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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七章 괴멸(壞滅) (2)
혈천성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뭐하자는 것이냐?”
“…….”
회회문사는 입을 꾹 다문 채 멀리 떨어져 있는 무당산 산정만 쳐다봤다.
포성이 울린다. 무당산 자소궁에서 뿌연 먼지가 피어난다.
자소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대충 짐작된다. 자소궁을 공격하는 위치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자소궁에 대대적으로 포탄을 퍼붓는 것도 아니다. 바로 코앞에서 성질이 날 정도로만 건드리고 있다. 피해가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지도 않다.
“남의 집 한복판에 뛰어들어서 저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라면…… 십마 맞지?”
“그런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후후! 회회문사, 언제부터 대답이 사실이 아니라 가정(假定)이 되었나?”
혈천성주는 정보력을 질타하고 있다.
혈천성은 무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개미가 죽은 일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정보력이 강하다.
중원 무림 문파는 혈천성이 원하는 정보를 줄 수밖에 없다.
중소문파는 물론이고 대문파까지도…… 혈천성을 적으로 두고 싶지 않은 자들은 좋든 싫든 정보를 내놓는다.
그중에는 정도문파의 대들보인 개방도 포함되어 있다.
개방은 구파일방 중에 일방이다. 정도무림의 기둥이다. 거지집단이지만 불의를 용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암암리에는 혈천성에 정보를 대주고 있다.
검성 관할에 있는 개방은 여전히 정도를 표방하고 있지만 혈천성 관할에 있는 분타(分舵)는 어쩔 수 없이 타협할 수밖에 없다. 적당히 정보를 내주는 것으로.
그만큼 혈천성의 정보력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헌데…… 정사대전이 코앞인데…… 적진 한복판에서 포성이 터지고 있는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을 못 하고 있으니 질책을 받아도 마땅하다.
아니, 이런 일은 질책 대상이 아니다.
움직인 자들이 다름 아닌 십마다. 그들이 은밀히 침투해서 대포를 설치했고, 포를 쏘아댄다.
첫 포성이 울린 지 반나절이나 지났다.
그래도 여전히 포성이 울리고 있다.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자소궁에 포탄이 떨어진다.
무당파가 저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검왕이…… 싸울 뜻이 없는 듯합니다.”
“뭐라고?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이제 와서 싸울 뜻이 없다니? 뭘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게냐!”
“성주님 같으면 지금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싸우겠습니까?”
“후후! 밀어붙여야지. 어차피 사생결단 아닌가.”
“승산은 어찌 보십니까?”
“그걸 말이라고? 오늘 해 떨어지기 전까지 삼 할은 떨어져 나갈 거고, 내일 해 뜰 무렵이면 자소궁을 거머쥘 것이고…… 그 정도면 끝났잖아?”
“그렇습니다.”
회회문사가 웃었다.
그렇다. 지금 상황에서는 오직 전격전(電擊戰)만이 답이다. 이것저것 따질 이유가 없다.
험악한 산정에 대포를 설치하고 자소궁을 쏘아대는 일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일은 오히려 전격전을 벌이는 데 방해도 되지 않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아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십마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면…… 그들이 임의로 행동했을 리는 없고…… 검왕이 지시한 것이다.
혈천성주는 뒤늦게야 회회문사의 말뜻을 알아챘다.
“뭐야, 그럼 저건…… 지금 싸우고 있다는 뜻이야?”
“그렇습니다. 무당파를 공격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입니다. 현재 싸움을 시작하고 있으니 잘 보라는 겁니다.”
“풋!”
혈천성주는 코웃음을 쳤다.
현재 정도 무인도 그렇겠지만 마도 무인들 역시 잔뜩 긴장하고 있다.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피 말리는 심정으로 보내고 있다.
싸움을 늦추거나 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누군가가 싸움을 하지 말자고 해도 이미 가득 당겨진 화살은 내려놓지 못한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다.
여기서 검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를 두었다.
무당파 자소궁을 공격한다. 대포로 공격한다. 무자비하게 쏘아대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자소궁에 대포를 쏘려면 먼저 지금처럼 산정으로 대포를 운반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운반할 수 있는 대포라면 구경이 매우 작은 것이어야 한다.
무당파를 공격한다.
정도 무인들은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대포를 제거하기 위해 무인들을 투입할 게다.
마인들도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느낀다. 그리고 산정을 지켜본다. 대포가 멈추기를, 다음 행동이 이어지기를 기다린다. 곧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다.
그때까지…… 그들은 지켜보면서 기다린다.
가득 당긴 화살을 쏘아야 하는데…… 대포를 지켜보느라고 쏘는 것을 잊어버린다.
산정에서 벌어지는 행동은 마인들의 긴장감을 누그러트리는 효과가 있다. 팽팽하게 당겨진 전의(戰意)를 말랑말랑하게 누그러트린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혈천성주는 회회문사의 언질을 받은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확실히 검왕은 회회문사의 말처럼 싸울 뜻이 없는 것 같다. 정사대전을 원하지 않는다.
“검왕 그놈이 왜 질질 끌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듯합니다.”
“검성 제일령주가 놈을 만났는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그 후에 하오문주도 잡혀갔습니다.”
“제일령주와 하오문주를 동시에 만났다…… 그럼 사달은 그 전에 일어난 게군.”
“혈루마옥 화천과 일장격돌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 듯합니다.”
“화천과 싸울 때라…… 아니지, 싸운 후이지.”
혈천성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검왕의 뜻을 알지 못하겠다. 검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다.
혈천성주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모든 걸 총동원해서 검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봐. 그놈이 정말로 싸울 뜻이 없다면 나라도 싸워야지. 후후! 사람을 여기까지 불러냈으면 콩고물이라도 얹어줘야 되는 것 아냐. 흥! 제 놈 마음대로 싸움을 끝내? 후후!”
‘이런 걸 염려했는데…….’
회회문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결전에 앞서서 검왕을 만났다. 검왕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근본적으로 검왕은 무림 멸망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은 혈루마옥 때문에 등 떠밀리다시피 해서 정도 무림을 멸망시키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정작 정사대전이 목전에 이르면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무당파 하나라면 충분히 멸문시킬 수 있다.
소림사를 멸문시켰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아침에 중원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허나 지금은 정도 무림이다.
무당파 한 문파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 무림의 정수가 집결해 있는 상황이다.
화산파, 아미파, 해남파, 청성파, 곤륜파…… 무림 대문파에서 명숙들을 투입했다. 황보세가, 제갈세가…… 명성깨나 있는 무림세가에서도 영걸들을 보내왔다.
이곳이 무너지면 정도 무림이 무너진다.
이럴 경우, 검왕이 흔들릴 수 있다.
정도무림을 몰락시키겠다고 검을 들었지만, 막상 현실과 부딪치면 망설일지도 모른다.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검왕은 근본적으로 정도 무인이다.
그래서 일부러 검왕을 만나 의사타진을 했다. 일단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검왕이 흔들리는가.
‘아냐. 검왕의 의사는 확실했었어.’
뜻이 너무나도 분명했는데…… 그토록 분명했던 뜻이 바뀌었다면…… 그 사이에 아주 큰 일이 있었던 것이다.
회회문사는 검왕이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보다는 어떤 일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는지가 궁금했다. 그것을 알아야 차후 행보를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어디서부터 알아본다?
난감했다. 검왕은 옆에 그 누구도 두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배척해 버렸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지는 않다.
‘검왕, 참 귀찮은 사람이야.’
무당산 초입은 각종 장사꾼들로 득실거린다.
객점도 있고, 주점도 있다. 무당산은 도문 최고의 성지이고, 무당산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도교(道敎)을 신봉하는 신자들이지만, 그들도 먹고 자야 한다. 술을 마시기도 한다.
회회문사는 그런 집들 중에 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놈, 회회문사다.”
“혈천성 군사 놈이잖아. 죽여야 돼.”
“헌데 저놈이 뭘 믿고 여길 기어 들어온 거지?”
“그러게.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것도 아니고.”
정도무인들이 수군거렸다. 그리고 회회문사의 귀에도 수군거림이 똑똑히 들렸다.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발길을 옮겼다. 객잔 중에 한 곳으로 유유히 들어섰다.
“저, 저희는 방이 꽉 차서…….”
“알고 있네.”
회회문사는 주위부터 둘러봤다.
무당산 초입은 정도무림의 권역이다. 이곳에는 정도 무인들만 존재한다. 마인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회회문사는 참으로 위험한 곳을 방문했다.
헌데…… 그가 들어선 객잔은 그 어느 곳보다도 긴장감이 팽배했다.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직 살기만 무럭무럭 피워냈다.
그에게 던지는 살기는 절대 아니다.
객잔에 있는 무인들은 오직 한 사람, 우물에서 물을 길어 세수를 하고 있는 청년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가 들어서자 그 많은 살기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이 그에게로 향했다.
회회문사가 말했다.
“난 저 사람하고 몇 마디 말만 하려고 왔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시게.”
그렇다. 검왕은 적진 한복판에서 태연하게 세수를 하고 있었다.
“부(不)입니까?”
회회문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가(可). 다만 완(緩)이 필요할 뿐.”
검왕의 눈빛은 고요했다. 흔들림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정도 무림을 멸살하겠다고 말할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허면…… 기우였던가?
“완이라면…….”
회회문사가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 보였다.
그들은 정도 무인들 한복판에 있다. 적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대화를 나눈다.
모든 말들이 밀어(密語)가 될 수밖에 없다.
회회문사는 오 일 정도 여유를 주면 되겠냐고 묻는 것이다.
검왕은 손을 들어 탁자에 글씨를 썼다.
이십(二十).
“그렇게나?”
“…….”
“그럼 그동안 계속…….”
말을 하는 회회문사의 표정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검왕이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生)은 변(變)하는 법이고…….”
이번에는 회회문사가 침묵했다.
무당산 능선을 점거한 십마가 아주 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검왕은 그들이 이십여 일 동안 꾸준히 공격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공격 형태가 바뀔 것이라는 말도 했다. 포탄이 다 떨어지고 나면 다른 형태로 공격한다는 소리다.
이 모습, 저 모습 어떤 모습이든 모두 시간끌기용이다.
“짤막한 서신 한 통 부탁드립니다.”
회회문사는 결국 밀어를 포기했다.
검왕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은데…… 듣는 귀가 너무 많아서 물어보지 못하겠다. 자신들이 나누는 대화는 티끌만 한 것이라도 정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완이 필요했던 이유를 적어주시면 적극 지지하겠습니다.”
검왕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지지는 필요 없소.”
“무슨 말씀이신지?”
“모두 벨 생각이오.”
“모두라고 하시면…… 우리까지 말입니까?”
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객잔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저, 저, 저…… 미쳤다. 모두를 벤대!”
“우리만 노리는 게 아니었어. 마도까지 모두 벤단다. 아무리 검왕이라지만 이건 너무 광오한 거 아냐?”
“광오한 게 아니라 미친 거지. 미친 거야.”
주위 사람들이 떠들거나 말거나 검왕은 여전히 침착한 눈으로 회회문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완이 있으면 혈(血)이 없을 것이나, 급(急)을 원하면 시(屍)가 생길 것이오.”
아주 강경한 협박이다.
그러나 회회문사는 그 말을 듣자 오히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 말씀, 알겠습니다. 헌데 완이 필요한 이유…… 혈천성에서 말씀하셨다면 제가 이해했겠습니까?”
“그대는 이해하지만 성주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가보시오. 곧 손님이 올 예정이라서.”
“손님이라면 누구……?”
회회문사는 말을 하다 말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주위에 살기가 한층 짙어진다. 마치 지옥 겁화 속에 빠져든 기분이다.
정도 무인들에게 힘을 북돋워 줄 사람이 왔다는 뜻이다.
회회문사는 몸을 일으켰다.
지금 돌아갈 생각은 없지만, 앉아서 맞이할 사람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