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68화 (168/225)

# 168

第三十四章 불파(佛破) (3)

“방장님!”

“방장님! 방장님!”

억울함, 원통함, 분노가 하늘을 울린다.

소림 무승들의 눈에 피눈물이 흐른다. 꽉 잡은 목봉이며 계도며, 장창에서 살기가 번뜩인다.

소림승들은 이제 불문도가 아니다. 그들은 오직 살의밖에 남지 않았다.

저놈! 저놈을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이리라!

호법원주는 죽을 수 있다. 장경각주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림방장만큼은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 방장이 목숨을 잃는 것은 소림이 패망하는 것과 같다.

헌데 소림 방장이 목숨을 잃었다.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집힐 일이다. 무림의 태산북두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한때는 정도의 별이었던 검왕이 마왕으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검왕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스슷! 스스스슷!

소림 무승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사불란하게 검왕을 포위했다.

검왕은 장경각주와 대치 중이다.

원래는 장경각주도 죽었어야 하나, 소림방장의 최후 일격이 매우 주효했다.

검왕은 상처를 입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꿋꿋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깊은 내상을 입었다.

그는 입으로 피를 토해냈다. 내상이 얼마나 깊은 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각주! 용서를!”

누군가가 쩌렁 고함을 내질렀다.

쒜에에엑!

허공에서 칼바람이 일어난다. 검왕을 향해서 계도를 내리찍는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니면 결코 펼치지 말라는 죽음의 도법 파옥멸혼도(破獄滅魂刀)가 펼쳐졌다.

검왕은 허공에 드리워진 칼의 물결을 쳐다봤다.

소림 무승이 전개한 파옥멸혼도는 미흡하다. 절정에 이른 도법이 아니기 때문에 허점이 많다. 장경각주 같은 사람이 펼치면 필살 초식이 되겠지만…….

“음!”

검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소림무승의 도법이 미흡해서가 아니다. 어차피 어떤 무공을 펼치든 검왕을 상대할 수는 없다.

소림 무승은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들었다.

그는 죽는다. 파옥멸호도법은 파해된다. 어쩌면, 아니 실제로 검왕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소림 무승이 달려든 것은…… 방장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방장은 소림 무승들의 의기만 높여준 것이 아니다. 방장은 검왕과 싸울 수 있는 실질적인 길을 열어주었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상처를 입혀라!

한 명, 두 명…… 그냥 죽지 마라. 죽더라도 상처를 입히고 죽어라. 그래야 남은 사람들이 산다.

번쩍!

혈검이 번개처럼 번뜩였다.

검은 보이지 않는 붉은빛만 보였다. 순식간에 핏빛이 피어났다가 사라졌다.

“컥!”

검왕을 향해서 달려들던 무승이 격한 신음을 쏟아냈다.

무승은 아무것도 베지 못했다. 검왕의 옷자락조차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가 들고 있던 계도가 반 토막으로 갈라져서 땅 위로 떨어졌다. 계도를 베고 지나간 검이 가슴을 아주 깊게 파고들었다. 가슴이 열리면서 핏물이 폭죽처럼 솟구쳤다.

허나 소림 무승은 헛된 죽음을 하지 않았다.

검왕은 진기를 사용했다. 계도를 잘라내고, 이어서 가슴까지 베는 초식을 번개처럼 해냈다. 진기를 최대한, 혹은 어느 정도까지는 집중해서 사용했다는 증거다.

이런 죽음이 연이어 벌어지면 진기가 급속히 저하된다.

검왕이 마르지 않는 샘을 지녔다고 해도 반드시 지치게 되어있다.

느려질 것이다. 약해질 것이다. 빈틈이 많아질 것이다. 혼자서 소림을 멸할 수는 없다.

“각주님! 죄송!”

소림 금강승들 중에서 네 명이 일제히 목봉을 쳐왔다.

동서남북 네 곳에서, 천왕압탁(天王壓托)의 초식으로 일제히 짓눌러왔다.

소림 금강승 역시 목숨을 도외시한다.

우리 네 명도 일시에 베어라. 네 명을 베는 만큼 진기도 강하게 쏟아내야 할 것이다. 방금 전에 쓰러진 소림 무승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이니 알아서 대처해라.

검왕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쒜에에에엑!

금강승들이 원하는 대로 검왕은 진기가 충실하게 담긴 검초를 쏘아냈다.

가가가각!

쇠와 쇠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하늘을 가득 메우던 목봉 그림자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하늘이 뻥 뚫렸다. 동그랗게 원을 그리면서.

퍽퍽퍽퍽!

사람을 베는 소리는 한 호흡 뒤에 울렸다.

금강승 네 명이 썩은 짚단처럼 무너졌다.

검왕은 일 호흡에 금강승 네 명을 벴다. 그야말로 쾌중쾌(快中快), 중중중(重中重)이다. 그리고 이런 검은 검에 진기를 전력 집중시켰을 때나 표현된다.

“아미타불!”

장경각주가 불호를 읊으며 계도를 쳐냈다.

그는 제자들에게 싸움을 양보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지금 싸운다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래도 힘껏 도를 쳐낸다.

파앗!

한순간, 온 세상에 하얀 도광이 일렁거렸다.

백광도법(白光刀法)이다. 도신(刀身)과 태양의 빛을 이용하여 상대의 시야를 차단하는 도법이다.

모든 무인들이 해를 이용할 줄 안다.

종종 이런 임기응변이 의외의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똥개도 제집에서 싸우면 한 수 먹고 들어간다고 했다. 이렇듯 무인에게는 지리(地理)를 이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해를 이용하는 것 또한 지리다.

백광도법은 임기응변 차원에서 벗어나 언제 어느 각도로 칼을 쳐내든 햇볕을 이용하게 구상되었다.

번쩍! 번쩍! 번쩍!

장경각주는 일도를 펼쳐냈을 뿐인데, 온 세상에 백광이 번뜩인다.

그 사이를 가느다란 혈선(血線)이 흐른다. 백광이 너무 눈부셔서 혈선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백광과 백광 사이를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간다.

퍼억! 퍽!

둔탁한 소리가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터졌다.

장경각주의 몸에서 치솟는 핏줄기가 하얀 백광을 말끔하게 지워버렸다.

온 세상이 온전하게 보인다.

장경각주가 풀썩 무릎을 꿇었다. 각주의 상반신은 절반이나 베어져 있어서 이미 즉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검왕은? 그는 세 걸음 정도 물러서 있다.

방장의 일격을 받고도 두 걸음밖에 물러서지 않았는데…… 이는 장경각주의 공격이 훨씬 거세서가 아니라 검왕이 입고 있는 내상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방장보다 약한 공격을 받고도 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장경각주는 마지막 순간에 쌍수합장발산력을 쏟아냈다. 백광 때문에 눈부셔서 그 광경을 보지 못했지만…… 검왕이 분명 어떤 타격을 입고 물러섰다.

“타앗!”

“타아앗!”

금강승 중 두 명이 힘차게 도약했다.

방장과 소림이불이 죽었다.

그들의 죽음은 모두를 죽음으로 이끄는 기폭제가 되었다. 한순간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지워버리는 역할을 했다. 아니, 죽는다는 생각 자체를 지워버렸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검왕을 죽여라!

쒜에엑! 가각! 퍽! 퍽!

예정했던 죽음이 일어났다.

금강승 두 명은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고, 그들의 바람대로 죽었다. 또 그들의 바람대로 검왕은 최선을 다해서 검을 쳐냈다. 목봉이 일시에 잘렸고, 그 일검에 자신들 또한 절명한다.

툭! 퍽!

땅바닥에 나뒹구는 시신이 웃는다.

검왕도 비틀거렸다.

금강승들이 어떤 타격을 가해서 비틀거린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진기 부족 때문에 휘청거린 것이다.

그에게는 불길한 징조요, 소림승들에게는 희망이다.

“타아앗!”

맑고 맹랑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검왕은 일순 검을 쳐내지 못하고 망설였다.

지금 막 공격을 가해오는 자는…… 아직 머리에 계인도 박히지 않은 사미승이다.

어린애, 어린애를 죽여야 하나.

“죽엇!”

사미승은 제법 호기롭게 창을 찔러왔다.

툭!

검왕은 혈검으로 장창을 툭 쳐냈다. 아니, 싱겁게 쳐내는가 싶더니 이내 검세가 돌변해서 세차게 휘둘렀다.

쒜엑! 퍽!

사미승이 그의 검세를 받아낼 리 없다.

사미승은 한 칼에 요절했다.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두 눈 부릅뜬 채 쓰러졌다.

“저 악귀!”

“저런 놈을 검성에서 거뒀다니!”

“흥! 적벽검문이라고! 후인을 저따위로 두니 멸문을 당하지.”

“차라리 멸문당한 게 낫지 뭐. 저놈이 저렇게 악귀가 된 걸 보면 분통 터져서 죽지도 못할걸?”

“모르지 또. 그놈들도 저놈 같을지 누가 알아.”

소림승들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승려가 아니다. 불문의 가르침은 잊었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은 오직 무공, 그리고 복수다.

이래서 어떤 무인도 단신으로는 소림사 같은 대문파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다.

도덕적 문제도 있다.

검왕이 베어낸 사미승처럼 차마 베지 못할 사람들이 있다.

무당파, 화산파, 아미파 같은 대문파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만큼, 천륜을 어긴 대마인도 모두를 죽이기 위해서는 두 번, 세 번 숙고해야 한다.

검왕은 어린 사미승까지 죽였다. 그때,

“흐흐흐! 정말 일을 벌이는군. 그래도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일을 벌이고 있어. 저놈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 아닌가. 부수기 시작해도 하필 소림사부터 부숴?”

소림사 담장 위에서 괴인이 열 손가락을 달그락거리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에는 철조(鐵爪)가 끼워져 있었다. 손톱이 길게 자란 사람처럼.

“십조잔괴!”

소림 무승들 중에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고 경악했다.

“후후후! 기왕 일을 벌인다면…… 어디까지 가는지는 지켜봐야 할 것 아닌가. 불길해. 아무래도 끝은 죽음일 것 같은데…… 하는 데까지 해보지. 후후!”

검왕이 들어왔던 산문을 통해서 흑포를 입은 사내가 들어섰다.

그는 산문을 들어서면서 허리에 두른 요대(腰帶)를 풀었다. 그러자 기다란 흑편(黑鞭)이 나왔다.

“흑포사추까지!”

소림 무승들이 경악했다.

검왕 한 사람만 상대하기에도 벅찬 판인데 십마 중에서 두 명이 나타났다.

아니, 세 명이다.

“저 동생, 마음에 들었다니까. 어쩐지 내 인생이 짜릿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더라고. 호호호!”

분홍빛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흑포사추의 뒤를 쫓아서 산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소림승들의 주검을 보았지만 눈웃음을 잃지 않는다. 분홍빛 면사로 얼굴을 가렸지만 오똑한 코와 방그르 짓는 미소가 은밀하게 엿보인다.

십마 중에 한 명인 백화요녀다.

십마의 무공은 일파 장문인을 능가한다는 소문이다.

저들이 소림사를 돕기 위해서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고…… 검왕을 돕기 위해서 나타났다.

소림사 최대 위기다.

어쩌면 열반에 드신 방장은 이런 사태까지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오늘 소림사는 멸문한다. 어떤 수를 써도 멸문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파불을 시켰고, 만일에 대비해서 무공비서들을 모두 옮긴 것이다.

방장은 자신의 죽음으로 소림의 운명을 말했다.

검왕에 이어서 십마 중 세 명…… 이런 초고수들을 단순히 인해전술로 이길 수 있을까?

소림 무승들의 얼굴에 암운이 깃들었다.

헌데, 엎친 데 덮친 격…… 담장 어디에선가 음충맞은 웃음소리와 함께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흐흐흐! 여기저기 돌아다닐 데는 다 돌아다녔고, 아무래도 네놈 행동이 수상쩍어서 말이지. 그래, 뒤쫓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말이지. 흐흐! 보아하니 오늘 소림사를 떡으로 만들 심산인 모양인데, 허면 우리도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음성만 들린다.

십마 중에 은신술에 뛰어난 자가 있다. 오죽하면 그자의 실체를 본 자가 없다는 말까지 흘러다닌다.

비형은잠!

십마 중에서 네 명이 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돼.’

‘혈겁…… 피할 수 없는 것이었나.’

소림 무승들은 방장의 죽음으로 피어올랐던 의기가 꺾였다.

검왕의 진기만 소모시키면, 그러면, 어쩌면…… 쌀 한 톨 정도의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놓아버렸다. 희망은 없다.

“아미타불!”

소림(少林) 말사(末寺) 청련사(靑蓮寺) 주지가 불호를 외우며 땅에 떨어진 계도를 주워들었다.

남은 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여기저기서 불호가 외워졌다. 그리고 조용히 병장기들이 곧추세워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