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66화 (166/225)

# 166

第三十四章 불파(佛破) (1)

“뉘신지?”

혈기방장할 나이의 승려가 정중하게 합장하며 물었다.

휘루룽!

그의 전신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났다. 더불어서 그의 안색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손도 목도…… 겉으로 드러난 피부 모두가 붉은색이다.

“혈영마공!”

합장을 하던 승려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이제 갓 스물을 넘었음 직한 소승(小僧)이 혈영마공을 알아볼 리 없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핏물을 뒤집어쓴 듯 붉게 변하니 혈영마공을 떠올린 것뿐이다.

“잘 가라!”

그는 짧게 말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을 쳐냈다.

쒜에엑! 퍼억!

검풍이 가라앉기도 전에 피 보라가 먼저 튀었다.

산문을 지키던 소승은 속절없이 목숨을 잃었다. 누구인지도 모를 자가 느닷없이 쳐낸 일검에 변변히 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목숨을 내놓았다.

그는 십마를 능가하는 고수다. 소승이 상대할 수 없다.

저벅! 저벅!

그는 피 묻은 검을 들고 산문 안으로 들어섰다.

뎅뎅뎅뎅뎅뎅!

쥐 죽은 듯이 고요하던 산사(山寺)에 요란한 경종이 울렸다.

“시주! 걸음을 멈추시오!”

우렁찬 사자후(獅子吼)와 함께 장봉을 든 승려들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는 개의치 않고 걸었다.

소림사의 저항은 맹렬할 것이다. 인원만 해도 적벽검문에 비하면 열 배가 넘으니……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시신이 산이 되어 쌓일 것이다.

‘문답무용(問答無用)!’

휘류류류륭!

검을 타고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나갔다.

혈영마공은 환각 작용을 불러온다. 상대로 하여금 사물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붉은 안개가 끼었을 때처럼 흐릿하고 모호하게 보인다.

쒜엑! 쒜에에엑!

목봉이 무거운 경기를 담고 달려든다.

그는 날아오는 목봉을 정확하게 봤다. 혈영마공은 상대의 눈을 가리고 이쪽의 눈은 날카롭게 만든다. 그리고 순식간에 일어난 이 한 겹의 시야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쒜에에엑! 부왁! 퍼퍼퍼퍽!

그를 공격했던 무승(武僧)들이 무참하게 쓰러졌다.

십팔나한(十八羅漢)이 베어졌다.

검왕, 피에 미친 검왕은 그들을 단 반 시진 만에 쓰러트렸다.

십팔나한과 검왕의 무공 차이는 천지 차이,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다.

십팔나한이 전개한 치밀한 연수는 그들보다 배는 빠른 검수(劍手)를 견디지 못했다.

삼십육 금강동인(金剛銅人)이 나섰다.

그들은 소림 칠십이종 절예 중에서 두 가지 이상을 완벽하게 수련한 무승 중의 무승들이다.

슈웃! 퍼억!

손길 한 번에 동인 한 조각이 잘려나간다.

검왕의 빠름은 삼십육 금강동인을 훨씬 능가했다. 더군다나 검왕은 금강동인의 움직임을 환히 꿰뚫고 있다. 마치 소림 절예를 모두 알고 있다는 듯 아주 편안하게 싸운다.

그러나 손속은 아주 잔인하다.

쉣! 퍼억! 부우욱!

검이 살을 파고 들어가서 순식간에 반대편까지 그어진다.

검을 맞은 사람은 살 수 없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때문에 바로 절명한다. 운이 좋다면 비명 한두 마디쯤은 토해낼 수 있는데, 삼십육 금강동인 정도 되면 그나마 자존심이 있어서 비명도 토하지 않고 쓰러진다.

검과 피만 난무한다.

삼십육 금강동인은 계도(戒刀)를 들었다. 형태는 다르지만 무림의 대도(大刀)만큼이나 묵직하다. 날카롭다. 그러나 그들의 칼날은 검풍 앞에 가려진다.

쒜에엑! 퍽!

검이 바람을 가르고, 동인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다.

“아미타불!”

“극강(極强)입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불호는 외우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

소림사에는 많은 무승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피에 미친 검왕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다.

검왕의 무공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은 검왕이 빠르다는 것만 본다. 너무 빨라서 무승들이 상대하지 못한다. 무승들의 무공도 놀랍지만 검왕이 한 수 위다.

딱 그 정도만 본다.

무공이 강한 사람들은 혈영마공의 정수를 본다.

혈영마공이 놀랍다. 소림사의 모든 절학을 무력화시킨다. 절학 대 절학의 싸움에서 소림사의 절예가 뒤처진다. 아니다. 소림사의 절예는 뛰어나다. 다만 검왕만큼 정수를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한 기재가 없었던 탓이다.

통탄스럽다. 무림은 왜 저런 기재를 놓쳤나. 검성은 왜 저런 무인을 내쫓았나.

검왕이 소림사에 검을 들이댄 이상, 소림사도 응해야 한다.

이것이 극강의 무공을 수련한 무승들이 보는 검왕이다.

소림사에서 몇몇 사람, 단지 몇몇 사람만이 예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본다.

검왕의 검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류가 피어난다.

무기(無氣)다.

검이 공기를 가를 때, 일종의 진공상태가 벌어진다. 그리고 공기가 진공을 다시 메운다. 그러는 동안에 한기와 열기가 교차하고, 아지랑이 같은 무기가 피어난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무기(武氣)라고도 한다.

무공으로 이룰 수 있는 최상의 경지, 궁극의 경지이기 때문에 무(武) 자를 붙인다.

“모두 물려라.”

소림 방장이 말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호법원주(護法院主), 의견을 말씀해 보시게.”

“제자들을 물렸으면 합니다.”

호법원주는 망설임 없이 방장의 뜻을 옹호했다.

“장경각주(藏經閣主), 의견을 말씀해 보시게.”

“같습니다. 오늘 소림사는 아주 큰 겁화(劫火)에 휘말리겠군요.”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자 다른 사람들은 눈만 크게 뜬 채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아미타불…….”

간신히 한 마디, 불호가 새어 나왔다.

호법원주와 장경각주는 소림이불(少林二佛)이라고 불린다.

자타공인 방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무인이라는 평가다.

그 두 사람이 제자를 물리자고 말한다. 차라리 소림사가 치욕을 겪는 게 낫다고 말한다.

검왕이 이토록 강했던가.

방장이 다시 말했다.

“제자들을 물리게.”

데엥! 데엥! 데엥!

매우 느리고 여운이 긴 종소리가 울렸다.

검왕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던 무승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서로를 쳐다봤다.

소림사에서 이런 종이 울리다니!

허나 명은 확고한 것, 종소리는 이미 울린 것, 무승들은 병기를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멀리서 방장과 소림이불이 걸어 내려온다.

다른 스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방장과 함께 있었는데, 모두 사라지고 없다.

“거처로 돌아가라.”

장경각주가 말했다.

“거처로 돌아가라.”

삼 보를 걸은 후, 호법원주가 말했다.

다시 삼 보를 걸은 후 장경각주가 돌아가라 말했고, 또 삼 보를 걸은 후에는 호법원주가 돌아가라고 말한다.

제자들을 모두 물리고 있다.

검왕은 피 묻은 검을 들고 방장을 쳐다봤다.

그동안 삼십육 동인 중에서 스물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십팔나한과 함께 누워있다.

열다섯 금강동인은 여전히 계도를 든 채 검왕을 노려본다.

그들도 물러서라는 종소리를 들었다. 방장과 소림이불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제자들을 물리는 것도 봤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이 없다. 도반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는데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물러서면 방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런 경우를 만들 수는 없다.

“거처로 돌아가라.”

장경각주가 명했다.

그래도 십오 금강동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미타불!”

방장도, 장경각주도, 호법원주도 이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가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들 세 노승이 검왕 앞에 섰다.

“시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소림사 멸살.”

“꼭 다 죽여야겠소?”

“그러려고 합니다.”

“시주라면 가능할 것이오. 하시겠소?”

스읏!

검왕은 망설임 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열반하시기 바랍니다.”

“빈승 걱정은 마시고.”

검왕이 소림사 방장에게 검을 겨눴다.

무림사에서 소림 방장이 검을 마주한 적이 몇 번이나 되던가. 소림사에 침입한 사람은 많아도 목적을 이룬 사람은 없다. 모두 척살되었다.

오늘은 정반대 상황이 이어진다.

쒜에엑! 쒜에엑!

소림방장은 염주를 병기 삼아 휘둘렀다.

방장의 손끝에서, 염주에서 백보신권(百步神拳)이 묻어나온다. 금강추(金剛墜)가 선보인다. 적각퇴(赤脚腿)도 드러난다. 소림 절예들이 일수마다 깃들여진다.

탕탕탕! 탕탕!

검왕은 비교적 가볍게 검을 쓴다.

이번에 그가 구사하는 무공은 혈영마공이 아니다. 얼굴에서도 몸에서도 붉은 기운이 사라졌다.

그는 단지 검으로 소림방장의 공격을 차단할 뿐이다.

아니다. 단 두 사람, 장경각주와 호법원주는 검왕의 검에서 끊임없이 피어나는 아지랑이를 봤다.

아지랑이가 점점 짙어진다.

“아미타불! 연수를 용서하시게.”

장경각주가 방장의 싸움판에 끼어들었다.

소림 방장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다.

지켜보던 금강동인들이 깜짝 놀라서 ‘앗!’하고 경악성을 쏟아낼 정도였으니까.

그들이 보기에 소림 방장은 위태롭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두 사람의 싸움은 팽팽하다. 누구도 기선을 잡아채지 못했다. 장경각주가 싸움에 가세할 명분도 없고, 시기도 아닌 것 같다. 헌데,

“아미타불!”

우렁찬 불호와 함께 호법원주도 싸움에 가세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두 사람이 싸움에 끼어들었는데도 소림 방장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세 사람이 연수를 펼치고 있지만 뚜렷하게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파(佛破)한다.”

“뭐라고요! 안 됩니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방장님의 유언이시다.”

“유, 유언? 지금 유언이라고…….”

승려들이 밖을 쳐다봤다.

밖에서는 아직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소림방장과 장경각주, 호법원주가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시킨다. 뚜렷하게 승기를 잡은 것도 아니지만 패할 것 같지도 않다. 헌데 유언이라니!

“불파다. 즉시 물러나라.”

“그럴 수 없습니다.”

“이해한다. 남을 사람은 남아라. 하지만 남아봤자 개죽음이다. 불파했다가 기회를 노려라.”

“스님께서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명을 따르실 생각이십니까? 불파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불파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게 가당치 않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방장님의 유언이다. 소림사가 이대로 맥이 끊기기를 바라는 게냐! 휴우! 생각 나름이겠지. 이리해도 좋고 저리해도 좋다.”

많은 사람이 불파의 명을 쫓아 소림사를 떠났다.

많은 사람이 불파의 명을 거역하고 소림사에 남았다.

남은 사람들은 장경각주와 호법원주가 거처로 돌아가라고 한 의미를 안다. 그래서 밖으로 나온다. 어차피 불파의 명을 어겼으니,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고 해도 기꺼이 감수한다. 무너지는 소림사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다.

남은 사람들의 숫자는 절반이 넘었다.

쒜에에엣! 파파파파팟!

소림방장이 염주를 크게 휘두른 후, 뒤로 물러섰다.

검왕은 쫓지 않았다.

방장이 말했다.

“이제부터 정말 싸워야겠네. 불파를 받아줘서 고맙네.”

“알겠습니다.”

검왕은 검을 들어 올렸다.

츠츠츠츠츠츠츳!

이번에는 혈영마공이 일어난다. 전신이 빨갛게 물든다. 붉은 검이 소림 방장을 겨눈다.

소림 방장은 고요한 눈으로 붉은 검을 쳐다봤다. 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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