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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파괴록-184화 (18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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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七章 괴멸(壞滅) (4)

십점(十點)이 있다.

하늘에 삼점이 있다. 천삼(天三)이다. 배후에 삼점이 있다. 후삼(後三)이다. 좌측과 우측에도 이점씩이 있다. 좌이(左二), 우이(右二)라고 한다.

이것들이 모여서 십점을 이룬다.

십점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상호 견제한다. 또한 상호 협력한다.

십점이 오직 전면만 노려본다.

전면과 발밑만 열려있고, 다른 곳은 철저하게 막는 문후십진(門厚十陣)이다.

문후십진은 호위(護衛)를 목적으로 한다.

뒤와 위, 좌우측에서 뚫고 들어오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그런 공격은 몸으로 막으면 된다. 발밑을 통해서 공격하는 방법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만에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허나 공연히 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오직 전면만 살핀다.

문후십진을 펼치는 목적은 단 하나,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방어가 목적이 아니다. 급습만 피하면 된다. 눈 깜짝할 순간만 벌어주면 되는 것이다.

“뭐라? 시간이 필요하다?”

“이십 일을 요구했습니다.”

“그놈, 미친놈 아냐? 그놈에게는 지금 이게 장난처럼 보이나 보지? 하하하!”

마인들의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마인들은 금방이라도 폭발하려고 한다. 적을 앞에 놓고 참기만 한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더욱이 그 적이라는 것이 평생 꺼꾸러트리고 싶은 숙적이다. 또한 지금 상황이 꺼꾸러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런 점까지 감안하면 매 시간 언제 싸우냐는 불평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은 검왕도 막지 못한다.

이미 활시위가 활을 떠난 것과 진배없다. 화살이 허공을 날고 있거늘 어떻게 돌이키나. 엎질러진 물이지 않나.

“내일 아침, 바로 친다.”

“검왕이 성주님을 노릴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서면 안 되지. 다른 놈을 부추겨봐. 한 놈만 피 흘려도 전면전이야. 몰라서 그래?”

혈천혈도는 싸움을 결정했다.

이 싸움은 벌어져야 한다. 여기서 정마(正魔), 어느 한 축이 무너져야 한다.

그는 이 싸움을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헌데,

툭! 투욱!

왼쪽 벽에서 실 끊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지극히 짧은 순간에 일어난 소리…… 하지만 십점 중에 이점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라는 것쯤은 눈감고도 짐작한다.

쒜에엑! 쒜엑!

오른쪽에 숨어있던 이점이 득달같이 신형을 쏘아냈다.

그들은 혈천혈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방금 소리가 일어난 왼쪽을 향해 덮쳐갔다.

“큭!”

달려가던 자들 중에 한 명이 혈천혈도의 시야도 벗어나지 못하고 꼬꾸라진다.

턱! 퍽!

다른 자는 왼쪽 벽까지 다가섰다. 하지만 그 역시 힘을 잃고 뚝 떨어졌다.

이후, 움직임은 없다.

하늘에도 배후에도 점들이 있다. 각기 세 개씩 여섯 개가 존재한다. 하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문후십진이 바라는 바는 성취했다.

혈천혈도에게 숨 돌릴 기회만 주면 된다.

만약 혈천혈도를 공격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의 무공은 상상을 불허할 것이다. 혈천성의 성주를 공격하는 자인데, 무공인들 오죽하겠나.

그런 자를 막아설 수는 없다.

혈천혈도 진구량은 불행히도 그를 위해서 대신 싸워줄 자를 찾지 못한다. 때문에 급습만 피하고자 한다. 허면 숨 돌릴 여유를 찾게 되고, 그 후에는 차분히 상대한다.

혈천혈도 진구량이 왼쪽 벽을 쳐다보며 말했다.

“뉘신가?”

스읏!

진구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왼쪽 벽이 붉게 물들었다.

‘검왕!’

‘검왕이다!’

진구량과 회회문사는 얼굴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검왕이 찾아왔다. 왼쪽 벽이 붉게 물드는 것은 혈영마공을 펼쳤다는 증거다.

혈천혈도가 즉시 말했다.

“회회, 사진(死陣)을 쳐라. 지금 즉시.”

혈천혈도 진구량은 검왕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손을 콧구멍 속에 넣고 후비적거리면서 검왕을 쳐다봤다.

“무당 장문인과는 대화가 잘됐나 보네?”

스릉!

검왕도 혈천혈도를 중시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은 살펴봤지만 정작 혈천혈도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검부터 뽑았다.

“날 베게?”

“그럴 생각으로 왔다.”

“그럴 요량이었으면 회회가 나가기 전에 베었어야지. 어쩌나? 지금 주위에는 사진이 펼쳐져 있을 텐데?”

저벅! 저벅!

검왕이 혈천혈도를 향해 걸어갔다.

“멈췃!”

천정에서 쩌렁 일갈이 터졌다. 허나,

쉬릭! 쉬리리리리릭!

검왕은 천정에서 음성이 들리기 무섭게 검을 쏘아냈다.

삼척 장검이 마치 륜(輪)처럼 회전하며 천정을 휩쓴다. 말이 터졌음 직한 곳을 무차별적으로 훑어버린다.

“큭!”

답답한 비명과 함께 피를 머금은 신형이 뚝 떨어졌다.

검왕은 시신은 무시하고 다시 되돌아오는 회전검을 받아들었다.

회전검? 아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삼척장검이다. 하지만 그런 검이 검왕의 손에 들린 순간, 회전검도 될 수 있고, 자검(刺劍)도 될 수 있다.

‘이놈! 진정이다!’

혈천혈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주위에는 사진이 펼쳐져 있다. 사진은 독진(毒陣)으로 일단 펼쳐지면 결코 거둘 수 없는 죽음의 진이다.

사방에서 독무가 피어오를 것이다. 독무에 닿는 모든 물체를 녹여버릴 것이다. 나무, 풀, 사람, 동물…… 독무에 닿기만 하면 한 줌 핏물이 될 게다.

피부에 살짝 닿기만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독무가 사방 백 장을 휘감는다.

향후, 독무가 휩쓴 땅은 삼십 년 동안 풀도 자라지 않는 죽은 땅이 된다. 독성이 일 년 정도는 유지될 테니…… 그 안에 이 땅을 밟는 자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사진은 적을 죽이고자 하는 진법이 아니다. 진안에 들어있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키고자 한다.

혈천혈도는 검왕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십마가 수족처럼 부려지고 있다. 혈루마옥 촌장과 싸워서 목숨을 부지한 자다.

그런 자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래서 골육지책(骨肉之策)으로 내놓은 것이 사진이다.

검왕도 사진을 알 것이다.

혈천혈도를 죽이겠다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겠지만, 그 역시 무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검왕은 망설임 없이 검을 쓴다.

검왕이라고 해도 사진을 돌파할 수는 없다. 혈루마옥 촌장도 사진에서는 죽어야 한다. 그만큼 필살진(必殺陣)으로 준비했다. 설마 검왕이 지척에 있는데 이만한 준비를 안 했을까.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검을 쓴다는 것은…… 딱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죽어도 좋다!

혈천혈도는 죽음을 예감했다.

회회문사가 말을 전했다. 이십일 간의 여유를 죽지 않으면 마도 전체를 죽이겠다고.

그 말을 허언으로 받아들였는데, 진심이다.

“날 죽이는 것은 좋은데…… 허면 정말 마도 전체를 죽여야 할 게야. 피곤하지 않겠어?”

“백 리 뒤로 물러나기만 하면 돼.”

“아! 그건 조건이 다른데? 회회 말로는 이십 일만 달라고 한 것 같은데?”

“맞아. 조건이 바뀌었지.”

“제멋대로군.”

검왕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순간, 혈천혈도는 자신이 갑자기 십 년은 더 늙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팍 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그는 이미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전성기는 검성이 살아있을 때였다. 검성이 죽는 순간, 그의 영광도 끝났다.

검왕, 검왕의 무공은 높지 않았다. 십마들이 이를 갈면서 만나기를 고대했으니 말이다.

헌데 이제는 십마 중 그 누구도 검왕과 맞서지 못한다.

그도 마찬가지다. 혈천성의 성주이지만 검왕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검왕이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의 시대는 저물었다.

정도 무림이 몰락해도, 정도인들을 모두 죽인다고 해도 이 세상은 그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가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백 리 밖으로 물러나고. 또?”

“고맙군.”

검왕이 검을 거뒀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러는데?”

혈천혈도가 검왕을 빤히 쳐다봤다.

검왕은 무당산에 와서 변했다. 무당산까지 오는 동안에는 결심이 변하지 않았다. 정사대전을 일으켜서 정도인을 몰살시키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니다. 누가 봐도 아니다.

“생각을 바꿨을 뿐이야. 혈루마옥부터 치기로.”

“아!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리는 놈들. 그건 잘 생각한 것 같은데, 승산은 있고?”

“없지.”

“혈루마옥은 어떻게 치게? 화천을 이겼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 정도로는 안 될 텐데?”

혈루마옥은 조직이다.

개인을 이기는 것과 조직을 이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즉, 검왕은 인해전술(人海戰術)을 통과해야 한다. 그것도 혈루마옥 무인들은 하나같이 절정이다.

일순, 검왕의 얼굴에 어둠이 덮였다. 하지만 그는 곧 어둠을 털어내고 씩 웃었다.

“이십 일 후, 그때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거든. 후후!”

“왜 말을 끝맺지 않고. 그 후에는 내 마음대로 하라는 말로 들리는데. 맞나?”

되물을 필요도 없다.

이 일은 검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검왕 같은 절대 강자가 고만고만한 고수들을 확 짓눌러 줄 때만 가능한 일이다.

혈천혈도는 그 일을 못 한다.

이십 일 후에 검왕이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혈천혈도는 속절없이 물러나야만 한다. 지금은 마인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지만, 검왕이 없다고 알려지면 단박에 수그러들 것이다.

“혈루마옥이 정리되면 돌아올 건가?”

“…….”

검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오기를 바라. 이 일은…… 내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니까. 물론 내 욕심이지만.”

“고려하지.”

검왕은 자신이 왔던 왼쪽 벽으로 다가섰다.

파아아앗!

그의 신형이 붉게 물든다. 붉은 운무가 그를 휘감는 듯하다. 그리고는 사라져버렸다.

“제길!”

혈천혈도는 이를 꽉 깨물며 투덜거렸다.

자신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은 느끼지만, 그래도 너무 억울했다. 거의 다 끝났는데.

검왕은 그에게 백 리 밖으로 물러나라고 한다.

말이 좋아서 백 리지…… 그 말은 사실상 공격을 포기하고 혈천성으로 돌아가라는 말과도 같다.

싸움은 기세다.

지금 마인들의 기세가 매우 높다. 이대로라면 단번에 정도인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 헌데 이런 상태에서 혈천성이 뒤로 쭉 빠지면 어떻게 되겠나.

마인들도 엉거주춤 뒤로 물러선다.

이제나저제나 싸울 생각만 하고 있던 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뒤로 물러선다.

그때부터 사기는 꺾이기 시작한다.

검왕이 있든 없든 물러선다는 것은 이번 정사대전을 포기한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혈천혈도는 이번 정사대전이 이미 쏘아진 화살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혈천성이 하기에 따라서는 뒤로 무를 수 있다. 무르는 길이 너무 간단하다.

“제길!”

어쩔 수 없다. 어떻게 할 수 없다. 자신이 반대하면, 이대로 눌러앉으면 검왕은 마인들부터 벨 것이다. 진심으로.

한 시진 후, 혈천혈도는 활짝 웃었다.

회회문사가 답을 내놨다. 아주 만족스러운 답지를 꺼냈다.

혈천혈도가 느낀 대로 이미 그의 시대는 저물었다. 검왕이라는 절대 거물이 존재하는 한, 혈천성이라는 조직은 의미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정사대전은 모든 마인들의 숙원이다.

혈천성주, 그는 검왕이 제시한 조건 대로 백 리 밖으로 물러난다.

하지만 이 자리, 그가 머물던 자리에 한 사람이 남게 된다. 바로 회회문사다. 아니다. 검왕이 남게 된다. 검왕과 혈천성주가 손을 잡는 격이 된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결속력을 불러올 게다.

더불어서 회회문사는 한 가지 선포도 한다.

“무당산으로 가는 길은 막지 마라. 누구든 들어가는 것은 막지 마라. 보내줘라. 하지만 나올 수는 없다. 무당산이 저들로 꽉 차게 하라. 일거에 죽여준다.”

이십 일을 견딜 수 있는 명분을 선포한다.

“하하하! 좋아. 그럼 검왕이 없어도 싸울 수 있지. 하하하!”

혈천혈도는 아주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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