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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二章 배신(背信) (2)
음악오귀가 미동(微動)한다. 유화아도 미동한다. 서로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관찰이 용이해진다. 움직임을 관찰한다. 그리고 미묘한 변화에 즉각 대처한다.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가 다시 합일된다.
원래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진기였지만, 지금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로 탄탄하다.
화천은 한계를 느꼈다.
‘내 무공으로는 뚫을 수 없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무공으로는 저 여섯 명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수하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절감한다.
화천은 뒤를 돌아봤다.
누미가 웃고 있다. 기분 나쁘게.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화천은 음악오귀와 유화아를 향해 돌아섰다.
그는 누미에게 도움을 청했다. 누미는 도와줄 것이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동행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가 할 것은 없다. 누미가 할 것도 없다. 지금부터 그를 도와줄 사람은 혈오다. 한낱 갓난아기가 그에게 힘을 줄 것이다.
“아빠 좀 도와줘야겠다. 착하지?”
누미의 음성이 등 뒤에서 들렸다.
화천은 그 음성을 들으면서 송충이가 등을 쓸고 내려가는 듯 기분을 느꼈다.
누미는 사랑스런 여자였다.
누미는 예쁘고 상냥하고 순진했다. 사내를 전혀 모르는 순백의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강제로 범했다.
어쩌면 오늘날의 누미는 그가 만든 것이나 진배없다. 아니, 그가 만들었다. 혈루마옥으로 끌고 들어가서 억지로 아이를 낳게 만들었지 않은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누미가 어떻게 변하든…… 추하고, 사악해지고, 정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천박해도 그는 누미를 사랑해야 한다. 혈오까지 낳아주었으니 지극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정이 떨어진다.
지금은 약간의 정만 떨어진 상태인데도 음성을 듣는 것조차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는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표정이 일그러져도 누미에게 발각되지 않을 테니까. 아무것도 모를 테니까. 그런데,
“네 아빠 봐라. 왜 치를 떨지?”
화천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행동 변화 없이, 태연하게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한다.
“어쨌든 지금은 아빠를 도와주자꾸나. 힘 내줄 수 있지?”
순간, 화천은 아주 미묘한 기류의 변화를 감지했다.
발바닥, 용천혈(湧泉穴)을 통해서 뜨거운 느낌이 무척 빠른 속도로 밀려든다.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나와서 가을 시원한 바람을 맞았을 때처럼 기분 좋다.
‘시원하군.’
갓난아기의 능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효험이 강력하고 신비하다.
‘어떻게 한 거지?’
화천은 순간적으로 혈오의 능력에 찬사를 보냈다. 허나 그의 초점은 곧 눈앞에 있는 음악오귀와 유화아에게 모아졌다. 혈오의 능력이 끝나기 전에 저들을 처리해야 한다.
‘힘이 생겼을 때!’
슈웃!
화천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아주 강력한 공격을 전개했다.
용천혈을 파고들어온 미증유의 기류가 전신을 휘감는다. 자신의 진기를 북돋는다. 경맥을 단단하게 하고, 진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유도한다.
단순한 말이지만…… 그런 효험을 화천이 느꼈을 때, 그 능력은 천양지차가 된다.
“막앗!”
음악오귀가 당황한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소리쳤다.
쒜엑! 쒜에에엑!
화천을 향해 화살 두 자루가 날아들었다.
음악사귀와 오귀가 떨쳐낸 화살이다. 마신천강기의 요체가 담겨있는 시위다.
탕! 탕!
화천은 강철시위 두 대를 검으로 쳐냈다.
단지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을 뿐인데…… 손목이 시큰거린다. 손바닥이 얼얼하다.
마신천강기를 담은 활시위는 항우장사가 내지른 철퇴만큼이나 강력하다.
쉐에에에엑!
화천의 검이 음악삼귀의 머리를 갈라졌다.
슈웃! 슈슈슈슈슛!
음악삼귀는 십수연환창을 내질렀다.
일수가 십수로, 십수가 백수로 변화한다. 화천이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창대를 빽빽하게 내세운다. 허나…….
슈우와왁!
화천의 검이 창대를 잘라낸다. 그리고 곧장 안으로 파고든다.
절체절명, 음악삼귀의 목숨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다. 한순간에 모든 창대가 잘려나가고 목숨까지 잃을 것으로 보여졌다. 다른 형제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마신천강기가 갈라진 것이다. 순간,
슈웃!
음악삼귀의 등 뒤에서 새파란 장검 한 자루가 불쑥 튀어나왔다.
“기다렸다!”
화천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이니, 마신천강기를 베어내면 투살진기가 다가올 것은 자명한 것.
마신천강기를 베어냈는데, 투살진기인들 베지 못할까!
슈와왁! 슈우웃!
두 자루의 장검이 음악삼귀의 옆구리 지척에서 소리 없이 얽혔다. 뱀 두 마리가 서로 똬리를 꼬듯이.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꽈앙!
두 검이 얽혔을 뿐인데, 화약이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윽!”
“우욱!”
유화아와 화천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유화아의 입가에 붉은 선혈이 흘러내린다.
화천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
둘 다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게 틀림없다. 상태는 유화아가 조금 더 중한 것 같고.
“어떻게?”
유화아가 놀란 표정으로 화천을 쳐다봤다.
놀라기는 음악오귀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눈을 부릅뜬 채 화천을 쳐다봤다.
마신천강기가 너무 손쉽게 갈렸다.
투살진기는 최강의 공격이다. 투살진기가 정통으로 부딪쳐서 깨지지 않을 진기가 없다.
음악오귀와 유화아는 비급 서두에 적혀 있는 글귀를 믿지 않는다. 그런 문구에는 으레 무공 소유자의 자신감에 비례해서 과장이 많다는 것을 안다.
음악오귀와 유화아가 믿는 것은 땅의 힘이다.
화천은 그 힘을 잘라낸 것이다. 땅의 힘을 맞받아쳐서 밀어내고, 잘라낸 것이다.
괴력!
음악오귀와 유화아는 그 점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이곳은 자신들을 위한 땅이다. 이곳에 무엇이, 어떤 식으로 설치되었는지는 몰라도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가 맹렬하게 팽창함을 느낀다.
다른 무공은 그렇지 않다.
누산에게는 무공을 수련한 호법무인들이 있지만, 그들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혈루마옥 무인들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화천 뒤에 늘어선 많은 무인들 중에서 이 땅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화천도 처음에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편법을 써서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를 해체하려고 했다.
지금은 처음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는 완벽하게 자신만의 무공으로 마신천강기를 짓눌렀다. 힘으로 힘을 짓눌렀고, 빠름으로 빠름을 제압했다.
무엇이 화천을 순식간에 초강자로 만들었나?
아니, 말이 잘못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초강자였다. 다만 이 땅의 기운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지금은 받아들인다. 자신들보다 더 강하게.
“후우웁!”
화천이 길게 숨을 들이켰다.
공기는 진정제 역할을 한다. 가슴이 울렁거릴 때, 내장이 진탕할 때…… 그리고 무인이 큰 숨을 들이켰다는 것은 내상을 어느 정도 다스렸다는 뜻이다.
다음 공격이 시작된다.
스읏!
화천이 검을 들어 올렸다.
“마벽(魔壁)!”
음악일귀가 조용히 말했다.
음악일귀의 눈에는 투쟁심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방금 전에 음악삼귀가 당했다. 그때, 다른 사귀는 옆에서 마신천강기를 보내주고 있었다.
즉, 진기합벽(眞氣合壁)이다.
화천은 음악삼귀가 물리친 것이 아니라 음악오귀 전부를 물리쳤던 것이다.
마신천강기 최후최강의 벽, 마벽!
스읏! 스읏! 스읏!
음악오귀가 서로 몸이 맞닿을 정도로 가깝게 거리를 좁혔다.
일이삼귀가 앞에 나란히 서고, 사귀와 오귀가 그들 뒤에서 활을 겨눴다.
“화살이 매우 두껍군. 그게 날아가나?”
화천이 다소 놀란 듯 말했다.
사귀와 오귀가 꺼내 든 화살은 두께만 해도 어른 손가락 정도는 훌쩍 넘었다.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 되려나?
기다란 화살대 전부가 강철이다.
저런 시위가 활로 쏘아질지 의문스럽기는 하다.
“와봐!”
사귀가 냉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촉하지 마라. 그러잖아도 간다.”
쉐에엑!
화천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형을 쏘아냈다.
탁! 탁!
화살 두 대가 일이삼귀 어깨 높이에서 쏘아졌다. 그와 동시에 사귀와 오귀는 두 손을 일이삼귀의 명문혈(命門穴)에 갖다 붙이고 진기를 풀어냈다.
츠으읏!
일이삼귀의 등 뒤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났다.
그 순간, 화천의 검은 이미 삼귀의 머리 위,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삼귀는 즉시 장창을 들어 올렸다.
그의 장창은 일시적으로 화천의 발길을 붙잡는 역할을 한다. 그 정도만 해도 족하다.
쒜에에엑!
대부가 화천의 발을 노리고 쏘아졌다.
대도도 도광을 뿌렸다. 대부의 뒤를 바짝 쫓아서 대부가 놓친 곳을 후려친다.
그들의 거리는 지근, 몸이 맞닿은 거리에서 결코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거의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병기만 쳐낸다. 물론 그만큼 힘은 깃들지 않는다.
대부와 대도 역시 화천의 발길을 붙잡는 데 주력한다.
그들은 애초부터 화천을 공격할 의도가 없었다. 사귀와 오귀의 도움을 받아서, 그들의 진기까지 끌어들여서 전력으로 다해 병기를 쳐냈는데…… 그것으로 화천의 발길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화천은 화살 두 대를 신형을 비틀어서 피해냈다. 장창은 검으로 쳐냈고, 대부와 대도는 발길로 차냈다.
이 모든 것이 일순간에 이루어졌다.
음악오귀의 합공이 한순간에 무력화되었다. 음악오귀의 병기는 사방으로 흩어졌고, 남은 것은 화천의 검뿐이다. 달려오는 화천밖에 보이지 않는다. 순간,
스읏!
음악오귀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신형들을 밀착시켰다.
“좋아!”
음악이귀가 버럭 고함쳤다.
순간, 등 뒤에 있던 사귀와 오귀가 일제히 손을 움직여 이귀에게 진기를 밀어넣었다. 바로 옆에 있던 일귀와 삼귀 역시 신형을 돌려서 이귀에게 진기를 집중시켰다.
화천이 검이 날아온다. 하지만 일귀와 삼귀는 화천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이귀만 본다.
스읏!
이귀가 두 손을 내뻗었다.
그는 음악오귀의 합일된 진기로 화천을 상대할 생각이다.
“어리석은!”
화천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그때,
“네 아빠, 또 실수하네. 꼭 중요할 때만 실수해. 좀 진득하게 싸우면 좋을 텐데. 안 그러니?”
조용한 음성, 듣기 괴로운 음성.
화천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렇구나! 마신천강기의 목적은 공격이 아닌 방어, 공격은 투살진기!
결정적인 순간에 화천은 실책을 깨달았다.
이 순간, 투살진기가 보이지 않는다. 유화아가 보이지 않는다. 마벽이라. 마벽은 자신을 막겠다는 뜻이 아니다. 유화아, 투살진기를 가려주겠다는 뜻이다.
‘물러서야 돼!’
허나 마신천강기, 음악오귀가 물러설 공간을 주지 않는다. 음악이귀의 쌍장이 어느새 면전까지 밀려들고 있다. 음악오귀 전원의 진기를 육장에 담고.
‘제길!’
화천은 툴툴 웃었다.
어쩔 수 없이 마신천강기와 부딪쳐야 한다. 투살진기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데.
‘실수했군. 실수했어.’
화천은 전력을 다해 마신천강기를 부수기로 작정했다. 적어도 이들 음악오귀만큼은 이 순간에 끝장낼 생각이다.
쒜에에에엑!
떨어져 내리는 검에서 폭광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