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71화 (171/225)

# 171

第三十五章 불명(不明) (1)

“이 미친놈이!”

혈천성주는 노갈을 내지르며 읽고 있던 서신을 와락 구겨버렸다.

서신에는 소림사의 멸문 과정이 그림 보듯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소림방장은 소림 멸문을 예감한 듯하다.

웬만하면, 싸울 수 있다면 소림방장이나 소림이불이 싸움 초반에 목숨을 버릴 리 없다.

소림 멸문에는 십마가 가세했다.

검왕과 더불어서 십마라는 이름도 무림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다. 소림 멸문이 어디 한두 마디로 끝날 사안이던가.

그 말은 다시 말해서 십마로 거론된 열 명의 마인들이 재조명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십마 중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자는 마군이다.

그는 그가 이끌고 있는 세력만 가지고 하북팽가를 멸문시켰다. 아주 잔인하게, 검왕보다도 잔인하게, 정말로 무림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하북팽가 사람들은 몰살당했다.

무인뿐만이 아니라 하인, 하녀……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이라는 사람은 모두 죽었다.

미친놈, 미친놈이다.

미친놈이기는 검왕도 마찬가지다. 아니, 검왕에게 동조해서 소림멸문에 가담한 놈들 모두가 미친놈들이다.

“누구는 이리할 줄 몰라서 안 하고 있는 줄 아나!”

혈천혈도 진구량이 다시 노갈을 내질렀다.

“네 생각은 어떠냐?”

진구량이 회회문사에게 말했다.

“저희 정보가 상당히 부족합니다. 검왕과 혈루마옥 사이에 벌어진 일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회회문사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답했다.

회회문사는 검왕을 쫓아갔었다. 하지만 쫓지 못했다. 검왕의 동정을 암암리에 살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마도 제일의 지자(知者)라는 회회문사가 그것마저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기는 진구량도 마찬가지다.

그는 혈루마옥의 틈을 살피려고 했다. 혈루마옥 잡졸들 중에서 손발이 되어줄 자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혈루마옥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가 혈루마옥을 찾아서 나섰을 때, 혈루마옥은 증발해 버렸다.

모두들 어디로 갔는가?

진구량은 혈루마옥에 대한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혈천성의 눈과 귀는 온 세상에 퍼져있다.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티끌만 한 소식조차도 모두 쓸어 담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혈루마옥은 세상에 있지 않다. 세상 밖에 있다.

검왕도 세상 속에 있지 않다.

검왕과 혈루마옥은 세상 밖에서 무엇인가를 했다. 어떤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여파가 바로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하북팽가와 소림 멸문이다.

혈루마옥이 이 일을 주도했다면 이해하겠다.

정작 마중마(魔中魔)라는 혈루마옥은 코빼기도 안 비치고 오히려 검왕이 설치고 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회회문사가 말했다.

“지금 저희는 장님에 귀머거리입니다. 검왕의 돌출행동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습니다.”

“사전지식이야 있지.”

회회문사가 혈천성주를 쳐다봤다.

혈천성주는 책상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서성거렸다. 그러면서 말했다.

“오래전에 음사가 찾아왔었다. 검왕의 심부름이라면서.”

“음사라면 마공관주 누강의 심복……?”

“그래. 그자가 찾아와서는 무림 멸문을 말했다.”

“그랬단…… 말입니까?”

회회문사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혈천성주가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능구렁이…….’

회회문사는 심중에 있는 말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시켰다.

혈천성주는 심복 중의 심복인 자신조차도 믿지 못한다.

“그놈이 허무맹랑하게 무림멸문을 말하기에 호통을 쳐서 쫓아 보냈지.”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회회문사는 검왕이 남겼다는 마지막 말이 궁금했다.

자신이 혈천성주를 알 듯이 검왕도 혈천성주를 안다. 마공관주 누강도 아니고 음사 같은 자를 보내서 무림멸문을 말하면 어느 누가 동조하겠는가.

검왕은 음사가 아니라 누강이 와도 혈천성주가 움직이지 않을 것을 알았다. 아니, 검왕 자신이 직접 와서 혈천성주를 설득해도 움직이지 않았을 게다.

그런 점을 알면서 사람을 보냈다?

무엇인가 전할 말이 있었던 것이다.

혈천성주가 말했다.

“결정을 어떻게 하든…… 강물은 흐르기 시작했다. 이게 음사란 놈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

“강물은 흐르기 시작했다…….”

“되도 않는 말이지. 그럼 강물이 흐르지 안 흘러!”

“강물은 흐르기 시작했다…….”

회회문사는 검왕이 남겼다는 마지막 말을 곰곰이 되새겼다.

검왕은 무림멸문을 말했다. 그리고 소림사를 멸문시켰다. 혈천성주에게도 이 사실을 말했고, 동조를 요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단호한 의지다!’

회회문사는 검왕의 의지를 읽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당금 무림에서 ‘소림 멸문’ 사실을 모르는 문파는 없다. 마군에 의해 저질러진 하북팽가 몰살 사건도 모두가 안다. 그들 자신도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검성이 조용하다.

즉, 검성도 검왕의 행동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사전 고지를 받았다는 뜻이다.

검성은 검왕이 무슨 짓을 벌일지 안다.

여기서 혈천성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이로운가.

“흠!”

회회문사는 침음했다.

검왕은 혈천성의 이목을 완전히 차단시켰다. 그가 일부러 차단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행동한 곳이 혈천성의 눈길을 벗어난 지역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세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혈천성의 정보력이 완전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임의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가 말했다.

“검왕이 차후 행선지는 무당파로 추측됩니다. 소림을 멸문시켰듯 무당파도 멸문시킬 예정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미친놈이라고 했잖아. 그 새끼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아주 헤까닥 돌아버렸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쩌긴 뭘 어째? 가만히 있어야지. 보아하니까 그놈, 정도문파라는 것들을 싹쓸이하는 모양인데, 우리에게 나쁠 건 없잖아. 두고 보자고.”

“그러면 우리도 당합니다.”

“뭐라고?”

“검왕의 힘은 하나를 치면 두 배로 늘어납니다. 두 개를 치면 네 배로 증가합니다. 검왕을 추종하는 자들이 생기고, 검왕 곁에 세력이 쌓입니다. 그중 태반은 우리 혈천성 동도가 될 겁니다.”

“우리 놈들이 그놈에게 붙는다고?”

“따지고 보면 검왕이 하는 일, 우리가 하려다가 하지 못한 일이잖습니까? 그 일을 검왕이 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속이 시원합니까. 당연히 그쪽으로 붙겠죠.”

“너 지금 나 약 올리는 거야!”

혈천성주도 그 정도는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손대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여기서 우리 선택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둘 중에 하나라.”

“검왕을 도와서 무림 멸문에 일조하거나, 검왕의 반대세력과 연합해서 검왕을 적으로 삼거나.”

“가만히 있는 것은 안 된다 이거지?”

“검왕의 반대세력과 연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정도 무림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그럼 우리 형제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거잖아!”

“그렇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검왕을 도와서 무림 멸문에 일조해야 합니다.”

“그거야 나도 좋지. 눈엣가시 같은 놈들을 싹 제거하고 우리 세상을 만들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나. 다만 이 싸움에서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말이야.”

“방법이 있습니다.”

순간, 혈천성주의 눈가에 빛이 반짝였다.

혈천성주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이 말을 듣기 위해서 다른 말들을 에둘러 말했던 게다.

혈천성주는 이미 검왕과 손을 잡아 무림 멸문에 나설 계획이다. 다만 방법론, 어떤 식으로 무림 멸문에 일조하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답을 듣고 싶은 것이다.

회회문사가 말했다.

“검왕은 한 문파씩 각개격파할 생각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십마가 동조한다고 하지만 검왕에게는 세력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무림 전체와 전면전을 치르기에는 역부족이지. 각개 격파가 최선이야.”

“무림은 곧 연합합니다.”

“그럴 테지. 아마도 무당파가 멸문당하고 나면 곧 무림연합이 결성되리라고 보는데.”

“검성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지금 벌써 암암리에 수를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림에 이런 사달이 일어났는데도 검성이 가만히 있다는 것이…….”

“검성이 무림연합을 주도하고 있다?”

“검성과 일전을 벌일 때가 온 겁니다.”

검성과 혈천성의 일전(一戰)은 항상 예고되어 왔다. 언젠가는 정면충돌할 것이라고.

시기와 장소가 문제였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결속시켜야 합니다. 검성이 예상외로 빨리 움직인다면…….”

“움직인다면?”

“검왕은 무당파를 치기 전에 검성이 주도한 무림연합과 부딪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 우리도 싸움에 가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검왕이 당할 것이고, 그 후에 나서는 것은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습니다.”

“소림에서부터 무당산까지는 겨우 이틀 거리…… 천천히 간다면 칠 일. 검왕이 노리는 게 무림연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검왕이 무지 천천히 움직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 우리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검왕에게 이용당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후후후! 히히히! 킥킥!”

혈천성주가 요상하게 웃었다.

‘역시 능구렁이야.’

회회문사가 다시 얼굴빛을 굳혔다.

검왕에게는 친구가 있다. 검성에 있다. 귀선부 제일령이 둘도 없는 친구다.

검성은 검성주가 주도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제일령이 직접 나서서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럴 것이라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파악된다.

검성에서 많은 죽음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항이지만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린 자들이 많다.

그들은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검성주가 된 제이령의 분신들이라는 점이다.

검성주의 수족들이 잘려나간다는 것…… 검성주가 제거되었다.

회회문사가 제일령이 움직인 시점에 주목한다. 제일령이 검성을 장악하는 시기에 검왕은 소림사를 멸문시켰다. 두 사건이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그들은 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 목적은 하나다.

얼핏 보면 모순이다. 제일령은 무림연합을 이끌고 검왕을 공격한다. 검왕은 그동안 모인 마인세력을 규합하여 무림연합과 싸운다. 여기까지는 분명히 적대적이다.

그런데 제일령과 검왕이 사전에 이리 움직이기로 밀약을 맺었다면 어떨까?

두 사람의 목적이 무엇인가?

‘혈천성, 검왕 대 검성, 무림연합. 이건 공멸(共滅)인데. 무림 공멸, 무림이 사라지는 것을 원한 것인가.’

회회문사는 그제야 혈천성주가 왜 ‘미친놈’을 연발했는지 이유를 알았다.

혈천성주는 자신보다 많은 정보를 독점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검왕이 소림사를 멸문시켰다는 보고를 들었을 뿐인데, 여기까지 단숨에 생각해 냈다.

혈천성주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그 미지의 싸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그곳에서 살아남는 자가 무림 승자가 된다.

회회문사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혈천성주가 원하는 답을 말했다.

“싸움의 시기와 장소, 싸움방법에 대해서 조율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검왕과 십마가 무림연합과 싸울 것이고, 우리는 방자(幇者) 역할을 맡을 겁니다.”

“그리할 수 있나?”

“그렇게 만들어야지요.”

“후후후! 그럼 그림을 그려봐. 잘 그려야 해. 물감이 조금만 달라져도 쪽박 차는 그림일 테니.”

“알겠습니다. 잘 그리겠습니다.”

회회문사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예감했다.

‘혈루마옥은 어찌한단 말인가.’

그는 검왕이 왜 혈루마옥을 제쳐 두고 이런 승부를 벌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해를 숙제로 남겨둔 채 그리는 그림이 완전할 리 없다.

혈천성주는 미지의 싸움에서 살아남더라도 혈루마옥과 싸워야 한다.

이리 하나 저리 하나 무림공멸이다.

무림의 역사가 혈루마옥으로 집약된다. 한 마디로 검왕이 하는 일은 혈루마옥의 수족이나 할 만한 일이다.

이 일을 검성주 제이령이 한다면 모르겠는데, 검왕이…….

회회문사는 굳어진 표정을 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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