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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四章 불파(佛破) (5)
슈웃! 텅!
검왕이 마지막 백팔나한진에 구멍을 냈다. 그리고 자신도 반탄력(反彈力)에 휘말려 뒤로 훌훌 날아가 떨어졌다.
십마가 마지막 힘을 다해서 뻥 뚫린 구멍 사이로 뛰어들었다.
검왕이 파괴한 것은 백팔나한진이다. 백팔나한진이 흩어지면 십팔나한진이 남는다. 부서진 십팔나한진은 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멀쩡한 십팔나한진은 참으로 어렵다.
검왕이 구멍을 뚫어 놨을 때, 여세를 몰아서 한 번에 해치워야 한다.
쒜에에엑!
그들은 바람처럼 날아들었고, 손속에 일점 사정도 담지 않은 채 살공을 퍼부었다.
“큭!”
“커억!”
소림 무승들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그들을 영도해줄 사람이 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죽고 없다. 그들에게 진형을 지시해줄 사람은 검왕에게 타격을 안겨준 채 절명했다.
소림 무승들은 몸에 익은 대로 진형을 휘돌렸지만…… 이미 구멍이 뻥 뚫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변형을 취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일 대 일, 무너진 진형 속에서 십마와 소림 무승은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을 벌였다.
천 년 소림사가 피에 잠겼다.
정말로 많은 승려들이 목숨을 잃었다. 거의 오백여 명에 이르는 무승들이 혈겁을 피하지 못했다.
소림사는 지옥이 되었다.
십마는 소림사를 지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들은 늘 소림사 같은 정도문파라는 것들을 피바다로 만들고 싶어 했다. 정도 무인들을 길에서 만나면 시비를 걸었고, 싸움이 벌어지면 불문곡직 죽였다.
그들은 오랜만에 마음껏 정도 무인을 죽였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소림사를 멸문시키는 것이 꿈이기는 했는데, 정작 멸문을 일으키고 보니 너무 참혹하다.
“다 끝났나?”
백화요녀가 중얼거렸다.
“제길! 이놈의 철조…….”
십조잔괴가 부러진 철조를 뽑아서 내던졌다.
철조 열 개 중에서 무려 여섯 개가 부러졌다. 남은 네 개도 이가 많이 빠졌다.
흑포사추의 흑포도 걸레가 되었다.
그의 흑포는 첫 번째 공격대상이 된다. 흑포를 걷어내야만 그를 공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림 무승뿐만이 아니라 누구든 흑포를 찢어내기에 혈안이 된다.
그래서 흑포는 잘 찢어지지 않는 교룡피(蛟龍皮)로 만들었는데…… 그게 걸레가 되었다.
백팔나한진만큼은 아니어도 십팔나한진 역시 위맹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담벼락이 말했다.
그는 은신해 있지 않다. 담벼락 너머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비형은잠이 회한 어린 음성으로 말한다.
“검왕…… 바른 선택이었나?”
검왕에게 묻는 말이다.
검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피바다 속에 앉아서 운기조식을 취하는 중이다.
스읏!
흑포사추가 손에 진기를 운집했다.
검왕을 죽일 생각이라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지금이 아니면 검왕을 죽이지 못한다. 검왕이 운기조식을 풀고 마주쳐와도 상관없다. 지금은 기력이 매우 쇠약해 있다.
차후, 이런 기회는 또 오지 않을 것이다.
툭!
백화요녀가 어깨로 흑포사추를 살짝 건드렸다.
관둬. 괜히 함부로 손썼다가 죽어.
지금이 아니면 죽일 수 없어.
죽일 자신은 있고?
두 사람은 눈으로 이야기를 했다.
결국 흑포사추가 진기를 풀었다.
검왕은 불가사의한 놈이다. 죽여도 죽여도 살아난다. 죽었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살아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죽었다가 살아나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죽으면 죽을수록 강해지는 자.
검왕을 죽였다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진실로 죽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손을 쓰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마저도 자신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검왕의 판단을 믿어야 할 때다. 소림사까지 멸문시킨 마당에.
소림사, 이까짓 것은 아무렇게나 되도 상관없다.
구파일방 전체가 괴멸되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림이 괴멸되어서는 안 된다. 무림은 그들의 놀이터이자 생명줄이다.
스읏!
검왕이 운기를 마치고 눈을 떴다.
이제는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사라졌다. 검왕이 운기를 마치고 눈을 떴다는 것은 움직일 만한 힘을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는 뜻일 테니까.
검왕이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이제 어디로 가누?”
십조잔괴가 물었다.
“무당(武當).”
검왕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즉시 말했다.
“흘흘! 무림 양대산맥이라는 소림과 무당을 모두 폐하는군. 검왕, 네 이름은 싫든 좋든 역사에 남겠어. 세상에서 가장 악랄했던 마두로 말이야.”
검왕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소림사에 불이 붙었다.
소림사가 불타는 것이 아니다. 소림사와는 약간 떨어진 곳에 불이 붙었다.
불길은 옆으로 번지지 않고 위로 치솟는다.
누군가가 일부러 불을 놓았다는 뜻이다.
“비형은잠 이놈, 오지랖도 넓군.”
“그 많은 시신을 다 태우려면 오늘은 따라붙지 못하겠는데?”
“저놈이 누구야. 비형은잠 아닌가. 하루나 이틀 거리는 쉽게 따라붙어. 우리가 무당에 도착하기 전에 저놈이 먼저 도착해 있을걸? 이건 내기해도 좋아.”
“클클! 그 내기에 누가 응하누.”
십마는 숭산(嵩山)에서 피어나는 불길을 망연히 쳐다봤다.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림사 폐사(廢寺)!
천 년 무림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발생했다.
검왕이 십마와 손을 합쳐서 소림사를 멸문시켰다는 소문이 날개를 달고 천 리 밖까지 번져나갔다.
“검왕이 미쳤구나.”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이게 웬 망나니짓이야?”
“그러게 말이야. 미쳐도 아주 더럽게 미쳤어요.”
사람들은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소림사가 혈겁에 휘감긴 일을 수군거렸다.
소림사는 무승만 있는 게 아니다. 무승(武僧)보다는 불승(佛僧)이 훨씬 많다.
소림사 승려라고 모두 무술에 능통한 것도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소림사를 무술의 장(場)으로 보지 않고 불문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소림사가 혈겁을 당했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불문의 성지를 그런 식으로 만들다니!
검왕은 단숨에 마인 중 마인이 되었다.
“그놈은 악마야!”
“그놈에 비하면 십마는 어린애지. 혈천성도 잡혀먹힐걸? 두고 봐.”
“검왕 그놈, 사람 죽일 때 온몸에 붉은 기운을 뿜어낸다던데. 사람 새끼가 아닌 것 같아.”
“그 말은 나도 들었는데 누가 본 사람이 있어야지.”
“허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소림사가 혈겁에 휘감긴 일은 무림인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를 경악시켰다.
* * *
“호호호! 호호호호!”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며 웃었다.
“당신 조카가 소림사를 멸문시켰다네? 세상에나. 적벽검문 문도가 소림사를 멸문시킬 줄 누가 알았나.”
누미가 누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누산은 오히려 웃었다. 그리고 되물었다.
“소림사가 불탔는가?”
“불? 불이야 났지. 소림 무승들을 말끔해 태워버렸다네?”
“그럼 됐지.”
“무슨 말이 그래?”
“소림사가 타지 않았다면 돈 들 일은 없잖아. 괜히 그거 복원한다 어쩐다 하면 돈 많이 들거든.”
“하! 호호호!”
누미가 웃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은 가벼운 농담처럼 편하지 못했다.
‘검왕이 소림사를? 왜?’
누미는 혼란스러웠다.
몇 번을 고쳐서 생각해도 검왕이 소림사를 멸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것보다도 검왕이 기련산에서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것이 찜찜하다.
혈루마옥 촌장도 살았나?
혈오는 촌장을 읽지 못한다. 촌장과 혈오가 맞닿아 있다면 벌써 감지했을 텐데…… 촌장이 어떤 이상 반응을 일으키거나 그녀 앞에 나타났어야 하는데…….
불길하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검왕이 자신들을 죽이고자 달려든다면 그건 이해하겠다. 화천을 죽이겠다거나, 그녀와 손잡은 누산을 죽인다거나, 혈루마옥 고수들을 공격한다면 이해하겠다.
소림사라니?
누미는 검왕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감했다.
누산은 다른 의미에서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하필이면 소림사부터…….’
소림사는 천 년 불문의 성지다. 소림사에서 악승이 나와도 이해를 하는 편이다. 본래 소림사는 그렇지 않은데 인간 말종 하나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만큼 소림사에 대해서는 이해를 해주고 넘어간다.
검왕이 소림사를 무너트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로써 검왕은 만대까지 마왕(魔王)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할 것이다. 차후, 그가 어떤 일을 해도.
검왕이 예전의 검왕처럼 만인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천번지복(天飜地覆),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히는 천하대변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회복하지 못한다.
헌데 검왕에게는 그럴 만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검왕이 혈루마옥을 제지하면 어떨까? 허면 그만한 일이 되지 않을까?
아니다. 안 된다. 혈루마옥은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된다. 혈루마옥을 제거할 때는 조용히, 은밀히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가운데 혼자서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
혈루마옥이 멸문해도 세상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검왕은 영원히 마인이 되는 것이다.
검왕이 마인이 되면 적벽검문도 마문이 된다. 혈루마옥과 싸우다가 산화한 모든 형제들이 마두가 된다. 적벽검문을 향해서는 오줌도 싸지 않으리라.
적벽검문은 영원히 무너졌다.
소림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아니, 일어선다. 검왕이 소림사를 뿌리째 뽑아놓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소림 방장을 알고 있는데…… 매우 현명한 불승이다. 반드시 소림사가 다시 일어설 만한 대책을 만들어 놨을 게다.
소림사는 재건된다.
적벽검문은 일어서지 못한다. 천하제일의 거부가 있고, 소림사를 무너트린 무공이 있건만…… 그래도 무림은 적벽검문이 일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게다.
누산은 두 다리를 잃은 기분이었다.
검왕이 하는 일은 이해하지만…… 마음속에서 분기가 치미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하필이면 소림사부터…….’
‘이놈…… 무슨 수작이냐!’
화천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그는 검왕을 잘 모른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누미? 말할 것도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
검왕은 발걸음 하나도 가볍게 옮기지 않는다. 그가 어떤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검왕이 뜬금없이 소림사를 멸했다.
여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검왕이 소림사를 멸문시킨 것과 혈루마옥을 공격하는 것은 상통한다. 소림사를 멸문시킨 행동이 혈루마옥에 대한 공격이다.
화천은 혈루마옥과 소림사와의 관계를 생각해봤다.
아무런 연관이 없다.
솔직히 혈루마옥 입장에서는 소림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런 정도는 단숨에 무너트릴 수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소림사보다는 적벽검문이 훨씬 강했다.
적벽검문, 유지자문까지 멸문시킨 혈루마옥이다.
소림사…… 지나가는 길에 멸문시킬 계획이었던 곳.
검왕이 왜 소림사를 멸문시켰을까? 그것이 혈루마옥을 공격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반드시 관계가 있어. 그게 뭔가!’
이 물음에 해답을 줄 사람이 지척에 있다. 누산이라면 뭐든 말해줄 수 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렁이가 쉽게 토설할 리는 만무하다.
“휴우!”
화천은 답답한 심기를 이기지 못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검왕이 소림사를 멸문시킨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