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73화 (173/225)

# 173

第三十五章 불명(不明) (3)

회회문사가 검왕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불만 쬐었다. 검왕도 말이 없고, 회회문사도 말이 없다.

한참 만에 회회문사가 말했다.

“이번에 칼을 아주 심하게 뽑으셨더군요.”

“그런가? 심했나?”

“아주 심했습니다. 소림사라니요.”

“이제 겨우 한 홉의 피를 뿌렸을 뿐이야.”

“한 홉…… 말만 들어도 섬뜩합니다. 소림사가 겨우 한 홉이라. 피를 얼마나 원하십니까?”

“나도 모르지.”

“그래도 추측은 해주셔야죠.”

“그대 생각에는 내가 피를 얼마나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저야 막연한 생각일 뿐이지만…… 아마도 장강(長江)이 붉게 물들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일은 사실로 이루어질 거야. 후후! 후세 사람들은 날 두고 뭐라고 할지 궁금하군.”

검왕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검왕은 회회문사를 쳐다보지 않았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길만 쳐다봤다.

모닥불이 검왕의 얼굴을 비춘다.

붉은 기운이 검왕의 얼굴에 흡수되어, 피부색 전체를 붉은색으로 바꿔놓는다.

검왕이 혈귀처럼 보인다.

한순간이지만, 회회문사의 착각이지만 그는 검왕의 얼굴에서 악마의 모습을 봤다.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오고, 머리에는 뿔이 달리고, 두 눈은 붉게 물든…… 어린아이들이 상상 속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혈귀의 모습이 현실처럼 눈앞에 드러났다.

‘악마!’

이 순간, 검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다. 불을 쬐고 있는 모습은 고요하다 못해서 적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 겹만 벗겨내고 나면 여지없이 악마의 모습이 드러난다.

검왕은 악마다.

검왕은 정말로 장강을 핏물로 물들일 것이다.

“그렇군요. 제가 괜한 걸음을 했군요.”

“괜한 걸음은 아니겠지. 얻을 것을 확실하게 얻었으니까.”

그들은 선문답 같은 소리를 주고받았다.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한다.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도 확신한다. 입을 열어서 말할 필요도 없다. 상대방을 보는 순간 답이 이미 나와버렸다.

검왕은 일사 결전을 벌일 것이다.

이런 행동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검왕에게는 다른 생각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상황이 그에게 좋지 않아도 그는 실행한다. 그냥 일직선으로 쭉 나간다.

회회문사는 이것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리고 확인했다.

검왕도 회회문사가 찾아온 까닭을 안다.

회회문사가 묻는다. 너 정말 싸울래?

물음은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물음 속에 깃든 의미는 매우 거대하다. 천하대란(天下大亂)을 묻고 있다.

혈천성이 네 편을 들어줄까? 아니면 침묵할까?

혈천성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제삼의 행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는 혈천성이 정도 무림 편에서 싸울 수도 있지만 그것은 혈천성의 존재가치를 상실케 한다.

그러잖아도 마인들 중에는 개개인 별로 검왕 편에서 싸우겠다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찍부터 정도무림과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자들이 있었다. 검성에게 공공연히 반기를 들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하고 질타하는 자들이 많았다.

이런 마당이니 어떻게든 싸워야 한다.

회회문사는 그 답을 찾으려고 왔다.

당신과 함께 싸우려고 한다. 정말 싸울 것인가? 언제 싸울 것인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어느 정도에서 만족할 것인가? 뿌리를 뽑고자 하는가?

그리고 그 답을 찾았다.

“비가 오려나 봅니다.”

회회문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검왕은 말이 없다.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묵묵히 불만 쬔다.

잠시 후, 회회문사가 일어나서 다짜고짜 포권지례를 취했다. 그리고 그 역시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떠난 것이다.

회회문사가 검왕을 만났다!

소문이 날개를 달고 천 리 밖으로 펴져 나갔다.

소림사를 멸문시킨 검왕과 혈천성이 손을 잡는 것은 필연이다. 그런 연합은 시간문제였을 뿐, 조만간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짐작하고 있는 일…… 그러니 막상 연합을 했다고 해도 큰 충격은 없다.

정도 무림도 검성의 주도하에게 밀집되고 있다.

천하 각처에서 무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병장기를 휴대하고 상경 중이다.

정도와 마도의 싸움은 필연이 되었다.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은 곧 어느 곳에선가 일전을 벌일 것이다.

여기에 또 치밀한 암투가 존재한다.

혈천성은 혈천성이 유리한 지형에서, 정도는 정도가 유리한 곳에서 싸우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니 장소는 아직 미정이다.

검성과 회회문사가 서로 자신이 유리한 장소로 상대방을 유인할 것이다. 온갖 계책이 난무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걸려드는 쪽이 불리한 지형에서 싸우게 된다.

검왕과 회회문사의 만남은 아무런 충격도 주지 않는다.

“혈천성 놈들,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아버려야 돼.”

“이번 기회에 중원에서 마인이란 작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자고.”

정도무림은 마도척살의 기치를 내세웠다. 이번 싸움을 아주 좋은 기회로 여겼다.

검왕과 십마는 뛰어나다. 하지만 검성에는 조직이 있다.

구파일방 장문인도 있다. 각 세가의 가주들도 독보적인 무공을 자랑한다. 그들 개개인이 검왕이나 십마보다 못할지 모르겠지만 비무가 아니라 전쟁에서는 승부가 달라진다.

정도에게도 승산은 충분하다.

마인도 이번 기회를 좋은 승부처로 여겼다.

그들에게는 검왕이라는 구심점이 생겼다. 십마를 수족처럼 부리는 최강 마인이 탄생했다.

그는 벌써 소림사를 뭉개버렸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와 함께 이 세상을 쓸어버릴 최고의 기회가 다가온다.

전 중원이 들썩거렸다.

* * *

“후후후! 후후!”

화천은 쓴웃음을 흘렸다.

이 세상이 묘하게 돌아간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당금 무림에서 최대 관심사라고 하면 단연 혈루마옥이어야 한다.

아니, 생각했던 대로라면 지금쯤 혈루마옥은 전 중원을 피로 물들이고 있어야 한다.

저주의 마옥을 벗어난 후에 한 일이 무엇인가.

상잔(相殘)뿐이다.

증평과 녹천이 피가 터지도록 싸운 것밖에 한 일이 없다.

물론 자신도 할 말이 없다. 자신은 촌장을 몰아내고 혈루마옥에서 최고 위치에 올라섰다.

이제 중원을 피로 씻기만 하면 된다.

허나 중원은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정사대전(正邪大戰)이다.

그 싸움에 혈루마옥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정사가 한 자리에 모인다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중원을 멸할 좋은 기회다.

그곳에서 중원 무림을 공격할까?

정사대전을 치르기 위해 모인 모든 무인들을 한 번에 싹 쓸어버릴까?

그것은 천하제일 무인집단인 혈루마옥도 무리다.

그곳에서 천하 무인들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혈루마옥도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멱살을 되잡혀서 이쪽이 전멸할 수도 있다.

샘물이 모여서 강물이 된다.

샘물과 강물은 같은 물이지만 힘이 다르다. 뭉쳐진 힘과 뿔뿔이 흩어진 힘은 완전히 다른 힘이다. 혈루마옥은 정사대전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허면 정사대전을 치른 후에 공격할까?

그것은 체면 문제다.

정사대전을 치르면 누가 이겼건 간에 힘이 상당히 쇠약해져 있을 것이다. 어느 한쪽도 일방적인 승리를 장담할 수 없고, 처절한 희생을 요구하는 싸움이지 않은가.

양패구상(兩敗俱傷)이 한눈에 보인다.

그런 자들을 치고 정상에 우뚝 서봤자 인정받기는커녕 비아냥거릴 대상이 되고 만다.

어려움을 틈타 자리를 탈취한 쥐새끼 같은 자들.

혈루마옥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자존심 문제만으로도 실행할 수 없다.

검왕…… 놈은 혈루마옥의 발길을 묶어버렸다.

혈루마옥은 넘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못한다.

“검왕, 참 대단한 자야.”

그가 처음으로 검왕을 인정했다.

그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어떻게 이런 행로를 걷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살아난 것이고, 이런 행로를 걷는 것이다.

딱 한 가지, 검왕이 자신의 발길을 묶어두고 있는 것만 생각한다.

이것만 해도 놈은 대단한 것이다.

허나…… 아직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웃기게도 그 방법은 검왕 자신이 알려주었다.

‘검왕, 네놈을 베어버리면 끝나는 일…….’

정사대전이 벌어지기 전에 검왕을 벤다.

“검왕을 베야겠소.”

“베세요.”

“검왕을 베기 위해 혈루마옥 전체를 동원할 생각이오.”

검왕은 머리카락만 한 틈만 있어도 빠져나간다. 죽이고 또 죽여도 살아난다.

놈을 완전히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누미가 웃었다.

“검왕의 값어치를 다시 매긴 것 같네요?”

“이런 노력 정도는 기울여야 할 사내니까.”

“알았어요. 전부 쓰세요.”

“혈루마옥 이름도 쓰겠소.”

화천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혈루마옥 사람이다. 자신이 혈루마옥 후계자다. 자신이 대를 이어받았다.

누미는 이방인일 뿐이다.

누미는 품에 안고 있는 혈오만 낳았을 뿐이다.

갓난아기 한 명.

고작 애기 한 명을 나았을 뿐인데, 자신이 혈루마옥의 이름을 쓰는 것까지 허락받아야 한다.

누미가 웃으면서 말했다.

“혈루마옥 이름으로 죽이게요?”

“허면 검왕에게 쏠렸던 이목이 모두 혈루마옥으로 집중될 거요. 혈루마옥이 무림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고…… 어쩌면 검성과 혈천성의 협공을 받을 수도 있소.”

“알았어요.”

누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천은 중평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녹천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중평까지 손아귀에 쥐어야 한다고.

누미가 그 말을 알아듣고 대답한 것이다.

녹천과 마찬가지로 중평 여인들도 혈오를 통해 저주를 풀었다. 혈오와 연계되어 있다. 혈오가 부르면 달려와서 누미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아니면…… 암살이다.

중평이 정말로 누미에게 머리를 조아리기 싫으면 혈오도 죽이고 누미도 죽이면 된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방법이야 찾으면 나오지 않겠는가.

어쩌면 중평은 지금 그 방법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고.

혈오를 죽이면 어떻게 될까?

중평은 아마도 다시 혈루마옥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혈오가 중원에서 살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면 당연히 돌아가게 될 것이다.

중평은 그런 점까지 감수할지도 모른다.

화천은 ‘그렇지 않다’는 쪽에 한 표를 던졌다.

자신이 직접 시험을 해볼 수는 없지만…… 혈오를 죽여도 중원에서 버티는 힘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는다. 혈루마옥의 저주는 완전히 풀어진 것이다.

혈오의 능력은 흔히 벌모세수(伐毛洗髓)와 비교된다.

근골을 완전히 바꾸고, 피를 바꾸고, 근육을 바꾼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혈루마옥 사람들이 저주를 풀 때는 그만한 과정을 거쳤다고 본다.

즉, 지금의 자신들은 혈루마옥을 벗어나지 못하던 그때의 자신들이 아니다. 저주는 완전히 풀렸다.

설혹 저주가 풀리지 않아서 다시 혈루마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래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 저주를 풀었으면 두 번, 세 번도 풀 수 있다.

누미 같은 여자를 또 구하면 된다.

적어도 혈오에게 휘둘려서 사는 것보다는 나을 성싶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누미가 중평을 끌어안아도 좋고, 중평이 누미를 암살해도 좋다.

저들 싸움은 저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오직 검왕에게만 집중한다. 어쩌면 십마도 동시에 상대해야 할 테니만…… 십마 정도 처리하는 것은 어린애 손목 비트는 것보다 쉽다.

화천은 오랜만에 검을 챙겼다.

“내 행동, 당분간 누산에게는 비밀로 해주시오.”

“돌아올 때까지 모를 거예요. 알아도 뭘 할 수 있는 것은 없잖아요? 누산의 재산, 차분차분 넘겨받고 있을게요.”

누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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