은 무감정한 표정으로 누미만 봤다.

“얘한테서 찾는 게 뭔데?”

“그냥 한 번…… 봤으면 한다.”

화천이 비로소 답했다.

“하나만 물어볼게. 아이를 무공에 이용하거나 저주를 푸는 거 말고…… 내 애라는 생각은 안 들어?”

“혈오는 혈루마옥 모든 사람의 자식이다.”

“어멋! 날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해? 그럼 내가 혈루마옥 모든 사내와 정분을 통했단 말이야?”

누미가 동경(銅鏡)을 통해 그를 쳐다봤다.

“훗! 그런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텐데, 괜한 시비구나.”

“아! 역시 재미없어.”

누미가 다시 동경을 쳐다보며 분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당신, 검왕에게 패한 후 제일 크게 바뀐 게 뭔지 알아?”

“…….”

“여유가 없어졌어.”

“그런가?”

“자기는 침착하다고 생각하겠지. 변한 게 없다고. 오히려 많은 걸 포기하니 더 여유로워졌다고. 호호호!”

누미가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당신,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걸 어쩌나? 몸이 엉터리네? 당신, 지금 바짝 얼어있는 거 알아?”

얼어있지 않다. 누미가 잘못 본 것이다. 자신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다.

‘지금보다 편한 때는 없었거늘…….’

인간이 짊어지고 있는 짐 중에서 욕심이 가장 무겁다고 했다.

사실이 그렇다. 욕심처럼 무거운 짐도 없다. 그 욕심…… 천하 위에 우뚝 서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인간이 짊어진 짐 중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덜어냈다.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홀가분하다.

오직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검왕과 다시 한 번 손을 섞어 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한다. 검왕을 이기고 싶다.

지금 혈오를 보고자 하는 것은 검왕을 이기고 싶어서다.

검왕을 대했을 때, 마치 촌장을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검왕의 무공과 촌장의 무공은 엄연히 다른데, 두 사람이 똑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자신은 그 무공에 당했다.

초식에 당한 것이 아니다.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에 당했다.

그가 혈오를 보고자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혈오는 혈루마옥 사람들에게 저주를 벗겨주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 모두가 혈오의 몸을 통해서 벌모세수(伐毛洗髓)를 해야만 했다.

인간의 몸을 버리고 신선이 된다는 등의 벌모세수가 아니라…… 기(氣)를 정화시키는 벌모세수다.

다시 말하면 혈오는 혈루마옥 모든 사람의 기운을 탐지했다.

자신의 기운뿐만이 아니라 촌장의 기운까지도, 도인(導引)으로 끌어낸 진실한 진기(眞氣)를.

그것이 알고 싶은 것이다.

촌장의 기운을 알게 되면, 촌장이 어떤 진기를 수련했는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다만 곁가지라도 좋으니 어떤 단서라도 잡을 수만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이 죽은 자들의 사인을 살피는 것보다 더 우선된다고 판단했다.

누미가 말했다.

“혈오에게서 뭘 찾는지 모르겠지만 찾고 싶다면 가서 찾아. 허락해 줄게.”

“고맙다.”

“그런데 당신, 참 한가한 사람인 거 알아?”

“…….”

“저 다섯 명은 목숨을 바쳐가면서 이틀이란 시간을 벌어줬어. 이틀 후면 검왕이 내 목을 베러 오는 거지. 그런데 당신은 혈오나 붙잡고 무공이나 참오하겠다는 거지?”

“그 답은 내일모레 해주겠다.”

“반드시 답을 해야 할 거야.”

누미가 싸늘하게 돌아섰다.

혈오!

화천은 혈오를 안아 들었다.

누미가 이상한 말을 했다. 혈오를 자식으로 보지 않냐고.

물론 자식으로 본다. 혈오는 자신의 피를 받고 태어난 자식이다. 하지만 동시에 혈루마옥의 자식이기도 하다.

물론 누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누미는 세상이 말하는 부자지정(父子之情)을 말하고 있다. 그것을 누가 모르나.

허나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혈루마옥 사람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태아는 탄생과 동시에 공동 육아가 된다.

어느 한 사람이 부모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모두가 한데 섞여서 한울타리 속에서 모두의 자식이 된다. 그래야 근친끼리 혼인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혈루마옥은 제한된 공간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꽤 큰 계곡처럼 보이겠지만,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런 공간에서 오가는 사람도 없다.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도 없고, 들어오는 사람도 없다.

아는 사람들끼리, 가까운 친족끼리, 대로는 같은 집안사람끼리 혼인해야 한다.

혈루마옥의 저주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다.

하나는 혈루마옥이라는 계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자와 여자의 기운이 정반대인 상태에서 지극을 향해 치달린다는 것이다.

여인은 살기 위해 양공(陽功)을 수련해야 하고, 사내는 살기 위해 음공(陰功)을 수련해야 한다.

이런 선택이 결코 정상적일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혈루마옥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인 것이다.

누미는 비정상인 사람에게 정상적인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주문한다. 잘못된 주문인 줄도 모르고.

혈오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모두의 자식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로서 가지는 감정을 죽인다. 그런 감정은 혈오가 태어나는 순간, 아니 그 전에 이미 죽였다.

누미가 아버지로서의 느낌이 없냐고 해서 아기를 안아봤다.

느낌이 없다.

‘인간이 아닌 사람에게 인간의 감정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야.’

그는 혈오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는 것처럼.

누미는 차를 마셨다.

향긋하게 우러난 차를 마시면서 여러 사람의 말을 듣는다.

“상단이 너무 거대해서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인계받을 수 없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 너구리를 죽이면?”

“상단도 소멸합니다.”

“그 큰 상단이?”

“일구기는 어렵지만 소멸하는 데는 일 년도 안 걸릴 겁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소멸이 아니라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겠죠. 이권 있는 사람들이 자기 몫을 챙겨서 떠나갈 겁니다.”

“호호호! 그럼 내가 당한 거야?”

“…….”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누산은 그녀에게 상단을 넘겨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넘겨줄 수 없는 것이었다.

누산의 상단은 누산 한 사람만이 조정할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지위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넘겨준다고 해도 누산이 지배할 때와는 전혀 다른 상단이 되고 만다.

하부 조직이 흩어지는 것이다.

분명히 누산은 상단을 넘겨줬는데, 넘겨받은 사람은 쥔 것이 없게 된다.

“너구리는 협조적이었나?”

“모든 것을 공개했습니다.”

“호호호!”

누미는 차를 마시다 말고 크게 웃었다.

누산의 상단은 인적자산 없이는 운영되지 않는다. 재물은 거둘 수 있겠지만 상단 자체는 넘겨받지 못한다.

누미가 말했다.

“이렇게 되면 선택하기가 쉬워졌네. 재산은 모두 거둬놨지?”

“보이는 것들은 모두 파악했습니다.”

“그 정도면 됐어. 황제는 되지 못하지만 현감은 될 수 있을 거야. 그 정도로 만족해야지 어쩌겠어. 그 사람들, 모두 끌고 와. 마침 필요하니까.”

“죽이실 겁니까?”

“그건 검왕 하기 나름이지.”

누미가 환하게 웃었다.

혈루마옥 사내들은 검왕을 상대하지 못한다.

이것은 확신할 수 있다. 검왕이 사인 속에 파해법을 남겨두었겠나. 일 년 만에 지렁이에서 용이 된 사내인데, 그런 무공 속에 허점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누미는 혈루마옥 사내들의 노력에 일말의 희망도 걸지 않았다.

물론 화천도 믿지 않는다. 화천이 혈오에게서 촌장의 기운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쯤은 짐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나? 촌장의 기운을 읽는다고 촌장이 되나?

한심한 사람들.

검왕은 코앞에 있다. 그에게 죽임을 당하느냐, 항복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그 사실을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혈루마옥 사내들은 하찮은 자존심 때문에 멸사(滅死)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결코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러려고 혈루마옥을 뛰쳐나온 것이 아니다. 혈루마옥이라는 강력한 힘을 두 손에 쥐었을 때, 이 힘으로 세상을 무너트리겠다고 각오했다.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그럼 당장 검왕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것 역시 매우 간단하다.

검왕의 파해법은 누산이 쥐고 있다. 유화아가 쥐고 있다. 누강이 들고 있다.

인질처럼 좋은 상대는 없다.

물론 검왕은 그들의 목숨 정도는 가볍게 여길 것이다.

그것이 적벽검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소위 대의를 위해서는 자신조차도 희생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화천이란 인간에게 먹이로 던져준 것이 아니겠나.

적벽검문은 그럴 수 있는 인간들만 모여 있다.

그래서 적당하게 밀고 당겨야 한다. 너무 강력하게 밀고 당기면 오히려 줄이 끊어진다.

그녀가 명했다.

“내일까지 모두 데려와. 철삭에 꽁꽁 묶어서.”

“철삭으로 묶기까지……합니까?”

“그 사람들은 친구가 아냐.”

“…….”

“꽁꽁 묶어서 데려와.”

“찾았다!”

한 사람이 소리쳤다.

“나도 봤어!”

또 한 사람이 약간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뭐야? 어딘데?”

“정말 찾은 거야?”

아직 파해법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여기야. 여기가 구멍이다.”

시신을 빤히 들여다보던 자가 손으로 검흔(劍痕)을 가리켰다.

“여기가 왜…… 웃!”

“음! 가능성 있어.”

검흔을 본 무인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들은 하수가 아니다. 떨어지는 빗방물도 벨 수 있는 초상승 고수들이다.

그들은 동료들이 남긴 사흔에서 혈영마공의 허점을 찾아냈다. 지금은 막연한 생각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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