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第三十三章 종패(終牌) (5)
시작은 관도(官道)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무인 세 명이 길에서 파는 국수를 사 먹고 있다.
길가 국수를 파는 곳에 의자나 탁자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주인이 미리 말아놓은 국수에 뜨거운 멸치 국물을 부어주면 서서 후루룩 몇 번 들이켜면 끝이다.
없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요깃거리이지만 있는 사람에게는 가벼운 간식에 불과하다.
무인들은 출출한지 웃고 떠들면서 국수를 먹었다.
“내 황룡도하(黃龍渡河) 어때? 매끄럽지 않아?”
“시작 부분은 좋은데 끝이 좀 달려.”
“아! 그놈의 내공이 달려서 말이야. 진기를 끝까지 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하하! 열심히 하잖아. 곧 될 거야.”
그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한 여인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검을 꽤 많이 썼군.”
여인은 사내들이 허리에 매달고 있는 검을 쳐다봤다.
검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청강장검이다. 자루는 헝겊으로 둘둘 감아져 있고, 헝겊은 땀에 절고 해어져서 고된 수련의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었다.
“아, 네. 대략 이놈과 같이 산 게 삼 년 정도 되는데, 손에 딱 맞아요. 전혀 어색하지도 않고. 강호로 나갈 때는 이놈과 같이 나가려고요. 하하!”
“검은 살상도구인데…….”
여인은 국숫집 주인을 보면서 말했다.
“살상도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하하호호 깔깔거리기나 하고. 도대체 어떤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이렇죠? 살상무기를 지녔으면 긴장해야지.”
사내들에게 말하는 게 아니다. 국숫집 주인에게 말하고 있다.
국숫집 주인은 싸움을 눈치챘다. 지금 고의로 사내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지 않나.
“여, 여협(女俠)! 도대체 뉘시기에 그런 말씀을…….”
사내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누가 봐도 여인 역시 무림인이다. 풍기는 기도로 보아서는 국수를 사 먹는 세 명 정도는 눈빛만으로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수다.
고수가 시비를 건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수가 왜 하찮은, 이제 갓 입문한 것이나 다름없는 초급 무인들에게 시비를 걸겠는가.
이런 경우는 둘 중에 하나, 어떤 일 때문에 배알이 뒤틀렸거나 아니면 그들 관심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사문에 경종을 울리려고 문하인을 다그치는 게다.
여인은 어떤 쪽인가?
어느 쪽이든 간에 고수와 시비가 붙었으니 운이 썩 좋지 않은 날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 무인은 일제히 긴장했다.
“죽고 싶어?”
여인이 국숫집 주인에게 말했다.
국수를 말던 아낙은 동상이라도 된 듯 손길을 멈춘 채 급히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잘 들어.”
국숫집 아낙이 급히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기를 지니고 다니면 죽는다. 말해봐.”
“벼, 병기를 지니고 다니면 죽는다.”
“아주 처참하게.”
“아주 처참하게.”
“무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무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자들이 죽으면 지금 한 말을 동네방네 퍼트려. 내가 십 리 밖에 도착해서 내 귀로 이 소문을 듣지 못하면 다시 돌아와서 널 죽일 거야.”
“하악!”
국숫집 아낙이 급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품을 물었다.
여인이 세 사내를 돌아봤다.
“나 칠수선자라고 하는데, 들어봤어?”
“칠, 칠수!”
“칠수선자!”
세 무인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그들은 급히 여인의 손을 쳐다봤다. 손가락이 일곱 개뿐인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런 행동 역시 칠수선자의 금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그들은 칠수선자를 안다.
마군을 추종하는 오귀(五鬼) 중의 한 명으로 손속이 매우 악랄하다.
“서, 선자님. 저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사내가 어떻게든 싸움을 저지시켜보려고 안간힘을 다해 말했다.
“방금 말했잖아. 병기를 패용했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말씀…….”
“말이 안 되지. 하지만 이게 말이 되게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야.”
스릉!
칠수선자가 검을 뽑았다.
그녀는 원래 이토록 말을 오래 주고받지 않는다. 말보다는 검이 앞선다. 또한 그녀는 굳이 검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쓴다.
세 사내는 죽었어도 벌써 죽었을 목숨들이다.
그런데도 구구하게 말을 늘어놓고, 필요도 없는 검까지 뽑아드는 것은…… 소문이 가장 빨리, 퍼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널리 확산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황룡도하? 펼쳐봐. 넌 강을 건너고, 난 강을 건너는 황룡을 베고. 저기, 저 끝까지만 가봐.”
여인은 관도 반대편을 가리켰다.
순간, 사내의 얼굴에 희망이 맴돌았다.
그가 서 있는 자리에서 관도 저쪽까지는 겨우 삼 장 거리에 불과하다. 한순간에 몸을 날려서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고, 저 정도 거리라면 진기가 끊길 염려도 없다.
칠수선자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쉿!
사내는 예고도 없이 무작정 신형부터 날렸다.
일단 저쪽 끝에 도착하고 난 다음에 칠수선자에게 따질 것이다. 일단 뱉은 말은 책임지라고.
이곳에서 싸우면 안 된다. 칠수선자와의 싸움은 무조건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헌데,
슈각!
허공에 차디찬 한광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끄아아아아악!”
관도를 건너가던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두 다리가 싹뚝 잘려져 있다.
다리 두 개는 이쪽에 있고, 몸뚱이는 한 걸음쯤 앞서 나간 곳에 툭 떨어졌다.
“느려.”
칠수선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이런 악독한!”
“계집! 죽엇!”
남은 두 사내가 일제히 협공해왔다.
그들도 무공을 수련한 무인이다. 동문 사형제를 상대로 수십 번, 수백 번 고련을 거듭했다. 허나 상대는 칠수선자다.
? 쒜에엑!
또다시 한풍이 불었다.
이번에는 비명도 없다. 칠수선자가 두 사내의 머리부터 잘랐기 때문에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툭! 툭! 꾸웅! 꽈당!
머리가 먼저 땅바닥에 나뒹굴고, 몸뚱이가 뒤에 떨어진다.
“으으으!”
국숫집 아낙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혹시나 칠수선자의 검이 자신을 향할까 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했지?”
눈을 꾹 감고 있는 국숫집 아낙 귀에 나긋나긋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벼, 병기를 지니고 다니면 죽는다. 아주 처참하게. 무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아낙은 그녀가 말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말했다.
그런데 여인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는다. 사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아낙이 살그머니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죽은 자 셋뿐이다. 아무도 없다. 여인은 언제 갔는지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황룡도하를 펼치다가 두 다리가 잘린 사내는 죽지 않았었다. 다리만 잘렸을 뿐, 목숨은 남아있었다.
그도 죽었다. 심장에서 피를 철철 흘린다.
보나 마나 칠수선자라는 여자가 마지막 검을 찔러내고 떠난 것이다.
“으으으…….”
아낙은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지금 당장 움직여서 칠수선자가 일러준 대로 소문을 내야 하는데, 칠수선자가 십 리를 가기 전에 소문부터 내야 하는데…… 머릿속은 움직이라고 말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낙은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두 번째 사건도 관도에서 일어났다.
“잠깐.”
여인이 길 가는 무인을 불러세웠다.
무인이 성가신 듯 인상을 쓰면서 여인을 쳐다봤다. 하지만 곧 인상이 풀렸다. 여인은 인상을 쓰고 쳐다보기에는 너무 아름답게 생겼다. 풍기는 분위기도 좋고.
“왜 그러시오?”
무인의 말 속에는 호의가 가득 담겼다.
“칼이네?”
여인은 다짜고짜 반말을 하면서 무인의 허리에 채워진 칼을 쳐다봤다.
“하하하! 이거 우습게 보지 마시오. 스물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칼이니…… 큭!”
무인은 말을 하다말고 짧은 단말마를 내질렀다.
칠수선자의 검이 심장에 틀어박혔다.
칠수선자는 원래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딱히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할 말이 없기 때문에.
이 자, 길 가는 무인…… 난생처음 보는 무인인데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병기를 버려라. 필요 없는 말이다.
그거 버리지 않으면 죽어. 비웃음만 당한다.
그러니 가장 확실한 행동,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말을 한다.
“그 칼, 스물한 명으로 끝이네?”
“끄으윽!”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불신의 눈으로 여인을 쳐다보면서 쓰러졌다.
사내는 말하는 듯하다. 나를 왜 공격한 거지?
세 번째 죽음은 명문세가 정문에서 일어났다.
“누구…….”
“시끄럿!”
퍼억!
누구냐고 신분을 묻는 문지기에게 거대한 칼이 씌워졌다.
거대한 대도는 왼쪽 어깨를 파고들어서 오른쪽 가슴까지 일직선으로 쭉 그어졌다.
영혼까지도 멸살될 죽음이다.
“엇! 공격…….”
옆에서 같이 번을 서던 자가 급히 경종을 울리려고 했지만 그 역시 이상한 아픔을 느끼면서 말을 멈췄다.
가슴이 불 붙는 듯 화끈거린다.
그가 가슴을 내려다봤다.
눈앞에 한 사내가 서 있다. 그가 손을 뻗어서 자신의 가슴을 만지고 있다. 아니…… 그의 손이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가슴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끄…… 윽!”
문지기는 즉사했다.
한낱 문지기가 태황도마와 좌수비마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하북팽가다. 조심해야 할 자는 팽가주와 놈의 세 아들. 그 네 놈만 신경 쓰면 된다.”
“후후후! 이런 말 하면 뭣하지만…… 팽가주는 이 몸이 맡는다. 그러니 모두들 팽가주에게서는 손 떼.”
백살마창이 창을 꾹 쥐며 말했다.
“하하하! 알았다. 잘해봐.”
패황도마가 백살마창의 어깨를 툭 쳤다.
백살마창은 과거 팽가주에게 일패(一敗)를 한 전력이 있다. 물론 술에 잔뜩 만취되어 있어서 제대로 무공을 써보지 못한 상태라고 하지만.
술만 취하지 않았어도.
백살마창은 그때 일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다.
그놈이 백살마창이었던가. 진작 알았으면 살려서 보내지 않았을 터.
팽가주가 나중에 자신이 쓰러트린 자가 백살마창이라는 사실을 알고 한 말이다.
둘 사이에는 은원이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팽가주가 다소 유리하다.
“그럼 우린 졸개들이나 쓸어볼까? 어차피 오늘은 피 맛을 즐기려고 왔으니까.”
“그렇지. 간단하게 죽이는 건 재미없어.”
가장 잔인하게 죽인다. 한 문파를 쓰러트림으로써 다른 문파들에게 겁을 준다.
단순한 죽음으로는 곤란하다.
“예전에는 너 같은 건 안 죽였다만.”
“사, 살려주세요. 전 그저 마당이나 쓰는…… 컥!”
패황도마가 여든도 훨씬 넘어 보이는 노인을 베어냈다. 누가 봐도 하인이 분명한 자, 무공을 전혀 모르는 범인이 분명한 자인데도 일도양단했다.
노인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떨어진다.
마군과 그를 따르는 다섯 명의 수하들은 틀림없는 마인이다. 남들이 마인이라고 하고, 본인 스스로도 마인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마인이라고 하면 마인으로 알아듣는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무공을 모르는 자는 죽이지 않았다.
아녀자, 어린애도 죽이지 않는다.
무공을 아는 사람이 도전해 올 경우에는 여인일지라도 죽인다. 하지만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몸집이 단단한 사내라도 죽여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 모두 죽인다.
“너희는 오늘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게 죄다. 하필 이곳에 있었던 게 죽을 이유야.”
쒜에엑!
귀면사자가 내키지 않는 듯 불쾌하게 손속을 떨쳐냈다.
어린 소동이 그 손길을 맞고 나가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