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64화 (16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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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三章 종패(終牌) (4)

중원에는 검왕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아는 사람도 많다. 누가 검왕에 대해서 두어 마디만 하면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긴 머리, 두려울 정도로 묵직한 행동, 단단한 체격, 무엇보다도 섬광처럼 예리한 눈빛.

몇몇 모습만 열거하면 즉각 검왕이 떠오른다.

검왕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움직였다. 검왕을 아는 사람이라면 행동 족적을 확연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그가 소호로 가고 있다는 사실도 비밀이 아니다.

여기에 하나 더…… 소호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검왕의 목적지를 알게 된다.

검왕이 객잔으로 가고 있구나.

거기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쉬는 곳인데…… 검성 사람이 아니면 받아주지 않을 텐데…… 검왕은 예전에는 검성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은거했으니.

검왕을 아는 사람, 소호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서 검왕이 무엇을 원하는지 의중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령은 그중에 한 명이다.

검왕은 이령을 직접 부르지 않았다. 전갈을 보낸 적도 없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검성까지 전서구가 날아가는 데만도 보름은 훌쩍 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걸었다.

자신의 의중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목적지로 와줄 것이기에.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달려와 술잔을 기울였다.

그녀는 소호로 오면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 것이다. 검왕이 소호로 가는 이유를 짐작하고 있는데,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지 못하겠나.

검왕, 그리고 소호로 달려온 사람은 서로 간에 말이 필요 없었다.

검왕의 의중대로 움직이지 않으려면, 검왕의 의중이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소호로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그녀는 소호로 왔다.

그녀는 검왕을 이해한 것인가. 무림에 대한 야욕을 잊고 검왕의 뜻을 따른 것인가.

절대 아니다. 이령은 그럴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잠시 유보했을 뿐이다.

혈루마옥 촌장이 세상에 대한 야욕을 잠시 접어두었다. 그렇듯이 그녀도 어쩔 수 없는 환경이기에, 촌장조차도 움직일 수 없는 환경이기에 잠시 유보했을 뿐이다.

그녀가 검성을 차지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검성 성주가 된다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따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검성 성주로 하루만 지낼 수 있다면 목숨도 버릴 수 있다는 사람이 꽤 많다.

허나 그녀가 검성주에게 자진을 요구하면서까지 검성을 틀어쥔 것은 언제든 결심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촛불을 켰다가 불어서 끄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그 일은 이령이 한 것이 아니다. 검성주도 이령에게 겁박당해서 자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주고받은 말 뒤에는 혈루마옥이 있었다.

이령과 검성주가 말을 나눈 것이 아니라 촌장과 검성주가 말을 나눴던 것이다.

이번 결단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한 것이 없다. 상황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도록 강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소호까지 달려와서 술잔을 들었을 뿐이다.

그녀는 검왕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검왕은 이용의 대상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떤 때는 그의 사랑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짧은 회상에 불과하다. 미련이라고 할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과거일 뿐이다.

그가 그리워서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억류가 되려고 달려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성 성주라는 직위?

그런 것은 이령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다.

이령은 독한 술을 연거푸 들이켰고, 기어이 정신을 놓아버렸다. 검왕 앞에서 탁자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검왕은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봤다. 언제까지고.

쉬잇! 쉬이잇!

허공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날아 내렸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검왕은 그들의 말에도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고 이령만 쳐다봤다.

“작심하시고 오신 길입니다. 정신 놓으신 분에게 하실 일이라도 있으신지.”

검은 그림자들이 이령을 곁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들은 검왕은 경계했다. 검 자루에 손을 대고 언제든지 검을 뽑을 태세를 유지했다.

그들은 검왕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싸움이 벌어지면 검은 그림자들은 추풍낙엽처럼 날아가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령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가 눈동자 속에서 뿜어져 나온다. 활활 불타오른다.

검선부 이령 휘하 수족들이다.

검선부는 검성 소속이면서 검성 소속이 아니다.

검선부의 일령과 이령은, 그리고 삼령은 오직 검성주의 명령만 수행한다. 검성주로부터 밀명을 직접 전해 받고, 오직 그 일만 한다. 그 일을 행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모두 척결하며, 이에 대해 검성은 전폭적으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삼령 휘하의 수족들은 검성주의 수하들이 아니다.

삼령이 어느 누구를 수하로 부리는지는 검성주도 알지 못한다. 처음부터 그런 명령을 내렸다. 삼령에게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라고 말했다.

지원은 아끼지 않는데, 누구를 부리는지는 간여하지 않는다.

이것이 귀선부의 철칙이다.

그런 연유로 마군 같은 마인이 이령 휘하에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그런 연유로 이령이 혈루마옥과 내통하고 있었어도 검성주가 이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초반에 밀통 사실을 알았다면 검성주가 끝내 자진해야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밀통 초반에 이령을 제거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허면 현재의 중원 무림 역사는 판이하게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검왕은 검은 그림자들의 사나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이령을 쳐다봤다.

검은 그림자들도 더 이상 충동하지 않았다.

그들도 이령과 검왕의 관계를 안다.

그들의 시작이 어땠으며, 어떤 일 때문에 어떻게 갈라섰는지 모두 지켜봤다.

“성주님은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이제 그만 가시지요.”

그들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외로울 것이다. 한참 바쁘게 움직였던 사람이니.”

“잘 모시겠습니다.”

“그냥 이대로 살면 좋으련만…… 결국은 다시 나올 사람이니…… 그때가 되면 딱 한 마디만 해줘라. 검왕에게 자유를 줘도 좋겠냐고. 하루만 더 생각해 보라고.”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검은 그림자들은 검왕이 한 말의 뜻을 안다.

욕망이냐 죽음이냐 보다도 더 무서운 말이다. 중원에 나오면 죽는다는 경고 따위는 곁에도 다가서지 못할 정도로 지독하게 매운 말이다.

“휴우!”

검왕이 한숨을 불어 쉬며 일어섰다.

그는 일어설 때까지 이령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도.

“우린 자유다.”

마군이 말했다.

“네놈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만…… 상대가 혈오이니 돕겠다. 뭘 하면 되나?”

“하북팽가(河北彭家)를 멸절시켜라.”

“멸절이라고 했나?”

“적벽검문처럼…… 철저하게 뿌리 뽑아야지.”

“하북팽가하고 원한이라도 있나?”

“후후! 쉽게 보지 마라. 하북팽가, 만만한 문파는 아니니.”

“하북팽가를 만만하게 보지는 않는다. 다만 네가 하고자 하는 일, 본보기에 불과할 것 같은데, 멸절이라는 말을 쓰니 물은 것이다. 제일 먼저 거론한 문파이기도 하고.”

“후후! 누가 본보기라고 했나.”

“뭐라고?”

“지금부터 철저하게 중원을 도륙할 생각이다. 혈오보다 한발 앞서서. 중원은 그야말로 풀뿌리 하나 남지 않을 터. 이런 게 마도에서는 본보기인가?”

“그, 그럼 정말로 중원 무림을!”

“앞으로는 천하가 적일 것이다. 천하인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올 것이다.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도 눈을 감고 자지 못하는 처지가 될 게다.”

“음!”

마군이 침음했다.

촌장과 증평주가 서장을 맡았다.

그럼 그들도 서장을 검왕식으로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인가. 모두 죽이고, 무너트리고…… 재건조차 하지 못할 상황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가.

적벽검문식으로 하북팽가를 멸절시키라는 것은…… 아이나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죽이라는 말이다.

중원을 이런 식으로 멸절시킬 것이면…… 차라리 혈오가 만들고자 하는 중원 정복이 낫지 않을까?

“너는 어딜 칠 건데?”

마군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물어볼 것이 무엇인가. 소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문파는 하북팽가와 월월문(月月門)이다.

월월문은 마군 수하들 중에 한 명만 보내도 멸절시킬 수 있는 약체 문파다. 절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초고수들 눈에는 어린아이 장난처럼 보이고…… 그저 약간의 호신술 정도만 가르치는 문파라고 보면 딱 맞다.

지나가는 길에 월월문을 칠 것이다.

그런데 검왕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답했다.

“소림.”

“소림?”

“하북팽가를 치고 소림까지 올라와. 올라오는 길에 눈에 띄는 무인은 모두 죽여. 병기를 패용한 자들은 보는 족족 추살해. 한 명도 남김없이.”

“알았다.”

마군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단, 그들을 죽일 때 이유는 알려주라고. 병기를 패용했기 때문에 죽인다고. 그래야 죽음이 두려운 자들은 병기를 패용하지 않을 것 아닌가.”

‘이런 여우!’

마군은 눈살을 찌푸렸다. 속으로는 이 악물며 욕까지 했다.

검왕은 무림에 소문이 번지는 것을 원한다.

멸문당하기 싫으면 봉문해라. 아니, 문파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라. 적벽검문은 봉문 상태에서도 멸절당했다. 봉문을 했다고 화겁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무인은 병기를 버리고 숨어라.

병기를 든 자는 모두 척살한다. 허니 병기를 버려라. 무인이라는 이름을 버려라.

무림에게 완전히 굴복하라는 경고다.

그러기 위해서 오대세가 중에 하나인 하북팽가를 멸절시킨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키는…… 일벌백계의 효과를 낫는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검왕은 소림을 친단다.

소림은 결코 만만한 문파가 아니다. 만만한 문파? 천 년을 이어오면서 단 한 번도 패배를 몰랐던, 굴복이라는 것을 몰랐던, 숨은 잠룡이 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문파가 소림사다.

그런 곳을 단신으로 친단다.

검왕이 성공하면 그 효과는 중원 전역에 바로 퍼질 것이다. 월월문 같은 문파는 아예 현판을 내려버리고 잠적할 것이다. 혹은 모든 문파가 일심으로 연합하여 싸울 것이다.

아마도 중원 무림은 후자를 택하리라.

어떤 싸움이든 시간은 오래 끌지 않는다. 검왕이 곁다리부터 정리하는 게 아니라 무림 중앙부터 치고 들어가는 작전을 구사하기 때문에 곧 정리될 게다.

‘보름 안에 무림을 파괴하겠다더니.’

검왕은 소림과 한 번 싸우고, 전 무림 연합과 한 번 싸울 생각이다. 허면 두 번의 싸움으로 무림은 초토화된다. 만약 이길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 후, 남은 문파들은 저절로 소멸된다.

남은 문파 정도는 마군과 그의 수하들만 부지런히 움직여도 정리할 수 있다.

보자, 검왕의 편에 누가 서 있나.

검성, 혈천성, 유지자문, 십마.

이들이 동시에 움직여 준다면…… 중원 무림은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검왕이 이끄는 무림집단이 상상 이상으로 많고 강하다.

물론 검성 무리라고 칭했던 곳들이 검성의 뜻을 따라준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검왕이 뚜벅뚜벅 숭산(嵩山)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저거 미친놈 아닙니까?”

기련산 사건을 알지 못하는 백살마창이 중얼거렸다.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냐. 지금 단신으로 소림사를 치겠다고 간 거야?”

좌수비마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들은 기련산 정상에서 검왕과 촌장이 어떤 무공으로 싸웠는지 알지 못한다. 검왕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지고한 무공을 구사한다는 사실도 모른다.

마군은 검왕과 촌장의 싸움을 봤다. 그래서 다른 말을 했다.

“소림사…… 천 년 소림사가 무림에서 지워지겠군.”

“네? 그럼 주군께서는 소림사가 검왕에게 멸절당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무당파가 운이 좋아.”

“네? 무당파는 왜?”

“가는 길로 따져보면 숭산보다야 무당산이 가깝지. 헌데 소림사를 택한 것은 소림사라는 이름 때문인 것 같고. 덕분에 무당파는 한숨 돌릴 수 있으니 요행인 거고.”

“맙소사! 주군께서는 검왕이 이긴다고 확신하고 계시네.”

“정말 그렇다면 우린 일초지적이라는 말이잖아?”

“일초지적이야 마공관에서부터 그랬지. 그때도 우린 손 한 번 못 써봤다고.”

태황도마가 코를 후비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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