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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一章 불가해(不可解) (5)
기(氣)의 세계는 신비롭다.
아무것도 없는 듯 하지만 온 세상에 꽉 차 있는 물질이 있다. 그것이 바로 기다.
공기는 허공에 가득차 있는 물질이고, 지기(地氣)는 땅이 발산하는 원천 기운이다. 하늘도 원천 기운을 가지고 있고, 물과 나무도 가지고 있다.
온 세상에 기로 꽉 차 있다.
인간은 이 기운들을 빌어쓰고 살아간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기운을 받아들이고, 탁기는 걸러낸다.
그 기운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날 때만 받아들일 수 있다. 주고 받는 것이 모두 자연발생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인지하지 못한다.
일부는 천지자연의 기운을 인위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서 인간이 지닌 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그런 사실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허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아주 조금씩 느껴가는 것이다. 땅의 기운이 왕성하다고 해서 그 기운을 모조리 흡수해서 힘으로 전환시킬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혈루마옥을 나설 때는 좀 화끈한 걸 바랐는데 말이야.”
“술도 마음껏 마시고 계집질도 실컷 하고?”
“그런 것도 있고.”
“가장 하고 싶었던 게 뭔데?”
“중원을 지배한 무공이 무엇인지 보고 싶었지.”
“검왕을 봤으니 중원 무공의 진수는 본 것이고…… 적벽검문에서 꽤나 힘들었으니 힘도 쓸 만큼 썼고…… 중원을 지배한 무공을 보고 싶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진심을 말해봐. 중원에 나오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었던 건데?”
“…….”
신나게 말을 하던 자가 갑자기 침묵했다.
사내의 속마음을 환히 꿰뚫어 본 듯, 말하는 것마다 핀잔을 주던 사내도 침묵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단 하나, 제왕적인 대접이다.
당장 중원을 통치할 줄 알았다. 중원을 접수하고, 각 성(省)의 주인이 되어서 세상을 호령했어야 한다.
그들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진작, 그랬어야 한다.
헌데 그들은 이름 없는 골짜기에서 하나, 둘 죽어가고 있다. 중원에는 잠시 콧바람만 쐬었을 뿐, 차디찬 땅에 이불 한 조각 깔고 잠을 청하는 노숙 생활의 연속이다.
혈루마옥의 저주를 벗어던졌다지만 활동 영역만 넓어졌을 뿐, 여전히 산속 생활이다.
확실히 뭔가가 잘못되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중원행이라고 했으니까.”
“정말 중원행 맞아? 또 다른 일이 생기지 않겠어?”
“변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들은 확신이 서지 않는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눈동자만큼은 들개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들은 믿는 구석이 있다.
화천이 녹천주를 벴다.
화천은 그 일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부인할 수 없는 하극상이요, 존속살인이지만…… 화천은 녹천주의 주검을 모두 앞에 내놓고 말했다.
- 중원을 접수할 것이다!
모두가 했던 말을 그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를 믿는다. 왜? 그는 하극상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부정을 저지른 자, 뒤로 물러설 수 없다.
화천이 가는 길은 증평을 짓누르고, 촌장을 베고, 그들 편에 선 자들을 제거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동족 살상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다.
피를 밟고 지나가는 길이다.
동족을 죽인 자가 다른 자인들 죽이지 못하랴.
동족을 죽이면서 검을 들었는데, 하다못해 썩은 무라도 베어야 하지 않겠나.
화천은 중원으로 향할 것이다.
아직 동족 중에서 누구를 솎아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자신들 중에서 일부는 같은 길을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화천이 그들을 얼마나 회유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하지만 이것도 무난할 것으로 본다.
화천에는 누미가 있다. 누미에게는 혈오가 있다. 모두를 거머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적으로 충성을 표하는 자만 제거하게 되어 있다.
혈루마옥의 저주……!
그게 무엇인가? 혈루마옥을 벗어나지 못해서 하는 말인가? 아니다. 몸뚱이야 어디에 있건 상관하지 않는다. 기껏 수련한 무공을 써먹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 저주다.
진짜 혈루마옥의 저주는 이제부터 풀어야 한다.
“가자고. 이곳 일부터 빨리 끝내고.”
그들은 뒷짐까지 지고 여유롭게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탕!
첫 번째 공기 울림이 터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한겨울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바짝 난다.
그들은 앞을 봤다.
“저…… 놈들!”
그들은 앞을 가로막아서는 자들이 누군지 알았다.
하루잡배와 계집년 하나.
마공관의 마공인가 무엇인가를 배웠다고 하는데…… 한 마디로 우습지도 않다.
“무슨 배짱이지? 우리와 싸우겠다는 거지?”
“그럴 생각이겠지.”
사내들은 음악오귀와 유화아를 싱겁게 생각했다. 헌데,
탕!
두 번째 공기 울림이 터진다.
이번에도 역시 먼저와 마찬가지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정신이 확 깬다.
“웃! 고수!”
“저놈들이!”
그들은 음악오귀와 유화아가 자신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할 수 있다. 확신하건대 저들이라면 충분히 검을 들 수 있다.
도대체 저들이 언제 이렇게 강해졌단 말인가.
스릉! 스릉!
녹천 사내들은 검을 뽑았다.
원래…… 이곳을 정복하면서 검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적수공권 몇 번 놀리면 상황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사내들 중에 한 명이 쾌속하게 검을 쳐갔다.
성급한 것이 아니다. 상대를 가볍게 본 것도 아니다. 음악오귀와 유화아가 자신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쳐갔다.
쉿! 까앙!
그의 검이 대부에 가로막혔다.
검이 도끼에? 도끼날에?
검이 들어오는 것을 정확히 보아야만 막을 수 있는 방어법이다. 무의식 중에, 얼떨결에 막은 것이 아니라면. 지금 상황에서는 그럴 리 없다고 보지만.
검을 보았다는 것은 자신들보다 한 수 위라는 뜻이다.
“물러섯!”
뒤에서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 물러서야 한다는 것은 공격한 당사자가 제일 먼저 느낀다. 헌데,
슈웃!
이놈의 검은 또 언제 뻗어 나왔단 말인가!
도끼 사이로 검 한 자루가 요악하게 웃음 짓는다. 마치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날름 다가온다.
사내는 분명히 검을 보았다. 물러설 생각이었다. 헌데 검이 목을 쑤신다.
“컥!”
사내는 짧은 단말마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내지른 단말마보다도 이 현실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검을 쳐다봤다.
스으으읏!
검이 도끼날 사이로 사라진다.
“ 투살진기! 겨우…… 투살진기 따위로…….”
사내가 어처구니없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리다가 쿵! 뒤로 자빠졌다.
마신청강, 투살진기.
음악오귀와 유화아의 무공은 비밀이 아니다. 그들의 무공은 이미 환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혈루마옥 무인들 중에는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이 두 무공은 마공이다.
처음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종국에는 뇌에 이상증세를 일으킨다.
혈루마옥에서도 이 두 무공은 수련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론으로라도 탐구한 무인들은 있다. 마공에도 장점은 있으니까. 그리고 혈루마옥 무인들 정도 되면 마공 정도는 내기로 다스릴 수 있다.
“마신천강기 열 배다.”
“뭐라고?”
“마신천강기를 훨씬 뛰어넘었다. 이 정도면 마신천강기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무공이라고 봐야 해.”
“그 정도야?”
“투살진기 역시 마찬가지다. 투살진기가 보이지 않아.”
“으음!”
“어렵다.”
결론이 도출되었다.
어렵다!
적벽검문을 칠 때도 ‘어렵다!’는 결론을 얻은 후였다.
그 싸움이 어떻게 되었나? 적벽검문을 몰살시켰지만 혈루마옥도 만만치 않게 손해봤다.
지금 싸움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치기는 하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
“일대일?”
“아니, 적어도 일 대 오는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나?”
“눈이 있으니 보잖아. 이놈들…… 그 정도 대가는 받아도 될 자들이야.”
“음!”
혈루마옥 무인들이 침음했다.
적벽검문을 칠 때의 손해액은 이 대 일이었다. 두 명을 죽이는데 한 명이 희생된다는 계산이다.
음악오귀와 유화아를 죽이는 데는 일 대 오가 계산된다.
저들 여섯 명을 죽이는데 적어도 서른 명 이상이 피를 흘려야 한다는 셈법이다.
서른 명!
혈루마옥은 둘로 쪼개졌다. 증평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증평주가 검왕에게 잡혔으니 세가 절반쯤 약해졌다고 봐야 한다. 그 세력조차도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녹천은 이미 많이 손상되었다. 적벽검문을 치면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거기에 내분도 해결해야 하는데…… 서른 명이라.
나중에는 충분히 셈해줄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은 셈해 줄 수 없다. 그 정도 희생을 치르고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벌써 한 명이 죽었으니 서른한 명이 되겠지만.
“그 계산, 확실하지?”
“후후후!”
“믿는다. 그 셈법.”
“믿어도 돼. 적벽검문 셈법도 내가 한 거야.”
“좋아. 화천에게 보고해.”
“싸우지 않고?”
“이 싸움, 화천이 해야 한다.”
그들은 결국 서른 명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결정 내렸다.
“음악오귀와 유화아라.”
화천은 피식 웃었다.
누산이 속수무책으로 자신들을 맞이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당대 제일의 거상이니 충분한 대책을 세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데 무공으로 대적하겠다고? 혈루마옥 무인들에게?
기가 막힌 것은 그 수가 통했다는 것이다.
그들 여섯 명을 죽이려면 서른 명이 죽어야 한다. 그런 대가를 화천도 치를 수 없다.
혈루마옥 무인 한 명, 한 명은 모두 절대고수다.
중원에 나가면 일파의 장문인을 혼자 상대해도 부족함이 없는 초절정 고수들이다.
그들은 서른 명씩이나 잃을 수는 없다.
“가봐야겠다.”
“호호호! 개운하지 않아. 개운하게 해줄 수 없어?”
화천은 누미를 등 뒤로 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미가 곧 옆으로 따라붙으며 말했다.
“유화아라는 계집, 검왕 좋아하지?”
“그렇다고 듣긴 했지.”
“강남제일미녀고?”
“그런 말이야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고. 강남제일미녀는 있어도 강북제일미녀는 없잖아. 그냥 하는 소리야.”
화천이 누미의 심사를 눈치채고 둘러쳤다.
누미가 이 일에 끼어들면 괜히 복잡해진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모두 다 쓸어버리고, 누산만 챙긴 채 기련산을 떠나면 그만이다. 지금까지 여기 있었던 것도 오래 있었다. 헌데,
“나도 같이 가. 그 계집, 보고 싶어졌어.”
누미가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제길!’
화천은 속으로 투덜댔다.
누미가 따라온다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 누미가 유화아를 보게 되면…… 이것은 예상이지만 유화아를 죽이지 말라고 말할 게다. 사로잡으라고.
혈루마옥 무인들 서른 명이 달려들어야 하는 무인을 사로잡으라고.
화천에게도 힘든 일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셈법이 나왔는지도 이해되지 않지만.
가서 직접 보면 알 게 된다.
“그냥 편히 있는 게 좋지 않아?”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나가는 말로 툭 던졌다.