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파괴록-160화 (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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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二章 배신(背信) (5)

기련산은 적막에 휘감겼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는 더욱더 을씨년스러웠다.

혈루마옥이 떠나갔다.

기련산으로 숨어들었던 누산 일행도 산을 벗어났다.

사람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깊은 골짜기.

휘이이잉!

싸늘한 바람이 절곡을 스쳐 지나간다.

“이상합니다.”

“그렇지?

“이놈들이 어디로 갔을까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날갯죽지 하나 찾지 못하겠으니.”

“음!”

두 사람이 기련산 산정에서 눈에 불을 켜고 무엇인가를 찾았다. 하지만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존재했는데 지금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저는 포기합니다. 못 찾겠어요.”

“나도 못 찾겠다. 이런 식으로는 찾을 수 없어. 저기로 건너갈 수 있다면 모르겠는데.”

중년 사내가 절벽 건너편을 노려봤다.

누강과 음사, 그들은 철삭이 설치되어 있던 곳에서 맞은편 절벽을 살펴보는 중이다.

건너편 산 정상에는 벌떼가 날아다녔다. 살인 개미도 바글거렸다. 모두가 현음자의 안배에 의해서 백 년 넘게 잠들어 있다가 튀어나온 요물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단 한 마리도 찾을 수 없다.

음사가 말했다.

“정말 뭐가 있긴 있었던 겁니까?”

“난들 아냐. 뭔가 있었으니까 찾으라고 했겠지.”

“그거야 그렇지만…….”

음사가 다시 진기를 끌어올려 눈에 집중시켰다.

파파파팟!

안광이 발산한다. 음사의 모든 감각이 소멸되고, 오직 시각만 극대화된다.

휘이이잉!

절벽 밑에서 소용돌이 돌풍이 밀려온다.

“없어요.”

음사가 고개를 내둘렀다. 그때.

“그만하면 됐어.”

음사의 등 뒤에서 나직한 소리가 울렸다.

누강과 음사는 당황하지 않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뒤돌아서며 말했다.

“정말 뭐가 있긴 있었습니까?”

“지금은 없군요.”

“그럼……?”

“진이 거둬진 듯 합니다.”

검왕이 맞은편 절벽을 보면서 말했다.

현음자가 안배한 진은 절정을 맞이했다. 믿어지지 않지만…… 혈오가 땅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것을 극점으로 해서 서서히 소멸되어갔다.

첫째, 혈오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검왕과 촌장이다. 그들을 절벽에 가둬놓는다. 진으로 꽁꽁 묶어서 옴짝달싹못하게 붙잡아 놓는다.

둘째, 혈오에게 땅의 기운을 전한다.

셋째, 혈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검왕뿐이다. 촌장은 이미 적에서 제외된다. 아니,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 말 잘 듣는 수족으로 변신한다.

현음자의 진법이 일으킨 변화다.

검왕은 이 변화를 눈치챘을 때, 누강과 음사에게 산정 절벽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누강과 음사는 음악오귀가 치열하게 싸울 때 그 자리에 없었다.

그들은 화천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기련산 산정에 올랐고, 그때부터 맞은편 절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기어 다니는 모든 것들.

날아다니는 모든 것들.

벌과 개미는 너무 작아서 식별할 수 없다. 돌풍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 절벽에서 찾기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음사라면 찾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눈을 가졌기에.

음사가 수련한 미미정안(微微正眼)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바늘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미미정안의 수련과정 속에는 그런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어떻게 바늘을 찾을 수 있나?

바늘이 지닌 속성은 철이다. 쇠붙이다. 금속성을 감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오직 느낌으로만 금속을 찾아내는 수련을 완성하면 미미정공의 중(中)을 이루게 된다.

음사는 중을 이룬 상태다.

미미정공을 극상으로 이루면 어둠 속에 떠다니는 먼지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검왕은 누강이 아니라 음사에게 이번 일을 부탁한 것이다.

음사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누강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누강이 보는 것은 음사도 보지만, 음사가 보는 것을 누강이 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안력에서만큼은 음사가 단연 으뜸이다.

진이 확실하게 거둬졌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누강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물었다.

검왕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현음자를 의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음자의 이번 안배는 혈루마옥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혈오를 위한 것이라고 해야겠지요.”

누강과 음사는 할 말을 잃었다.

현음자는 정도의 하늘이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마를 소탕하고 정을 키우는 작업이었다.

현음자를 의심한다?

정도의 하늘을 의심한다는 말과도 같다. 이런 말을 중원무림에 했다가는 당장 공분을 살 것이다.

“지금부터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면 서신을 전해주고 대답은 듣지 마십시오.”

검왕은 누강과 음사에게 서신 한 장씩을 내밀었다.

“대답을 듣지 말라고?”

누강이 무심히 말하며 서신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서신을 받아들자 더욱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뭡니까?”

밀봉된 서신 겉면에는 하남(河南) 호련(瑚璉) 만복(萬福)이라는 짤막한 글귀만 적혀있었다. 하지만 누강은 그 글귀만으로도 글귀가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하남성 호련읍에는 만복객잔이라는 상당히 큰 객잔이 있다.

하남성을 한 번이라도 들러봤던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객잔이다.

“여기서 누구를 만나라는 겁니까?”

“가보면 압니다.”

누강은 더 묻지 못했다. 자세한 것을 더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옆에서 그와 같이 서신을 받아든 음사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신만 들여다본다.

누강이 곁눈질로 서신을 보자, ‘혈천성주’라는 글귀가 뚜렷하게 보였다.

음사가 찾아갈 사람은 혈천성주인 것이다.

음사가 그렇다면 누강이 만나야 할 사람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검왕이 설명 대신 다른 말을 했다.

“그 대신, 한 마디만 더 해주십시오. 어떻게 결정하든 강물은 흐르기 시작했다.”

“강물은 흐르기 시작했다…….”

누강이 중얼거리는 사이, 검왕은 어느새 신형을 훌쩍 날려 산정에서 멀어져갔다.

* * *

마군이 자신이 보고들은 모든 것을 말했다.

“촌장은 혈오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령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분이?”

“그렇습니다.”

“그럼 그분은?”

“서장으로 떠나셨습니다. 혈오의 눈에 띄면 곤란하겠기에.”

“으음!”

이령이 신음했다.

촌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앉은 자리에서 천하를 격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촌장의 영향력은 검성에게 미쳤다.

검성주가 촌장을 우려해서 자진했다. 자신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어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했다. 촌장의 보복이 두 배, 세 배 확대되어서 뻗쳐올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령을 건드리면 촌장은 중원을 무너트린다.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촌장도 아주 단호하다. 어떠한 이유나 변명도 듣지 않는다. 아무리 합당한 사유를 들이대도 듣지 않는다. 오직 보복뿐이다.

검성주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아니…… 검왕도 아는 듯하다.

그녀는 수하로 휘두를 수 있는 여인이 아니다. 검성주가 사력을 다해서 보호해야 하는 존재다.

헌데 지금은? 끈 떨어진 연이 되었다.

촌장이 혈오에게 꼼짝을 못한다면…… 그녀가 쥐고 있는 검성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껍데기에 불과해진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검왕이 뵈러 온다고…….”

“호호호! 이제 와서 왜요?”

“중원을 무너트리시겠답니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요? 중원을 무너트린다고 했나요?”

“네.”

“호호호호! 호호호호!”

그녀는 미친 듯이 웃었다.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마군이 한술 더 떠서 말했다.

“그것도 보름 안에 무너트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름이 지나면 혈오가 차지한다고. 제 사견을 말씀드린다면, 지금은 검왕과 함께 중원을 무너트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 같습니다.”

‘검왕과 함께 중원을 무너트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그녀는 마군의 제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마군은 절대로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하지 않았으면 안 했지 입 밖에 낸 말에는 반드시 심중이 담겨있다.

그는 진심으로 검왕과 연수하기를 희망한다.

‘하기는…….’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기련산에서 마군이 겪은 일을 모두 들었다.

누산을 잡아오라고 보낸 길에서 엉뚱한 사람들의 접전만 봤다. 그것도 마군 자신이 하수로 여겨질 만큼 절대강자들의 차원 높은 무공을 봤다.

촌장과 검왕.

솔직히 검왕이 살아있다는 것도 의문이고, 그의 무공이 그토록 높다는 것도 믿기지 않지만…… 마군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한 말이니 모두 믿어야 한다.

마군이 이해된다.

그토록 강한 사람들이 한낱 갓난아기에게 꼼짝달싹 못 한다면 무슨 수단이든 써야한다고 생각할 게다.

중원 파괴!

이것은 그녀의 목적과 부합한다.

혈루마옥을 이용해서 중원을 파괴할 요량이었지만 검왕과 함께 부순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중원만 확실하게, 마음에 꽉 차게 박살 내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검성도 차지했다.

검성주가 있으면 그 일을 못 하기 때문에 검성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중원 파괴다. 중원을 말살시킨다.

하지만 그 일이 검왕과 함께라면 내키지 않는다. 검왕은 결코 중원을 파괴할 사람이 아니다. 그가 일으키는 파괴는 그녀가 원하는 파괴가 아닐 것이다.

검왕보다는 누미 쪽에 관심이 간다.

누미가 혈오를 이용해서 촌장을 제압했다면…… 촌장을 버리고 누미를 택할 차례다.

그런데 정말로 촌장을 버릴 수 있나?

‘버릴 수 있어.’

그녀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번갯불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검왕이 자신을 만나러 온다고 했다.

그때가 검왕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검왕의 무공이 촌장처럼 높다면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혈오가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또 그 일을 할 때는 자신의 목숨도 걸어야 한다.

검왕이 그녀의 뜻을 알게 되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또 마군도 제거해야 할지 모른다.

중원 파괴가 말해지는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예전의 주종관계는 무너진다. 혈육관계도 무너진다. 이념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무너트릴 수 있다.

또 하나,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조직이 있다.

일령과 휘하 수족들!

일령은 검성주가 자진하는 순간부터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즉, 검성주로부터 모종의 밀명을 받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일령을 무시했다.

혈루마옥의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일령이라고 해도 호랑이 앞에 강아지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가 수단을 부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검왕이 내게 온다면 혈천성주를 만나러 가는 사람도 있을 터.’

그녀가 원하는 중원파괴를 만들기 위해서는 검왕의 중원파괴를 막아야 한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검성을 이용할 수도 없고, 마군을 쓸 수도 없다.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누미, 그 여자를 만나야겠어.’

혈오와 화천, 그리고 혈루마옥 무인들을 이용해야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한 수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종용해야 한다.

‘나는 내 식대로 중원을 파괴할 거야. 철저히.’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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