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62화 (162/225)

# 162

第三十三章 종패(終牌) (2)

검왕은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 모습을 하고 있다.

허리까지 늘어진 치렁한 흑발은 다듬지 않아서, 아니 머리를 감지 않아서 수세미처럼 마구 엉켜있다.

얼굴은 머리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옷은 해어질 대로 해어진 데다가 빨지 않아서 퀴퀴한 냄새를 풍긴다. 거기에 피와 땀이 범벅이 된 채 바싹 말라 있다. 크게 싸웠다고는 보이지 않고…… 투전판에서 손을 잘못 놀리다가 마구 두들겨 맞은 꼴이다.

기련산 같은 깊은 산 속이라면 모를까 사람 많은 곳에서는 단박 눈에 띈다.

검왕은 도읍에 들어서면서부터 주목거리였다.

“이크!”

“음!”

길에서 검왕과 마주친 사람들은 검왕이 특별하게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급히 몸을 비켰다. 옷깃이라도 스치면 시비가 붙을까 봐.

검왕은 멀리서 봐도 몸이 매우 단단해 보인다.

몸이 건장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윗덩어리처럼 단단해 보인다. 성난 황소처럼 보인다. 곁에만 다가서도 뿔에 받힐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검왕은 검을 패용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가 무인이라는 점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붙이지 않는다.

그 누구도 검왕 앞을 가로막으면서 시비를 걸지 않는다.

검왕은 얼굴도 비치지 않고, 위협적인 행동을 가하지도 않고, 단지 걷고 있는 것뿐인데, 그럼에도 그는 폭발 직전의 화약덩이 같은 모습이다.

“요즘 혈루마옥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회자되던데, 그곳 사람인가?”

“쉿! 들을라.”

“내 목소리가 그렇게 컸어?”

“우리야 속삭이는 소리지만 저 양반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들릴걸?”

“아차!”

“다행히 듣지는 못한 것 같아.”

검왕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모두 들었다.

그를 향해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일반 범인들이지만, 개중에는 무인도 있다. 그러나 검왕을 알아보지 못했고,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손님, 방이 꽉 차서…….”

검왕을 정중하게 거절하려던 점소이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치렁치렁한 흑발 사이로 늑대 눈빛이 보인다. 까만 어둠 속에서 맑은 광채 두 개만 반짝인다.

꿀꺽!

점소이가 마른 침을 삼켰다.

검왕은 겁에 질린 점소이를 스쳐 지나며 말했다.

“목욕물, 살이 익을 정도로 팔팔 끓여놓고, 삭도(削刀) 구해놔. 내 몸에 맞을 옷도 한 벌 사오고, 검도 한 자루 사와. 날이 잘 선 놈으로.”

“나리, 제발! 저희는 방이…….”

점소이는 ‘방이 없다’는 말을 고집하고 싶었지만 검왕은 어느새 객잔(客棧)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객잔이나 주루에는 시비를 해결할 만한 무뢰배가 있다.

여러 가지 사단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니 무뢰배에게 용채를 주면서 장사를 하는 게 편할 때도 있다.

검왕이 들어간 객잔에도 무뢰배는 있다.

그들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 사람, 옷에다 검에다 온갖 것을 다 구해달라고 하는데…… 구해줘야 합니까?”

“구해줘.”

“두들겨서 내쫓으면 안 되고요?”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은 옷깃도 만지지 못할 사람이야.”

“그렇게…… 강합니까?”

“터무니없을 정도로.”

“아!”

점소이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는 손가락 세 개 없는 칠지도마(七指刀魔)가 이토록 긴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객잔에 문제가 생기면 늘 그가 나섰고, 한 주먹에 만사를 깨끗이 해결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검성 무인이다.

객주(客主)와 점소이밖에 모르는 극비 사항이지만…… 그는 이곳 호반객잔(湖畔客棧)의 실질적인 주인이기도 하다. 검성의 대리인이기도 하고.

호반객잔은 풍광이 수려한 호숫가에 위치한 관계로 풍류객이 많이 들락거린다.

검성은 풍광 좋은 곳에 휴양지를 만든 것인가.

맞다. 휴양지가 맞다. 심한 중상을 입어서 활동이 불가능한 무인을 쉬게 하는 것이다.

칠지신마는 그런 사람들, 부상당한 사람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검성의 적은 혈천성이니, 혈천성의 마인들로부터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 연유로 호반객잔이 검성의 휴양지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검성 사람들, 호반객잔에서 쉬고 간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이 임시 거처에서 머물렀다가 떠나간 것으로 안다.

칠지신마의 본래 무명(武名)은 무정검사(無情劍士)이며, 검이 무척 날카롭고 신랄해서 십마와도 견줄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런 사람이 고개를 가로저은 것이다.

“호, 혹시 혈루마옥 사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충분히 긴장하고 지켜볼 터이니. 우선 달라고 하는 대로 주고. 기껏해야 목욕물 준비해주고 삭도를 마련해 달라는 것 아니더냐. 몸 좀 정리하고 싶은 모양이지.”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간혹 이렇게 칠지신마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고수가 오기도 한다. 과거, 십마 중에 두 명이 들른 적이 있었고, 혈천성주도 방문한 적이 있다.

호반객잔에서 바라보는 소호(沼湖)의 풍광은 가히 일절(一絶)이다.

그럴 때, 칠지신마는 지금처럼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대접해 주었다.

십마와 혈천성주는 그렇다 치고…… 저자는 기껏해야 파락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목욕물은 검왕이 말한 대로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겁날 정도로 팔팔 끓여져 있었다.

검왕은 누더기 옷을 벗었다.

돌멩이처럼 단단한 근육들이 전신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팔, 다리, 가슴, 등…… 근육이 아니라 돌들이 자리 잡았다.

검왕의 전신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없는 문신들이 전신 곳곳에 그려져 있다.

검에 찔리고, 칼에 베이고, 창에 꿰뚫리고…….

검왕의 몸을 보면 그가 살아있는 것이 용하다 싶을 정도다.

“햐, 향유도 부어드릴까요?”

시중을 들기 위해서 욕실 안으로 들어선 점소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삭도는?”

“주, 준비해 놨습니다.”

점소이는 얼른 준비해놓은 삭도를 집어 들어서 공손히 바쳤다.

“부탁하자.”

검왕이 짤막하게 말하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검왕의 말뜻은 점소이보고 머리를 다듬어 달라는 말인 것 같은데…… 막상 점소이는 그런 것마저도 겁이 났다. 머리를 잘못 자르면 당장 주먹질을 할 것 같아서. 그리고 검왕의 주먹 한 대만 맞으면 그 자리에서 저승길로 갈 것 같아서.

‘아!’

점소이는 또 한 번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흑발을 자르고, 케케묵은 먼지를 닦아내자 한 사내의 진면목이 나왔다.

검왕은 결코 영준한 편이 아니다.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무엇이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는데, 그냥 옆에 있으면 편하고 좋은 사람 같다.

객잔을 들어설 때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그렇다고 검왕이 편하다는 뜻은 아니다. 검왕은 여전히 두렵다.

왜 그럴까? 나쁜 자가 나타나면 앞에 나서서 막아줄 것 같은 사람인데 왜 두려운 것일까?

눈이 차갑다.

검왕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차갑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 맹수의 눈처럼 보인다. 그런 눈이 그를 두렵게 한다. 흑발이었을 때나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은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그저 무섭기만 한 사람과 든든하면서도 두려운 사람의 차이일 뿐이다.

“저녁은 방에다가 차려놓았습니다. 방이 꽉 찼는데 손님에게 양해를 구해서 간신히…….”

“저녁은 별채에서 먹자.”

“네?”

“대상(大床)으로 준비해.”

“손님 그건 너무 무리한…….”

“술도 좋은 것으로 구해놔라. 맑고 깨끗하고 순도 높고. 한 잔만 마셔도 취기가 돌 수 있는 것으로.”

점소이는 칠지신마의 충고를 떠올렸다.

이자의 말은 무엇이든 들어줘야 한다. 최소한 십마나 혈천성주의 입장에서 대접해야 한다. 이름도 모르고, 신분도 모르지만 칠지신마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

허면 별채에서 묵겠다는 것, 대상을 차리라는 것…… 그 어느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점소이는 마음을 비웠다.

‘어차피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

검왕이 점소이의 말을 끊었다.

“다른 건 불편해도 좋은데, 술은 좋아야 할 것이야. 아주 좋은 술, 최상급으로 준비해 봐.”

“알겠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시고 푹 쉬십시오.”

점소이는 이 사내를 최대한으로 봉양할 생각이었다. 십마나 혈천성주가 그랬듯이 떠날 때 아주 만족한 얼굴로 떠날 수 있게끔.

별채가 준비되었다.

원래 별채에는 아무도 들지 않는다. 별채는 그야말로 신분이 혈천성주 정도는 되어야 묵을 수 있다.

칠지신마는 두말 않고 별채를 내주었다.

대상도 마련되었다.

장정 서른 명 정도가 둘러앉아서 먹을 수 있을 만큼 음식도 푸짐하게 준비되었다. 하나같이 소호에서는 명물로 일컬어지는 음식들이다.

검왕이 당부한 최상급의 술도 마련되었다.

점소이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짧은 시간 동안에 이만한 상을 준비할 수 있었으니 이게 다 노련한 경험이 아니겠는가.

헌데 검왕은 방에 들지 않는다. 그는 허리에 검을 차고 정원을 서성거린다.

그는 객잔에 들어설 때와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우선 깨끗하다. 용모가 단정하다. 듬직하다. 단단하다. 사내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다. 계집처럼 영준한 것이 아니라…… 그저 딱 사내다.

그가 정원을 서성거린다.

저녁이 지나 밤이 되어간다.

점소이는 방에 불을 밝혔다. 잘 차려진 음식은 이미 식었고, 뜨뜻하던 국물도 온기를 잃었다.

점소이는 음식을 다시 데웠다.

사내가 언제 음식을 먹을지, 아니면 먹지 않게 괜히 생사람만 고생시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할 도리는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데우면서 사내 눈치를 본다.

사내는 편하게 정원을 서성거린다. 가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별도 보고 달도 본다. 아니면 컴컴한 하늘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검왕은 딱히 음식을 먹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음식을 치우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아함!”

점소이는 하품을 했다.

처음에는 검왕이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점 편해진다. 무서운 느낌도 없다. 눈은 여전히 짐승의 눈처럼 차갑지만 그래도 두렵지는 않다.

긴장감이 풀어지고 있다.

‘누구냐!’

칠지신마는 검왕을 주시했다.

검왕도 그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고수임이 분명한데, 지켜보는 눈 하나 따위를 파악하지 못한 데서야 말이 안 된다.

저자는 분명히 최강의 고수다.

쥐는 왜 고양이와 싸우지 못하는가.

일대일의 싸움으로 이길 수 없다면 무리를 지어서 싸우면 되지 않는가. 쥐는 왜 무리를 지어서 싸울 생각조차 못 하고 무작정 쫓기기만 하는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이사슬에 엮인 것인가.

그렇다. 먹이사슬에 엮였다.

선대의 선대, 그 선대의 선대, 또 그 선대의 선대……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고양이와 싸워온 경험이 공포가 되어서 유전적으로 전해진 것이다.

갓 태어난 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양이의 실체조차도 모른 채 무작정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고양이만 보면 도망가기 급급하다. 이런 것을 두고 본능이라고 하지만.

무인에게도 본능이 있다.

무인의 본능이 아니라 사람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선대의 선대, 그 선대의 선대, 까마득한 먼 옛날부터 강적을 만나면 숨조차 쉬지 말고 움츠려야 한다는 본능이 유전적으로 전해진 것이라고 해야 할까?

칼날 한 자루에 목숨을 걸고 사는 무인은 특히 그런 면에서 민감하다.

무정검사, 칠지신마는 검왕을 보자 숨이 막혔다.

자신 정도는 너무도 쉽게 눕힐 수 있는 자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렇다면 저자, 이름 정도는 알려져 있을 것이다.

혈루마옥 무인인가? 아니다. 중원은 조용히 있는 듯하지만 혈루마옥의 존재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두 꿰뚫어본다.

혈루마옥 무인들은 아직 소호에 당도하지 않았다.

저자, 누구인가? 저만한 고수라면 자신이 모를 리 없는데.

그때, 칠지신마는 눈을 부릅떴다.

쉬이이익!

어둠을 뚫고 한 인영이 비조처럼 날아든다.

그 사람, 비조처럼 날아드는 사람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은신한 곳에서 벌떡 일어섰다.

천 리 밖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기를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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