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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五章 불명(不明) (2)
숭산에서 무당산까지 가는데 걸어서 얼마나 걸리나?
누구에게 이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글쎄? 한 이틀 정도?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
소림사가 멸문된 지 사흘째, 검왕은 여전히 관도 위에 있다.
그는 분명히 무당산이라는 목표를 두고 걷는다. 목적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무당산으로 가는 이유도 명확하다. 무당파를 멸문시키기 위해서다.
이 모든 것이 명확한데도 그는 천천히 걷는다.
보통 사람도 이틀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그는 사흘째가 됐는데도 절반도 못 갔다.
검왕의 모습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첫째, 검은 무복을 입고 있다.
소림사를 공격할 때 입고 있던 옷 그대로다.
무복에는 혈흔이 묻어 있어서 방금 싸움을 끝낸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는 피 묻은 무복조차 갈아입지 않았다.
또한 그는 심유한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본다.
저승 깊은 곳에서 악마가 쳐다보는 듯한 눈길, 살기가 묻어나는 눈빛.
검왕과 눈길을 마주친 사람은 즉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검왕이 시비를 걸어올 것 같다. 힘이 있든 없든, 무인이든 아니든 꼭 시비가 걸릴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놈이 고의로 시비를 걸려고 하는구나!
누구나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검왕을 보면 즉시 관도 옆으로 몸을 피한다.
그때쯤, 검왕이 소림사를 멸문시켰다는 소문이 전 중원을 뒤흔들었다.
무림은 물론이고 온 세상이 그 사실을 안다.
검왕이 무당산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로 널리 퍼져있다. 비밀이 아니다.
거기에 검왕의 독특한 모습까지…….
검왕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검왕을 가로막는 사람도 없다.
검왕 곁에는 십마가 있다. 검왕이 십마와 함께 소림사를 멸문시키지 않았나.
사람들은 검왕이 마인이 됐다고 수군거린다.
“마공관 마학을 수련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검성에서 내쳐졌잖아. 그때부터 앙심을 품은 거지 뭐.”
“귀선부 제이령에게 단단히 채였대나 봐. 그래서 복수를 하는 거라던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이 번져갈수록 검왕은 마인으로 변모했다.
그래서 검왕이 십마와 함께 소림사를 멸문시킨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검왕은 마인이다.
검왕에게는 소림사를 멸문시킬 힘이 있다. 십마라는 동조자도 있다.
검왕은 정도무림에 원한을 가지고 있다. 정도를 버리고 마도를 택할 만큼 깊은 원한이다.
검왕이 드디어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놈은 중원 모든 문파를 멸문시킬 계획이다. 그리고 끝내는 중원정복을 선언할 게다.
놈이 중원을 파괴시키고 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니 검왕 앞에 나서는 자가 있을 수 없다.
검왕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의기만 가지고는 안 된다.
검왕을 꺾을 수 있는 무공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검왕 곁에 있다는 십마 정도는 가뿐히 찍어버릴 수 있는 자여야 한다.
누가 십마를 상대할 수 있는가!
검왕 곁에 있다는 십마는 한 명이 아니다. 검왕을 따르는 십마가 적어도 사오 명은 될 것으로 추측한다.
검왕을 가로막겠다는 나서는 것은 목숨을 버리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검왕은 아무도 가로막는 자가 없는, 탄탄대로를 걷는다.
그런데도 그의 걸음은 매우 느리다.
뒷짐을 지고 산책을 하는 사람보다도 느린 것 같다. 발걸음이 느린 소달구지를 타고 가도 검왕보다는 빠를 것 같다.
털썩!
검왕이 길가에 앉아서 먼 산을 쳐다본다.
이것이 그가 느리게 걷는 원인이다.
검왕은 관절이 안 좋은 노인네처럼 길을 걷다가 이런 식으로 자주 앉는다. 특별하게 경치가 좋은 곳도 아닌데 그저 길가에 앉아서 시간을 허비한다.
그가 엉덩이를 깔고 앉았으니 이번에도 두어 시진 정도는 가볍게 흐를 것이다.
반나절이 아무 의미 없이 후딱 지나간다.
지금까지 검왕은 늘 그래 왔다. 하루에 한두 번을 꼭 앉았고, 앉았다 하면 반나절 정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특별하게 하는 일도 없이 먼 산만 쳐다봤다.
검왕이 특별히 느리게 걷는 것도 아닌데, 멀리 가지 못하는 이유다.
사실, 검왕은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풍경이나 감상하고 있을 틈이 없다.
그는 무당산을 향한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음 공격 대상은 무당파라고 인지하고 있다.
당연히 무당파는 총 비상사태다.
무당파 속가제자들이 밤을 새워서 무당산으로 운집하고 있다. 무당파를 멸문시켜서는 안 된다며 호기롭게 무당파를 향하는 무인들도 있다.
무당파는 단단하게 결속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당파가 유리해진다. 검왕이 불리해진다. 무당파는 총력을 결집시킬 수 있고, 방어벽도 강해진다. 검왕은 단단해진 벽을 부셔야 한다.
지금 검왕의 모습을 보면 일부러 그러라고 유도하는 것 같다.
시간을 주겠다. 단단히 결집해라. 총력을 끌어모아라.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모아라. 방자(幇者)도 모아라.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후회하지 말고 모두 해라.
검왕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검왕 곁에 십마가 있으니 가능하지 않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쉬운 싸움을 버리고 일부러 힘든 싸움을 할 필요가 있을까?
검왕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어쨌든 검왕은 오늘도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관도 곁에, 나무 밑에 앉아서 먼 산을 쳐다본다. 하늘을 보는지도 모르겠다. 좌우지간 아무런 일도 없이 반대쪽 산을 쳐다본다.
앞으로 두어 시진 동안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멀리…… 저 산 너머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홍연(紅煙)!’
붉은 연기의 의미는 검왕도 알고 있다. 바로 검성의 봉화다.
검성은 정보 전달수단으로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한다.
파발마, 전서구, 봉화, 물을 이용한 수전(水傳)까지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그중에 하나가 봉화인데, 지금 피어오르고 있다.
붉은 연기는 주목하라는 뜻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붉은 연기가 피어난 다음에 전해진다.
퍼엉! 퍼엉!
하늘 높은 곳에서 폭죽이 터졌다.
폭죽은 검은색과 푸른색이 섞여 있다. 검은 폭죽은 둥근 원을 그리고 푸른 폭죽은 검은 원 안에서 모래알처럼 작게 부서져 반짝반짝 빛을 뿌린다.
특이한 폭죽이다.
검왕은 이 폭죽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검성의 폭죽은 검성 사람이라고 해도 알지 못한다.
검성에서는 폭죽에 의한 밀마(密碼) 전달 방식을 두고 이인일폭일의(二人一爆一意)라고 한다.
이인은 전달하는 사람과 전달받는 사람이다. 단 두 사람만 폭죽을 안다. 폭죽에는 단 하나의 뜻만 담고 있어서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딱 하나의 사실만 전한다.
폭죽 밀마로 의사전달을 하기 위해서는 이인(二人)이 사전에 교감을 하고 있어야 한다.
서로 알고 있는 폭죽을 터트려야 한다는 말이다.
검성이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문파에게 전갈을 보내고 있다.
전갈을 받는 사람은 이곳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 더 먼 곳에 있을 수도 있다. 봉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곳으로 전해지는 전갈인지, 중원 전역으로 전해지는 봉화인지도 가늠하지 못한다.
단 하나, 검성이 누군가에 밀마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검성과 그가 앉아있는 곳은 천 리나 떨어져 있다. 검성에서 천 리 밖에 있는 사람에게 봉화 같은 빠른 전달 도구를 이용해서 연락을 취하는 것은 흔치 않다.
검성은 급하지 않은 일일 경우, 대부분 파발마를 이용한다.
‘일을 제대로 해주고 있구나.’
검왕은 빙긋 웃었다.
제일령은 믿어도 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즉, 움직인 일은 완벽하게 처리한다. 이미 완벽하게 끝낼 수 있도록 모든 요건을 갖춰놓은 다음에 움직였기 때문이다.
제일령의 가장 큰 적은 제이령이었다.
허나 지금 그녀는 움직임을 멈췄다. 조직의 우두머리가 행방을 감췄다.
당연히 머리를 잃은 몸통은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진다.
모르는 사람이 이런 말을 들으면 제일령의 움직임이 매우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할 게다. 아니다. 그 일이 검성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매우 어렵다.
제일령이 처단한 제이령 수족들은 하나같이 고수다.
제일령이 전격적으로 움직여서 깨끗이 마무리한 것 같다.
이제 두 번째 싸움으로 넘어간다.
제일령에게도 그에게도 중요한 싸움이다. 시기도 맞아떨어져야 하고, 장소도 맞아야 하며, 전 중원의 뜻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하나의 의미는 이쪽과 저쪽이 다르겠지만.
“잊지 마라. 이 싸움은 오래 끌어서는 안 돼.”
검왕은 점점 옅어져 가는 폭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중원 무림과의 싸움은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 오래 끌면 혈루마옥이 개입한다. 그들이 개입하기 전에 중원 무림을 갈기갈기 찢어놓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저들이 개입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
중원 각 문파를 각개 격파하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끝장내야 한다.
대결전(大決戰)!
지금 같아서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은 충분히 가능하다.
검성은 움직였고…… 이제 혈천성이 움직이기를 고대한다.
중원 전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대단한 싸움이 될 게다. 그 싸움에서 그가 이길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가 이기더라도 수많은 동도들이 쓰러져야 한다.
무림 동도들은 결코 마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의 전멸 직전까지 이르지 않는 한,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싸움은 그와 십마만으로는 무리다.
그래서 혈천성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가급적이면 희생을 덜기 위해서 필요하다.
혈천성이 반드시 가담해야 한다.
‘혈천성…… 움직여라.’
그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저벅! 저벅!
그가 관도를 걸어간다.
사박! 사사삿!
미세한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는 혼자 걷고 있지 않다. 그가 걸으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인다.
그를 쫓는 무리가 있다.
아니, 많은 무리들이 그를 관찰한다. 주시한다.
당장 무당파 도인들이 그를 주시한다. 그를 관찰하면서 매 시진마다 본파에 보고한다.
무림 각 문파도 그를 주시한다.
개방의 걸개, 청성파의 도인, 아미파의 여승 등등 수많은 눈길들이 어둠 속에서 그를 주시한다.
그는 많은 눈길에 노출되어 있다.
그중에 하나가 혈천성의 눈길이다.
그는 느리게, 느리게 걷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느리게 걷는 이유를 알 것이다.
이미 혈겁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그가 왜 무당파에게 시간을 주고 있는지 짐작할 것이다.
회회문사는 혈천성 제일 모사(謀士)다.
그는 검왕이 느리게 걷는 이유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안다. 만약 그가 눈치채지 못한다면 혈천성주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것이다.
회회문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회회문사가 움직이면 혈천성주도 움직인다.
그를 쫓는 무리 중에서 혈천성의 간자…… 그에게만 볼 일이 있다. 다른 자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간자, 그는 빨리 보고해야 한다. 오늘도 검왕이 매우 느리게 걷고 있다고.
검왕은 객잔에 들지 않고 노숙을 한다.
소림사를 멸문시킨 후, 삼 일 동안 걸어오면서 어느 한 날 편안하게 눕지 않았다.
관도 한구석에, 길가에 모닥불을 피우고 앉는다.
날이 샐 때까지 눕지 않고 앉은 채 불을 쬔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허리 한 번 펴고 다시 길을 걷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이 타인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가 소림승들을 너무 많이 죽였기 때문에 망령에 시달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밤에 잠을 청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누구도 검왕이 왜 편히 눕지 않는지, 잠을 청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정확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검왕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
그렇다. 검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검왕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제일 빠르다. 어설프게 추측만 해서는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검왕이 불을 피웠다. 그리고 불 앞에 앉았다.
검왕은 먹지 않는다. 허리춤에서 물 호로병을 꺼내 물 한 모금 마시면 식사가 끝난다.
이제부터 검왕이 할 일은 없다. 그때.
저벅! 저벅!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그늘을 딛고 투박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걸어오는 자는 무공을 익혔다. 발걸음에 무거움과 가벼움이 함께 얹힌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발걸음 소리를 죽일 수 있는 자다. 하지만 숨기지 않는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그래도 땅을 밟으면서 걸어온다.
검왕이 그를 쳐다봤다.
다가오던 자가 걸음을 멈추고 포권지례를 취했다.
검왕이 조용히 말했다.
“와서 앉지.”
“고맙습니다.”
찾아온 자는 사양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를 찾아온 사람은 회회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